아침저녁으로 선선한 정도가 아니라
제법 쌀쌀하다.
새벽에 창문을 열면 차가운 공기가 먼저
방 안으로 들어온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밤새 켜 두었던
에어컨을 이제는 잠들기 전에 끄게 되고,
외출할 때는 얇은 겉옷을 챙길까 잠시
망설인다.
계절은 달력의 숫자보다 먼저 피부로
느껴진다.
그렇다고 여름이 완전히 물러난 것은
아니다.
아침에는 가을 같다가도 한낮이 되면
햇볕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서늘한 바람을 믿고 긴소매 옷을 입고
나섰다가 이마에 맺힌 땀을 닦게 된다.
아침과 낮이 서로 다른 계절을 사는 듯하다.
실제로 요즘 서울의 기온도 아침과
한낮의 차이가 크게 벌어지고 있다.
여름이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는 동안,
가을은 새벽과 저녁을 조금씩 차지하며
자신의 시간을 넓혀 간다.
김용화 시인은 「백로」에서 이때를
'과일이 혀를 깨물며 익어간다는 절기'
라고 표현했다.
참으로 생생한 문장이다.
과일은 햇빛만으로 달아지는 것이
아니라, 차가워진 밤공기와 낮의 더위를
번갈아 견디며 깊은 맛을 얻는다.
따가운 볕을 견딘 사과의 볼이 붉어지고,
대추는 단단한 초록빛을 벗으며 갈색으로
익어 간다.
포도알에는 단맛이 차오르고,
들녘의 곡식은 고개를 낮춘다.
사람의 삶도 이와 닮았을 것이다.
좋은 날만 계속된다고 마음이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뜨거운 시간을 지나고, 때로는 쌀쌀한
바람을 견뎌야 생각이 단단해진다.
기쁨과 서운함,
만남과 이별,
성취와 실패가 번갈아 찾아오면서
사람은 조금씩 익어 간다.
과일이 제 안의 떫은맛을 단맛으로
바꾸듯,
우리도 지나온 시간의 아픔을
'이해와 너그러움'으로 바꾸며 살아간다.
여름 아침에 울어대던 매미 소리가
눈에 띄게 줄었다.
한여름 내내 대기를 가득 채우던 소리가
멎자, 그동안 들리지 않던 작은 소리들이
살아난다.
풀벌레 울음이 길어지고,
나뭇잎 스치는 소리가 또렷해진다.
길가의 화단에는 여름꽃이 마지막 빛을
붙잡고 있다.
나무 끝에서는 성급한 잎 하나가 먼저
컬러를 바꾼다.
가을맞이는 거창한 준비가 필요 없다.
옷장 앞쪽에 얇은 카디건을 꺼내 두고,
여름 이불은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건조한 후 이불장에 쟁여두고,
간절기 이불은 조금 도톰한 것으로
바꾸는 일이다.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차가운 녹차 대신
따뜻한 물 한 잔을 찾고,
뜨거운 햇볕 때문에 미뤄 두었던 산바카라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계절에 맞추어 생활의 속도와 온도를
조절하는 일,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소박한
가을맞이일 것이다.
가을은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올해 나는 무엇을 심었고,
지금 무엇을 익혀 가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아직 이루지 못한 일이 있다고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곡식도 과일도 저마다 익아가는 숙성의
시간이 다르다.
먼저 붉어지는 열매가 있는가 하면,
서리가 내릴 무렵에야 제맛을 내는
열매도 있다.
아침저녁의 쌀쌀한 바람은 한 해가
다시 깊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여름의 열기를 견딘 모든 것이 이제
결실을 준비한다.
우리도 옷깃을 여미며 마음 한편을
살펴볼 때가 되었다.
가을은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는다.
우리가 뜨거운 시간을 잘 견뎌 낸
자리에서, 조금씩 익어 오고 있다.
https://suno.com/s/Ur4v20tgwYX7sIDA
작사:콩새작가
작곡:수노
아침 바람에 옷깃을 여미면
어느새 계절이 곁에 와 있네
뜨거운 햇살 견뎌 낸 열매
제 안의 시간을 달게 익히네
우...
가을은 아침부터 오는가 봐
차가운 바람 끝에 마음이 깊어져
우리도 뜨거운 날을 견디며
한 알의 열매처럼 익어 가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