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취미생활 홈베이킹(4/4)
취미생활로 베이킹을 하면서 필연적으로 따르는 문제가 생산된 물량을 어떻게 소비하느냐다. '생산과 소비'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경제의 법칙이다. 생산자는 많이 생산하여 많이 팔고 싶어 하지만,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외면받는다.
베이킹도 마찬가지이다. 그냥 지인들에게 나눠주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받는 사람들의 반응을 무시할 수 없다. 받아서 환영받지 못할 것, 이리저리 굴러다니다 음쓰로 분리수거될 것을 만들면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베이킹도 내가 만들고 싶어 하는 것보다는 지인들이 좋아하는 것 위주로 만들게 된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품목이 바로 파운드케이크이다.
파운드케이크는 주재료인 버터, 설탕, 계란, 밀가루를 각각 1파운드씩 넣어서 굽는다고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나는 1:1:1:1.3의 비율로 섞는다. 파운드케이크의 가장 큰 장점은 맛과 모양도 좋지만, 여러 가지 내용물을 섞어 다양한 맛과 식감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건포도 크랜베리 열대과일 등 건조 과일이 들어가기도 하고, 호두 아몬드 피스타치오 등 견과류가 들어가기도 하고, 레몬 유자 청귤 등 과일청이 들어가기도 하고, 녹차 얼그레이 쑥 흑임자 시나몬 등 분말이 들어가기도 하고, 단호박 당근 생강 등 채소가 들어가기도 하고, 코코아파우더 다크초콜릿 화이트초콜릿 등 초콜릿 재료가 들어가기도 한다. 또 내가 즐겨 사용하는 재료 중 하나는 크림치즈이다. 이렇듯 다양한 재료가 섞이면서 그 맛과 풍미의 한계를 지을 수 없게 한다.
딸과 함께 광안리에서 북카페를 하던 시절. 커피 짝꿍으로 돌고돌아 판매했던 게 역시 파운드케이크였다. 인기가 좋아서 파운드케이크만 따로 사가는 손님들도 자주 있었다.
내가 만드는 파운드케이크가 결코 그냥 얻어진 것은 아니다. 다양한 레시피가 담긴 베이킹 바카라을 보며 공부도 하고, 나름 연구하며 굽기도 정말 많이 구웠다. 또한 굳이 원가에 집착할 필요가 없는 관계로, 좋은 재료를 양껏 넣으며 맛과 품질을 높이려고 힘썼다. 그 결과 지인들로부터 '믿고 먹는 이작가표 파운드케이크'라는 신뢰를 얻었다. 어떤 제과점 것보다 내 파운드케이크가 더 맛있다고 칭찬하는 지인도 있다. 그런 칭찬이 나를 춤추게 한다.
퇴직 후 세탁편의점을 할 때, 자주 찾는 손님으로 벤츠 타고 골프 치러 다니는 사모님이 계셨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분이 맡긴 세탁물에서 세 번이나 클레임이 발생하고 말았다. 원피스가 찢어지기도 하고, 골프점퍼가 분실되기도 하고, 티셔츠에 심각한 이염이 생기기도 하였다. 물론 본사에서 잘못한 것이지만, 이쯤 되면 접수창구인 우리 가게로 손님의 거센 항의가 쏟아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그 위기상황에서 내가 만든 파운드케이크 덕분에 관계를 망치지 않고 넘길 수 있었다. 물론 그 사모님이 젠틀하신 분이기도 하였지만.
첫 번째 클레임이 발생했을 때, 본사와의 클레임 처리와는 별개로 미안한 마음을 담아 단호박 파운드케이크를 만들어 드렸다. 설마 듣보잡이 만든 거라고 그냥 버리지는 않겠지 하는 심정이었는데, 다음날 일부러 가게에 들른 사모님의 칭찬이 쏟아졌다. 마침 친구들과 라운딩을 갔는데, 일행 모두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는 것이었다. 기대 이상으로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고 하였다.
두 번째 클레임이 발생했을 때, 사모님은 '뭐 그럴 수도 있죠.' 하며 너그럽게 넘겨주셨다. 내가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자, '그럼 파운드케이크 하나 만들어 주시든가요.' 하며 미소 지었다. 세 번째 클레임이 발생하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전혀 얼굴 붉힘 없이 원만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당연히 사모님은 가게를 접을 때까지 단골로 남았고, 오갈 때마다 가게옆 카페에서 내가 좋아하는 핫아메리카노를 뽑아서 들고 오셨다.
요즘은 정기 모임을 하는 지인들이나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 그리고 가까운 이웃들에게 한 번씩 파운드케이크를 구워 선물한다. 뭘 바라는 게 아니고 순수한 마음으로 하는 거지만, 대부분 반대급부가 따른다. 오는 정 가는 정. 정이 많은 우리 민족의 특성이다. 그러다 보니 역시 주는 것 이상으로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내가 만드는 파운드케이크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수제' '정성'으로 포장된 가성비 높은 미끼상품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난 파운드케이크를 굽는다. 월척이 걸리기를 꿈꾸며.
특별한 날에는 케이크를 만들기도 한다. 학원에서 베이킹을 배우고 나서 맞은 아내의 생일에 직접 생일케이크를 만들었다. 케이크 시트용 제누와즈 굽고, 생크림 휘핑하여 아이싱 하고, 딸기와 키위로 데코를 하였다. 온 가족이 함께 외식하고 난 후 생일케이크를 개봉하였다. 정작 아내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였지만, 케이크는 맛이 있었다.
외손자 두 돌 때에도 생일케이크를 만들었다. 케이크 몸체만 만들어 달라는 딸 부탁에 제누와즈 굽고, 크림치즈 섞은 단단한 생크림으로 아이싱을 해주었다. 그 위에 딸이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얹으니 세상 유일의 공사장 생일케이크가 완성되었다. 사돈댁과 함께 한 식사자리에서 손자의 뜨거운 반응은 물론 참석자 모두의 찬사를 받았다.
이제 외손자가 커서 쿠키를 함께 만든다. 아직 난이도 높은 베이킹은 못하지만 앞으로 차근차근 시도할 생각이다. 그리고 언젠가 생일케이크도 함께 만들게 되겠지.
나의 취미생활 홈베이킹은 대를 넘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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