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하천변 산바카라로를 천천히 걷는다. 제대로 운동이 되려면 러닝을 하거나 빠르게 걸어야 하지만, 오히려 쉬엄쉬엄 느릿느릿 걷는다. 앞만 보고 빠르게 걷다 보면 놓치기 쉬운 것들이, 천천히 걷다가 걸음을 멈추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 소소하고 소중한 것들을 그냥 지나치기가 아쉬워 사진으로 남긴다.
아직 덜 자란 네잎 클로버가 풀사이로 삐죽이 고개 내밀고, 날개 꼬리 한쪽이 살짝 잘린 호랑나비가 휴식을 취하고, 더듬이 바짝 세운 달팽이가 어딘가를 향해 부지런히 기어가기도 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물에서 나와 알 낳을 장소를 찾는 거북이도 보이고, 그리움 가득 품은 능소화의 피날레도 만난다.
앞만 보고 빠르게 달리던 시절이 있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도 없고, 변변찮은 지방대 출신에 든든한 백도 없는 입장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노력해도 될까말까한 상황들. 자질보다는 스펙을, 품성보다는 관계를 중시하는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쳐야 했다.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렸다. 그러다 보니 조직 내에서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희생당하는 후배 직원들을 보지 못하였다. 아니 나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못 본 척 외면하였는지도 모른다. 정말 가끔 분위기 좋을 때 보스에게 제도개선을 건의하기도 했지만, 거의 대부분을 입 닫고 눈 감고 살았다. 돌이켜보면 그때 그 시절 꼭 그렇게 못 본 체 했어야 했나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퇴직 후 소파와 한 몸 되어 티브이 보는 시간이 늘었다. 이리저리 채널 쇼핑하다 한 프로그램에 시선이 멈췄다. 아픈 몸을 이끌고 돈 벌러 나간 엄마대신 어린 두 동생을 돌봐야 하는 열한 살의 여전히 어린 소녀. 냉장고에 먹을 건 없고, 라면 먹고 싶다는 동생의 말에 슈퍼에게 사온 달랑 라면 한 개. 국물 흥건하게 끓인 라면 하나로 끼니를 때우는 세 자매. 그럼에도 미소를 잃지 않는 아이들. 그리고 그 미소 뒤로 느껴지는 안타까움.
아이들의 모습이, 역시 제대로 먹지 못하며 컸던 내 어린 시절을 닮아서일까? 괜스레 눈가가 촉촉해졌다. 나도 모르게 핸드폰 들고 번호를 꾹꾹 눌렀다. 1588-××××. '정기후원 신청에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통화를 마치고 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월 3만 원. 나에게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돈이다. 하지만 그 돈들이 모여 한창 씩씩하게 자라야 함에도 고통받는 아이들에게 작은 희망의 싹이라도 키워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바쁘게 뛰던 시절을 지나 느리게 걷는 요즘. 이제는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오늘도 난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하천변을 걷는다. 그리고 가끔 멈춰 서서 작은 속삭임에 귀 기울이며 주위를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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