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량도에서 다시 낚은 세월

by이은호


사량도를 다시 찾는데 딱 삼 년이 걸렸다.


삼 년 전 유월. 지인들과 사량도를 찾았을 때, 하루 종일 흐리거나 비가 내렸다. 초보 낚시꾼이 바닷물에 낚싯대 드리우고 세월을 낚기도 하고, 숙소에서 토독토독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며 우수에 젖기도 하였다. 그리고 거기서 얻은 영감으로 '당신은 누구세요?'라는 단편소설을 쓰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날씨가 좋아도 너무 좋았다. 해가 쨍쨍. 더웠다. 하지만 쾌청한 날씨만큼이나 마음도 상쾌하였다. 더구나 마음 맞는 지인들과 함께하는 여행인데 말해 뭐 하랴.



아침 10시. 고성 용암포에서 출발한 배가 20분 만에 사량도 내지 선착장에 사람들을 내려놓았다. 거기서 목적지인 옥동마을까지는 7킬로. 차로 불과 십분 거리였다.


옥동마을은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마을입구 버스정류소와 이정표. 숙소로 오르는 길에 삼 년 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편의점, 교회 그리고 녹슨 입산안내문까지. 그와 더불어 자리 잡은 터가 비좁다고 철망너머로 고개 내민 호박과 콩꼬투리.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었다고 분침 초침까지 앞세운 시계꽃. 모두가 정겨운 모습이었다.



숙소에 짐들이고 나서 사모님들이 서둘러 차려낸 아점. 구수한 꽃게 된장국에 달달한 토종 막걸리 한잔으로 본격적인 여행의 포문을 열었다.


이번 여행의 사장님들 주임무는 낚시. 든든하게 배 채우고 나서 낚싯대 들고 바닷가로 고고싱. 낚시 초보는 고수가 채비해 준 낚싯줄 물에 던져 넣고 세월 낚기 시작. 그런데 이게 웬일? 첫 마수걸이가 낚시 초보인 나에게 돌아왔네. 허헛. 하기야 고기도 낚시에 걸린 게 처음이라서 초보인지 몰랐겠지만.


자~ 이제 손맛도 봤겠다 느긋하게 즐기면 되겠다 싶었는데, 날씨가 영 아니었다. 해가 쨍쨍. 그늘 한 조각 없는 뙤약볕 밑에서 버티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이게 뭐 생선 말리는 덕장도 아니고 사람을 삐덕삐덕 말렸다. 이러다 사람 잡겠다 싶었다. 계속 버티다가는 반건조도 아니고 완전 마른 육포가 될 판.


두 시간쯤 지날 무렵 슬슬 바람을 잡았다. 뭐 고기가 씨알 굵은 놈도 없고, 더위 먹어 입질도 뜸하고.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 그만 철수했다가 해 떨어지면 다시 오자고 졸랐다. 다들 새벽에 일어나 먼 길 오느라 피곤한 데다 날씨마저 사람을 지치게 하니 마음이 동하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내 재촉이 고마웠을 수도 있었겠다. 그래서 철수. 숙소로 돌아왔다.


그래도 몇 마리 잡은 놈들로 회 한 접시가 차려졌다. 모자라는 안주는 준비해 간 삼겹살 구워서 채우고, 즐거운 회식시간이 이어졌다. 술은 베트남에서 오신 김사장님이 준비한 무려 발렌타인 30년 산. 역시 술값을 했다. 그윽한 향에 취하고 목을 타고 넘는 부드러움에 취하고. 몇 순배 돌자 술병이 뚝딱 비었다. 다음으로는 각자 취향대로 소주, 맥주 또는 막걸리.


모임 명칭이 '베조회'이다. 풀어서 '베트남 좋아 회'. 그래도 명색이 작가인 내가 지었다. 모임 명칭에 맞게 술잔을 부딪히며 베트남식 건배 구호가 이어졌다.


못.하이.바.요! 하이.바.요. 하이.바!



해 떨어지고 밤낚시는 좋았다. 덥기는커녕 선선한 바닷바람에 오히려 추위를 느낄 정도였다. 밤낚시에는 사모님들도 합세하여 숨겨둔 실력을 맘껏 발휘하였다. 나는 그 틈에서 낚싯대 대신 진한 코발트블루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 속으로 퐁당 뛰어들고 싶을 만큼.



숙소로 복귀하여 이어진 술자리.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다 올해 베트남 골프여행을 언제 가느냐로 관심이 모아졌다. 항공료가 크게 뛰어서 비용 부담도 있었다. 그러나 허리띠를 졸라 매더라도 베트남엘 안 갈 수는 없는 일. 항공료가 뛴 만큼 차라리 여행일정을 늘려 본전 뽑고 오자는, 엉뚱한 방향으로 결론이 났다. 그리하여 11월 하순, 10박 12일의 여행일정이 확정되었다.


중요한 결론 내리느라 모두들 피곤했는지, 정작 밤놀이의 하이라이트인 고스톱을 생략하고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차례로 씻고 나니 자정이 훌쩍 넘었다. 피곤했던 몸 잠자리에 누이니 곧장 꿈나라로 직행.


이튿날 날이 밝았다. 전날의 과음으로 불편한 속을 시원한 오리탕으로 쓸어내렸다. 사모님들이 고스톱으로 치매예방활동에 몰두하는 사이, 고수 두 분은 생선 지옥에 빠졌다. 잡은 잔챙이들을 기름에 튀긴다고 손질에 나선 것이다.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길래 고기를 적당히 잡았어야지. 쯧쯧. 반면에 낚싯대 채비할 줄도 고기 손질할 줄도 모르는 하수는 느긋하게 구경만 하였다. 고스톱판이 끝나갈 무렵 생선 지옥이 끝났고, 고기 튀김은 맛이 있었다.



오후 4시 30분. 사량도 내지 선착장에서 출발한 마지막 배는 우리를 20분 만에 고성 용암포에 내려 주었다. 짧은 여행의 끝을 기념사진으로 마무리하였다.


김사장님은 내가 2008년부터 2012년 초까지 회사 베트남 공장에 근무할 때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다. 그리고 다른 두 분은 베트남 공장에 함께 또는 후임 법인장으로 근무했던 온라인 게임동료이다. 서로 마음이 통하다 보니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오고 있다. 김사장님은 큰 형님으로서 리드를 잘하시고, 아우들은 투덜거리면서도 잘 따른다.


오랜 세월 쌓아온 신뢰와 정이 무르익은 결과이다. 사장님들 못지않게 사모님들도 언니동생하며 잘 지낸다. 그래서 만나면 늘 반갑다. 함께 여행 다니고 술잔 기울이며 사는 이야기 세상 이야기를 나눈다. 머리가 더 희어지고 주름이 더 깊어지고 걸음이 더 느려지더라도, 이렇게 함께 섬을 찾고 바다를 바라보며 같은 밥상에 둘러앉아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곳이 섬이 아니라도 좋다. 낚시가 아니어도 좋다. 골프가 아니어도 좋다.


살다 보면 크고 작은 고난의 순간을 맞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위로를 건네고 따뜻한 손길을 내어주는 사이. 행복을 함께 나누고 슬플 땐 옆에서 같이 울어주는 사이. 그런 사이이고 싶다. 그러나 가능하면 슬픔은 저 멀리 던져버리고, 대신에 오래도록 건강하게 그리고 행복한 동행이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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