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다 남은 바나나의 효용가치

그 남자의 홈베이킹

by이은호


먹다 남은 바나나가 눈에 들어왔다. 집에 둘만 있다 보니 바나나 한송이를 사도 다 먹지를 못한다. 먹다 남은 게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찬밥신세다. 노랗고 싱싱하던 것이 검게 변하고 검은 점이 피었다. 하루만 더 지나면 수명이 다해 음쓰로 분리수거해야 할 것 같은 모습이다.



썩어가는 바나나 세 개의 효용가치는 얼마나 될까. 이놈들 심폐소생술을 해서 효용가치를 높일 수는 없을까.


요즘 반주부로 살다 보니 그냥 버리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원숭이도 아니고 세 개나 꾸역꾸역 먹기는 싫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바나나를 재료로 빵을 만들자고. 빵 이름은 '바나나 브레드'. 파운드케이크와 유사한 빵이다.


급하게 팔 걷어붙이고 시작했다. 들어가는 재료는 박력분, 아몬드분말, 베이킹파우더, 계란, 설탕, 소금, 버터, 바나나, 건포도, 호두분태, 소보로 가루 그리고 잡내를 제거하고 풍미를 살려 줄 양주와 레몬즙 약간이다.



'효용가치'란 재화나 서비스를 소비함으로써 얻는 주관적인 만족감을 객관적인 수치로 나타낸 것이다. 약 400g의 바나나 브레드 한 덩이의 객관적인 수치인 시장가격을 만원이라고 할 때, 그것을 취함으로써 얻는 주관적인 만족감은 어떨까? 그 가치를 상회할까 아니면 못 미칠까? 아마도 그것은 사정에 따라서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 다를 것 같다.


다음날 가까운 지인을 만나 빵을 건넸다. 익히 내가 만든 빵맛을 아는 지인은 '역시 믿고 먹는 이작가'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더불어 내 어깨도 한껏 으쓱해졌다. 효용가치 낮은 먹다 남은 바나나였지만 정성 듬뿍 담긴 빵으로 변신하면서, 주는 사람에게나 받는 사람에게나 그 가격 이상의 만족감을 주는 존재가 되었다.



내 나이 어느새 60대의 중간지점을 목전에 두고 있다.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엔 효용가치가 드높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마치 먹다 남은 바나나 신세랄까. 효용가치가 바닥이다. 쓸모없는 피조물이 되어 이리 쓸리고 저리 쓸린다. 하는 일 없이 배회하며 몸은 편하지만, 반대로 마음은 불편하다. 이러다 현실에 안주하여 마음마저 무뎌지게 될까?


냉장실에 하루 숙성시킨 빵을 꺼내 한 조각 입에 넣었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식감과 함께 바나나 향이 입안에 은은하게 퍼진다. 효용가치 바닥이었던 바나나가 변신을 통해 그 가치를 높였다. 그렇다면 나도 새롭게 시도하다 보면 변신의 기회가 오지 않을까. 아직은 몸도 마음도 한창인데 말이다.


서둘러 외출 준비를 마치고 노트북 든 가방 메고 집을 나선다. 오늘은 또 어떤 것을 배우게 될까? 뭔가 새로운 걸 배운다는 건 기쁨이요 삶의 활력소이다. 더불어 나의 효용가치를 +1만큼 높여보자. 주관적 만족감도 충족시키고.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생업과 취미를 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