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애의 다른 예

by이은호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밤사이 제법 많은 양의 비가 내리고 여전히 흐린 오전. 하천의 수위가 올라가고 물살이 거세어졌다. 그에 따라 평소처럼 어린 새끼 데리고 먹이활동이 불가능하다는 걸 느낀 어미. 새끼들 이끌고 하천변으로 나왔다. 풀숲에 새끼들 숨기고 부동자세로 경계근무에 들어간다. 눈 부릅뜨고 귀 쫑긋 열고. 노심초사 어미 마음 아는지, 새끼들 올망졸망 모여 얌전하다. 행여라도 긴장 속 평화 방해할세라 조심스럽게 사진 한 장 찍고 물러난다.



청둥오리의 모성애는 야생 조류 중에서도 매우 강하고 헌신적이라고 한다. 어미는 알을 낳는 순간부터 새끼가 독립할 때까지 목숨 걸고 새끼를 지킨다고 한다. 천적을 만나면 날갯죽지가 부러진 듯 비틀비틀 상대를 유인하여 새끼들이 도망칠 시간을 번다고 한다. 천적의 입장에선 위장에 기별도 안 갈 새끼보다는 배 두드리며 먹을 양의 어미가 구미에 당길 터. 그렇게 적을 유인하고 새끼가 도피하고 나면 훌쩍 날아 자리를 피해 새끼 곁으로 간다고. 모성애가 강할뿐더러 머리도 좋은 녀석이다.


그러고 보니 오리가 특별하기는 하다. 비둘기, 물닭, 왜가리, 백로 등 하천변에 많은 새들이 보이지만, 오리가족처럼 어미와 새끼가 졸졸졸 떼 지어 다니는 녀석들은 없다. 왜가리나 백로는 고독한 사무라이 스타일이고, 비둘기는 어미와 새끼관계를 도저히 분간할 수 없는 떼거리 집단이다. 반면에 오리가족은 멀리서도 눈에 확 들어오는 화목함, 그 자체이다.



본능에서 비롯된 오리의 강한 모성애에 비하여, 오리보다 머리 좋은 인간의 모성애는 이해득실을 따진다. 철없는 불장난으로 낳은 신생아를 직접 살해하기도 하고, 온갖 이유를 갖다 붙여 아이를 학대하기도 하고, 그게 아니더라도 철부지 자식을 떼어놓고 어미가 가출하기도 한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몇 차례 집을 나갔다. 노름에 빠져 스스로의 삶을 갉아먹는 것은 물론 식구들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아버지 때문이었다. 어린 나는 어머니가 없다는 사실에 슬픔이 차올랐지만 그것도 잠시, 꼬르륵 요동치는 배고픔이 더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 이웃 아주머니들의 수군거림이나 동네 친구들의 놀림은 참을 수 있었지만, 허기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바로 생존의 문제였다. 어머니는 며칠 만에 돌아오곤 하였다. 차마 자식을 저버릴 수 없다는 모성애가 발목을 잡았을 것이다. 집에 온 어머니는 어찌어찌 장만한 밀가루로 풀떼기를 쒀 자식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었다. 모성애의 덫에 걸린 어머니의 가여운 인생은 눈물과 한숨으로 얼룩져 흘러갔다.


평범한 가정에서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자란 아내의 모성애는 오리의 그것에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다. 이미 결혼하고 분가해 잘살고 있는 딸과 아들에 대한 걱정이 끊이질 않는다. 그러나 이제는 그 대상이 바뀌었다. 어머니의 모성애를 간섭으로 받아들이는 딸을 건너뛰어 외손자에게로 향한다.


평일 아침. 일찍 출근하는 딸을 대신하여 외손자의 유치원 등교를 돕는다. 밥 먹이고 씻기고 옷 입히고. 아이 입장에서는 까칠하고 잔소리하는 엄마보다 기분 맞춰주는 할머니가 좋다. 기분 좋게 준비 마치고 룰루랄라 깡총깡총 가벼운 발걸음으로 현관문을 나선다. 아파트 정문 앞. 기다리던 땡땡유치원 곰돌이 3호차가 도착하면, 아이는 떨어지기 싫은 마음을 시큰둥한 인사로 표현하고 차에 오른다. 아내는 버스 꽁무니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높이 들어 흔든다. 그리고 돌아서서는 금방 간 아이가 보고 싶다고 한다.


아내의 모성애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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