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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형의 반쪽으로 뽑혔어오

by김경훈

저는 형의 반쪽으로 뽑혔어오.


이건 자랑이 아니라 서류에 적힌 말이에오.

안내견 학교에는 짝을 맞추는 과정이 있어오.

매칭이라고 해오.


선생님들이 사람을 먼저 오래 봐오.

걸음이 얼마나 빠른지.

키가 얼마나 큰지.

어디에 사는지.

매일 어디를 다니는지.

엘리베이터를 많이 타는지 계단을 많이 오르는지.


그리고 개를 오래 봐오.

걸음이 얼마나 빠른지.

겁이 얼마나 많은지.

사람 많은 데를 좋아하는지.

소리에 얼마나 놀라는지.


그 두 목록을 나란히 놓고 맞는 짝을 찾아오.


저랑 형은 그렇게 만났어오.

걸음 빠르기가 비슷했고 둘 다 사람 많은 데를 겁내지 않았대오.

서류로 보면 우리는 딱 맞는 반쪽이었어오.


그런데 처음 일주일은 하나도 안 맞았어오.



저는 탱고예오.

형의 안내견이에오.


오늘 아침 보이스오버가 플라톤이라는 사람 이야기를 읽어줬어오.


나만의 이상적인 한 사람이 존재할까.

이게 질문이었어오.

대답은 예였어오.


옛날 옛적 사람은 공처럼 동그랬대오.

팔이 네 개고 다리가 네 개고 머리는 하나였대오.

그 동그란 사람이 신들 자리를 넘보다가 제우스한테 벼락을 맞았대오.

그래서 반으로 쪼개졌대오.


그때부터 사람은 세상을 떠돌면서 잃어버린 자기 반쪽을 찾는대오.

원래 자기였던 반쪽을오.


저는 이 대목에서 일어나서 형 다리 옆에 섰어오.

그리고 다리를 세어봤어오.


형 다리 두 개.

제 다리 네 개.

합치면 여섯 개예오.


동그란 사람보다 두 개가 모자라오.

그런데 저는 그 정도면 됐다고 생각했어오.


누나가 제가 형 옆에 붙어 선 걸 보고 웃었어오.


"탱고가 자기 반쪽이래."


형이 제 머리를 만졌어오.


"반쪽치고는 털이 많아."



처음 일주일 이야기를 해야 해오.


서류로는 걸음이 맞았어오.

그런데 실제로 걸어보니까 형은 저보다 반 박자 늦게 출발했어오.

제가 먼저 나가면 하네스가 팽팽해졌어오.

형은 끌려가는 느낌이 들었대오.

제가 형을 기다리면 이번엔 형이 제 엉덩이에 부딪혔어오.


모퉁이에서는 더 심했어오.

저는 모퉁이를 크게 돌았고 형은 작게 돌았어오.

형 어깨가 벽에 스쳤어오.

형이 아야 하고 말했어오.


그날 밤 저는 제 매트에서 오래 안 잤어오.

제가 형 반쪽이 아니면 어떡하지.

서류가 틀렸으면 어떡하지.


그런데 형도 그날 밤 오래 안 잤어오.

저는 형 숨소리로 알았어오.


다음 날 아침 형이 하네스를 채우면서 저한테 말했어오.


"오늘은 내가 조금 일찍 출발할게. 너는 조금 늦게 출발해."


그날 우리는 둘 다 조금씩 틀리게 걸었어오.

형은 원래보다 빨리 저는 원래보다 늦게오.

그리고 그 틀린 걸음이 맞았어오.


저는 그날 알았어오.

반쪽은 찾는 게 아니라 맞춰가는 거예오.


형이 그날 웃으면서 한 말이 있어오.

스텝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라고오.

형이 제 이름을 왜 그렇게 지었는지 저는 그날 처음 알았어오.



그런데 플라톤은 동그란 사람 이야기를 끝까지 믿지 않았대오.


그 이야기는 아리스토파네스라는 희극 작가가 한 이야기래오.

사람들을 웃기려고 한 이야기래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소크라테스가 다른 말을 했대오.


사랑은 원래 내 것이었던 반쪽을 찾는 게 아니래오.

나를 더 나아지게 하고 싶게 만드는 사람을 향한 갈망이래오.

그 사람 곁에 있으면 내가 아직은 아니어도 앞으로 될 수 있는 내가 되고 싶어진대오.


누나가 이 대목을 아주 좋아했어오.

커피잔 소리가 빨라졌어오.


"이게 핵심이야. 반쪽 이야기는 사랑을 과거로 보는 거야. 원래 있던 걸 되찾는 거. 소크라테스는 사랑을 미래로 봐. 아직 없는 나를 향해 가는 거."


형이 물었어오.


"그럼 반쪽 찾기는 틀린 거야."


"틀렸다기보다 너무 편한 거지. 딱 맞는 사람이 어딘가 있다고 믿으면 안 맞을 때마다 이 사람이 아니구나 하고 떠나게 되잖아."


"서류상 맞는 짝을 찾아다니는 거네."


"응. 근데 서류상 맞는 짝도 첫 주에는 벽에 어깨를 부딪혀."


형이 웃었어오.

저도 꼬리를 쳤어오.

그 첫 주 이야기는 우리 집에서 아주 유명해오.



오후에 형 연구실에 석사 1학기 학생이 찾아왔어오.


이 학생은 연구실 문을 열면 저한테 먼저 인사해오.

형한테는 두 번째로 해오.

형은 그 순서를 알고도 모르는 척해오.

저는 근무 중이라서 꼬리만 바닥에 한 번 쳐줘오.


학생이 고민이 있다고 했어오.


"선배님 저 소개팅 앱을 하는데요."


형이 의자를 돌렸어오.

의자가 끼익 했어오.

이번엔 악령이 온 게 아니라 재밌는 이야기가 온 소리였어오.


"조건을 다 맞춰서 찾았거든요. 나이랑 사는 동네랑 취미랑 종교랑 키까지요. 앱에서 저랑 맞는 정도가 97퍼센트래요."


"좋네요."


"근데 만나보니까 하나도 재미가 없었어요. 대화가 계속 끊겼어요. 서로 할 말이 없었어요."


학생 목소리가 조금 억울했어오.


"97퍼센트가 맞는데 왜 재미가 없을까요."


형이 잠깐 생각했어오.

그리고 이렇게 물었어오.


"그분이랑 있으면 뭔가 해보고 싶어지던가요."


"네."


"앞으로 뭘 해보고 싶어진다거나 내가 좀 달라지고 싶어진다거나요."


학생이 한참 조용했어오.


"아니요. 그냥 편했어요. 편한데 아무것도 안 하고 싶었어요."


형이 고개를 끄덕였어오.


"97퍼센트는 지금의 학생이랑 지금의 그분이 얼마나 같은지를 잰 거예요. 둘이 같이 있으면 어떻게 달라질지는 안 재요. 그건 앱이 못 재요."


학생이 물었어오.


"선배님은 누나를 어떻게 알아보셨어요."


형이 웃었어오.


"알아본 게 아니라 같이 바뀐 거예요."


학생은 그 말을 한참 곱씹는 것 같았어오.

신발 끝이 바닥을 톡톡 쳤어오.

생각할 때 나는 소리예오.



저는 그 대답을 들으면서 우리 집을 생각했어오.


누나는 원래 얼굴로 말하는 사람이었대오.

눈썹으로 반대하고 입꼬리로 찬성했대오.

그런데 형 옆에서는 그게 하나도 안 통했어오.

그래서 누나는 하고 싶은 걸 다 말로 하게 됐대오.

지금 누나는 상상한 걸 소리 내서 말하는 사람이에오.

제가 꿈에서 뭘 쫓는지도 누나가 다 말로 지어내오.


형은 원래 다니던 길만 다니는 사람이었대오.

모르는 가게 문을 여는 걸 무서워했대오.

그런데 누나랑 다니면서 조금씩 아무 데나 들어가오.

방천시장 골목도 들어가고 처음 가보는 국숫집도 들어가오.

누나가 문 앞에서 냄새가 좋다고 하면 형은 그냥 들어가오.


그리고 형은 저한테서 커피 식는 소리를 배웠어오.

누나가 슬플 때 잔 드는 소리가 멈춘다는 걸오.

저는 형한테서 기다리는 법을 배웠어오.

면담에서 누가 울 때 다음 질문을 안 하고 기다리는 법이오.


우리 셋 중에 원래 반쪽이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어오.

그런데 우리 셋은 서로 옆에서 다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됐어오.

소크라테스 선생님이 말한 짝이 그거예오.



에로스라는 신은 활을 쏜대오.

그 화살에 맞으면 어쩔 수 없이 사랑에 빠진대오.


저도 화살을 맞은 날이 있어오.

형을 처음 만난 날이에오.


안내견 학교 면담실이었어오.

문이 열리고 형이 들어왔어오.

그날 형한테서는 세 가지 냄새가 났어오.

아침에 먹은 계란 냄새.

새로 산 운동화 고무 냄새.

그리고 긴장한 사람 손바닥 냄새.


형은 의자에 앉자마자 손을 내밀었어오.

손바닥을 아래로 해서 아주 천천히오.

개를 처음 만나는 사람은 대부분 손을 위에서 내려오는데 형은 아래에서 왔어오.

저는 그 손 냄새를 맡고 제 턱을 거기 올려놨어오.

그게 제 화살이었어오.


나중에 들었는데 형은 그날 손을 그렇게 내밀려고 일주일 동안 연습했대오.

소파 쿠션을 개라고 생각하고오.

쿠션은 대답을 안 하니까 형은 쿠션 냄새를 대신 맡아봤대오.

아무 냄새도 안 났대오.

그래서 형은 그날 면담실에서 처음으로 대답하는 쿠션을 만난 거예오.


그러니까 저를 쏜 화살은 형이 일주일 동안 깎은 화살이에오.

에로스 신은 그냥 쏘는데 형은 연습하고 쐈어오.

저는 그게 더 좋아오.

연습한 화살은 빗나가도 다시 쏠 수 있어오.


그 쿠션은 지금도 우리 집 소파에 있어오.

저는 가끔 고마워서 그 쿠션에 턱을 올려놔오.

누나는 그걸 보고 탱고가 첫사랑 연습 상대를 알아본다고 해오.

형은 쿠션이 질투할 거라고 해오.



한 가지 걱정은 있어오.


동그란 사람이 쪼개진 건 벼락 때문이었대오.

저랑 형한테도 언젠가 그런 날이 와오.


안내견은 은퇴를 해오.

수성못에서 만나는 보리 누나처럼오.

그날이 오면 하네스가 풀리고 형한테는 새 짝이 와오.


저는 가끔 그 생각을 해오.

그럼 형 반쪽은 제가 아니게 되는 걸까오.


그런데 오늘 소크라테스 이야기를 듣고 조금 안심했어오.


짝이 원래 내 것이었던 반쪽이라면 하나가 떠나면 다른 하나는 영원히 반쪽으로 남아오.

그런데 짝이 서로를 바꾸는 사람이라면 떠나도 바뀐 건 남아오.


형은 저 때문에 모르는 길을 가는 사람이 됐어오.

그건 제가 은퇴해도 남아오.

새 짝이 와도 형은 그 길을 갈 거예오.


저는 형 안에 남는 반쪽이 될 거예오.

그거면 괜찮아오.



그날 저녁 누나가 하나를 더 알려줬어오.


"소크라테스가 그 사랑 이야기를 누구한테 배웠는지 알아."


형이 몰랐어오.


"디오티마라는 여자한테 배웠대. 소크라테스가 그 자리에서 자기 생각이 아니라 디오티마한테 들은 거라고 말해. 남자들만 모인 술자리에서 제일 중요한 말을 그 자리에 없는 여자한테서 빌려온 거야."


형이 오 하고 소리를 냈어오.

형이 오 하는 건 기분 좋은 거예오.


"그럼 그 술자리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은 거기 없었네."


"응. 그런 일 자주 있지."


저는 그 말이 좋았어오.

제일 중요한 걸 아는 사람이 그 자리에 없는 일.

형이 연구하는 것도 그런 거래오.

정보가 오가는 자리에 정작 그 정보가 제일 필요한 사람이 없는 일이오.

형은 그런 자리에 빈 의자가 하나 있다는 걸 알려주는 사람이에오.

그 빈 의자에 저는 들어갈 수가 없어오.

그래서 형이 대신 들어가오.



밤에 누나가 플라톤이라는 사람 소개를 마저 해줬어오.


화이트헤드라는 철학자가 이렇게 말했대오.

유럽 철학 전체가 플라톤에 단 각주 모음이라고오.


형이 그 말을 듣자마자 의자를 끼익 돌렸어오.


"그럼 나도 플라톤 연구자네. 매주 각주를 다니까."


"자기 각주는 탱고 글에 다는 거잖아."


"그러니까 탱고가 플라톤이지."


누나가 커피를 마시다가 사레가 들렸어오.

저는 그 소리에 귀를 세웠어오.

그리고 조금 뿌듯했어오.

명예 석사가 플라톤이 되는 데는 하루면 충분했어오.


그다음에 누나가 플라토닉 사랑 이야기를 했어오.


저는 처음에 플라스틱 사랑으로 들었어오.

제 장난감 공이 플라스틱이라서오.

저는 그 공을 아주 사랑해오.

그래서 저는 플라스틱 사랑이라면 자신이 있었어오.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오.

사람들은 몸은 빼고 마음만 하는 사랑을 플라토닉 사랑이라고 부른대오.

누나 말로는 그게 플라톤 입장에서는 억울한 이름이래오.

플라톤은 몸이 원하는 마음을 버리라고 한 적이 없대오.

오히려 그 끌림이 사람을 신한테까지 데려가는 힘이라고 했대오.


"그래서 횔덜린이라는 시인이 이렇게 외쳤대. 거룩한 플라톤이여 용서하소서. 그들이 당신께 큰 잘못을 저질렀나이다."


형이 그 말을 따라 했어오.

아주 과장된 목소리로오.

누나가 웃었어오.


저는 플라톤 선생님 편이에오.

저도 사랑하면 몸이 먼저 가오.

누나가 퇴근하고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면 제 꼬리가 마음보다 먼저 흔들려오.

엉덩이까지 같이 흔들려오.

마음만 하는 사랑은 개한테는 너무 어려워오.



그나저나 오늘 밤 형이 이의를 제기했어오.

지난번 각주에서 미뤄둔 이의예오.

제 뽀뽀 목록에 왜 형이 없냐는 거예오.

누나랑 장모님이랑 미용실 원장님은 있는데오.

저는 오늘 그 대답을 찾았어오.

반쪽은 원래 한 몸이었대오.

자기 몸한테 뽀뽀하는 개는 없어오.

형은 제 반쪽이라서 목록에 없는 거예오.

목록 밖에 있는 거예오.

형이 그 설명을 듣더니 한참 웃었어오.

그러고는 그럼 목록보다 높은 데 있는 거네 하고 우겼어오.

저는 반박하지 않았어오.

반쪽끼리는 원래 싸우면 안 돼오.



[형의 각주]


탱고 글에 각주를 단다.


첫째.

안내견 매칭은 실제로 사용자의 보행 속도와 체격과 생활 환경과 이동 경로를 개의 성향과 나란히 놓고 정한다.

그런데 탱고 말대로 첫 주는 대체로 맞지 않는다.

서류는 시작점이고 짝은 그다음부터 만들어진다.

우리의 첫 주를 기억하는 건 내 어깨다.


둘째.

향연의 아리스토파네스 이야기에는 원래 세 종류의 동그란 사람이 나온다.

남자와 남자가 붙은 사람과 여자와 여자가 붙은 사람과 남자와 여자가 붙은 사람.

쪼개진 뒤 각자 자기 짝을 찾는다.

원문은 그중 하나만 소개했다.

플라톤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한 가지 사랑만 말하지 않았다.


셋째.

소크라테스가 사랑에 대해 디오티마라는 여성에게 배웠다고 말하는 대목은 향연에 실제로 있다.

디오티마가 실존 인물인지는 연구자들 사이에 의견이 갈린다.

누나는 실존 여부보다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 말을 했다는 구조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나는 누나 말에 동의한다.


넷째.

연구실 학생 이야기는 본인 동의를 받고 알아볼 수 없게 바꿨다.

97퍼센트라는 숫자는 앱이 실제로 보여준 숫자라고 했다.

나는 그 숫자보다 학생이 신발로 바닥을 친 소리가 더 많은 걸 알려줬다고 생각한다.


다섯째.

화이트헤드의 말은 유럽 철학의 전통이 플라톤에 대한 일련의 각주로 이루어져 있다는 뜻이다.

탱고가 플라톤이라는 내 주장은 학계에 보고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플라토닉 사랑이 육체를 버린 사랑이라는 통념은 플라톤 본인의 생각과 거리가 멀다는 점은 분명히 적어둔다.

그는 몸에서 시작하는 끌림이 아름다움 자체를 향해 올라가는 사다리의 첫 칸이라고 보았다.

현관에서 엉덩이까지 흔드는 탱고는 그 첫 칸에 아주 충실하다.


여섯째.

처음 만난 날 손을 아래에서 내민 것은 안내견 학교에서 미리 들은 조언을 따른 것이다.

쿠션 연습은 내 생각이었다.

쿠션은 여전히 소파에 있고 아직 질투의 기색은 없다.


일곱째.

뽀뽀 목록에 대한 이의는 이번 편으로 종결한다.

목록 밖이라는 탱고의 판결을 받아들인다.

목록보다 높다는 해석은 내가 덧붙인 것이고 탱고는 이에 대해 반박하지 않았다.

문헌정보학적으로 말하면 나는 분류표 바깥의 특수 장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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