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네스를 벗으면 저는 쓸모가 없어져오.
이건 슬픈 말이 아니에오.
제가 아는 말 중에 제일 신나는 말이에오.
하네스는 소리가 있어오.
버클 두 개가 딸깍 하고 풀려오.
등에서 무게가 빠져나가오.
그리고 형 손이 제 목덜미를 한 번 털어줘오.
그게 신호예오.
이제 너는 아무 일도 안 해도 돼.
저는 그 순간 몸 전체를 털어오.
귀부터 꼬리까지 한 번에오.
누나는 그걸 보고 퇴근 털기라고 불러오.
지난 주말 창녕에서 저는 그 털기를 아주 크게 했어오.
저는 탱고예오.
형의 안내견이에오.
근무 중에는 쓸모가 아주 많은 개예오.
창녕에는 누나 엄마 집이 있어오.
형은 장모님이라고 불러오.
달창저수지 근처에 있는 마당 있는 집이에오.
거기 가면 냄새가 달라져오.
물 냄새가 낮게 깔려 있고 흙 냄새가 진해오.
텃밭에서 고추 냄새가 나고 부엌에서 늘 뭔가 끓는 냄새가 나오.
저는 그 집 냄새를 차 문이 열리기 전부터 알아오.
창문 틈으로 들어오거든오.
그리고 그 집에는 보우가 있어오.
보우는 진트리버예오.
진돗개랑 리트리버가 반씩 섞였어오.
저랑 나이가 같아오.
그런데 저랑 사는 게 완전히 달라오.
보우는 하네스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오.
보우는 평생 퇴근 상태예오.
그런데 저는 보우가 퇴근 털기를 하는 걸 한 번도 못 봤어오.
보우한테는 털어낼 게 없어오.
출근을 안 하니까 퇴근도 없어오.
저는 가끔 보우가 부러워오.
그런데 가끔은 보우가 조금 심심해 보여오.
매일이 같은 마당이에오.
매일이 놀이면 어느 날이 놀이인지 모르게 돼오.
오늘 아침 보이스오버가 실러라는 사람 이야기를 읽어줬어오.
놀며 시간을 허비해도 괜찮을까.
이게 질문이었어오.
대답은 예였어오.
저는 이 대답을 듣고 꼬리를 바닥에 두 번 쳤어오.
실러는 사람이 놀 때만 온전히 사람이라고 했대오.
그런데 실러가 말한 놀이는 아무 놀이가 아니래오.
아름다운 놀이래오.
아름다운 놀이는 놀이 말고 다른 목적이 없대오.
돈을 벌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실력을 키우려고 하는 것도 아니래오.
그냥 노는 거래오.
쓸모없어서 아름다운 거래오.
그리고 하나가 더 있었어오.
아름다운 놀이는 경계가 있고 끝이 있대오.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끝나는지가 분명해야 한대오.
끝이 없는 놀이는 아름다움을 잃고 위험해진대오.
저는 이 대목에서 일어나서 현관으로 갔어오.
하네스가 걸려 있는 자리예오.
누나가 웃었어오.
"탱고가 실러 알아듣네."
형이 말했어오.
"탱고한테는 경계가 저기 걸려 있으니까."
제가 처음 놀이를 배운 건 훈련소였어오.
정확히 말하면 훈련소에서 배운 건 놀이처럼 생긴 공부였어오.
선생님들이 잘하면 간식을 줬어오.
칭찬을 크게 해줬어오.
계단 앞에서 멈추면 간식.
문을 찾으면 간식.
저는 그게 재밌었어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건 놀이가 아니었어오.
목적이 있었으니까오.
저를 안내견으로 만드는 목적이오.
오늘 글에 그런 말이 있었어오.
요즘은 일을 놀이처럼 만들어서 사람들 의욕을 북돋는대오.
게임화라고 한대오.
저는 게임화를 받은 개예오.
덕분에 일을 좋아하게 됐어오.
고마운 일이에오.
그런데 훈련소 선생님들은 그것만 하지 않았어오.
하루에 한 번씩 운동장 문을 열어줬어오.
줄도 없고 하네스도 없고 간식도 없는 시간이었어오.
그 시간에는 아무것도 잘할 필요가 없었어오.
그냥 뛰었어오.
선생님 한 분이 이렇게 말했던 걸 기억해오.
이 시간이 없으면 좋은 안내견이 못 된다고.
저는 그때 그 말을 몰랐어오.
지금은 알아오.
일만 하는 개는 일을 오래 못 해오.
창녕 집 마당에서 보우가 저한테 달려왔어오.
보우는 인사할 때 예의가 없어오.
냄새도 다 안 맡고 바로 엉덩이로 부딪혀와오.
저는 근무 중에는 그런 인사를 못 받아오.
그런데 그날은 하네스를 벗은 뒤였어오.
저는 엉덩이로 받아쳤어오.
그다음부터는 기억이 잘 안 나오.
마당을 몇 바퀴 돌았는지 모르겠어오.
텃밭 고랑을 뛰어넘었어오.
장모님이 고추는 밟지 말라고 소리쳤어오.
저는 고추 하나를 밟았어오.
고추 냄새가 발바닥에 묻었어오.
매웠어오.
보우는 저보다 빨라오.
그런데 저는 보우보다 오래 뛰어오.
보우가 먼저 지쳐서 평상 밑으로 들어갔어오.
저는 혼자 한 바퀴를 더 돌았어오.
그 한 바퀴는 아무 쓸모가 없었어오.
누구를 데려다주지도 않았고 뭘 피하지도 않았어오.
그냥 돌고 싶어서 돌았어오.
실러 선생님이 봤으면 그 한 바퀴가 제일 아름다웠다고 했을 거예오.
점심을 먹고 장모님이 봉지를 하나 꺼냈어오.
"탱고 주려고 샀다."
공이었어오.
그런데 보통 공이 아니었어오.
굴리면 안에서 방울 소리가 났어오.
딸랑딸랑.
저는 그 소리를 듣고 귀를 세웠어오.
그런데 저보다 먼저 반응한 게 있었어오.
형이었어오.
형이 평상에 앉아 있다가 고개를 돌렸어오.
"그거 방울 공이에요."
"응. 시장에서 팔더라. 소리 나면 탱고가 잘 찾겠다 싶어서."
형이 손을 내밀었어오.
장모님이 공을 형 손에 쥐여줬어오.
형이 공을 손바닥에서 한 번 흔들었어오.
딸랑.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마당 쪽으로 굴렸어오.
저는 그 순간 몸이 혼자 움직였어오.
저는 6년 동안 공을 모르는 척했어오.
근무 중에 공을 쫓으면 형이 넘어지니까오.
그래서 형은 저한테 공을 던진 적이 거의 없어오.
던져도 어디로 갔는지 형이 모르니까오.
그런데 그 공은 소리가 났어오.
제가 물고 돌아올 때도 딸랑거렸어오.
형은 그 소리로 제가 오는 걸 알았어오.
형 앞에 공을 내려놨어오.
형이 손으로 바닥을 더듬었어오.
딸랑.
찾았어오.
형이 웃었어오.
저는 형이 그렇게 웃는 소리를 오랜만에 들었어오.
형이 다시 굴렸어오.
제가 물어왔어오.
형이 또 굴렸어오.
보우가 평상 밑에서 나왔어오.
그날 오후 내내 우리는 그렇게 놀았어오.
몇 번 던졌는지는 아무도 안 셌어오.
몇 번 물어왔는지도 안 셌어오.
형은 숫자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날은 하나도 안 셌어오.
세지 않는 게 놀이라는 걸 형도 그날 처음 알았던 것 같아오.
보우 이야기를 해야 해오.
보우는 공을 쫓아가는 건 잘해오.
리트리버 반쪽 덕분이에오.
그런데 물고 나서 안 돌아와오.
진돗개 반쪽 때문이에오.
보우는 공을 물고 텃밭 구석으로 가서 땅을 팠어오.
그리고 공을 묻었어오.
딸랑 소리가 흙 속에서 작아졌어오.
형이 물었어오.
"공 어디 갔어."
누나가 웃으면서 말했어오.
"보우가 묻었어."
"그럼 소리가 안 나겠네."
"응. 놀이 끝."
형이 한참 웃었어오.
"보우는 놀이에 끝을 만들 줄 아네."
저는 그 말을 듣고 보우를 다시 봤어오.
보우는 흙 묻은 코로 아주 만족한 얼굴을 하고 있었어오.
놀이를 끝낸 개의 콧김 소리가 났어오.
저는 그 소리를 부러워했어오.
제 놀이는 늘 형이나 누나가 끝내줘오.
장모님이 호미를 들고 와서 공을 다시 파줬어오.
장모님 손에서 흙 냄새가 났어오.
저는 장모님 볼에 뽀뽀를 했어오.
장모님은 제 뽀뽀 목록에 있는 사람이에오.
누나랑 장모님이오.
그리고 미용실 원장님이오.
형은 아직 목록에 없어오.
오후에 저는 이상한 걸 봤어오.
형이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어오.
평상에 누워 있었어오.
휴대폰도 안 보고 이어폰도 안 끼고 보이스오버도 안 켜고 있었어오.
그냥 누워서 바람 소리를 듣고 있었어오.
저는 형이 그러는 걸 거의 못 봤어오.
형은 집에서도 늘 뭔가를 들어오.
논문을 듣고 메일을 듣고 뉴스를 들어오.
설거지를 할 때도 뭔가를 듣고 있어오.
형한테는 하네스가 없는데 형은 늘 하네스를 찬 것처럼 살아오.
누나가 형 옆에 앉았어오.
"자기 지금 뭐 해."
"아무것도 안 해."
"그거 되게 오랜만이다."
형이 잠깐 조용했어오.
"이상해. 아무것도 안 하니까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아."
"왜."
"나는 계속 쓸모가 있어야 했거든. 학교에서도 회사 면접에서도 학회에서도. 나 이거 할 수 있습니다를 계속 보여줘야 했어.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나한테는 좀 무서워."
누나가 형 손을 잡았어오.
"오늘 아침 실러 글 마지막 기억나."
"인간의 존엄성은 이익이나 목적에 맞추어 산정되지 않는다."
"응. 자기는 오늘 쓸모없어도 돼."
형이 웃었어오.
그런데 그 웃음은 조금 젖어 있었어오.
저는 평상 위로 올라가서 형 다리 옆에 누웠어오.
원래 평상에는 개가 올라가면 안 돼오.
장모님이 봤는데 아무 말도 안 했어오.
형 손이 제 등에 왔어오.
버클이 없는 등이었어오.
형 손이 거기서 오래 쉬었어오.
아무것도 확인하지 않는 손이었어오.
방향도 안 묻고 속도도 안 재는 손이오.
저는 그 손이 좋았어오.
매일 저를 읽던 손이 그날은 그냥 저를 만졌어오.
형도 그 오후에는 버클이 풀려 있었던 거예오.
실러는 원래 의사 공부를 했대오.
그런데 진짜 되고 싶은 건 작가였대오.
첫 작품 때문에 높은 사람들한테 미움을 받아서 도망 다녔대오.
그리고 결핵에 걸려서 45살에 죽었대오.
누나가 이 대목에서 말했어오.
"실러는 몸이 아픈 상태로 놀이를 썼어."
형이 물었어오.
"아픈 사람이 놀이 이야기를 하면 다르게 들리네."
"응. 놀 수 있는 몸이 당연하지 않은 사람이 쓴 거니까. 놀이가 사치가 아니라 사람으로 남기 위한 거라는 걸 아는 사람이 쓴 거야."
저는 이 말을 듣고 방울 공을 생각했어오.
그 공이 없었으면 형은 오늘 저랑 못 놀았어오.
형한테 놀이는 그냥 주어지지 않아오.
소리가 나는 공이 있어야 하고 누가 시장에서 그걸 골라줘야 해오.
형이 그날 오후에 이런 이야기도 했어오.
"면담하다 보면 체육 시간 이야기가 자주 나와."
"체육 시간."
"응. 시각장애 있는 학생들이 일반 학교에 다니면 체육 시간에 견학을 많이 한대. 운동장 가장자리에 앉아서 다른 애들 노는 소리를 듣는 거야. 위험하니까. 공이 안 보이니까."
누나가 조용해졌어오.
"놀이가 위험해서 빠지는 게 아니라 놀이가 안 들려서 빠지는 거야. 공에 방울 하나만 달면 같이 놀 수 있는데."
"그게 그렇게 간단해."
"간단한데 아무도 안 해. 놀이는 쓸모없는 거라서 놀이 접근성은 늘 순서가 제일 뒤야. 교과서는 점자로 만들어도 공에 방울은 안 달아."
저는 그 말을 듣고 텃밭 구석의 보우를 생각했어오.
보우가 공을 묻었을 때 놀이가 끝났어오.
소리가 안 나니까오.
어떤 아이들한테는 모든 공이 처음부터 묻혀 있는 거예오.
장모님은 저 주려고 샀다고 했어오.
그런데 사실은 형이랑 저 둘이 놀 수 있는 공을 산 거예오.
장모님이 그걸 알고 샀는지는 몰라오.
저는 알고 샀다고 생각해오.
해가 질 무렵 장모님이 마당에 대고 말했어오.
"밥 묵자."
그 말이 놀이의 끝이었어오.
보우는 바로 부엌 쪽으로 갔어오.
저도 갔어오.
형은 공을 주머니에 넣었어오.
딸랑.
실러 선생님 말대로 아름다운 놀이는 끝이 있어오.
장모님의 밥 묵자가 그날의 끝이었어오.
끝이 있어서 저는 그 오후를 다 기억해오.
끝이 없었으면 그 오후는 그냥 하루였을 거예오.
우리 집에도 끝이 없는 놀이가 있어오.
누나 휴대폰 속에 있어오.
과일을 세 개씩 맞추면 터지는 놀이래오.
누나는 자기 전에 그걸 해오.
뽁뽁 하는 소리가 나오.
그리고 한 판이 끝나면 축하하는 음악이 나와오.
그리고 바로 다음 판이 시작돼오.
누나는 매번 한 판만 더라고 말해오.
저는 그 한 판만 더를 여러 번 세어본 적이 있어오.
일곱 번까지 셌어오.
그다음엔 저도 잠들었어오.
그 놀이에는 장모님이 없어오.
밥 묵자 하고 끝을 내주는 사람이 없어오.
그래서 누나는 놀이를 그만두는 게 아니라 졸려서 떨어뜨려오.
휴대폰이 이불 위로 툭 떨어지는 소리가 나오.
그게 그 놀이의 끝이에오.
다음 날 아침 누나는 어젯밤 몇 시에 잤는지 기억을 못 해오.
창녕 오후는 다 기억하는데오.
실러 선생님 말이 맞아오.
끝이 있는 놀이는 기억이 되고 끝이 없는 놀이는 피곤이 돼오.
그나저나 다음 날 아침 대구로 돌아와서 하네스를 다시 했어오.
버클 두 개가 딸깍 했어오.
등에 무게가 다시 왔어오.
저는 그 무게가 반가웠어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이에오.
놀고 나면 일이 반가워져오.
일하고 나면 놀이가 반가워지고오.
형 주머니에서 딸랑 소리가 났어오.
형이 그 공을 대구까지 가져온 거예오.
형은 연구실 바카라상 서랍에 공을 넣었어오.
아무 쓸모도 없는 공이에오.
그런데 형은 가끔 서랍을 열고 그 공을 한 번 흔들어오.
딸랑.
그게 형의 하네스 벗는 소리인 것 같아오.
[형의 각주]
탱고 글에 각주를 단다.
첫째.
실러의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편지는 1793년부터 쓰였고 1795년에 출간됐다.
인간은 놀이할 때만 온전히 인간이라는 문장은 그중 열다섯 번째 편지에 나온다.
탱고는 이 문장을 현관 하네스 걸이로 번역했다.
나는 그 번역이 원문보다 짧고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둘째.
안내견에게 근무 외 자유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건 사실이다.
하네스 없이 마음껏 뛰고 냄새 맡는 시간이 있어야 일하는 시간도 건강하게 유지된다.
탱고의 퇴근 털기는 우리 집에서 하루 중 가장 시끄러운 소리다.
셋째.
방울 공은 시각장애인이 하는 공 경기에서도 쓰인다.
골볼이라는 종목은 방울이 든 공을 소리로 막고 굴린다.
장모님이 그걸 알고 사셨는지는 여쭤보지 않기로 했다.
모르고 사셨어도 아시고 사셨어도 나는 같은 만큼 고맙다.
넷째.
평상에서 한 말은 사실이다.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나한테는 아직 조금 무섭다.
그래도 연구실 서랍에 공이 하나 생겼다.
흔들면 소리가 나는 쓸모없는 물건이다.
나는 요즘 그 쓸모없음이 좋다.
다섯째.
체육 시간 견학 이야기는 면담에서 여러 번 들었다.
참여자를 알아볼 수 없도록 특정한 사례가 아니라 여러 이야기의 공통된 모양으로 적었다.
교과서는 점자로 바뀌어도 운동장은 잘 바뀌지 않는다는 건 내 연구가 계속 부딪히는 자리다.
여섯째.
탱고의 뽀뽀 목록에 내가 아직 없다는 건 이번에도 확인됐다.
나는 이 목록에 대한 이의를 다음 편으로 미룬다.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