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 앞에서 누가 말했어오.
"안내견은 신호등 색깔 보고 건너는 거래."
대학생 두 명이었어오.
목소리가 가까웠어오.
저를 보면서 하는 말이었어오.
옆에 있던 친구가 대답했어오.
"진짜? 대박."
"응 다들 그러던데."
저는 그 말을 듣고 귀를 한쪽만 세웠어오.
틀린 말을 들을 때 저는 귀를 한쪽만 세워오.
저는 신호등 색을 안 봐오.
정확히 말하면 못 봐오.
개 눈은 빨간색이랑 초록색을 잘 구분 못 해오.
둘 다 비슷하게 탁한 노란색처럼 보여오.
그러니까 저한테 신호등은 그냥 높은 데 달린 불빛이에오.
건널지 말지는 형이 정해오.
형은 소리로 정해오.
차 소리가 어느 방향으로 흐르는지.
옆 사람들 발소리가 출발하는지.
음향 신호기가 있으면 그 소리를 들어오.
형이 건너자고 하면 저는 그때부터 일해오.
그래도 차가 오면 안 가오.
그게 제 일이에오.
신호등 색은 제 일이 아니에오.
그런데 그 대학생은 다들 그러던데라고 했어오.
다들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라오.
저는 탱고예오.
형의 안내견이에오.
신호등 색은 몰라도 형 발소리 빠르기는 다 알아오.
오늘 아침 보이스오버가 하이데거라는 사람 이야기를 읽어줬어오.
내 취향보다 유행을 따라야 성공하지 않을까.
이게 질문이었어오.
대답은 아니오였어오.
하이데거는 사람이 두 가지로 살 수 있대오.
자기 삶을 사는 거랑 남의 삶을 사는 거.
본래적 삶이랑 비본래적 삶이래오.
그리고 남의 삶을 살게 만드는 게 있대오.
잡담이래오.
잡담은 그 일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다 아는 것처럼 만드는 말이래오.
어떤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더 생각하지 않는대오.
다 알았다고 믿으니까오.
그리고 그 말을 그대로 따라 하고 퍼뜨린대오.
하이데거가 이렇게 썼대오.
말해진 것은 사람들이 그 말을 하기 때문에 권위를 갖는다.
저는 이 대목에서 횡단보도의 그 대학생이 생각났어오.
다들 그러던데.
그게 잡담의 목소리예오.
누나가 하이데거가 쓴 독일어 단어 하나를 알려줬어오.
다스 만.
우리말로는 그들이라고 옮기기도 하고 세인이라고 옮기기도 한대오.
그런데 누나는 이 단어가 좀 이상한 단어라고 했어오.
"이건 특정한 사람들이 아니야.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저 사람도 아니야. 누구나이면서 아무도 아닌 사람들이야."
형이 물었어오.
"아무도 아닌 사람이 독재를 한다고."
"응. 그래서 무서운 거야. 독재자가 한 명이면 누군지 알잖아. 맞설 수도 있고. 근데 다스 만은 얼굴이 없어. 다들 그러던데의 다들이야."
저는 그 말을 듣고 꼬리를 한 번 쳤어오.
다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고 제가 아까 생각했잖아오.
하이데거는 그게 원래 아무도 아니라고 한 거예오.
아무도 아닌 사람이 제일 많은 걸 정해오.
개들한테도 다스 만이 있어오.
동네마다 전봇대가 하나씩 있어오.
개들이 다 거기서 냄새를 남겨오.
왜 하필 그 전봇대냐고 물으면 아무도 몰라오.
다른 개들이 거기 남겼으니까 남기는 거예오.
처음 남긴 개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라오.
저도 근무 안 할 때는 그 전봇대에 코를 대고 싶어져오.
다들 거기 있으니까오.
그게 개들의 잡담이에오.
읽을 게 많은데 새로운 건 하나도 없어오.
그런데 보이스오버가 하이데거 이야기를 하나 더 읽어줬어오.
하이데거는 남의 삶을 살지 말라고 썼는데 정작 자기는 1930년대에 나치에 협력했대오.
자기가 경고한 바로 그 함정에 빠진 거래오.
누나가 이 대목에서 커피잔을 내려놨어오.
형이 물었어오.
"자기는 하이데거 읽어."
"읽어. 근데 잊지 않고 읽어."
"뭘."
"그 사람이 뭘 했는지. 좋은 문장을 읽을 때마다 그 문장을 쓴 사람이 그 문장을 지키지 못했다는 걸 같이 기억해."
"그럼 왜 읽어."
누나가 잠깐 생각했어오.
"함정을 제일 잘 설명하는 사람이 그 함정에 빠진 사람일 때가 있거든. 그 사람 문장이 맞아서 읽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틀린 자리를 보려고 읽어."
저는 이 말이 어려웠어오.
그런데 하나는 알았어오.
누나는 이 사람을 좋아해서 읽는 게 아니에오.
조심하려고 읽는 거예오.
제가 매일 듣는 잡담이 있어오.
안내견은 평생 일만 한대.
아니에오.
저는 퇴근하면 놀아오.
집에서는 하네스 벗고 소파 옆에서 뒹굴어오.
안내견은 절대 안 짖는대.
반만 맞아오.
근무 중에는 안 짖어오.
집에서는 택배 아저씨 오면 가끔 짖어오.
안내견은 주인이 어디 가자고 하면 다 데려다준대.
아니에오.
저는 목적지를 몰라오.
형이 어디 갈지 정하고 저는 어떻게 갈지만 정해오.
형이 길을 모르면 저도 몰라오.
안내견 만지면 행운이 온대.
이건 처음 들었을 때 좀 웃겼어오.
그런데 근무 중에 저를 만지면 행운 대신 형이 넘어질 수 있어오.
이 말들은 다 어디서 왔는지 몰라오.
누가 처음 했는지도 몰라오.
그런데 다들 해오.
하이데거 말대로 사람들이 그 말을 하니까 권위가 생긴 거예오.
저한테 물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어오.
지난주에 공원에서 다른 잡담도 들었어오.
벤치에 앉은 어떤 아저씨가 형한테 들으라는 듯이 말했어오.
"요즘 같은 시대에 개를 부려먹는 게 말이 되나. 저것도 다 동물 학대야."
형은 대답을 안 했어오.
저는 아저씨 냄새를 맡았어오.
화난 냄새가 아니었어오.
자기가 옳다고 확신하는 사람 냄새였어오.
집에 와서 누나가 그 이야기를 들었어오.
"하이데거가 그것도 썼잖아."
"뭘."
"자기는 주류를 거스른다고 믿는 사람도 잡담에 빠진다고. 저항한다고 생각할 때 오히려 더 쉽게 빠진다고."
형이 고개를 끄덕였어오.
"그 아저씨는 자기가 남들 다 좋다는 걸 혼자 비판한다고 생각했겠지."
"근데 그것도 어디서 들은 말이야. 탱고한테 물어본 건 아니잖아."
형이 잠깐 있다가 말했어오.
"안내견 복지는 진지하게 물어야 하는 질문이야. 은퇴 시기나 근무 시간이나 건강 관리나. 그건 계속 따져봐야 해."
"응."
"근데 그 아저씨는 질문을 한 게 아니라 결론을 말했어. 물어보지도 않고. 그게 잡담이야."
저는 그 말이 좋았어오.
질문은 상대를 봐오.
잡담은 상대를 안 봐오.
그 아저씨는 제 꼬리를 한 번도 안 봤어오.
그날 저는 근무하면서 꼬리를 흔들고 있었는데오.
그날 밤 형이 오래 이야기했어오.
형은 형 공부 이야기를 할 때 말이 빨라져오.
"정보 리터러시가 결국 잡담을 알아보는 능력이야."
"하이데거식으로 말하면."
"응. 이 말이 어디서 왔는지 묻고 누가 확인했는지 묻고 내가 직접 확인할 수 있는지 묻는 거. 다들 그러던데에서 멈추지 않는 거."
누나가 물었어오.
"그럼 하이데거 말대로 하면 되잖아. 남 말 따라 하지 말고 자기 판단으로."
형이 웃었어오.
조금 쓴 웃음이었어오.
"그게 나한테는 쉽지가 않아."
"왜."
"자기 판단을 하려면 확인할 수단이 있어야 하잖아. 원본을 찾아보고 출처를 확인하고 다른 자료랑 비교하고. 근데 그 원본이 이미지로만 있으면 나는 못 읽어. 출처 사이트가 스크린리더로 안 열리면 못 가."
누나가 조용해졌어오.
"그러면 나는 결국 누가 읽어준 걸 믿어야 해. 누가 요약해준 걸. 누가 그렇다더라를."
"잡담을."
"응. 내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길이 막혀서 잡담에 기대게 되는 거야."
형이 하나를 더 말했어오.
"내가 면담한 분들 중에 그런 분이 많아. 뉴스를 직접 확인하고 싶은데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까 단체 대화방에서 들은 걸 믿어. 하이데거가 보면 비본래적이라고 하겠지. 근데 그분들한테 필요한 건 용기가 아니라 접근이야."
누나가 천천히 말했어오.
"그럼 본래적인 삶에도 접근성이 필요하네."
"응. 자기 생각을 하려면 생각할 재료에 닿을 수 있어야 해. 하이데거는 그걸 빼먹었어."
그래도 형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오.
지난달에 이런 일이 있었어오.
시각장애인 단체 대화방에 소문이 하나 돌았어오.
안내견 출입 거부 과태료가 없어졌다는 소문이었어오.
메시지가 여러 번 전달돼서 왔대오.
처음 쓴 사람은 아무도 몰랐어오.
형은 그날 저녁을 거의 그 일에 썼어오.
법령 사이트에 들어갔어오.
그 사이트는 다행히 스크린리더로 읽혔어오.
형이 조문을 하나씩 들었어오.
보이스오버가 제 몇 조 제 몇 항을 감정 없이 읽었어오.
형은 그 감정 없는 목소리를 끝까지 들었어오.
과태료는 그대로였어오.
형이 대화방에 원문 조항을 적어서 올렸어오.
누가 고맙다고 했고 누가 그래도 불안하다고 했대오.
그리고 그다음 날 또 다른 대화방에서 같은 소문이 돌았대오.
형이 웃으면서 말했어오.
"잡담은 한 번 고치면 두 군데서 다시 나와."
그런데 형은 그다음 날에도 원문을 올렸어오.
저는 그 저녁에 형 발밑에 있었어오.
형 손가락이 오래 움직였어오.
그 소리가 저는 좋았어오.
다들 그러던데를 이기는 소리였어오.
저는 그날 밤 이야기를 다 듣고 제 일을 생각했어오.
저도 형이 정해주는 것만 믿으면 편해오.
형이 직진이라고 하면 직진하면 돼오.
그런데 저는 그러면 안 돼오.
직진이라고 해도 차가 오면 안 가오.
형 말이 틀릴 수 있으니까오.
형이 그걸 저한테 원하니까오.
제가 형 말을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저는 형의 잡담이 돼오.
제가 냄새 맡고 소리 듣고 직접 확인해야 저는 형의 안내견이 돼오.
하이데거가 말한 자기 판단이 저한테는 이거예오.
남이 정해준 길을 걷되 그 길을 제 코로 다시 확인하는 거예오.
누나가 글에 나온 단어 하나를 짚었어오.
건강한 토착성.
자기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거기서 세상을 보라는 말이래오.
그런데 누나가 이 단어는 조심해야 한다고 했어오.
"하이데거가 쓴 토착성이라는 말은 나중에 땅이랑 핏줄을 강조하는 쪽으로 쓰이기도 했어. 그 시대에 그 말이 어디로 갔는지 알면 그냥 좋은 말로만 읽을 수가 없어."
"그럼 버려야 해."
"버리기보다는 바꿔 읽어야지. 내 자리에서 본다는 건 좋은 말이야. 근데 내 자리가 남의 자리보다 진짜라고 하는 순간 위험해져."
저는 이 말이 좋았어오.
제 자리는 형 발 옆이에오.
저는 거기서 세상을 봐오.
아래에서오.
발이랑 냄새랑 바닥으로오.
그건 제 자리일 뿐이에오.
형 자리가 따로 있고 누나 자리가 따로 있어오.
셋이 다르게 봐서 우리 집은 세상을 세 번 봐오.
저한테도 유행을 따를 기회가 있었어오.
지난 장마 때 누나가 택배를 하나 뜯었어오.
비닐 냄새가 났어오.
강아지 비옷이었어오.
요즘 산바카라하는 개들이 다 입는다고 했어오.
색이 아주 밝은 노란색이래오.
저는 그 색을 잘 모르지만 누나 목소리가 신나 있었어오.
누나가 저한테 입혔어오.
저는 그 자리에 굳었어오.
비옷은 움직일 때마다 바스락거렸어오.
제 귀 바로 옆에서오.
그 소리 때문에 형 발소리가 잘 안 들렸어오.
현관 밖 엘리베이터 소리도 안 들렸어오.
저는 소리로 일하는 개인데 제 몸이 제일 시끄러워졌어오.
저는 한 걸음도 안 걸었어오.
고집이 아니라 일이었어오.
누나가 형한테 물었어오.
"탱고 왜 안 움직여."
형이 제 등을 만졌어오.
바스락 소리가 났어오.
"이거 소리 나는 거 싫은 거야. 귀가 막히니까."
누나가 잠깐 조용하다가 비옷을 벗겨줬어오.
저는 그제야 몸을 털었어오.
그날 저는 비를 맞고 근무했어오.
집에 와서 누나가 낡은 수건으로 저를 닦아줬어오.
그 수건은 냄새가 익숙하고 소리가 안 나오.
저는 그 수건이 좋아오.
누나가 웃으면서 말했어오.
"탱고는 유행보다 수건이네."
비옷은 다음 날 반품됐어오.
다들 입는 비옷이었어오.
그런데 다들은 귀로 일하는 개가 아니었어오.
제 취향은 제 일에서 나와오.
그래서 남의 유행이 저한테는 소음이 될 때가 있어오.
그나저나 오늘도 그 횡단보도를 건넜어오.
다른 사람이 또 말했어오.
저 개는 신호등 보고 건너는 거래.
이번에는 형이 돌아서서 말했어오.
제가 소리 듣고 판단하고 탱고는 차가 오면 막아줍니다.
그 사람이 아 그래요 신기하다 했어오.
그리고 친구한테 이렇게 말했어오.
안내견은 차 소리를 듣고 막아준대.
반만 맞아오.
그래도 아까보다는 나아오.
잡담도 한 번 고치면 조금씩 진짜 쪽으로 가오.
저는 그날 그 사람 발이 형 쪽으로 돌아서는 걸 봤어오.
물어보는 사람의 발이었어오.
[형의 각주]
탱고 글에 각주를 단다.
첫째.
개의 색 지각에 대한 탱고 설명은 대체로 정확하다.
개는 색을 구분하는 원뿔세포가 두 종류라서 빨강과 초록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안내견이 신호등 색을 보고 건넌다는 건 가장 오래된 잡담 중 하나다.
건널지 말지는 사용자가 판단하고 안내견은 그 판단 이후의 위험을 막는다.
둘째.
하이데거의 나치 협력은 사실이다.
1933년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 취임과 그 시기 행적은 지금도 철학계의 무거운 주제다.
누나가 읽되 잊지 않고 읽는다고 한 건 하이데거를 다루는 연구자들이 자주 택하는 태도다.
원문에는 1932년으로 적혀 있는데 공식적인 협력의 상징이 된 총장 취임은 1933년이다.
셋째.
본래적 삶에도 접근성이 필요하다는 말은 누나가 한 말이다.
나는 그 말을 다음 논문 서론에 쓸지 고민 중이다.
출처는 누나로 달 생각이다.
넷째.
공원 아저씨 이야기에서 나는 안내견 복지를 묻는 질문 자체를 막으려는 게 아니다.
그 질문은 계속 물어야 하고 나도 묻는다.
다만 탱고의 꼬리를 보지 않고 내린 결론은 질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섯째.
장애인복지법은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인 보조견의 출입을 거부하면 과태료를 물리도록 정하고 있다.
대화방 소문과 달리 이 조항은 그대로다.
법령 원문을 스크린리더로 읽을 수 있다는 건 당연해 보이지만 당연하지 않은 일이다.
원문에 닿을 수 있어야 소문을 이길 수 있다.
여섯째.
비옷 이야기는 탱고가 과장하지 않았다.
그날 탱고는 정말 한 걸음도 안 걸었다.
나는 탱고가 고집을 부리는 줄 알았다.
고집이 아니라 자기 일을 지키는 거였다.
일곱째.
탱고가 우리 집이 세상을 세 번 본다고 썼다.
나는 이 문장을 정보학 용어로 바꿔보려다 그만뒀다.
바꾸면 틀려지는 문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