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자 보보가 제안을 하나 했다.
우리 이번 가을에 같은 바카라 한 권 읽자.
다 읽고 나서 저녁 먹으면서 얘기하는 거야.
둘이 하는 독서모임.
좋다고 했다.
보보는 철학을 공부하고 나는 문헌정보학을 공부한다.
같은 바카라을 읽어도 밑줄 긋는 자리가 다를 테니 재미있을 것 같았다.
보보가 고른 바카라은 올해 나온 교양 철학서였다.
두껍지 않았고 문장이 쉽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부부의 가을 이야기다.
그런데 나에게는 바카라 한 권을 고르는 일과
그 바카라을 읽기 시작하는 일 사이에 몇 개의 단계가 더 있다.
이 글은 그 바카라 한 권이 내 귀에 오기까지의 길을 따라간다.
찾기
먼저 국립장애인도서관에서 검색했다.
그곳에는 여러 형태의 대체자료가 있다.
전자점자와 데이지 자료와 접근 가능한 전자바카라과 PDF와
한국수어 영상과 자막 영상과 읽기 쉬운 자료까지.
서로 다른 독서 요구에 맞춘 형식들이다.
제목을 입력했다.
보이스오버가 결과를 읽었다.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나온 지 몇 달 안 된 바카라이니 놀랍지는 않았다.
비장애인 독자에게 신간은 서점에 깔린 날부터 신간이다.
나에게 신간은 누군가 대체자료로 만들어 준 날부터 신간이다.
그 사이의 시간을 나는 늘 기다림이라고 부른다.
검색 결과가 있다고 해서 끝도 아니다.
자료마다 제공 방식이 다르다.
예컨대 읽기 쉬운 바카라은 지금 목록 정보만 안내하는 경우가 있어서
실제 원문을 어디서 어떻게 읽을 수 있는지는 따로 확인해야 한다.
찾았다와 읽을 수 있다 사이에도 한 칸이 있다.
문헌정보학에서는 장서를 평가할 때 얼마나 많은가만 보지 않는다.
얼마나 다양한가와 얼마나 제때 들어오는가를 함께 본다.
김신영의 2025년 연구는 국립장애인도서관의 자료가 시각장애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고
장애 유형별로도 주제별로도 치우쳐 있다는 과제를 짚었다.
문학을 좋아하는 독자와 전공서를 공부하는 학생과 생활정보를 찾는 어른에게
필요한 자료의 종류도 필요한 시점도 다르다.
총량이 늘어나는 것과 내가 고를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신청
없으면 제작을 신청할 수 있다.
그런데 신청 칸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이번 달 신청 가능 권수를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데이지 자료의 제작 신청은 월 5권과 2000면 이내이고
1년에는 45권과 18000면 이내다.
전자점자도서는 월 5권과 1800면 이내다.
그해 예산이 바닥나면 신청이 멈출 수도 있다.
이번 달 나는 이미 학위 논문에 필요한 바카라들로 신청을 거의 채워 둔 상태였다.
그러니까 선택을 해야 했다.
논문을 위한 바카라이냐 보보와 읽을 바카라이냐.
나는 논문을 골랐다.
보보의 바카라은 다음 달 신청 목록 맨 위에 적어 두었다.
다음 달 1일이 되면 신청하고 그다음은 제작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그때쯤이면 보보는 이미 다 읽었을 것이다.
그 기준이 왜 있는지는 안다.
제작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누군가는 나눠야 한다.
월 5권이라는 숫자는 그 나눔의 장치다.
다만 그 장치가 묻지 않는 질문이 있다.
이 바카라이 언제까지 필요한가.
학기 중 교재는 개강 첫 주에 필요하다.
직무에 필요한 바카라은 다음 주 회의 전에 필요하다.
부부 독서모임의 바카라은 올가을 안에 필요하다.
제작은 신청한 순서대로 진행되지만
읽기는 신청한 순서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적시 공급은 제작 지원과 별개의 정바카라 목표로 다뤄져야 한다.
신청한 날부터 받은 날까지의 기간을 관리하고
예산이 떨어져 공급이 멈추는 순간을 대비하는 재원과 우선순위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월 5권이 기다림 5권이 되지 않는다.
구매
그래서 전자바카라을 사기로 했다.
전자바카라 판매 앱을 열었다.
검색은 됐다.
결제도 됐다.
문제는 결제 다음이었다.
바카라을 여니 보이스오버가 본문 첫 문단을 읽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 쪽으로 넘기자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몇 번을 쓸어 넘겨도 마찬가지였다.
목차로 가는 버튼에는 이름이 없었고
듣기 기능은 따로 있었지만 문단 단위로 멈추고 되돌아가는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고객센터에 문의 글을 남겼다.
보이스오버로 다음 쪽이 읽히지 않는다고.
이틀 뒤 답이 왔다.
불편을 드려 죄송하며 앱 업데이트를 기다려 달라는 내용이었다.
언제라는 말은 없었다.
바카라은 내 계정에 있었다.
나는 그 바카라을 샀다.
그런데 읽을 수는 없었다.
접근성은 파일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구매와 인증과 열람 프로그램까지 이어진 전체 경로가 쓸 수 있어야 한다.
다행히 기반은 있다.
국립장애인도서관은 전자출판 접근성 검증과 제작 교육을 운영하고
전자바카라 접근성 저작 지침과 적합성 기준이 각각 2022년과 2024년에 국가표준이 되었다.
이제 남은 건 그 표준을 매일의 구매와 열람에 실제로 연결하는 일이다.
유럽연합의 유럽접근성법은 2025년 6월 28일부터 전자바카라과 전자바카라 소프트웨어와 전자바카라 단말기에 접근성 요건을 적용한다.
보조기술과 호환될 것과 구조와 탐색 기능을 갖출 것과 접근성 메타데이터를 붙일 것.
그리고 복제 방지 장치가 접근성 기능을 막지 못하게 한다.
출판된 날부터 읽을 수 있는 바카라을 시장의 규칙으로 만든 것이다.
그 법 아래라면 나는 그날 산 바카라을 그날 읽었을 것이다.
보보는 그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
그럼 자기는 같은 값을 내고 반만 산 거네.
정확했다.
나는 바카라값을 다 냈고 바카라의 절반인 소유만 받았다.
나머지 절반인 읽기는 아직 배송 중이다.
배송
보보가 종이바카라도 주문했다.
자기는 종이로 읽는 걸 좋아한다고.
택배 상자를 뜯는 소리가 났고 새 바카라 냄새가 거실에 퍼졌다.
보보가 그 바카라을 내 손에 쥐여 줬다.
매끈한 표지와 빳빳한 종이와 아직 한 번도 펼쳐지지 않은 등.
나는 그 바카라의 무게를 알 수 있었다.
내용은 알 수 없었다.
휴대폰 카메라로 쪽마다 찍어서 글자를 읽게 하는 방법도 있다.
해 보긴 했다.
펼친 두 쪽을 찍고 읽기를 기다리고 다음 장을 넘기고 다시 찍는다.
바카라 가운데로 갈수록 종이가 휘어서 안쪽 줄이 자꾸 빠졌다.
쪽 번호와 머리말이 본문 사이에 끼어 읽혔다.
20쪽쯤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건 독서가 아니라 입력 작업이었다.
바카라나래라는 서비스가 있다.
등록 장애인과 국가유공상이자와 장기요양 인정 대상자 등이
참여 도서관의 바카라을 원하는 곳으로 무료 배송받을 수 있다.
지역 도서관에 원하는 바카라이 없으면 상호대차 비용도 지원한다.
2024년에는 1166개 도서관이 참여해 16461명에게 118162권을 보냈다.
이동이 어려운 독자에게는 정말 큰 서비스다.
도서관의 서가를 집 현관까지 옮겨 준다.
다만 그날 내 손에 있던 종이바카라처럼
바카라이 집에 도착한 다음에도 길은 끝나지 않는다.
손을 쓰기 어려운 독자에게 종이바카라을 배송하면
도서관까지 가는 부담은 줄지만 바카라을 펼치고 쪽을 넘기는 일이 다시 남는다.
나 같은 독자에게는 종이 위의 글자를 소리나 점자로 바꾸는 일이 남는다.
넘기기
국립장애인도서관은 공공도서관과 장애인도서관에 독서보조기기 설치와 활용 교육을 지원한다.
2025년에는 59개 도서관에 5억 2천만 원 규모였다.
화면 읽기 프로그램과 독서확대기는 보는 일을 돕고
페이지터너와 스위치와 특수 입력장치와 높낮이 조절 바카라상은 넘기고 버티는 일을 돕는다.
자막 변환 프로그램과 보완대체의사소통기기도 목록에 있다.
좋은 목록이다.
그런데 이 기기들은 도서관에 설치된다.
집으로 빌려 갈 수 있는지는 도서관마다 규정이 다르다.
독서는 대체로 밤에 일어난다.
잠들기 전 침대에서 몇 쪽.
도서관 문이 닫힌 시간에.
그 시간 내 옆에 있는 건 대개 탱고뿐이다.
탱고는 여러 가지를 해 주지만 쪽을 넘겨 주지는 못한다.
미국의 국립 시각장애인 인쇄물 독서장애인 도서관서비스는 자료와 가정용 기기를 함께 준다.
음성 자료와 점자 자료와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재생기와 전자점자 단말기를 무료로 오래 빌려준다.
필요하면 원격 조작 장치나 호흡 스위치도 준다.
자격 확인도 의사만 하지 않는다.
교사와 사서와 슬롯복지사와 재활 전문가도 참여한다.
시각장애뿐 아니라 난독증과 바카라을 잡기 어려운 신체장애까지 대상에 넣는다.
장애 등급이 아니라 인쇄물을 읽기 어렵다는 실제 사정을 본다.
바카라과 그 바카라을 읽을 손을 한 서비스 안에서 이어 준다.
우리는 바카라은 집까지 보내 주면서 기기는 도서관에 두고 온다.
도서관에 있는 기기의 이용 기회를 넓히는 것과 함께
개인 장기 대여와 설치와 활용 교육과 수리를 보조공학 서비스와 묶는 길을 찾아야 한다.
바카라이 현관까지 왔다면 그 바카라을 넘길 손도 현관까지 와야 한다.
나누기
결국 그 바카라은 보보가 소리 내어 읽어 주기로 했다.
저녁마다 소파에서 한 장씩.
보보가 읽고 나는 듣는다.
탱고는 우리 발치에 엎드려 있다가
보보의 목소리가 느려지면 꼬리로 바닥을 한 번 친다.
녀석은 그게 마침표인 줄 아는 모양이다.
솔직히 좋은 시간이다.
보보의 목소리로 듣는 철학은 혼자 듣는 합성 음성과 결이 다르다.
보보는 어려운 문장에서 잠깐 멈추고 자기 생각을 덧붙인다.
그건 독서이면서 동시에 독서모임이다.
둘째 날 밤 보보가 한 대목을 읽다가 멈췄다.
바카라은 혼자 생각하는 힘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이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려면 남의 말에 기대지 말라는데
지금 자기는 내 목소리에 기대서 이걸 듣고 있잖아.
그럼 이건 누구 생각이야.
나는 웃으며 반은 내 거고 반은 자기 거라고 했다.
보보는 그럼 이 바카라은 둘이 같이 읽어야 완성되는 바카라이라고 했다.
농담처럼 넘겼지만 그 말이 오래 남았다.
그런데 사흘째 되던 밤에 나는 한 문장을 다시 듣고 싶었다.
두 쪽 전에 지나간 문장이었다.
그걸 다시 읽어 달라고 하는 데 잠깐 망설였다.
보보는 기꺼이 다시 읽어 줬다.
그래도 그 망설임이 남았다.
혼자 읽는 사람은 원하는 곳에서 멈추고 원하는 만큼 되돌아간다.
누구에게도 묻지 않고.
도움을 받는 독서가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도움을 받는 방식과 그 범위를 독자가 고를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오늘은 보보 목소리로 듣고 싶고
내일은 혼자 세 번 되돌아가며 읽고 싶을 수 있다.
그 둘 사이를 오갈 수 있을 때 비로소 읽기는 내 것이 된다.
그리고 다 읽은 다음에는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독서모임에 자막과 수어와 보완대체의사소통 지원이 있어야
바카라을 읽은 사람이 자기 해석을 말할 수 있다.
읽는 일은 읽은 것을 말하는 일까지 가야 끝난다.
다른 서가들
다른 나라들은 이 단계를 하나씩 이어 붙이고 있다.
영국의 한 시각장애인 공익기관은 음성도서를 무료로 제공하면서
다운로드와 CD와 USB처럼 여러 이용 방식을 남겨 둔다.
학교와 대학을 통해 접근 가능한 교육 자료도 공급하고
출판사가 자료를 직접 넘겨주는 협력 체계를 갖고 있다.
평등법은 서비스 제공자에게 합리적 조정 의무를 지우고
개별 요청이 오기 전부터 예상되는 장벽을 검토하라고 안내한다.
미국은 초중등 교재를 사거나 채택하는 계약에
출판사가 표준 원본 파일을 내도록 하는 조건을 넣을 수 있다.
접근 가능한 교재를 만드는 출발점을 계약서 안에 둔 것이다.
스웨덴의 국가기관은 음성도서와 전자 텍스트와 점자 자료를 제공하고 대학 교재 제작도 맡는다.
산하 출판사는 청소년과 어른을 위한 읽기 쉬운 문학을 내고
쉬운 문장으로 쓴 뉴스도 있다.
읽기 쉬운 자료를 아이들 것이 아니라 어른의 문학과 시민의 정보로 본다.
일본은 2019년 독서 배리어프리법을 만들고 국가 기본계획을 세웠다.
제2기 계획은 2025년부터 2029년 회계연도까지다.
자료 제작과 공유와 출판사 협력과 보조기기와 전문 인력과 지방 계획을 한 계획 안에서 점검한다.
마라케시 조약은 인쇄물을 읽기 어려운 사람을 위해 접근 가능한 자료를 만들고 나누며
인정된 기관끼리 국경을 넘어 주고받을 수 있게 저작권의 예외를 둔다.
국립장애인도서관도 2016년부터 세계지식재산기구의 접근 가능한 도서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제21조는 장애인이 스스로 고른 의사소통 방식으로 정보를 찾고 받고 전할 권리를 다루고
제30조는 접근 가능한 문화 자료와 도서관 이용을 다룬다.
우리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4조도 교육 바카라임자에게 점자와 큰 문자와 자막과
화면 읽기 및 확대 프로그램과 문자인식 음성변환기 같은 편의 제공을 요구한다.
근거는 충분하다.
흩어져 있을 뿐이다.
제목: 독서의 아키텍처 혹은 한 권이 오는 길.
바카라 한 권이 내 귀에 오기까지 나는 여섯 번 문 앞에 섰다.
찾기와 신청과 구매와 배송과 넘기기와 나누기.
각각의 문에는 이미 누군가 열쇠를 만들어 두었다.
대체자료가 있고 바카라나래가 있고 독서보조기기 지원이 있고 국가표준이 있다.
다만 그 열쇠들이 서로 다른 사람 주머니에 있다.
그래서 필요한 건 새 열쇠보다 열쇠고리다.
결론: 장애인의 독서권은 자료를 만드는 일에서 끝나지 않는다.
바카라을 찾고 제때 받고 자기 방식으로 열고 넘기고 멈추고 다시 읽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데까지 이어져야 한다.
이용 자격은 장애 등록 여부보다 실제로 읽기 어려운 사정을 보고
출판사는 쓸 수 있는 원본과 접근 가능한 바카라을 내고
도서관은 자료와 기기를 독자의 생활 안까지 이어야 한다.
성과도 만든 자료의 수와 설치한 기기의 수로만 세면 안 된다.
필요한 바카라을 구했는지 제때 받았는지 원하는 방식으로 열고 넘길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바카라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했는지를 물어야 한다.
그 질문을 만드는 자리에 장애인 당사자가 있어야 한다.
독서의 계절이 모두의 계절이 되려면
읽을 바카라과 읽는 방식을 독자가 스스로 고를 수 있어야 한다.
그나저나 우리 둘의 독서모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보보는 지금 6장을 읽고 있다.
어제는 내가 다시 읽어 달라고 하기 전에 보보가 먼저 한 문단을 두 번 읽었다.
방금 거 좋지 않아 하면서.
그 문장에 나도 밑줄을 긋고 싶었는데 그을 줄이 없었다.
대신 보보가 자기 바카라 그 자리에 연필로 별을 그려 줬다.
탱고는 그때도 꼬리로 바닥을 한 번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