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화장실 재떨이가 알려주는 것
비행기 화장실에 들어가면 문을 잠그기도 전에 경고문부터 눈에 들어온다. 담배 그림 위에 빨간 사선. 기내 흡연 금지. 화장실에는 연기 감지기가 있으며 이를 훼손하면 처벌받는다는 안내도 붙어 있다. 여기까지는 아주 일관된 메시지다. 피우지 마라.
그런데 시선을 조금만 옮기면 이상한 물건이 하나 보인다. 문 근처에 작은 뚜껑이 달린 금속 칸. 열어보면 안쪽이 오목하다. 재떨이다.
금연 표시와 재떨이가 한 공간에 나란히 있다. 피우지 말라고 해놓고 꽁초 버릴 곳은 마련해둔 셈이다. 술을 끊으라고 잔소리하면서 냉장고에 맥주를 채워두는 것과 비슷하다. 처음 이걸 발견한 사람은 대개 두 가지 중 하나를 떠올린다. 옛날 비행기를 아직 쓰는 건가. 아니면 몰래 피우라는 건가.
둘 다 아니다. 이 재떨이는 지금 이 순간 새로 만들어지는 비행기에도 달린다. 그리고 그 이유는 생각보다 무겁다.
비행기 안에서 담배를 피우던 시절이 있었다. 먼 옛날 이야기 같지만 그렇게 오래된 일도 아니다.
한때 기내는 금연석과 흡연석으로 나뉘어 있었다. 앞쪽 몇 줄은 금연석, 뒤쪽은 흡연석. 하지만 같은 공기를 나눠 마시는 금속 원통 안에서 앞뒤를 나누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수영장 한쪽 끝을 소변 구역으로 정해둔 것과 비슷하다는 농담도 있었다. 비흡연자에게 장거리 비행은 열 몇 시간짜리 간접흡연 체험이었다.
그 시절 비행기 좌석 팔걸이에는 작은 금속 재떨이가 박혀 있었다. 뚜껑을 밀어 열면 꽁초를 넣을 수 있는 구조였다. 승무원들은 기내식 트레이를 치우듯 재떨이를 비우고 다녔고, 담배를 기내에서 팔기도 했다. 오래된 기종을 타면 지금도 팔걸이에서 그 흔적으로 보이는 동그란 뚜껑을 발견할 때가 있다. 대개는 막혀 있어 열리지 않는다. 쓰임을 잃은 채 남은, 시대의 흉터 같은 물건이다.
흡연이 허용된 시절의 공기는 어땠을까. 여객기 객실 공기는 바깥 공기를 끌어들여 계속 갈아주지만, 수십 명이 동시에 피우는 담배 연기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천장 패널은 누렇게 변했고, 승무원들은 그 공기 속에서 하루 몇 시간씩 일해야 했다. 기내 금연을 끌어낸 힘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 공기를 날마다 마셔야 했던 승무원들의 목소리였다.
이 시절에 관해 전해지는 우스갯소리가 하나 있다. 기내식을 먹고 나면 금연석에 앉아 있던 흡연자들이 이른바 식후땡을 하러 우르르 뒤쪽으로 몰려갔고, 그 바람에 조종사들이 비행기 무게중심이 뒤로 쏠리는 것을 느꼈다는 이야기다. 물론 농담이다. 수백 톤짜리 여객기가 사람 수십 명이 걸어간다고 기우뚱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런 농담이 생겨날 만큼 흡연자가 많았고, 기내 흡연이 당연한 풍경이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 풍경은 한 번에 사라지지 않았다. 1980년대 후반부터 국내선 단거리 노선이 먼저 금연이 되었고, 1990년대를 거치며 항공사와 나라마다 하나씩 금연 범위를 넓혀갔다. 영국항공은 1998년에, 일본의 두 대형 항공사는 1999년에 국제선까지 금연으로 바꿨다. 미국은 2000년에 자국 항공사의 모든 국내선과 국제선에서 흡연을 금지했다. 그러니까 기내 흡연은 어느 날 갑자기 끝난 게 아니라, 1990년대 내내 조금씩 꺼져갔다. 마치 끝까지 타들어가는 담배처럼.
그렇다면 재떨이는 언제, 왜 의무가 되었을까. 이야기는 1973년 7월 1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를 떠난 바리그 항공 820편은 파리 오를리 공항을 향해 하강하고 있었다. 보잉 707기에는 승객과 승무원 134명이 타고 있었다. 착륙을 몇 분 앞두고 뒤쪽 화장실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연기는 빠르게 객실로 번졌다. 조종실까지 연기가 들어와 승무원들은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조종사들은 공항까지 가지 못하고 활주로를 5킬로미터쯤 앞둔 양파밭에 비상 착륙했다. 착륙 자체는 성공적이었다. 비행기는 형체를 유지한 채 밭 위에 멈췄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