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판 골키퍼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
2018년 5월, 브라질 프로축구 1부 리그 경기가 막 시작되려던 참이었다.
홈팀 아틀레치쿠 파라나엔시와 원정팀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관중석은 들떠 있었고 선수들은 자리를 잡았다. 심판이 휘슬을 입에 무는 순간, 카메라 하나가 이상한 장면을 잡았다.
홈팀 골키퍼 산투스가 골대 앞에서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두드리며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몇 초 뒤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렸고 그제야 그는 휴대전화를 골대 옆에 내려놓았다. 공이 움직이기 시작한 뒤였다.
이 장면은 순식간에 온라인으로 퍼졌다. 축구를 거의 종교처럼 여기는 나라에서 골키퍼가 경기 직전에 문자를 보낸다니. 팬들은 분노했다.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쏟아졌고 언론도 그를 비판했다. 프로 정신이 없다, 팀을 모욕했다, 저런 선수는 내보내야 한다.
사람들은 그에게 한눈판 골키퍼라는 별명을 붙였다.
이 분노에는 이유가 있었다. 골키퍼는 축구에서 가장 집중이 필요한 자리다. 공격수는 한 번 실수해도 다음 기회가 있지만 골키퍼의 실수는 곧바로 실점이 된다. 경기 내내 거의 움직이지 않다가 결정적인 몇 초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그래서 팬들은 골키퍼에게 유난히 높은 집중을 요구한다.
그런 자리에 선 사람이 경기 직전까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팬들이 느낀 것은 단순한 실망이 아니라 배신감에 가까웠다. 우리가 이렇게 마음을 쏟는 경기를 저 사람은 저렇게 가볍게 여기는구나.
그리고 다음 날, 구단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해명은 뜻밖이었다. 그 장면은 의도된 것이었다. 승차 공유 회사 우버 브라질이 구단과 함께 기획한 교통안전 캠페인의 일부였다. 브라질에서 5월은 노란 5월이라고 불리는 교통안전의 달이다. 그 시기에 맞춰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의 위험을 알리려고 만든 장면이었다.
기자들 앞에 선 산투스는 담담하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경기장에서 한 일은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자기 차 안에서 하는 일과 같습니다. 그리고 교통사고는 골을 먹는 것보다 훨씬 위험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전날의 분노가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골키퍼가 휴대전화를 봐서 생길 수 있는 최악의 결과는 실점이다. 운전자가 휴대전화를 봐서 생길 수 있는 최악의 결과는 누군가의 죽음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앞의 것에 훨씬 크게 화를 냈다.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이 위험하다는 것은 새로운 정보가 아니다. 브라질에서도, 다른 나라에서도 수십 년째 같은 경고가 반복되어왔다. 공익광고가 나오고 표지판이 세워지고 법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사람들의 손은 여전히 화면으로 간다.
정보가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다들 알고 있다. 다만 그 앎이 자기 행동에 닿지 않을 뿐이다. 이 캠페인은 새 정보를 주지 않았다. 대신 이미 알고 있던 정보가 자기 자신을 향하게 만들었다.
이 일화를 소개하는 글 중에는 해명이 몇 주 뒤에 나왔다고 적은 것도 있지만, 당시 보도를 보면 하루 만이었다. 분노가 가장 뜨거울 때 바로 뒤집은 것이다. 시간을 끌면 분노가 식고, 식은 분노 위에서는 반전이 힘을 잃는다. 캠페인을 만든 사람들은 그 타이밍을 정확히 계산했다.
산투스가 팀원들도 모르게 혼자 이 일을 벌였다는 이야기도 돌지만, 이 캠페인은 구단이 처음부터 함께 기획한 것이었다. 그리고 영어 별명 디스트랙티드 골키퍼는 정신 나간 골키퍼라기보다 한눈판 골키퍼에 가깝다. 이 차이가 작지 않다. 캠페인이 겨냥한 것이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잠깐 한눈을 판 평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정신 나간 사람은 나와 다른 사람이다. 한눈판 사람은 나일 수 있다. 캠페인이 노린 것은 바로 그 자리였다. 저 사람이 아니라 나일 수도 있다는 깨달음이 오는 자리.
왜 사람들은 골키퍼에게는 그렇게 화를 내면서 자기가 운전 중에 휴대전화를 보는 것에는 관대할까.
심리학에는 이런 관찰이 있다. 우리는 남의 행동은 그 사람의 성격으로 설명하고 내 행동은 상황으로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남이 늦으면 게으른 사람이고 내가 늦으면 길이 막혀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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