펩시 전투기 소송이 남긴 두 가지 읽기
1990년대 중반, 미국 텔레비전에 이런 광고가 나왔다.
아침의 평범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하나둘 등교하고 있다. 그때 굉음과 함께 바람이 몰아치고 교과서가 날아가고 선생님의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운동장 위로 전투기 한 대가 수직으로 내려앉는다. 조종석 뚜껑이 열리고 펩시 로고가 박힌 옷을 입은 십대가 선글라스를 쓴 채 말한다. 버스보다 확실히 낫네.
그리고 화면 아래에 자막이 뜬다. 해리어 전투기, 700만 펩시 포인트.
펩시가 벌인 펩시 스터프라는 행사의 광고였다. 펩시를 사 마시면 포장에 붙은 포인트가 쌓이고, 그 포인트로 경품을 받는 방식이었다. 티셔츠는 75포인트, 선글라스는 175포인트, 가죽 재킷은 1,450포인트. 그리고 맨 끝에 700만 포인트짜리 전투기가 있었다.
누가 봐도 농담이었다. 700만 포인트를 콜라로 모으려면 평생 마셔도 모자랐다. 매일 콜라를 여러 캔씩 마셔도 수천 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펩시는 광고를 재미있게 끝내려고 그 장면을 넣었다. 웃고 넘어가라고.
그런데 그 광고를 보고 웃고만 넘어가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존 레너드라는 스물한 살의 경영학도였다.
그는 광고를 보고 웃은 뒤에 펩시 스터프 안내 바카라자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거기서 작은 글씨로 적힌 규칙 하나를 발견했다. 포인트가 모자라면 1포인트에 10센트씩 돈을 내고 사서 채울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레너드는 계산기를 두드렸다. 700만 포인트에 10센트를 곱하면 70만 달러. 해리어 전투기의 가격은 수천만 달러였다. 콜라를 한 캔도 더 마시지 않고 70만 달러만 내면 수천만 달러짜리 비행기가 생긴다.
펩시가 이 규칙을 만든 이유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가죽 재킷을 받고 싶은데 포인트가 스무 점쯤 모자란 사람을 위한 장치였을 것이다. 남은 몇 점만 돈으로 채우고 경품을 가져가라는 배려. 그 규칙을 만든 사람은 누군가 그것으로 수백만 점을 사들일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규칙은 대개 평범한 경우를 떠올리며 만들어진다. 그리고 극단적인 경우에서 무너진다. 몇 점을 채우라고 만든 문장이 칠백만 점을 사는 데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규칙을 쓴 사람만 몰랐다.
그는 투자자들을 설득해 돈을 모았다. 그리고 규칙에 적힌 대로 진짜 포인트 15점과 함께 70만 8달러 50센트짜리 수표를 펩시에 보냈다. 끝의 8달러 50센트는 배송비였다. 꼼꼼하기 그지없는 주문서였다.
펩시는 당황했다. 처음에는 그 광고가 유머였다며 수표를 돌려보내고 쿠폰 몇 장을 동봉했다. 레너드는 물러서지 않았다. 광고에 나온 대로 전투기를 달라고 했다.
결국 이 사건은 법정으로 가게 되었다.
원문은 이 소송의 결말을 두고 레너드가 법정에서는 졌지만 투자금에 버금가는 보상금을 받았다는 후문이 있다고 적는다. 그런데 이 후문은 확인되지 않는다. 판결문과 당시 보도 어디에도 그런 합의는 나오지 않는다.
실제 결말은 이렇다. 1999년 뉴욕 연방지방법원은 펩시의 손을 들어줬다. 레너드는 항소했지만 이듬해 항소법원도 같은 결론을 냈다. 그가 받은 전투기도, 보상금도 알려진 것은 없다.
원문에서 고칠 숫자도 하나 있다. 레너드가 보낸 돈은 80억 원이 아니라 70만 달러 남짓이었다. 당시 환율로 치면 몇억 원 수준이다. 그래도 대학생에게는 엄청난 돈이었고, 수천만 달러짜리 비행기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싼 값이었다.
법원이 펩시 편을 든 이유는 흥미롭다.
판사는 먼저 광고는 원칙적으로 계약의 청약이 아니라고 봤다. 신문에 실린 할인 광고를 보고 가게에 갔는데 물건이 다 팔렸다고 해서 광고주를 고소할 수는 없다. 광고는 대개 사러 오라는 초대일 뿐, 그 자체로 약속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이유를 덧붙였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이 광고를 진지한 제안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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