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거짓말을 딱 한 번 했어오

by김경훈

저는 거짓말을 딱 한 번 했어오.


2년 차 가을이었어오.

형이랑 학교 가는 길이었어오.

골목 모퉁이에 치킨집이 있어오.

그날 아침 그 치킨집에서 기름 냄새가 아주 진하게 났어오.

전날 밤에 튀긴 냄새가 아직 남아 있었어오.


저는 섰어오.


앞에 아무것도 없었어오.

턱도 없고 자전거도 없고 사람도 없었어오.

그냥 냄새가 너무 좋았어오.


형은 제가 서면 앞에 뭐가 있다고 믿어오.

그게 우리 약속이에오.

그래서 형도 섰어오.

그리고 발을 앞으로 내밀어서 더듬었어오.

아무것도 없었어오.


형이 잠깐 가만히 있었어오.

그러고 아무 말 없이 다시 걸었어오.


그날 하루 종일 형은 제가 설 때마다 발로 한 번씩 더 확인했어오.

다음 날도 그랬어오.

그다음 날도 그랬어오.


일주일이 지나서야 형은 다시 제가 서면 그냥 섰어오.


저는 그 일주일을 아직도 기억해오.

치킨 냄새는 1분이었는데 형 발이 의심한 건 일주일이었어오.


사람들은 개가 거짓말을 못 한다고 해오.

반은 맞아오.


저는 그날 몸으로 거짓말을 했어오.

멈춰 서서 앞에 뭐가 있는 척했어오.

그런데 몸 전체가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어오.


꼬리가 흔들리고 있었어오.


치킨 냄새가 좋아서 꼬리가 혼자 흔들렸어오.

저는 그걸 몰랐어오.

꼬리는 제 마음대로 안 돼오.


나중에 형이 누나한테 그날 이야기를 했어오.

장애물 앞에서 멈췄는데 하네스 너머로 꼬리 흔드는 진동이 왔다고.

장애물 앞에서 꼬리를 흔드는 개는 없다고.


형은 처음부터 알았던 거예오.

그래도 아무 말 안 하고 일주일 동안 발로만 확인했어오.

혼내지 않았어오.

그냥 믿음을 조금 줄였어오.

저는 그게 혼나는 것보다 무거웠어오.



저는 탱고예오.

형의 안내견이에오.


오늘 아침 보이스오버가 칸트 이야기를 읽어줬어오.


악의 없는 거짓말은 괜찮지 않을까.

이게 질문이었어오.

대답은 아니오였어오.


이 대목에서 누나가 고개를 들었어오.

누나는 칸트를 공부해오.

칸트 이야기가 나오면 누나 목소리가 한 칸 올라가오.

그리고 커피를 빨리 마셔오.


형이 웃었어오.


"자기 전공 나왔다."


"전공이 아니라 일이야."


"일이면 더 길어지겠네."


"응. 각오해."


누나가 빵을 내려놨어오.

누나가 빵을 내려놓으면 길어져오.

저는 자리를 고쳐 앉았어오.



칸트는 진실을 말하는 게 이성의 명령이래오.

신성하고 절대적이래오.


이유는 신뢰래오.

거짓말은 신뢰를 무너뜨리고 신뢰가 무너지면 약속도 우정도 결혼도 못 한대오.

두 번 거짓말한 사람은 진실을 말해도 믿을 수 없대오.

오랜 시간이 걸려 생긴 게 한 번의 거짓말로 부서진대오.


저는 이 대목에서 치킨집이 생각났어오.


칸트 선생님은 안내견을 키워본 적이 없을 거예오.

그런데 안내견 일을 아주 잘 알아오.



그날 오후에 형이랑 누나랑 옷을 사러 갔어오.


형 셔츠가 낡았대오.

반월당 근처 옷가게였어오.

가게에 들어가자 점원이 반갑게 인사했어오.

목소리가 높고 밝았어오.


형이 셔츠를 몇 개 골랐어오.

누나가 색을 말해줬어오.

형은 손으로 천을 만져봤어오.

형은 천을 아주 오래 만져오.

면이 몇 퍼센트인지 손으로 맞혀오.


형이 하나를 입어보러 탈의실에 들어갔어오.

저도 따라 들어갔어오.

탈의실은 좁아서 제 꼬리가 거울에 부딪혔어오.


형이 나왔어오.


점원이 말했어오.


"와 너무 잘 어울리세요."


저는 이 말을 기억해오.

왜냐하면 오늘 이 말을 네 번째 들었기 때문이에오.


우리가 들어오기 전에 탈의실에서 나온 아저씨한테 한 번.

그다음 아주머니한테 한 번.

대학생한테 한 번.

그리고 형한테.


네 사람이 다 다른 옷을 입었어오.

그런데 대답은 다 같았어오.


와 너무 잘 어울리세요.



누나가 형 옆에 와서 섰어오.


"어깨가 커. 소매도 길어. 그리고 색이 자기한테 좀 흐려."


형이 웃었어오.


"그럴 줄 알았어."


"왜."


"입었을 때 어깨가 흘러내렸어."


점원이 잠깐 조용했어오.

그러고 다른 사이즈를 가지러 갔어오.


형이 누나한테 작게 말했어오.


"근데 저 점원분 말이 거짓말이라기보다는 정보가 없는 말이야."


"무슨 말이야."


"모든 사람한테 똑같이 잘 어울린다고 하면 그 말은 아무것도 안 알려주잖아. 맞든 안 맞든 같은 대답이 나오는 신호는 정보량이 0이야."


누나가 웃었어오.


"자기 지금 옷가게에서 섀넌 하는 거야."


"섀넌이 옷가게에 왔으면 똑같이 말했을 거야."


저는 섀넌이 누군지 몰라오.

형 분야의 할아버지래오.

정보가 뭔지 처음 계산한 사람이래오.

누나 분야에는 칸트 할아버지가 있고 형 분야에는 섀넌 할아버지가 있어오.

제 분야에는 할아버지가 없어오.

제가 첫 번째 할아버지가 될 예정이에오.



형 말을 듣고 저는 제 일을 생각했어오.


제가 멈추는 건 신호예오.

앞에 뭔가 있다는 신호예오.

그 신호가 가치 있는 건 제가 아무 때나 안 멈추기 때문이에오.

뭔가 있을 때만 멈추니까 멈춤이 정보가 되는 거예오.


그런데 치킨집 앞에서 멈췄을 때 저는 그 신호를 조금 망가뜨렸어오.

아무것도 없을 때도 멈추는 개가 됐어오.

그러니까 형은 제 멈춤을 다시 확인해야 했어오.

제 신호의 정보량이 줄어든 거예오.


칸트 선생님이 말한 신뢰가 그거예오.

신뢰는 상대의 신호를 확인 없이 믿을 수 있는 상태예오.

한 번 거짓말을 하면 그다음부터는 확인이 필요해져오.

확인이 필요한 관계는 무거워져오.


형은 그 일주일 동안 무거웠어오.

저도 무거웠어오.



이건 형이 자주 하는 이야기예오.


사람들이 형한테 착한 거짓말을 많이 해오.


셔츠에 커피가 묻었는데 아무도 말을 안 해줘오.

말하면 형이 민망할까 봐오.

그래서 형은 하루 종일 커피 묻은 셔츠를 입고 다녀오.

학회에서 발표할 때도오.


머리가 뻗쳤는데 괜찮다고 해오.

가방이 열렸는데 아무도 말을 안 해줘오.

신발 끈이 풀렸는데 형이 넘어질 뻔해야 누가 말해줘오.


형은 이게 친절이 아니라고 해오.


"나한테는 눈으로 확인하는 방법이 없잖아. 그러면 남이 말해주는 게 내 거울이야. 그 거울이 착한 거짓말을 하면 나는 거울이 없는 거야."


착한 거짓말은 형한테 정보를 빼앗는 일이에오.

그것도 형이 제일 필요한 정보를요.


그래서 형이랑 누나는 오래전에 약속을 하나 했대오.


나한테는 거짓말하지 마.

옷이 이상하면 이상하다고 해.

얼굴에 뭐 묻었으면 묻었다고 해.


누나는 그 약속을 지켜오.

가끔 너무 잘 지켜서 형이 상처받아오.

오늘 셔츠도 그랬어오.

색이 흐리다는 말을 듣고 형이 조금 서운해했어오.

그 셔츠 천이 좋았거든오.


그런데 형은 서운해하면서도 고마워해오.

누나 말은 정보가 있으니까오.


지난달에는 이런 일도 있었어오.


형이 학회 발표 자료에 넣을 사진을 찍었어오.

프로필 사진이에오.

형은 그 사진을 학과 사람 세 명한테 보여줬어오.

세 명 다 잘 나왔다고 했어오.


그리고 집에 와서 누나한테 보여줬어오.


누나가 말했어오.


"눈 감았어."


형이 잠깐 조용했어오.


"세 명이 잘 나왔다고 했는데."


"세 명이 다 착했네."


형이 웃었어오.

웃었는데 조금 쓴 웃음이었어오.


형은 그날 사진을 다시 찍었어오.

누나가 옆에서 셔터 타이밍을 말해줬어오.

지금 눈 떴어 지금.


그 세 명이 나쁜 사람은 아니에오.

형이 민망할까 봐 그런 거예오.

그런데 그 친절 때문에 형은 학회 화면에 눈 감은 얼굴로 걸릴 뻔했어오.


누나는 그날 형을 민망하게 했어오.

그리고 그 민망함이 형을 구했어오.

착한 거짓말 세 개보다 쓴 진실 하나가 쓸모 있었어오.



저녁에 누나가 칸트 이야기를 마저 했어오.


"근데 칸트가 그 글에서 든 예가 진짜 유명해."


"문 앞의 살인자."


"응. 친구가 우리 집에 숨었는데 살인자가 와서 친구 어디 있냐고 물어. 그래도 거짓말하면 안 된다는 게 칸트야."


형이 물었어오.


"자기는 칸트 편이야."


누나가 잠깐 생각했어오.

누나가 생각할 때는 커피잔 드는 소리가 일정해오.


"그 글은 칸트 편 들기 어려워. 칸트를 공부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거기서는 칸트가 너무 갔다고 해."


"그럼 칸트가 틀린 거야."


"그 결론은 틀렸을 수 있는데 이유는 안 틀렸어. 칸트가 지키려던 건 진실이라는 제도야. 한 사람이 거짓말을 해도 된다고 허락하면 모든 사람이 그럴 수 있다는 걸 허락하는 거니까."


"그럼 살인자 앞에서는."


"코스가드라는 학자가 이렇게 말했어. 살인자는 이미 진실이라는 제도 밖에서 진실을 이용하려고 하는 거라고. 그 사람한테 하는 거짓말은 제도를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제도를 악용하는 걸 막는 거라고."


형이 오 하고 소리를 냈어오.


"그럼 옷가게 점원은."


누나가 웃었어오.


"그 점원은 살인자가 아니잖아."


"그러니까 거짓말할 이유가 없잖아."


"응. 그게 핵심이야. 문 앞의 살인자는 극단적인 경우야. 근데 사람들은 그 극단적인 경우를 핑계로 일상의 거짓말을 다 허락해버려. 옷이 잘 어울린다는 거짓말은 아무도 안 살려."


저는 문 앞의 살인자 이야기를 듣고 제 방법을 생각했어오.


저는 거짓말을 안 해오.

그날 이후로는오.

그런데 우리 집에 나쁜 사람이 오면 저는 가만히 있지도 않을 거예오.


짖을 거예오.


짖는 건 거짓말이 아니에오.

친구가 안에 있다고도 없다고도 안 해오.

그냥 너는 못 들어온다고 말하는 거예오.

아주 크게오.


누나한테 이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는데 저는 말을 못 해오.

그래서 누나 발등에 앞발을 올렸어오.

누나가 저를 보고 웃었어오.


"탱고도 의견 있어."


형이 말했어오.


"탱고는 짖을 거야. 거짓말 안 하고."


형은 제 생각을 가끔 정확히 알아오.


누나가 칸트 이야기를 하나 더 해줬어오.


칸트 선생님은 평생 같은 동네에 살았대오.

그리고 매일 같은 시간에 산바카라했대오.

너무 정확해서 동네 사람들이 칸트 선생님 지나가는 걸 보고 시계를 맞췄대오.

오래 전해지는 이야기래오.


저는 이 대목에서 꼬리를 크게 흔들었어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길로 산바카라하는 사람.

저는 그런 사람이 좋아오.

칸트 선생님은 안내견이랑 아주 잘 맞았을 거예오.

거짓말도 안 하고 산바카라 시간도 안 어기고.


누나가 그리고 칸트 선생님은 손님 대접을 아주 좋아했다고 했어오.

점심을 혼자 먹은 적이 거의 없대오.

식탁에는 늘 사람이 있었대오.


저는 그 식탁 아래에 엎드려 있고 싶어오.

진실만 말하는 사람들의 식탁 아래에서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는 아마 맛있을 거예오.



오늘 아침 보이스오버가 읽어준 글 끝에 구급차 이야기가 있었어오.


제한 속도가 50킬로미터인 길에서도 구급차는 더 빨리 달려도 된대오.

위급할 때는 어쩔 수 없는 거짓말이 있대오.

그런데 조건이 있대오.

이유가 충분해야 하고 바카라임을 져야 하고 나중에 진실을 밝혀서 새로 신뢰를 심어야 한대오.


누나가 이 대목이 좋다고 했어오.


"구급차는 사이렌을 켜잖아. 나 지금 규칙 어기고 있다고 다 들리게 알려. 몰래 어기는 게 아니야."


저는 이 말을 듣고 제가 하는 다른 일이 생각났어오.


가끔 저는 형 말을 안 들어오.

형이 가자고 하는데 안 가오.

앞에 공사 구덩이가 있거나 차가 오면 버텨오.

지적 불복종이래오.


그런데 저는 그걸 몰래 안 해오.

버틸 때는 몸 전체로 버텨오.

형이 다 느끼게오.

형은 제가 버티면 왜 버티는지 찾아요.

그리고 대체로 찾아오.


그건 거짓말이 아니에오.

사이렌을 켠 불복종이에오.


치킨집 앞은 달랐어오.

저는 아무 이유 없이 섰는데 이유가 있는 척했어오.

사이렌 없이 규칙을 어긴 거예오.

그래서 일주일이 걸린 거예오.



그나저나 오늘 셔츠는 결국 다른 걸 샀어오.

어깨가 맞고 소매가 맞고 색이 진한 거예오.

점원이 그걸 입은 형을 보고 또 말했어오.

와 너무 잘 어울리세요.

다섯 번째였어오.

그런데 이번에는 누나도 말했어오.

이건 진짜 잘 어울려.

형이 웃으면서 이번 거는 정보가 있네라고 했어오.

점원은 무슨 말인지 몰라서 같이 웃었어오.

같은 말이 누가 하느냐에 따라 정보가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해오.

저는 오늘 그걸 배웠어오.

그리고 집에 오는 길에 치킨집 앞을 지났어오.

냄새가 났어오.

저는 안 섰어오.

2년째 안 서고 있어오.



[형의 각주]


탱고 글에 각주를 단다.


첫째.

치킨집 이야기는 탱고가 처음 털어놓는 거지만 나는 그날 이미 알았다.

하네스로 꼬리 진동이 왔다.

그런데 확신은 없었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발로 확인했다.

혼내지 않은 이유는 하나다.

혼내면 탱고는 다음부터 멈추는 걸 망설인다.

진짜 장애물 앞에서 망설이는 개가 되는 게 치킨집 앞에서 한 번 서는 개보다 훨씬 위험하다.

신뢰를 다시 쌓는 데는 꾸중보다 시간이 낫다고 생각했다.


둘째.

칸트의 그 글은 1797년에 프랑스 사상가 뱅자맹 콩스탕의 비판에 답하려고 쓴 짧은 논문이다.

칸트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가장 논쟁적인 글 중 하나다.

누나 설명은 정확하다.

나는 누나한테 이걸 확인받았다.

확인받을 수 있는 사람이 집에 있다는 건 큰 복이다.


셋째.

정보량이 0이라는 말은 섀넌의 정보 이론에서 왔다.

결과가 무엇이든 늘 같은 신호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나는 이게 칸트의 신뢰 이야기와 같은 구조라고 생각한다.

거짓말은 신호를 소음으로 바꾼다.


넷째.

나한테 거짓말하지 말라는 약속은 사실이다.

그 약속 덕분에 나는 하루 종일 커피 묻은 셔츠를 입고 다니지 않는다.

대신 가끔 서운하다.

서운한 쪽이 정보가 없는 쪽보다 낫다.


다섯째.

칸트 산바카라 시간에 동네 사람들이 시계를 맞췄다는 건 오래 전해지는 일화다.

누나는 그게 정확한 기록이라기보다 칸트가 얼마나 규칙적인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했다.

탱고는 이 일화를 듣고 칸트를 자기 편으로 분류했다.

분류 기준은 산바카라 시간 준수다.

문헌정보학적으로 근거가 약한 분류지만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한다.


여섯째.

탱고는 그날 이후로 치킨집 앞에서 서지 않는다.

나는 그걸 발로 안다.

탱고가 서지 않으려고 참는 순간 하네스가 아주 미세하게 앞으로 당겨진다.

참는 것도 신호다.

나는 그 신호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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