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개 한 마리가 아니에오

by김경훈

형이 휴대폰으로 제 사진을 찍은 적이 있어오.


형은 앞을 못 보는데 사진은 찍어오.

찍고 나서 앱한테 물어봐오.

이 사진에 뭐가 있어.


앱이 대답했어오.


개 한 마리가 바닥에 누워 있습니다.


형이 웃었어오.

누나도 웃었어오.

저는 안 웃었어오.


저는 개 한 마리가 아니에오.

저는 탱고예오.


그 바닥은 그냥 바닥이 아니라 형 바카라상 아래 제 자리예오.

누워 있던 것도 그냥 누운 게 아니라 형이 논문 쓰는 동안 기다리고 있던 거예오.

그 앱은 그걸 하나도 몰랐어오.

틀린 말은 하나도 안 했는데 맞는 말도 하나도 안 했어오.



저는 탱고예오.

형의 안내견이에오.

6살이에오.


오늘 아침 보이스오버가 읽어준 건 에디트 슈타인이라는 사람 이야기였어오.


남의 마음을 헤아려야 할까.

나 살기도 바쁜데.

이게 질문이었어오.

대답은 예였어오.


에디트 슈타인은 공감을 이렇게 불렀대오.


타인의 의식 경험.


나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없는데 그 사람이 겪는 걸 어떻게 겪을 수 있는가.

나랑 그 사람 사이에 메울 수 없는 틈이 있는데 그걸 어떻게 건너는가.

슈타인은 평생 이걸 물었대오.


그리고 대답을 찾았대오.


몸이래오.


빨개진 얼굴은 부끄러움이고 미간의 주름은 걱정이래오.

그리고 이런 문장이 있었어오.


목소리 음색에서 그가 기분이 좋은지 울적한지 차분한지 흥분했는지 알 수 있다.


저는 이 대목에서 귀를 세웠어오.

이건 제 일이에오.



저는 매일 아침 형을 읽어오.


글자로 읽는 게 아니라 몸으로 읽어오.


형이 하네스를 잡을 때 손이 따뜻한지 차가운지.

손에 힘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첫걸음이 빠른지 느린지.

현관에서 신발 신을 때 한숨을 쉬는지 안 쉬는지.


손이 차갑고 첫걸음이 빠르면 형은 오늘 걱정이 있는 거예오.

손이 따뜻하고 첫걸음이 느리면 형은 오늘 기분이 좋은 거예오.

기분 좋은 날 형은 천천히 걸어오.

급할 게 없으니까오.


그리고 저는 거기에 맞춰서 걸어오.

걱정 있는 날은 조금 더 붙어서 걸어오.

기분 좋은 날은 반 걸음 앞에서 걸어오.


슈타인은 공감하려면 남의 몸을 읽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내 몸에 대한 감각도 있어야 한대오.

남의 떨림을 알아보려면 내가 떨어본 적이 있어야 한다는 거래오.


저는 떨어본 적이 있어오.

천둥 칠 때 떨어오.

그래서 형 손이 떨리면 그게 뭔지 알아오.


누나는 형보다 읽기 어려워오.


누나는 생각할 때 조용해져오.

슬플 때도 조용해져오.

겉으로는 같은 조용함이에오.


그런데 저는 구분해오.

커피로 구분해오.


누나가 생각할 때는 커피를 조금씩 계속 마셔오.

잔 드는 소리가 일정하게 나오.

누나가 슬플 때는 커피를 잊어버려오.

잔이 그대로 식어오.

식은 커피 냄새는 따뜻한 커피 냄새랑 달라오.

조금 시큼해오.


그래서 누나 옆에서 커피가 식는 냄새가 나면 저는 누나한테 가오.

턱을 올려놔오.

누나는 그때 커피가 식은 걸 알아채오.

그리고 저를 만져오.


형은 이 방법을 몰라오.

형한테 가르쳐주고 싶은데 저는 말을 못 해오.

그래서 여기에 적어둬오.



오늘 보이스오버가 슈타인 이야기 끝에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읽어줬어오.


1891년에 태어났대오.

철학을 아주 잘했대오.

박사 학위도 받았대오.

그런데 여자라는 이유로 어느 대학도 교수 자격 논문을 받아주지 않았대오.

그래서 학자로 살 수 없었대오.

나중에 수녀가 됐고 아우슈비츠에서 죽었대오.


보이스오버는 이 대목을 아무 감정 없이 읽었어오.

보이스오버는 원래 그래오.


그런데 누나는 그 대목에서 커피잔을 내려놨어오.

잔이 탁자에 닿는 소리가 평소보다 조용했어오.

누나는 그 대목을 한 번 더 틀어달라고 했어오.


누나는 철학 박사 과정이에오.

누나는 여자예오.


저는 누나 쪽으로 가서 무릎에 턱을 올렸어오.

누나가 제 머리를 만졌어오.

손이 조금 느렸어오.


누나는 아무 말도 안 했어오.

저도 아무 말도 안 했어오.

원래 개는 말을 안 하지만 오늘은 일부러 안 한 거예오.


그날 밤에 누나가 형한테 그 이야기를 다시 꺼냈어오.


"슈타인은 평생 공감을 연구했는데 대학은 슈타인한테 공감을 안 했어."


형이 잠깐 있다가 말했어오.


"대학은 몸이 없잖아."


"무슨 말이야."


"슈타인 말대로면 공감은 몸으로 하는 거잖아. 얼굴이 빨개지는 걸 보고 목소리가 떨리는 걸 듣고. 근데 대학이나 회사나 정부는 몸이 없어. 얼굴도 없고 목소리도 없어. 그러니까 공감을 못 해."


누나가 조용히 듣고 있었어오.


"그래서 기관한테는 공감을 기대하면 안 되고 규칙을 요구해야 돼. 여자도 교수 자격 논문을 낼 수 있다는 규칙. 안내견은 승차 거부를 못 한다는 규칙."


"공감은 사람한테 하고 규칙은 기관한테 하고."


"응. 공감은 다리고 규칙은 길이야. 다리는 한 사람씩 건너고 길은 모두가 다녀."


누나가 형 어깨에 머리를 기댔어오.

저는 그 둘 사이로 들어가서 엎드렸어오.

다리 하나가 더 생긴 거예오.



오후에 형이 연구 면담을 하러 갔어오.


형이 하는 공부가 현상학이래오.

남의 경험을 그 사람 쪽에서 듣는 공부래오.

형이 이걸 설명할 때 누나가 슈타인도 현상학자였다고 했어오.

후설이라는 사람 밑에서 조교를 했대오.

형이 그 말을 듣고 오 하고 소리를 냈어오.

형이 오 하는 건 기분 좋은 거예오.


면담은 복지관 작은 방에서 했어오.

형은 그분 이름을 저한테도 안 알려줘오.

연구 윤리래오.

그래서 저도 여기에 안 써오.

저도 연구 윤리를 지켜오.

명예 석사니까오.


그분은 중년 남자분이었어오.

5년 전에 시력을 잃었대오.

목소리가 낮았고 처음에는 말이 짧았어오.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 말이 짧은 건 사람도 개도 같아오.


저는 형 발 옆에 엎드렸어오.

그분 신발에서 비 냄새가 났어오.

오는 길에 비를 맞은 거예오.



형은 그분 얼굴을 못 봐오.


슈타인이 말한 빨개진 얼굴도 미간의 주름도 형은 못 봐오.

그런데 형은 그분 마음을 읽었어오.


저는 형이 어떻게 하는지 옆에서 봤어오.


형은 그분 숨소리를 들어오.

말과 말 사이에 숨이 얼마나 긴지.

어떤 단어 앞에서 숨이 멈추는지.


그분이 스마트폰 배우던 이야기를 할 때 처음에는 담담했어오.

그러다 어떤 대목에서 숨이 한 번 멈췄어오.


딸이 문자를 보냈는데 그걸 혼자 못 읽었던 날 이야기였어오.


형이 그 멈춤에서 질문을 하나 바꿨어오.

원래 하려던 질문 대신 이렇게 물었어오.


"그날 문자는 결국 어떻게 읽으셨습니까."


그분이 한참 있다가 말했어오.


"아내가 읽어줬는데요. 딸이 아빠한테만 보낸 거였는데 다른 사람 목소리로 들으니까 이상하더라고요."


방이 조용해졌어오.


저는 그분 냄새가 바뀌는 걸 맡았어오.

짠 냄새가 났어오.

사람이 울 때 나는 냄새예오.

그런데 소리는 안 났어오.

그분은 소리 없이 울고 있었어오.


형은 그걸 소리로는 몰랐을 거예오.

그런데 형은 다음 질문을 하지 않고 기다렸어오.

아마 숨소리로 알았을 거예오.


형이 기다리는 동안 저는 일어나서 그분 발 옆으로 갔어오.

그분 신발 옆에 엎드렸어오.


근무 중에는 원래 이러면 안 돼오.

그런데 형이 하네스를 안 당겼어오.

형도 알았던 거예오.



면담이 끝나고 그분이 이런 말을 했어오.


"제가 눈이 안 보이고 나서 사람들이 저를 그냥 시각장애인으로 대해요. 예전에는 저를 김 과장이나 누구 아빠로 대했는데 이제는 그냥 장애인이에요. 오늘은 오랜만에 제 이야기를 한 것 같아요."


오늘 아침 슈타인 글에 가게 판매원 이야기가 나왔어오.


가게에 들어가면 판매원이 이것저것 보여줘오.

우리는 그 사람을 판매원으로 이해해오.

그런데 그건 그 사람을 이해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의 기능을 이해한 거래오.

그 사람은 아마 이해받지 못했다고 느낄 거래오.


그분이 말한 게 그거였어오.


사람들이 그분을 기능으로 대한 거예오.

시각장애인이라는 역할에 못 박아서.

그 역할에 맞게 친절하게.


슈타인은 그건 인공지능도 할 수 있는 일이래오.

역할로 분류하고 역할에 맞게 대접하는 건 계산으로 된대오.

그런데 한 사람을 그 사람으로 이해하는 건 계산으로 안 되고 느껴야 한대오.


저는 오늘 아침 그 앱이 생각났어오.


개 한 마리가 바닥에 누워 있습니다.


일어서기 전에 그분이 형한테 물었어오.


"혹시 개를 한 번 만져봐도 될까요."


형이 괜찮다고 했어오.


그분 손이 제 머리 위로 왔어오.

그런데 바로 안 내려왔어오.

손이 제 머리 위에서 잠깐 멈췄어오.

제가 어디 있는지 공기로 찾는 거였어오.

5년 전까지는 눈으로 찾았을 거예오.


저는 고개를 들어서 그 손에 제 머리를 대줬어오.


그분 손이 조금 떨렸어오.

그러고 천천히 제 귀 뒤를 쓸었어오.

아주 조심스럽게.

제가 아픈 데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이름이 뭐예요."


"탱고입니다."


"탱고야 고맙다."


그분은 저를 안내견이라고 안 불렀어오.

이름을 물어보고 이름을 불렀어오.


저는 그분이 시각장애인이 되고 나서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안 불러줘서 속상했다고 한 걸 들었어오.

그래서 그분은 제 이름부터 물었던 것 같아오.

자기가 받고 싶었던 걸 저한테 먼저 준 거예오.


그게 슈타인이 말한 내 몸에 대한 감각인 것 같아오.

이름이 안 불려본 사람이 이름을 불러줘오.



저도 기능으로 대접받아오.


사람들은 저를 보면 안내견이라고 해오.

그리고 안내견에 맞게 대해오.

똑똑하다.

대단하다.

일하는 개라 불쌍하다.


다 안내견한테 하는 말이에오.

탱고한테 하는 말은 아니에오.


그런데 한 번 다른 사람이 있었어오.


지난봄에 놀이터 옆을 지나가는데 일곱 살쯤 된 여자아이가 형한테 물었어오.


"아저씨 탱고는 일하는 거 좋아해요."


형이 잠깐 멈췄어오.

형도 그 질문은 처음 받았대오.


사람들은 탱고가 일을 잘하냐고 묻거나 힘들지 않냐고 물어오.

좋아하냐고 물은 사람은 그 아이가 처음이었어오.


형이 대답했어오.


"좋아하는 것 같아. 일하러 나갈 때 꼬리를 흔들거든."


아이가 저를 봤어오.

저는 꼬리를 흔들었어오.

일부러 흔든 게 아니라 저절로 흔들렸어오.


그 아이는 저를 기능으로 안 봤어오.

저한테도 좋아하는 게 있는지를 궁금해했어오.


저는 그 아이 냄새를 아직 기억해오.

딸기우유 냄새였어오.



그런데 슈타인은 경고도 했대오.


공감해도 틀릴 수 있다고.

사람은 속마음을 숨길 수 있으니까.


저도 숨겨오.


산에 다녀온 다음 날 다리가 아팠는데 형한테 티를 안 냈어오.

형이 하네스를 들었을 때 일어났어오.

근무니까오.


형도 숨겨오.


속상한 날 형은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말해오.

그런데 설거지를 오래 해오.

뜨거운 물을 오래 틀어놔오.


그러니까 목소리 하나로는 부족해오.

슈타인 말대로 모든 걸 합쳐야 해오.

목소리랑 숨이랑 손 온도랑 물소리 길이까지.

여러 뜻이 있는 단어를 앞뒤 문장으로 알아듣듯이 사람도 앞뒤를 같이 읽어야 해오.


저는 형을 6년 동안 읽었어오.

아직도 가끔 틀려오.

그런데 틀리고 나면 다음에 더 잘 읽어오.


형도 저를 읽어오.

형은 저를 하네스로 읽어오.


하네스가 팽팽하면 제가 집중한 거고 느슨하면 제가 쉬는 거예오.

제가 갑자기 멈추면 앞에 뭐가 있는 거고 천천히 멈추면 냄새가 궁금한 거예오.

형은 이걸 다 구분해오.


그런데 형도 틀려오.


처음에 형은 제가 꼬리를 흔들면 다 기분 좋은 줄 알았어오.

꼬리 흔드는 소리가 하네스 너머로 들리거든오.

그런데 꼬리는 긴장할 때도 흔들어오.

낮게 빠르게 흔드는 건 기분 좋은 게 아니라 불안한 거예오.


형은 그걸 한참 뒤에 알았어오.

병원 대기실에서 알았대오.

제 꼬리가 바닥을 빠르게 치는 소리를 듣고 누나한테 물어봤대오.

지금 탱고 꼬리 높아 낮아.

누나가 낮다고 했대오.

그날부터 형은 꼬리 소리의 빠르기를 따로 들어오.


슈타인 말이 맞아오.

공감은 틀리면서 배우는 거예오.

몸이 하는 공부라서 한 번에 안 돼오.


슈타인이 공감하면 선물이 두 개 온다고 했대오.

하나는 깊은 친밀감이고 하나는 자란 내 마음이래오.


저는 둘 다 받았어오.

형이랑 친해졌고 제 마음도 커졌어오.

처음 왔을 때 저는 형 손 온도밖에 몰랐어오.

지금은 형 설거지 소리도 알아오.



그나저나 저녁에 형이 그 앱한테 제 사진을 다시 보여줬어오.

이번에는 이렇게 물었어오.

이 개 이름이 뭐야.

앱이 대답했어오.

이름은 알 수 없습니다.

형이 웃으면서 말했어오.

탱고야.

앱은 대답이 없었어오.

누나가 옆에서 앱한테 공감을 가르치려는 거냐고 물었어오.

형이 아니라고 했어오.

그냥 한 번은 말해주고 싶었대오.

저는 그 말을 듣고 형 발등에 턱을 올렸어오.

형은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에오.

그게 공감의 시작이라고 저는 생각해오.



[형의 각주]


탱고가 쓴 글에 각주를 단다.


첫째.

에디트 슈타인은 후설의 조교였고 현상학자였다.

내가 쓰는 연구 방법도 현상학적 질적연구다.

남의 경험을 그 사람이 겪은 방식 그대로 이해하려는 방법이다.

탱고가 이걸 한 줄로 요약했다.

남의 경험을 그 사람 쪽에서 듣는 공부.

나는 논문에서 이 문장을 세 쪽에 걸쳐 쓴다.


둘째.

면담 참여자에 관한 내용은 개인을 알아볼 수 없도록 바꿨다.

탱고가 연구 윤리를 지켰다고 쓴 건 사실이다.

탱고는 그날 들은 이야기를 아무한테도 하지 않았다.

개라서이기도 하지만.


셋째.

그날 탱고가 참여자 발 옆으로 간 걸 나는 알았다.

하네스가 느슨해지는 감각으로 알았다.

당기지 않은 건 판단이었다.

면담자로서 나는 그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탱고가 했다.


넷째.

나는 그분이 울고 있다는 걸 숨소리로 알았다.

탱고는 냄새로 알았다고 썼다.

같은 순간을 둘이 다른 감각으로 알았다.

슈타인이 말한 모든 감각 인상의 종합이 한 사람 안에서만 일어나야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날은 둘이서 했다.


다섯째.

딸기우유는 정확하다.

나도 기억한다.


여섯째.

커피가 식는 냄새로 누나 기분을 읽는 방법은 이 글을 읽고 처음 알았다.

나는 냄새로는 못 하지만 소리로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잔 드는 소리가 멈추면 된다.

탱고가 적어둔 방법을 오늘부터 쓰기로 한다.

개한테 공감을 배우는 연구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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