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미워하는 개가 하나 있어오.
산바카라길 편의점 앞에 사는 몰티즈예오.
이름은 뽀삐예오.
제 몸무게가 30킬로그램쯤 되는데 뽀삐는 3킬로그램쯤 돼오.
저의 10분의 1이에오.
그런데 뽀삐는 매일 아침 저를 보고 짖어오.
유리문 안에서 짖어오.
제가 지나갈 때까지 짖어오.
제가 다 지나가고 나서도 한 번 더 짖어오.
마지막 한 번이 제일 커오.
저는 근무 중이라 대꾸를 안 해오.
안내견은 짖으면 안 돼오.
그래서 저는 매일 아침 뽀삐한테 지고 있어오.
대꾸를 못 하는 싸움은 늘 지는 싸움이에오.
저는 뽀삐가 미워오.
이건 비밀이었는데 오늘 말해오.
오늘 형이랑 누나가 미움 이야기를 했거든오.
개들 세계에서 미움은 시끄러워오.
짖고 으르렁대고 털을 세우고 꼬리를 뻣뻣하게 들어오.
온몸으로 너 싫어를 말해오.
그래서 개들끼리는 누가 누구를 싫어하는지 다 알아오.
그런데 개들 세계에도 조용한 게 하나 있어오.
냄새를 안 맡는 거예오.
개들은 처음 만나면 서로 냄새를 맡아오.
그게 인사예오.
너 누구야를 묻는 거예오.
그런데 어떤 개는 다른 개가 와도 냄새를 안 맡아오.
고개를 돌려버려오.
너는 물어볼 가치도 없다는 뜻이에오.
저는 이게 짖는 것보다 싫어오.
짖으면 적어도 저를 상대해주는 거예오.
고개를 돌리면 저는 거기 없는 개가 돼오.
뽀삐는 고개를 돌린 적이 한 번도 없어오.
매일 저를 똑바로 보고 짖어오.
저는 탱고예오.
안내견이에오.
형은 김경훈이고 누나는 형의 아내예오.
형은 앞을 못 보고 저는 형이랑 같이 다녀오.
형이 어디로 갈지 정하면 제가 안 넘어지게 데려가오.
저는 바카라을 못 읽어오.
그런데 매일 아침 형 휴대폰이 형한테 글을 읽어줘오.
보이스오버라는 목소리예오.
감정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인데 저는 그 목소리를 좋아해오.
그 목소리가 읽어주는 걸 저도 옆에서 다 들어오.
그래서 저는 철학을 조금 알아오.
참고로 저는 문헌정보학 명예 석사예오.
아는 척은 제 전공이에오.
오늘 아침 보이스오버가 읽어준 건 쇼펜하우어라는 사람 이야기였어오.
이유 없이 사람을 미워해도 괜찮을까.
이게 질문이었어오.
대답은 예였어오.
저는 그 대답을 듣고 귀를 세웠어오.
뽀삐 생각이 났거든오.
쇼펜하우어는 사랑이랑 미움이 같은 집에 산다고 했대오.
둘 다 마음에 사는 감정이라서 우리 마음대로 오고 가는 게 아니래오.
그냥 찾아온대오.
오면 거기 있는 거래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키우거나 다스리거나 참는 것뿐이고 없앨 수는 없대오.
저는 이 대목에서 꼬리를 한 번 쳤어오.
맞는 말이에오.
저는 뽀삐를 미워하기로 결심한 적이 없어오.
어느 날 아침 그냥 미워졌어오.
그다음 대목이 어려웠어오.
미움은 아무도 해치지 않는다.
그러나 멸시는 사람을 무너뜨린다.
괴테라는 사람이 한 말이래오.
저는 처음에 멸치라고 들었어오.
멸치가 사람을 무너뜨린다니 이상했어오.
멸치는 작고 짜고 냄새가 좋아오.
누나가 가끔 볶아오.
나중에 누나가 형한테 설명하는 걸 듣고 알았어오.
멸치가 아니라 멸시였어오.
깔보는 거래오.
상대를 사람으로 안 치는 거래오.
쇼펜하우어가 그 둘을 이렇게 나눴대오.
미움은 마음의 일이고 멸시는 머리의 일이다.
미움은 이유 없이 오고 온몸을 흔든대오.
멸시는 이유가 있고 차갑고 계산이 되어 있대오.
그래서 미움을 받는 사람은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면 되는데 멸시를 받는 사람은 그걸로 끝이래오.
그리고 마지막에 이런 말이 있었어오.
미움은 연결을 유지하고 멸시는 연결을 끊는다.
뜨거운 미움이 차가운 멸시보다 인간적이다.
저는 개라서 인간적인 건 잘 몰라오.
그런데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은 알아오.
냄새로 알아오.
지난주에 형이랑 누나랑 시내 식당에 갔어오.
저는 식탁 아래 형 발 옆에 엎드렸어오.
이게 제 자리예오.
고기 냄새가 위에서 내려왔어오.
저는 모르는 척했어오.
근무 중이니까오.
직원이 주문을 받으러 왔어오.
직원이 누나 쪽으로 몸을 돌렸어오.
저는 그게 보였어오.
식탁 아래에서는 사람 발이 잘 보여오.
발끝이 누나 쪽을 향했어오.
그리고 직원이 누나한테 물었어오.
"남편분은 뭐 드세요."
형이 바로 옆에 있었어오.
형은 귀가 아주 좋아오.
형은 말도 아주 잘해오.
형은 말이 너무 많아서 누나가 가끔 조용히 하라고 할 정도예오.
그런데 직원은 형한테 안 물었어오.
누나가 잠깐 조용했어오.
그러고 형 쪽으로 고개를 돌렸어오.
"자기 뭐 먹을래."
형이 직원 쪽을 향해서 직접 말했어오.
"저는 이걸로 하겠습니다."
직원이 그제야 형 쪽으로 발을 돌렸어오.
"아 네."
저는 그 직원 냄새를 맡았어오.
아무 냄새도 안 났어오.
긴장한 땀 냄새도 없었고 화난 냄새도 없었어오.
그냥 아무것도 없었어오.
그 사람한테 형은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이었어오.
저는 그게 무서웠어오.
뽀삐가 짖을 때보다 훨씬 무서웠어오.
음식이 나올 때 그 직원이 또 누나한테 물었어오.
"남편분 앞접시 하나 더 드릴까요."
그런데 이번에는 누나가 대답을 안 했어오.
누나 발이 움직였어오.
누나가 의자에 앉은 채로 몸을 형 쪽으로 돌렸어오.
누나 발끝이 형 발끝 쪽을 향했어오.
그리고 누나는 아무 말도 안 하고 형을 봤어오.
직원이 잠깐 서 있었어오.
누나가 대답을 안 하니까 할 수 없이 형 쪽을 봤어오.
"앞접시 더 필요하세요."
"네 하나 주세요."
저는 누나가 한 걸 알아오.
누나는 말로 싸우지 않았어오.
발로 싸웠어오.
자기 발을 돌려서 직원 발도 돌아가게 만들었어오.
개들도 이렇게 싸워오.
몸 방향으로오.
누나는 개처럼 싸울 줄 아는 사람이에오.
저는 이걸 칭찬으로 말하는 거예오.
그날 저녁 형은 별말을 안 했어오.
형은 원래 말이 많은데 그날은 조용했어오.
설거지를 오래 했어오.
형은 속상한 날 설거지를 오래 해오.
뜨거운 물을 오래 틀어놔오.
저는 부엌 바닥에 엎드려서 그 물소리를 들었어오.
나중에 누나가 형한테 물었어오.
"아까 그거 신경 쓰여."
"익숙해."
"익숙한 거랑 안 신경 쓰이는 거는 달라."
형이 접시를 하나 더 헹궜어오.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한 건 아니잖아."
"응."
"그래서 더 이상한 거야. 싫어하면 적어도 나를 보고 싫어하는 거잖아. 그 사람은 나를 안 봤어."
저는 그때는 그 말을 잘 몰랐어오.
오늘 아침에 알았어오.
쇼펜하우어가 말한 게 그거였어오.
미움은 바람이래오.
기다리면 잦아든대오.
그런데 멸시는 바람이 아니래오.
문이 닫힌 거래오.
바람은 기다리면 되는데 닫힌 문은 기다려도 안 열려오.
형은 그날 문이 닫힌 걸 알았어오.
그래서 뜨거운 물을 오래 틀었던 거예오.
저는 형이 뭘 씻고 있었는지 이제 알 것 같아오.
접시가 아니었어오.
같은 주에 택시를 탔어오.
택시 문이 열리자마자 기사님이 말했어오.
"아 개는 안 되는데."
목소리가 컸어오.
짜증 냄새가 났어오.
땀 냄새도 났어오.
뜨거운 냄새였어오.
형이 바로 말했어오.
"안내견입니다. 법으로 승차 거부를 못 하게 되어 있습니다."
"털 날리잖아요."
"제가 내릴 때 털 없는지 확인하겠습니다."
"그래도 개가."
"장애인복지법에 나와 있습니다. 보조견 표지가 있으면 거부할 수 없습니다."
기사님이 크게 한숨을 쉬었어오.
"아이고 알겠어요 타요 타."
저는 형 발밑에 엎드렸어오.
기사님은 출발하고 나서도 계속 투덜거렸어오.
그런데 5분쯤 지나서 라디오에서 야구 중계가 나왔어오.
삼성 경기였어오.
기사님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어오.
"아니 저걸 왜 바꾸노."
형이 대답했어오.
"불펜이 지쳤습니다. 어제도 던졌거든요."
"어제 던진 거 아는 사람이 왜 오늘 또 올리노."
"그러니까요."
그다음부터 두 사람은 내릴 때까지 싸웠어오.
감독 욕을 했고 투수 욕을 했고 서로 의견이 달라서 또 싸웠어오.
기사님 목소리는 계속 컸어오.
형 목소리도 커졌어오.
내릴 때 기사님이 말했어오.
"다음에 또 타소. 개도 데리고."
형이 웃었어오.
저도 내리면서 바닥을 확인했어오.
털은 두 가닥 떨어져 있었어오.
형이 손으로 찾아서 주웠어오.
저는 그 기사님 냄새를 다시 맡았어오.
아까랑 똑같이 뜨거운 냄새였어오.
그런데 그 뜨거움이 형 쪽을 향해 있었어오.
처음부터 끝까지 그 기사님은 형한테 말했어오.
화낼 때도 형한테 냈어오.
싸울 때도 형이랑 싸웠어오.
식당 직원은 한 번도 형을 안 봤어오.
택시 기사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형만 봤어오.
어느 쪽이 더 친절했냐고 물으면 식당 직원이에오.
목소리도 조용하고 말투도 공손했어오.
어느 쪽이 형을 사람으로 대했냐고 물으면 택시 기사님이에오.
저는 이 둘이 같은 질문이 아니라는 걸 그 주에 처음 알았어오.
친절한 건 목소리의 일이고 사람으로 대하는 건 방향의 일이에오.
목소리는 꾸밀 수 있는데 방향은 잘 못 꾸며오.
특히 발은 거짓말을 못 해오.
사실 이런 일은 자주 있어오.
저는 형 발 옆에서 사람들을 아래에서 봐오.
아래에서 보면 사람 발이 어디를 향하는지 다 보여오.
말보다 발이 정직해오.
엘리베이터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누나한테 물어오.
이 개 몇 살이에요.
형이 대답해오.
6살입니다.
아주머니 발은 계속 누나 쪽에 있어오.
버스 정류장에서 어떤 아저씨가 저한테 말을 걸어오.
아이고 똑똑하네 주인 데리고 다니느라 고생한다.
형은 바로 위에 서 있어오.
아저씨는 형한테는 한마디도 안 해오.
저한테만 말해오.
저는 대답을 못 해오.
개니까오.
그러면 그 대화는 아무한테도 안 가는 대화가 돼오.
그리고 제일 많이 듣는 말이 있어오.
아이고 불쌍해라.
이 말에는 냄새가 있어오.
처음에는 달콤해오.
그런데 끝이 차가워오.
불쌍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대체로 형한테 다가오지 않아오.
한 걸음 떨어져서 말해오.
그리고 말하고 나서 바로 가버려오.
저는 이게 멸시의 사촌이라고 생각해오.
미워하는 건 아닌데 연결하지도 않아오.
위에서 내려다보고 지나가는 거예오.
택시 기사님은 형을 불쌍해하지 않았어오.
형이랑 싸웠어오.
저는 그게 더 좋았어오.
저녁에 누나가 쇼펜하우어 이야기를 하나 더 해줬어오.
쇼펜하우어는 푸들을 키웠대오.
이름이 아트만이었대오.
그런데 그 푸들을 꾸짖을 때는 이름을 안 부르고 이렇게 불렀대오.
인간아.
저는 이 대목에서 일어났어오.
그리고 누나 무릎에 턱을 올렸어오.
더 듣고 싶었어오.
쇼펜하우어는 사람을 별로 안 좋아했대오.
평생 혼자 살았고 대학교수도 못 됐대오.
그래서 가장 나쁜 욕이 인간이었던 거래오.
형이 웃으면서 말했어오.
"그럼 쇼펜하우어는 사람을 미워했지 멸시하진 않았네."
"왜."
"멸시했으면 이름을 아예 안 불렀겠지. 인간아라고 부를 만큼은 인간이랑 연결돼 있었던 거야."
누나가 잠깐 생각했어오.
"그 푸들이 제일 불쌍하다."
"왜."
"사람 대신 혼났잖아."
저는 그 푸들 편이에오.
같은 개로서 연대해오.
아트만은 아무 잘못이 없었을 거예오.
아마 소파에 털을 좀 묻혔을 거예오.
그건 잘못이 아니에오.
그건 개예오.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뽀삐를 다시 생각했어오.
저는 뽀삐가 미워오.
그런데 뽀삐가 없는 날이 있어오.
편의점 유리문이 조용한 날이오.
그런 날 저는 걸으면서 그쪽을 몇 번 돌아봐오.
형이 하네스로 그걸 느끼고 왜 그러냐고 해오.
저는 대답을 못 해오.
개니까오.
사실은 걱정되는 거예오.
뽀삐가 아픈가.
뽀삐가 이사 갔나.
뽀삐가 이제 저한테 관심이 없나.
마지막 게 제일 싫어오.
뽀삐가 짖는 건 저를 보고 짖는 거예오.
매일 아침 3킬로그램짜리 몸으로 30킬로그램짜리 저를 상대해주는 거예오.
그건 미움이에오.
그런데 미움이라도 저한테 오는 거예오.
뽀삐가 저를 보고도 안 짖는 날이 오면 저는 그날이 더 무서울 것 같아오.
그게 식당 직원이에오.
냄새가 없는 거예오.
누나가 이 글에서 하나는 틀렸다고 했어오.
여자들은 사랑하지 않으면 미워한다는 옛날 사람들 말이 나오는데 누나가 그 대목에서 웃었어오.
"이건 그냥 고정관념이야."
"그래도 글에서는 혹시 진실이 한 줌 있지 않을까 하던데."
"한 줌 있다면 그건 여자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 이야기겠지."
형이 저를 보면서 말했어오.
"개 이야기이기도 하고."
저는 꼬리를 쳤어오.
맞는 말이에오.
그나저나 오늘 아침에도 뽀삐가 짖었어오.
저는 오늘 처음으로 조금 반가웠어오.
반가운 걸 들키면 안 돼서 모르는 척 지나갔어오.
그런데 꼬리가 혼자 한 번 움직였어오.
형이 하네스로 그걸 느꼈어오.
형이 뽀삐 있냐고 물었어오.
누나가 있다고 했어오.
형이 그럼 오늘도 졌네 하고 웃었어오.
저는 졌어오.
그래도 오늘은 기분 좋게 졌어오.
미움이 연결이라는 건 이런 거예오.
지는데도 연결되어 있어오.
[형의 각주]
탱고가 쓴 글에 각주를 단다.
문헌정보학 연구자로서 출처 정리는 해둬야 할 것 같다.
첫째.
멸치가 아니라 멸시다.
탱고는 본문에서 이미 정정했지만 이 오해가 생각보다 오래 갔다는 것을 기록해둔다.
누나가 멸치볶음을 할 때마다 탱고 귀가 괴테 쪽으로 선다.
둘째.
식당 이야기는 사실이다.
그날 내가 설거지를 오래 한 것도 사실이다.
나는 그게 티가 나는 줄 몰랐다.
뜨거운 물을 오래 틀어놓는 버릇이 있다는 건 이 글을 읽고 처음 알았다.
셋째.
탱고는 사람을 냄새로 뜨거운 사람과 차가운 사람으로 나눈다.
나는 소리로 나눈다.
나한테 그 식당 직원은 목소리가 내 쪽으로 오지 않는 사람이었다.
목소리에도 방향이 있다.
누나한테 가는 목소리와 나한테 오는 목소리는 같은 크기여도 다르게 들린다.
넷째.
삼성 불펜에 대한 그날 기사님의 판단은 틀렸다.
이건 이 글의 주제와 무관하지만 기록해둔다.
다섯째.
탱고가 뽀삐를 기다린다는 건 이 글을 읽고 처음 알았다.
나는 탱고가 매일 아침 지는 줄만 알았다.
지는 동시에 연결되어 있는 줄은 몰랐다.
각주를 다는 사람이 본문한테 배우는 경우가 가끔 있다.
오늘이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