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옛적

by김경훈

[평가 보고서]


작성 · 비공개 미식 평가원 1인

대상 · 예약제 단독 다이닝

좌석 · 1석

코스 · 7접시

평가 · 미완료

상태 · 보고서 회수됨



예약


이 일을 14년 했다.


신분을 숨기고 식당에 가서 먹고 점수를 매긴다. 별을 주거나 안 준다.


내 혀는 회사 자산이다. 보험도 들어 있다.


이번 의뢰는 좀 이상했다.


본부에서 주소 하나와 날짜 하나만 왔다. 식당 이름은 옛날옛적. 좌석은 1석. 예약은 이미 내 이름으로 되어 있다고 했다.


나는 예약한 적이 없다.


본부도 안 했다고 했다.


그럼 누가 했냐고 물었더니 담당자가 이랬다.


그 식당은 원래 그래요. 가실 분 이름으로 먼저 잡혀 있어요.


가볼 만하냐고 물었다.


담당자가 잠깐 조용하더니 이랬다.


평가 보고서가 지금까지 한 번도 안 들어왔어요.


몇 명 보냈냐고 물었다.


담당자가 숫자를 안 말했다.


나는 갔다.


14년 하면 이런 데가 제일 궁금하다.



입구


골목 끝 한옥이다.


간판이 없다. 대문에 종이 한 장 붙어 있다.


손님께 드리는 말씀.


하나. 내어드린 것은 남기지 마십시오.


둘. 더 달라고 하지 마십시오.


셋. 자정 전에 일어나십시오.


넷. 주방은 보지 마십시오.


미식 평가 14년에 손님한테 규칙 거는 집은 처음 봤다.


보통은 손님이 셰프한테 규칙을 건다. 고수 빼주세요 같은 거.


대문을 밀었더니 열렸다.


마당을 지나 방에 들어가니 상이 하나 차려져 있었다.


방석이 하나.


맞은편에 문이 하나 있다. 주방으로 통하는 문 같다. 창호지가 발라져 있다.


창호지 너머로 불빛이 움직인다. 사람 그림자는 안 보인다.


나는 앉았다.


8시 정각이었다.



식전수


앉자마자 물 한 잔이 놓여 있었다.


놋그릇에 담긴 맑은 물이다.


메뉴 카드가 옆에 있었다.


나무꾼이 날개옷을 숨긴 그 연못. 선녀가 목욕하던 물을 떠 왔습니다.


물을 들어서 냄새를 맡았다.


아무 냄새도 안 났다.


물은 원래 냄새가 없다. 그게 좋은 물이다.


그런데 이 물은 너무 없었다.


내 손 냄새도 안 났다. 놋그릇 냄새도 안 났다.


물 근처에 있는 냄새가 다 없어졌다.


한 모금 마셨다.


입안이 깨끗해졌다.


깨끗해진 정도가 아니라 비워졌다.


혀가 처음 생긴 것처럼 아무 맛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


미식 평가 전에 입을 헹구는 건 기본이다.


근데 이건 헹군 게 아니라 지운 거다.


14년 동안 먹은 게 혀에서 다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나는 놋그릇을 내려놓았다.


반쯤 남았다.


규칙 첫째가 생각났다.


다시 들어서 다 마셨다.


마지막 한 모금에서 날개 깃 같은 게 혀에 닿았다.


삼켰다.



첫 접시 · 제비집 맑은국


종업원이 들어왔다.


젊은 남자다. 한복을 입었다. 얼굴이 좀 낯익다. 어디서 봤더라.


접시를 내려놓고 메뉴 카드를 옆에 놓았다.


카드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흥부 집 처마의 제비가 이듬해 봄에 다시 지은 둥지. 다리 고쳐준 은혜를 갚으러 온 그 제비입니다.


국물이 맑다. 금빛이 돈다.


제비집 요리는 원래 비싸다. 금사연이라는 새 침으로 만든다. 실처럼 풀어지는 식감이 특징이다.


한 숟가락 떴다.


식감이 다르다.


실처럼 풀리는 게 아니라 씨앗 같은 게 씹힌다.


박씨다.


국물 맛은 깊다. 단맛이 있고 끝에 짭짤한 게 온다. 바다 소금 같기도 하고 땀 같기도 하다.


평점을 적으려고 수첩을 펴는데 종업원이 이랬다.


다 드세요.


다 먹었다.


그릇 바닥에 씨앗이 하나 남아 있었다.


종업원이 그릇을 들어 그 씨앗을 손가락으로 집어 내 앞에 놓았다.


이것도 드셔야 합니다.


먹었다.


삼키는데 목에서 뭔가 싹이 트는 것 같은 느낌이 났다.


기분 탓이다.



둘째 접시 · 호박 수프


다른 종업원이 들어왔다.


여자다. 역시 한복. 역시 얼굴이 낯익다.


메뉴 카드.


무도회장 계단에서 유리구두를 잃어버린 그날 밤. 자정 종소리와 함께 마차에서 돌아온 호박입니다. 자정이 지나면 다시 마차가 됩니다.


주황색 수프다. 거품이 곱다.


향을 맡았다.


호박 향이 나다가 끝에 말 냄새가 난다. 마구간 냄새. 가죽 냄새.


한 숟가락 먹었다.


맛있다.


솔직히 14년 동안 먹은 호박 수프 중에 제일 맛있다.


단맛이 정확하고 질감이 비단 같다.


그런데 수프 안에 뭐가 있다.


숟가락에 딱딱한 게 걸린다.


건져봤다.


작은 나무 조각이다. 바퀴살 같다.


종업원한테 이게 뭐냐고 물었다.


종업원이 시계를 봤다.


벽에 괘종시계가 있다. 8시 40분이다.


종업원이 이랬다.


아직 괜찮습니다.


뭐가요 하고 물었다.


종업원이 이랬다.


자정까지는 호박입니다.


자정이 지나면요 하고 물었다.


종업원이 수프 그릇을 내려다봤다.


마차가 됩니다.


배 속에서요 하고 물었다.


농담이었다. 14년 하면 셰프 앞에서 농담하는 버릇이 생긴다. 분위기를 풀려고.


종업원이 안 웃었다.


네.


그 한 글자만 하고 나갔다.


나는 수프를 마저 먹었다.


바퀴살 조각은 주머니에 넣었다.


남기지 말라고 했는데 이건 음식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이게 틀린 판단이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수첩에 적었다.


둘째 접시. 별 셋. 단 자정 전에 드실 것.


미식 평가 보고서에 이런 주의 사항을 적는 건 처음이다.



셋째 접시 · 사과 셔벗


이번 종업원은 나이 든 여자였다.


얼굴을 봤다.


낯익다. 진짜 낯익다.


메뉴 카드.


일곱 난쟁이 집 창가에서 받은 사과. 붉은 쪽 반을 셔벗으로 만들었습니다. 흰 쪽 반은 손님께서 가져오셨습니다.


내가 가져온 게 없다.


셔벗이 붉다. 아주 붉다. 사과 색이 아니라 입술 색이다.


한 입 먹었다.


차갑고 달고 끝에 쓴맛이 남는다.


쓴맛이 혀 뒤에 붙어서 안 떨어진다.


종업원이 이랬다.


흰 쪽은 아까 드신 국에 들어 있었어요.


나는 첫 접시 박씨 맛을 떠올렸다.


짭짤한 거.


그 쓴맛이 지금 같은 자리에 붙었다.


목이 좀 따끔했다.


종업원이 나가면서 이랬다.


잠깐 졸리실 수 있어요. 주무시면 안 됩니다.



낯익은 얼굴


셋째 접시를 먹고 나서 알았다.


종업원들 얼굴.


평가원 동료들이다.


첫째 접시 남자는 7년 전에 그만둔 후배다. 연락이 끊겼다. 다들 업계를 떠났다고만 했다.


둘째 접시 여자는 4년 전 동기다. 해외 지사로 갔다고 들었다.


셋째 접시 나이 든 여자는 내 선배다. 나한테 이 일을 가르쳐준 사람. 은퇴했다고 들었다.


전부 이 식당 평가를 맡았던 사람들일 것이다.


보고서가 한 번도 안 들어왔다고 했다.


다들 여기서 일하고 있다.


선배가 다음 접시를 들고 들어왔다.


내가 선배 이름을 불렀다.


선배가 대답을 안 했다.


접시를 내려놓고 아주 작게 말했다.


남기지 마. 더 달라고 하지 마. 자정 전에 일어나. 주방 보지 마.


그러고 나갔다.


넷 다 지켰냐고 묻고 싶었다.


선배는 뭘 어겼길래 여기 있나.


선배가 나간 뒤 상 위를 봤다.


셔벗 그릇 옆에 작은 쪽지가 하나 놓여 있었다.


선배 글씨였다.


14년 전에 내 첫 보고서에 빨간 펜으로 고쳐주던 그 글씨.


나는 첫째 접시에서 박씨를 남겼어.


그 한 줄이었다.


쪽지를 뒤집었다.


뒷면에도 한 줄 있었다.


남긴 건 싹이 나.


나는 목을 만져봤다.


아까 삼킨 박씨가 있던 자리다.


따끔한 게 조금 더 커져 있었다.


나는 남기지 않았는데.


그러면 이건 남긴 게 아니라 먹은 거라서 자라는 걸까.


먹어도 자라고 남겨도 자라면 박씨는 어쩌라는 건가.


선배한테 묻고 싶었는데 선배는 다시 안 들어왔다.



넷째 접시 · 과자집 벽돌


메뉴 카드.


숲속 마녀의 집 서쪽 벽. 오븐 가장 가까운 자리라 가장 잘 구워졌습니다.


생강빵이다. 벽돌 모양으로 잘려 있다. 위에 설탕 장식.


냄새가 좋다. 계피와 생강과 버터.


그 밑에 다른 냄새가 깔려 있다.


오븐 안쪽 냄새. 탄 냄새. 그리고 기름.


고기 기름 냄새다.


나는 이 냄새를 안다. 14년 동안 수많은 화덕을 봤다. 고기를 굽던 화덕에서 빵을 구우면 이 냄새가 밴다.


마녀의 오븐에서 마지막으로 구운 게 뭐였는지 나는 안다.


동화를 아니까.


먹었다.


남기지 말라고 했으니까.


맛있었다.


이게 제일 무서운 부분이다.


맛있었다.



다섯째 접시 · 박 속 찜


종업원이 바뀌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다.


아니 처음 보는 게 아니다.


본부 담당자다. 나한테 이 의뢰를 전화로 준 그 사람.


담당자가 접시를 내려놓으며 이랬다.


저는 넷째 접시에서 더 달라고 했어요.


메뉴 카드.


놀부가 켠 박 중 세 번째. 첫째 박에서는 빚쟁이가 둘째 박에서는 장승이 나왔습니다. 셋째 박 속을 쪄서 올립니다.


뚜껑이 덮여 있다.


열었다.


김이 올라왔다.


박 속이다. 하얗고 부드럽다.


그 안에서 뭐가 움직였다.


아주 조금.


숨 쉬듯이 오르내렸다.


담당자가 이랬다.


다 드세요. 남기면 둘째 박이 열려요.


나는 숟가락을 들었다.


손이 떨렸다.


먹었다.


입안에서 계속 오르내렸다.


삼켰다.


배 속에서 오르내렸다.


지금도 오르내린다.


담당자가 그릇을 치우면서 아주 작게 말했다.


저도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했어요.


뭐가요 하고 물었다.


넷째 접시요. 생강빵이 너무 맛있었어요.


담당자가 웃었다. 웃는 얼굴이 좀 굳어 있었다.


14년 미식 평가하신 분이면 아시잖아요. 진짜 맛있는 걸 먹으면 한 입만 더 하고 싶어지는 거.


안다고 했다.


담당자가 이랬다.


저는 그 한 입을 말로 했어요. 조금만 더 주실 수 있어요 하고.


그래서요.


담당자가 자기 배를 손으로 짚었다.


그 뒤로 계속 배가 불러요. 3년째요.


담당자는 이번 주 월요일에 나한테 전화를 했다.


본부 사무실 번호였다. 발신자 표시에 그렇게 떴다.


3년째 여기 있는 사람이 월요일에 사무실에서 전화를 걸었다.


나는 그 통화를 다시 떠올려봤다.


담당자 목소리 뒤로 소리가 들렸었다.


탁. 탁. 탁.


그때는 키보드 소리인 줄 알았다.


지금 앞에 선 담당자는 마르지도 찌지도 않았다.


배만 불렀다.


한복 위로 둥글게.


박처럼.



시계


10시 50분이다.


자정까지 70분 남았다.


코스는 일곱 접시다. 두 개 남았다.


남은 두 접시를 먹고 자정 전에 일어나면 된다.


나는 그렇게 계산했다.


그때 주방 창호지에 그림자가 비쳤다.


처음으로.


사람 그림자다. 키가 크고 손에 칼을 들고 있다.


도마 소리가 났다.


탁. 탁. 탁.


규칙 넷째. 주방은 보지 마십시오.


나는 창호지를 안 봤다.


상만 봤다.


그런데 그림자는 보였다. 시야 끝에.


그림자가 칼을 내려놓고 내 쪽으로 몸을 돌리는 게 보였다.


그림자가 창호지에 손을 댔다.


손가락 하나가 창호지를 꾹 눌렀다.


구멍이 나지는 않았다. 눌리기만 했다.


나를 보려는 거였다.


내가 주방을 보면 안 되는 게 아니라 주방이 나를 보는 거였다.



여섯째 접시 · 수수깡


메뉴 카드.


호랑이가 썩은 동아줄을 잡고 떨어진 수숫대. 그날부터 붉어졌습니다.


수숫대 단면이 붉다.


얇게 저며서 접시에 깔았다. 소스를 안 뿌렸는데도 접시가 붉다.


한 조각 먹었다.


쇠 맛이 난다.


피 맛이다.


나는 피 맛을 안다. 선지국 평가를 수십 번 했다.


이건 선지 맛이 아니다. 더 진하고 더 짐승 같다.


다 먹었다.


종업원이 들어왔다.


이번엔 정말 모르는 사람이다. 젊은 여자.


여자가 이랬다.


저는 다음 달 예약이에요.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여자가 이랬다.


제가 다음 평가원이에요. 아직 안 왔어요.


그런데 여기 있잖아요 했다.


여자가 이랬다.


선배님이 일곱째 접시 드시면 저는 여기 있게 돼요.


여자 얼굴을 다시 봤다.


본부 신입 사진에서 본 얼굴이다. 지난주에 입사했다.



일곱째 접시 · 토끼 간


11시 40분.


마지막 접시다.


종업원은 없다. 접시만 상 위에 있었다. 언제 놓였는지 모른다.


메뉴 카드.


용궁에 가서 육지에 두고 왔다던 토끼의 간. 오늘 저녁 손님께서 가져오셨습니다.


접시가 비어 있다.


깨끗한 흰 접시. 소스도 없다.


포크와 칼만 옆에 놓여 있다.


나는 메뉴 카드를 다시 읽었다.


손님께서 가져오셨습니다.


그 밑에 작은 글씨가 있었다.


두고 오셨으면 말씀해주십시오.


나는 동화를 안다.


토끼는 간을 육지에 두고 왔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래서 살았다.


진짜 간은 처음부터 토끼 몸 안에 있었다.


주방 창호지가 다시 눌렸다.


이번엔 손가락 다섯 개다.


도마 소리가 멈췄다.


조용해졌다.


배 속에서 박 속이 오르내린다. 목에서 박씨가 싹을 틔운다. 혀 뒤에 사과 쓴맛이 붙어 있다.


그리고 오른쪽 갈비뼈 아래가 묵직하다.


간 자리다.


여섯 접시가 다 그 자리로 모이고 있었다.


박씨도 호박도 사과도 생강빵도 박 속도 수수깡도.


간에 모여서 무게를 만들고 있었다.


접시에 올리기 딱 좋은 무게를.


이 코스는 손님을 먹이는 코스가 아니었다.


손님을 익히는 코스였다.



자정


11시 52분이다.


규칙 셋째. 자정 전에 일어나십시오.


일어나면 된다.


그런데 일곱째 접시를 안 먹었다.


규칙 첫째. 내어드린 것은 남기지 마십시오.


빈 접시를 남기는 것도 남기는 걸까.


먹으려면 뭘 올려야 한다.


포크와 칼이 있다.


창호지 너머 그림자가 기다린다.


나는 지금 이 보고서를 수첩에 쓰고 있다.


평가원은 끝까지 쓴다. 그게 직업이다.


평점을 매기겠다.


첫째 접시 별 셋.


둘째 접시 별 셋.


셋째 접시 별 둘. 쓴맛이 너무 오래 남는다.


넷째 접시 별 셋. 맛있어서 감점하고 싶지만 못 하겠다.


다섯째 접시 별 둘. 아직 소화가 안 된다.


여섯째 접시 별 둘.


일곱째 접시.


토끼처럼 말해볼 생각이다.


두고 왔다고.


거짓말이 통할지는 모르겠다.


토끼는 별주부 앞에서 했지 주방 앞에서 한 게 아니니까.


11시 56분.


나는 일어나려고 한다.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간다.


둘째 접시 수프에서 건진 나무 바퀴살을 아직 주머니에 갖고 있다.


자정이 4분 남았다.


호박은 아직 호박이다.



[보고서 회수 경위]


본 수첩은 다음 날 아침 해당 주소 한옥 대문 앞에서 발견되었다.


한옥 내부는 공가였다. 상과 방석과 괘종시계 외에 집기가 없었다.


주방 창호지에 손가락 다섯 개 자국이 있었다. 안쪽에서 누른 것이었다.


상 위에 흰 접시 일곱 개가 있었다.


여섯 개는 비어 있었다.


일곱째 접시에는 음식이 담겨 있었다.


접시 옆에 나무 바퀴살 조각이 하나 놓여 있었다. 젖어 있었다.


평가원은 출근하지 않았다.


다음 달 해당 식당 예약은 신입 평가원 이름으로 이미 잡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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