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거리에서 그 소리를 다시 들었다.
지난여름 보행 신호가 끊긴 채 도로 한가운데 남아 있던 분이 있었다.
보행보조기 바퀴 소리로 그분을 알았고
그날의 11초를 나는 다른 글에 적어 두었다.
석 달쯤 지난 오후였다.
신호를 기다리는데 옆에서 바퀴 소리가 났다.
아스팔트를 긁는 소리.
그런데 뭔가 달랐다.
리듬이 불규칙했다.
굴러가다가 멈추고 다시 굴러가다가 딸깍 하는 소리가 섞였다.
브레이크를 잡았다 놓는 소리 같았다.
그분이 맞는지 확신은 없었다.
그래도 말을 걸어 봤다.
혹시 여름에 여기서 한 번 뵌 것 같은데요.
이것은 그날 그분에게서 들은 이야기에 관한 기록이다.
새로 받은 것
그분이 맞았다.
기억하시냐고 물었더니 웃으셨다.
그때 신호 바뀌어서 혼났다고.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 뒤로 기구를 새로 받았어요.
그런데 이게 영 손에 안 맞아.
바퀴가 네 개 달린 롤레이터였고
보조기기 지원으로 받았다고 했다.
전에 쓰던 건 오래돼서 바퀴가 잘 안 굴렀는데
새 건 바퀴는 잘 구르는 대신 다른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손잡이가 높아서 팔을 들고 밀어야 하고
브레이크가 손가락 끝에 걸려서 꽉 잡기가 어렵다고.
그래서 내리막에서는 잡았다 놓았다를 반복한다고 했다.
아까 들은 딸깍 소리가 그거였다.
만져 봐도 되냐고 여쭸다.
손잡이 높이를 손으로 쟀다.
내 허리보다 조금 높았다.
그분은 나보다 키가 한참 작았다.
높이 조절이 되는지 더듬어 봤다.
조절 레버가 있었다. 한 번도 안 건드린 것 같았다.
이거 높이 낮출 수 있는 건데요.
그분이 몰랐다고 했다.
받을 때 아무도 안 알려 줬다고.
그 자리에서 레버를 풀고 두 칸 낮췄다.
레버는 뻑뻑했다.
공장에서 나온 그대로 한 번도 안 풀린 느낌이었다.
그분이 한 번 밀어 봤다.
어 이게 낫네.
바퀴 소리가 조금 규칙적으로 바뀌었다.
지급이라는 것
그날 그분은 새 기구를 받은 지 두 달째였다.
두 달 동안 몸에 안 맞는 높이로 밀고 다녔고
그게 원래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 장면에 누구 잘못이 있을까.
지급한 쪽은 규정대로 지급했다.
품목에 맞는 제품을 기준에 맞게 전달했다.
받은 쪽은 그걸 그대로 썼다.
조절이 된다는 걸 몰랐으니까.
그러니까 아무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두 달 동안 한 사람이 맞지 않는 도구로 매일 걸었다.
지급하는 쪽 사정도 짐작은 간다.
한 사람에게 쓸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고
처리해야 할 신청은 밀려 있다.
제품을 전달하는 것까지가 업무이고
그다음 조정은 업무 범위 밖이다.
그러니까 이건 담당자의 성의 문제가 아니라
업무가 어디서 끝나도록 설계됐느냐의 문제다.
이게 품목 중심 지원의 전형적인 모양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보조기기 지원은 대체로 이렇게 질문한다.
어떤 품목을 줄 것인가.
그리고 그 품목이 전달되면 절차가 끝난다.
그런데 보조공학에서 정말 중요한 건 기기가 아니다.
기기와 사람 사이의 적합성이다.
같은 롤레이터라도
손잡이 높이와 브레이크 위치와 바퀴 저항이 그 사람에게 맞아야
비로소 보조가 된다.
맞지 않으면 그건 보조가 아니라 부담이다.
그리고 보행보조기구에서 부담은 곧 위험이다.
손잡이가 너무 높으면 체중이 뒤로 실리고
브레이크를 꽉 못 잡으면 내리막에서 속도를 못 줄인다.
넘어지지 않게 하려고 준 기구가
넘어질 조건을 만들 수 있다.
손잡이 높이 몇 센티미터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물을 수 있다.
중요하다.
손잡이가 적당하면 팔꿈치가 살짝 굽은 상태로 체중이 앞으로 실린다.
그러면 기구가 몸을 받쳐 주는 구조가 된다.
손잡이가 높으면 팔을 들고 밀어야 해서 어깨가 긴장하고
체중이 뒤에 남는다.
그러면 기구가 몸보다 먼저 나가는 구조가 된다.
같은 기구인데 두 칸 차이로 지지대가 되기도 하고 끌려가는 물건이 되기도 한다.
그분이 두 달 동안 느낀 영 손에 안 맞는다는 감각은
정확히 이 차이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감각을 설명할 언어가 없으니
그냥 원래 그런 거라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몸이 알고 있는 걸 말로 옮기지 못하면
그 불편은 개인의 적응 문제로 남는다.
같은 이름 다른 걸음
보행장애라는 말은 하나지만 실제 모양은 아주 다르다.
뇌병변으로 한쪽 다리에 경직과 끌림이 있는 사람.
척수손상으로 체중을 싣기 어려운 사람.
파킨슨병으로 걸음이 갑자기 얼어붙고 보폭이 짧아지는 사람.
근감소나 관절질환으로 피로가 빨리 쌓이는 사람.
같은 걷기 어려움인데
원인도 속도도 균형 능력도 근력도 감각도 통증도 피로도도 다 다르다.
그러니까 같은 기구가 누구에게는 도움이 되고
누구에게는 방해가 된다.
파킨슨병이 있는 사람에게는 보행 리듬을 잡아 주는 소리 단서가 필요할 수 있고
경직이 있는 사람에게는 관절 각도와 속도 조절이 중요하다.
척수손상이 있는 사람에게는 체중 지지와 균형이 핵심이고
근감소가 있는 노인에게는 오히려 과한 보조가 남은 근력을 더 약하게 만들 수 있다.
이 차이를 보면
보행보조기구를 품목으로 관리한다는 게 얼마나 거친 방식인지가 보인다.
품목은 이름이다.
걸음은 이름으로 맞춰지지 않는다.
그리고 한 사람의 걸음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파킨슨병은 진행한다.
근감소는 나이와 함께 깊어진다.
뇌병변으로 인한 경직은 계절과 컨디션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니까 오늘 맞춘 기구가 1년 뒤에도 맞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런데 지금의 지원은 대체로 한 번 지급하고
정해진 내구연한이 지나야 다시 지급하는 구조다.
그 사이에 몸이 바뀌면 기구는 그대로 남고
사람만 그 기구에 맞춰 다시 적응한다.
기구가 사람을 따라가야 하는데 사람이 기구를 따라가고 있다.
이 방향을 뒤집으려면
지급과 지급 사이에 조정의 기회가 있어야 한다.
정기적으로 다시 보고 다시 맞추는 절차.
두 세계
보행보조기구를 떠올리면 대체로 두 장면이 따로 떠오른다.
하나는 노인이 롤레이터를 밀며 천천히 걷는 장면.
다른 하나는 산업 현장에서 외골격 장비를 입은 사람이 무거운 짐을 드는 장면.
앞의 것은 복지용품으로 분류되고 뒤의 것은 산업기술로 분류된다.
앞의 것은 싸고 구하기 쉽지만 대부분 수동형이다.
지지면을 넓히고 팔로 체중을 나눠서 낙상을 줄이는 데는 유용하다.
다만 근력 저하나 편마비나 경직이나 보행 리듬 문제를
능동적으로 보완하지는 못한다.
넘어지지 않게는 해 주지만
그 사람답게 걷게 하지는 못한다.
뒤의 것은 다른 가능성을 보여 준다.
모터가 고관절과 무릎에 힘을 보태고
센서가 걸으려는 의도를 읽고
제어 알고리즘이 움직임에 맞춰 보조 강도를 조절한다.
압력 센서와 관성측정장치와 근전도 신호와 자세 제어 기술이
남아 있는 기능을 읽어서 실제 이동으로 바꿔 줄 수 있다.
이건 단순한 보조가 아니라 회복과 대체와 확장의 영역이다.
앞서 나는 로봇 이야기를 쓸 때
재활 쪽 외골격 장비가 이미 쓰이고 있다고 적었다.
다만 이 장비들은 대체로 비싸고 무겁고 복잡하고
작업 효율을 목표로 개발된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보행장애인은
저기능 복지용품과 고기능 첨단기술 사이의 빈틈에 서 있다.
그 빈틈이 보조공학 정바카라이 채워야 할 자리다.
첨단의 함정
그렇다고 첨단기술이 답이라는 말은 아니다.
첨단기술도 개인의 특성을 못 읽으면
또 하나의 표준화가 된다.
같은 외골격 장비라도
누구에게는 독립보행의 가능성이 되고
누구에게는 불편하고 위험한 장치가 된다.
기술이 좋아질수록 이 문제는 오히려 커질 수 있다.
단순한 기구는 안 맞으면 안 맞는다는 걸 몸이 금방 안다.
복잡한 기구는 어디가 안 맞는지 알기가 어렵다.
그리고 복잡할수록 조정도 전문가 손에 넘어간다.
그 사거리의 그분은 레버 하나만 알았으면 됐다.
외골격 장비였다면 레버 대신 소프트웨어 설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미래의 보행보조기구는
사용자의 보행 데이터를 학습하고
좌우 비대칭과 보폭과 속도와 체중 부하와 피로 누적과 낙상 위험을 반영해
보조 강도를 스스로 조절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동시에 그 조절을 사용자가 이해하고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자동으로 맞춰 주는 것과
왜 그렇게 맞췄는지 알 수 있는 것은 다른 일이다.
그리고 사람은 자기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권리가 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붙이고 싶다.
기구가 스스로 조절하는 구조는 편리하지만
그 조절의 기준이 누구의 데이터로 만들어졌는지가 중요하다.
평균적인 보행 데이터로 학습한 모델은
비대칭이 심한 걸음을 오류로 읽을 수 있다.
그러면 기구는 그 사람의 걸음을 교정하려고 든다.
교정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다만 그 사람에게는 그 비대칭이 가장 안정적인 걸음일 수도 있다.
오래 그렇게 걸어 온 몸은 그 방식으로 균형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걸 억지로 대칭에 맞추려 하면
기구가 도와주는 게 아니라 싸우게 된다.
정상 보행이라는 기준을 기계 안에 넣는 순간
그 기계는 재활 기구이면서 동시에 규범 장치가 된다.
하루의 모양
보행보조기구는 몸만 보면 안 된다.
하루를 봐야 한다.
집 안에서만 움직이는 사람.
병원에서 재활훈련을 받는 사람.
온라인 게임으로 출퇴근하는 사람.
지역슬롯에서 먼 거리를 다녀야 하는 사람.
이 사람들에게 필요한 기능은 서로 다르다.
집 안에서는 좁은 곳을 도는 회전 반경이 중요하고
출퇴근에서는 대중교통에 싣고 내리는 무게와 접이 방식이 중요하고
먼 거리에서는 배터리와 피로 관리가 중요하다.
같은 사람도 요일에 따라 필요가 다르다.
그러니까 보조기구 평가는
신체 기능 평가로 끝나면 안 되고
그 사람이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사는지를 같이 봐야 한다.
그 사거리의 그분은 매일 시장에 간다고 했다.
시장 길은 내리막이 있고 사람이 많다.
그러면 브레이크가 가장 중요한 기능이 된다.
그 사실을 지급 과정에서 누가 물어봤을까.
아마 아무도 안 물어봤을 것이다.
지급 절차에 그 질문을 할 칸이 없기 때문이다.
신청서에는 장애 유형과 등급과 신체 치수 정도가 들어간다.
어디를 주로 다니는지 그 길에 내리막이 있는지는 안 들어간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 기구가 쓸모 있을지 없을지를 정하는 건
대체로 뒤쪽 정보다.
앞서 나는 인정조사표에
익숙한 공간과 낯선 공간을 구별할 칸이 없다고 쓴 적이 있다.
보조기기 신청서도 같은 모양이다.
몸은 적을 칸이 있는데 하루는 적을 칸이 없다.
내 하네스
이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내 하네스를 생각했다.
탱고의 하네스에는 손잡이가 달려 있다.
그 손잡이 길이는 내 키와 팔 길이와 걸음에 맞춰져 있다.
처음 탱고와 훈련할 때 훈련사가 그 길이를 몇 번이나 바꿨다.
2센티 짧게 하면 탱고의 움직임이 손에 더 빨리 전달되고
2센티 길게 하면 여유가 생기지만 반응이 늦어진다.
그 2센티를 정하는 데 며칠이 걸렸다.
같이 걸어 보고 계단을 내려가 보고 사람 많은 곳을 지나 보고.
안내견 제도에서 이 과정은 당연한 절차다.
매칭하고 합숙 훈련을 하고 사후 방문을 한다.
그러니까 안내견은 지급되는 게 아니라 맞춰진다.
같은 보행 지원인데 한쪽은 몇 주를 들여 맞추고
한쪽은 택배처럼 전달된다.
물론 두 경우를 똑같이 놓을 수는 없다.
안내견은 살아 있는 존재라서 맞추는 과정이 필수다.
안 맞추면 아예 같이 못 걷는다.
롤레이터는 안 맞춰도 일단 밀 수는 있다.
그래서 맞추는 과정이 생략되기 쉽다.
그런데 일단 밀 수 있다는 것과 안전하게 걸을 수 있다는 건 다르다.
생략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생략해도 된다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사후 방문이 있다는 점이 특히 부럽다.
안내견 학교는 분양 후에도 정기적으로 찾아와
하네스 상태와 걸음 변화를 확인한다.
보행보조기구에는 그런 절차가 거의 없다.
받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받은 사람의 일이다.
이 차이가 어디서 왔는지는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 사거리의 그분과 나는
같은 거리를 전혀 다른 조건으로 걷고 있었다.
품목에서 사람으로
그래서 정바카라의 질문이 바뀌어야 한다.
어떤 품목을 줄 것인가에서
이 사람에게 어떤 기능이 필요한가로.
그 질문에 답하려면 과정이 필요하다.
장애 특성과 생활환경과 참여 목표를 평가하고
기기를 고르고
몸에 맞게 조정하고
쓰는 법을 훈련하고
쓰면서 생기는 문제를 다시 조정하는 과정.
보조기구는 지급으로 끝나는 물건이 아니라
계속 조정되어야 하는 서비스다.
앞서 나는 점자정보단말기의 6년을 쓰면서
생애주기 지원에서 배우는 것이 빠져 있다고 적었다.
보행보조기구에서는 거기에 맞추는 것이 더 빠져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은 한 기관이 혼자 할 수 없다.
보조공학센터와 재활의학과 물리치료와 작업치료와 슬롯복지서비스가
한 사람을 두고 연결되어야 한다.
평가하는 곳과 지급하는 곳과 훈련하는 곳과 사후 관리하는 곳이
지금은 대체로 따로 있다.
그 사이를 잇는 일은 대체로 당사자나 가족의 몫이다.
이 문장을 나는 이 시리즈에서 몇 번이나 썼다.
제목: 손잡이의 아키텍처 혹은 지급과 적합 사이.
보행보조기구는 더 이상 단순한 복지용품이 아니다.
재활공학과 로봇공학과 인간공학과 슬롯복지정바카라이 만나는 자리에 있고
더 나아가 이동권을 실현하는 슬롯적 장치다.
걷는다는 건 몸의 동작만이 아니다.
학교에 가고 일터에 가고 투표소에 가고 이웃을 만나는 일이다.
그러니까 맞지 않는 보조기구로 걷는 날은
그만큼 좁아진 하루를 사는 날이다.
결론: 보조공학의 성과는 몇 대를 지급했는가로 재면 안 된다.
그 기구가 그 사람의 몸과 하루에 얼마나 맞았는가로 재야 한다.
맞추는 과정이 없는 지급은
절반만 한 일이다.
그리고 그 나머지 절반을
지금은 받은 사람이 혼자 알아서 하고 있다.
레버 하나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채로 두 달을 걸으면서.
그나저나 그날 그분과 같이 신호를 건넜다.
이번에는 둘 다 신호 안에 건넜다.
건너고 나서 그분이 고맙다고 하셨는데
사실 내가 한 건 레버를 두 칸 내린 것뿐이다.
받을 때 누가 10초만 알려 줬어도 됐을 일이다.
탱고는 그분의 바퀴 소리가 규칙적으로 바뀌자
옆에서 걸음을 조금 늦췄다.
저 녀석은 누구 속도에 맞춰야 하는지를 나보다 먼저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