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행 수첩]
일 · 대리운전
경력 · 6년
전직 · 보험설계사 12년
근무 · 밤 9시부터 새벽 3시
나 · 마흔넷 여자
쓰는 이유 · 나중에 누가 물어보면
이 일
대리운전을 6년 했다.
보험 팔다가 넘어왔다. 보험 12년 하면 사람 얼굴 보고 몇 살에 무슨 병 걸릴지 대충 안다. 그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서 대리를 한다.
사람들이 여자가 대리 하면 무섭지 않냐고 묻는다.
무섭다. 근데 보험보다는 덜 무섭다.
보험은 맨정신인 사람한테 죽음을 파는 일이고 대리는 취한 사람을 살려서 집에 보내는 일이다.
방향으로 치면 대리가 낫다.
취객은 종류가 있다.
잠드는 사람이 있고 우는 사람이 있고 인생 얘기 하는 사람이 있고 나한테 인생 조언 하는 사람이 있다.
마지막이 제일 피곤하다.
마흔넷 먹은 여자한테 서른둘 먹은 남자가 결혼은 왜 안 했냐고 묻는다. 했다가 끝냈다고 하면 그걸 또 분석한다.
나는 그냥 액셀을 밟는다.
집에 빨리 데려다주는 게 내 복수다.
그 밖에도 유형이 있다.
자기가 운전 더 잘한다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 왜 부르셨어요 하고 싶은데 안 한다.
뒷좌석에서 전화 거는 사람이 있다. 새벽 두 시에 누구한테 거는지는 모르겠는데 상대방은 대개 안 받는다.
차에서 안 내리는 사람이 있다. 도착했는데 5분 10분 앉아 있다. 집에 들어가기 싫은 거다. 이런 사람은 불쌍한데 내 시간도 불쌍하다.
제일 드문 게 조용한 사람이다.
타서 주소 말하고 내릴 때까지 한마디도 안 한다.
이런 손님은 1년에 몇 명 안 된다. 나는 이 사람들을 제일 좋아한다.
그 차 손님이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좋았다.
의자
남의 차를 모는 일이다.
차마다 의자가 다르다. 차주 몸에 맞춰져 있다.
타면 제일 먼저 의자를 맞춘다. 나는 키가 작아서 앞으로 한참 당겨야 한다.
그다음이 미러다. 룸미러 하나 사이드미러 둘.
이거 안 맞추고 출발하는 기사도 있는데 나는 무조건 맞춘다. 남의 차 긁으면 내 돈이다.
6년 하면 손이 알아서 한다. 의자 레버 위치 미러 스위치 위치가 차종마다 다른데 거의 다 외웠다.
차에서 내릴 때는 원래대로 돌려놓지 않는다.
이건 업계 불문율이다. 차주가 다음 날 아침에 타서 무릎이 운전대에 박히면서 아 어제 대리 불렀구나 하고 기억하게 하는 거다.
일종의 서명이다.
그 차
작년 11월에 처음 탔다.
콜이 떴다. 시내 고깃집 앞이었다.
가보니까 검은 세단이 서 있었다. 좋은 차다. 내 연봉으로 두 대는 못 산다.
차주가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덩치가 컸다. 앉은키만 봐도 백팔십은 넘었다.
인사를 했는데 대답이 없었다.
취해서 그런가 보다 했다. 이런 사람 많다.
운전석에 탔다.
의자를 당기려고 레버를 잡았다.
안 당겨도 됐다.
맞았다.
내 다리 길이에 딱 맞게 당겨져 있었다.
나는 그때 좀 웃었다.
이 덩치가 이렇게 앞으로 당겨놓고 어떻게 탔나 싶었다. 무릎을 가슴에 붙이고 탔나.
미러를 봤다.
맞았다.
룸미러에 뒷유리가 딱 가운데 들어왔다. 내 눈높이에서.
사이드미러도 맞았다.
나는 그냥 운 좋은 날인가 보다 했다.
대리 기사 앞에 몸집 작은 여자 대리가 이 차를 몰았나 보다 했다.
목적지
출발하면서 어디로 모실까요 했다.
뒤에서 주소를 불렀다.
목소리가 낮았다. 술 취한 목소리 같지는 않았다. 또박또박했다.
아파트 이름이었다.
내비에 찍었다. 20분 거리였다.
갔다.
도착해서 도착했습니다 했다.
뒤에서 이랬다.
여기 아니에요.
어디냐고 했더니 다른 주소를 불렀다.
또 찍었다. 15분 거리였다.
이런 손님도 있다. 술 취하면 자기 집 주소를 헷갈린다. 전 여자친구 집 주소를 부르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도착해서 울기 시작한다.
그래서 갔다.
도착했다.
뒤에서 이랬다.
여기 아니에요.
또 다른 주소를 불렀다.
나는 이때부터 좀 짜증이 났는데 요금이 올라가니까 참았다. 대리비는 거리로 올라간다. 내 편이다.
세 번째 주소로 갔다.
도착하니까 뒤에서 이랬다.
여기요.
그러고 내렸다.
나는 룸미러로 봤는데 내리는 건 못 봤다.
문 열리는 소리가 났고 닫히는 소리가 났다.
돌아봤을 때 뒷좌석이 비어 있었다.
요금은 앱으로 들어왔다.
세 주소
그날 집에 와서 내비 기록을 봤다.
내 폰 내비로 찍었으니까 기록이 남는다.
세 주소를 지도에 찍어봤다.
한 줄로 서 있었다.
고깃집에서 출발해서 첫 주소 둘째 주소 셋째 주소가 한 방향으로 일직선이었다.
그 선을 늘려봤다.
우리 동네로 왔다.
나는 그때까지 이게 무섭다고 생각 안 했다.
도시에 선 하나 그으면 뭐든 걸린다. 우리 동네가 걸릴 수도 있다.
그래서 넘어갔다.
보험 할 때 배운 게 있다.
사람은 선을 좋아한다. 점 세 개가 한 줄로 서 있으면 거기서 뭔가를 본다.
그걸로 보험을 판다.
그러니까 나는 선에 안 속는다.
속는 쪽이 아니라 파는 쪽이었으니까.
두 번째
12월에 또 탔다.
같은 고깃집 앞이었고 같은 검은 세단이었다.
차주가 뒷좌석에 있었다.
나는 속으로 아 이 양반 또 취했네 했다.
의자에 앉았다.
맞았다.
미러도 맞았다.
그리고 라디오가 켜져 있었다.
내가 매일 밤 듣는 채널이었다.
새벽 1시에 하는 음악 프로그램이다. 청취율 낮아서 곧 폐지될 거라는 소문이 도는 그 프로그램이다.
나는 그 채널을 좋아한다. 진행자가 말을 안 해서 좋다. 노래만 튼다.
그게 틀어져 있었다.
볼륨도 내가 듣는 크기였다.
이 정도 되면 운이 좋은 게 아니다.
출발했다.
주소를 받았다.
이번에도 세 번이었다.
여기 아니에요 두 번 하고 세 번째에 여기요 했다.
세 번째 주소가 지난번 세 번째보다 우리 동네에 가까웠다.
1월 2월
1월에도 탔다. 2월에도 탔다.
한 달에 한 번이다.
콜이 오면 나한테 온다.
대리 앱은 가까운 기사한테 배정한다. 그 고깃집 근처에 기사가 나 말고도 많다.
나한테 온다.
한 번은 일부러 멀리 가 있었다. 그 날짜쯤 되니까 느낌이 와서 반대편 동네에 가 있었다.
나한테 왔다.
거리가 12킬로미터였다. 앱에서 그런 거리로 배정하는 건 처음 봤다.
안 받을 수도 있었다.
받았다.
왜 받았는지 나도 모르겠다. 보험 12년 하면서 생긴 버릇인지도 모른다. 거절을 못 한다.
그달 세 번째 주소는 우리 아파트 건너편 단지였다.
실험
1월에 실험을 하나 했다.
보험 하던 사람은 데이터를 믿는다. 느낌은 안 믿는다.
그 차에 타자마자 의자 레버를 잡고 한 칸 뒤로 밀었다.
일부러 안 맞게 했다.
미러도 하나 틀었다.
그러고 출발했다.
운전하는데 불편했다. 다리가 좀 뻗쳤다. 브레이크가 멀었다.
20분쯤 갔다.
첫 번째 주소에 도착했다.
여기 아니에요 소리를 들었다.
다음 주소로 가려고 기어를 넣는데 다리가 편했다.
내려다봤다.
의자가 당겨져 있었다.
내가 안 당겼다.
전동 시트는 스위치를 눌러야 움직인다. 누르면 윙 소리가 난다. 소리를 못 들었다.
미러를 봤다.
맞아 있었다.
나는 그날 운전하면서 속으로 욕을 했다.
소리 내서 하면 뒤에서 들을 것 같아서 속으로 했다.
속으로 하는 욕은 소리 내서 하는 욕보다 길다. 이것도 그날 처음 알았다.
차 번호
3월에 차 번호를 조회해봤다.
대리 앱에는 차 번호가 뜬다. 사고 나면 필요하니까.
조회했다.
이 번호로 등록된 차량이 없다고 떴다.
말소된 번호도 아니고 그냥 없다.
앱에는 있다. 차에도 붙어 있다. 내가 봤다.
국토부 조회 사이트에는 없다.
앱 고객센터에 전화했다.
상담원이 이랬다.
기사님 해당 콜 기록이 확인이 안 되는데요.
요금 들어왔다고 했다.
상담원이 한참 찾더니 이랬다.
입금 내역은 있는데 콜 내역이 없어요. 시스템 오류 같아요.
오류면 돈 돌려줘야 되냐고 물었다.
상담원이 웃었다.
아니에요 기사님. 그냥 받으세요.
나는 그 말이 좀 걸렸다.
그냥 받으세요.
보험 할 때 고객들이 제일 많이 하던 말이다. 서류 내밀면 그냥 도장 찍을게요 했다.
그 사람들이 나중에 제일 많이 울었다.
얼굴
한 번도 얼굴을 못 봤다.
이게 이상하다는 걸 4월에 알았다.
6년 대리 하면 손님 얼굴은 다 본다. 타기 전에 보고 내릴 때 본다. 요금 받을 때 본다.
그 사람은 못 봤다.
탈 때는 이미 뒷좌석에 있다. 어둡다. 창문이 짙다.
룸미러로 보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내릴 때는 내가 돌아보기 전에 없다.
4월에 작정했다.
출발 전에 돌아서 인사를 했다.
얼굴을 보려고 일부러 뒤를 봤다.
뒷좌석 실내등을 켰다.
켜지지 않았다.
그 차 실내등이 고장 나 있었다.
앞좌석 등은 켜졌다.
뒷좌석만 안 켜졌다.
나는 폰 플래시를 켤까 하다가 안 켰다.
켜면 보일 것 같아서 안 켰다.
보고 싶었는데 안 보고 싶었다.
이 두 개가 동시에 되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그날 도착해서 여기요 소리를 듣고 나서 나는 룸미러를 안 봤다.
앞만 봤다.
문 열리는 소리가 났고 닫히는 소리가 났다.
그러고 뒤에서 한마디가 더 들렸다.
다음엔 더 가까이요.
문이 닫힌 다음이었다.
차 안에서 들렸다.
나는 그날 그 자리에서 20분을 못 움직였다.
시동을 끄고 앉아 있었다.
그 사이에 앱에 다음 콜이 세 개 떴는데 다 놓쳤다.
그날 수입이 평소 반이었다.
이건 좀 억울하다.
지인
대리 기사들끼리 단톡방이 있다.
이상한 손님 공유하는 방이다. 진상 번호 돌리고 위험한 동네 알려주고 그런다.
4월에 물어봤다.
고깃집 이름 대고 검은 세단 차주 아는 사람 있냐고 했다.
한 시간쯤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그 방은 평소에 시끄럽다. 새벽에도 누가 뭐라고 떠든다.
한 시간 조용했다.
그러고 한 사람이 개인톡을 보냈다.
나보다 오래 한 형님이다. 12년 했다.
누나 그 차 탔어요.
탔다고 했다.
형님이 이랬다.
몇 번이요.
다섯 번이라고 했다.
형님이 한참 뒤에 이랬다.
저 네 번 탔어요.
다섯 번째는요 했다.
형님이 이랬다.
안 탔어요. 그만뒀어요.
형님은 그 뒤로 1년 쉬었다고 했다.
다시 시작하고 나서는 그 동네 안 간다고 했다.
마지막에 이렇게 보냈다.
누나 여섯 번째는 받지 마요.
왜냐고 물었다.
답이 안 왔다.
다음 날 다시 물었다.
읽음 표시가 떴다.
답은 안 왔다.
그 형님 프로필 사진이 바뀌어 있었다.
원래 자기 차 사진이었는데 그냥 까만 화면이 됐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른다.
모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보험 하던 사람이 제일 잘하는 게 그거다. 알면 안 되는 건 서류 뒷장으로 넘긴다.
딸
딸이 하나 있다. 열아홉이다.
올해 고3이다. 나보다 키가 크다. 이건 내 인생 최대 업적이다.
딸은 내가 대리 하는 걸 싫어한다.
위험하다고 싫어하는 게 아니라 창피하다고 싫어한다.
친구 아빠가 대리를 불렀는데 기사가 우리 엄마면 어떡하냐고 한다.
그럴 확률이 얼마나 되냐고 했다.
딸이 이랬다.
엄마 보험 했잖아. 확률 제일 잘 알잖아.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었다.
딸은 새벽에 내가 들어오면 깨어 있다.
공부하는 척하고 있다가 문 열리는 소리 나면 불을 끈다.
기다렸다는 걸 들키기 싫은 거다.
나는 모르는 척한다.
이게 우리 집 규칙이다.
5월 콜이 안 왔을 때 나는 딸한테 이 얘기를 할까 했다.
안 했다.
말하면 딸이 불을 안 끄고 기다릴 것 같아서 안 했다.
5월
5월 콜은 안 왔다.
나는 좀 안심했다.
형님 말이 맞았나 보다 했다.
다섯 번에서 끝났나 보다 했다.
그러고 6월 첫날 집에 들어가는데 주차장에 그 차가 서 있었다.
우리 아파트 지하주차장이다.
내 차 옆 칸이었다.
검은 세단이고 번호가 같았다.
나는 거기 서서 한참 봤다.
운전석 쪽으로 가봤다.
유리가 짙어서 안이 안 보였다.
손잡이를 당겨봤다.
열렸다.
의자가 내 다리에 맞게 당겨져 있었다.
라디오가 켜져 있었다. 소리가 작게 났다.
새벽 1시 그 프로그램이었다.
그때 시각이 밤 11시였다.
그 프로그램은 1시에 한다.
11시에 나오고 있었다.
뒷좌석은 안 봤다.
문을 닫았다.
집에 올라왔다.
딸 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평소 같으면 문 열리는 소리에 끄는데 그날은 안 껐다.
딸이 방에서 나왔다.
엄마 아까 주차장에서 뭐 했어.
나는 심장이 좀 내려앉았다.
뭐 했냐니 했다.
딸이 이랬다.
베란다에서 봤어. 엄마 차 옆에 한참 서 있던데.
내 차 옆에 무슨 차 있었냐고 물었다.
딸이 좀 생각하더니 이랬다.
아무것도 없던데. 옆 칸 비어 있었어.
나는 그냥 피곤해서 멍 때렸다고 했다.
딸이 그러냐고 하고 방에 들어갔다.
불을 껐다.
나는 거실에 한참 앉아 있었다.
딸한테는 안 보인다.
그러면 그 차는 나한테만 있는 거다.
보험 하던 사람 식으로 말하면 이건 수익자가 한 명인 계약이다.
오늘
오늘이 여섯 번째다.
콜이 방금 떴다.
출발지가 우리 아파트 지하주차장이다.
도착지 칸이 비어 있다.
손님이 탑승 후 말씀하신다고 적혀 있다.
형님 말대로 안 받으면 된다.
거절 버튼이 있다. 누르면 끝난다.
나는 보험을 12년 했다.
그동안 사람들이 사인 안 하겠다고 할 때마다 내가 한 말이 있다.
지금 안 하시면 나중에 더 비싸져요.
지금 이 말이 생각난다.
지금 안 받으면 나중에 더 비싸질 것 같다.
그 사람은 세 주소 만에 우리 아파트까지 왔다.
다음은 우리 동이고 그다음은 우리 층이고 그다음은 우리 집 현관이다.
지하주차장에서 출발하면 목적지는 한 군데밖에 없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3분이다.
수락을 눌렀다.
지금 내려간다.
아니 지금 안 내려갔다. 이걸 쓰고 있다.
수락하고 나서 앱에 도착 예정 시간이 뜬다. 기사가 출발지까지 몇 분 걸리는지 뜨는 거다.
0분이라고 떴다.
나는 지금 우리 집 거실에 있다.
지하주차장까지 최소 3분이다.
0분이다.
그러니까 앱은 내가 이미 거기 있다고 생각한다.
딸 방에서 불빛이 샌다.
아직 안 잔다.
내가 현관 나가는 소리를 들으면 불을 끌 것이다.
그게 우리 집 규칙이다.
나는 이번에는 딸이 불을 안 끄고 나와서 어디 가냐고 물어주면 좋겠다.
그러면 대답을 해야 하니까 안 나갈 핑계가 생긴다.
아마 안 나올 거다.
규칙이니까.
현관으로 간다.
의자는 맞을 것이다.
미러도 맞을 것이다.
라디오도 나오고 있을 것이다.
뒤에서 주소를 부를 것이다.
이번에는 여기 아니에요 소리를 안 할 것 같다.
아 그리고 하나만.
누가 이걸 읽으면 우리 딸한테 전해주세요.
엄마가 오늘 대리비 제일 많이 받는 날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