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티크 올렌

by김경훈

지난 호에서 세르주 칼루긴이 인돌에 정면으로 맞선 조향사라고 썼다.


그 문장을 쓰면서 증거를 하나 대야겠다고 생각했다. 롬브르 단 로는 초록이 앞에 선 향수여서 그 주장을 증명하기에는 약하다. 그의 인돌은 다른 병에 있다.


올렌이다. 1988년작. 롬브르 단 로보다 5년 늦게 나왔고 같은 사람의 손에서 나왔는데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딥티크라는 브랜드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 회사는 조향사가 만들지 않았다. 무대 디자이너와 화가와 건축가 세 사람이 직물을 팔던 부티크에서 출발했다. 향수는 나중에 붙은 사업이다. 브랜드 이름도 프랑스어로 2단 접이 화판을 뜻한다.


이 출신이 결과물에 남아 있다. 딥티크의 향수는 인공적인 느낌을 최대한 배제하는 쪽으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대중적인 향수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투박하게 느껴질 수 있다.


조향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이 발주자일 때 생기는 일이다. 업계의 관행을 모르니 관행을 지킬 이유도 없다. 무엇이 팔리는지에 대한 감각 대신 무엇이 실제로 그러한지에 대한 감각으로 판단한다.


올렌의 인돌도 그 결과일 것이다.


먼저 인돌이 무엇인지 짚어야겠다.


재스민과 오렌지 꽃 같은 흰 꽃에는 인돌이라는 물질이 들어 있다. 이 분자는 농도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보인다. 극미량일 때는 관능적이고 살냄새 같은 온기를 준다. 농도가 올라가면 썩은 것에 가까워진다. 사실 이 물질은 부패 과정에서도 생성된다.


꽃이 왜 이런 물질을 품고 있는지는 생각해 볼 만하다. 꽃은 사람을 위해 냄새를 만들지 않는다. 수분 매개자를 부르기 위해 만든다. 파리를 부르는 꽃에게 썩은 냄새는 결함이 아니라 기능이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꽃 향의 상당 부분에 그 성분이 섞여 있다. 사람이 좋아하는 부분과 싫어하는 부분이 같은 분자에서 나온다.


"깨끗하게 만들어 드릴 수도 있었습니다. 다들 그렇게 하니까요."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1980년대 향수 업계는 흰 꽃의 인돌을 억누르는 쪽으로 갔다. 대중이 견디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재스민은 들어가되 세탁된 재스민이어야 했다.


칼루긴은 반대로 갔다. 올렌은 재스민 솔리플로르로 분류된다. 재스민 하나를 주인공으로 세운 향수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재스민을 깎지 않았다.


어느 평자는 이 향수를 두고 인돌이 흰 꽃에 독기 어린 퇴폐를 부여한다고 썼다. 향수에 스테로이드를 넣는 것 같다는 표현도 함께 썼다. 과장이 아니다.


실제 시향 후기들도 비슷하다. 흔히 접하는 달콤하게 가공된 재스민이 아니라 훨씬 진실된 꽃 향의 재스민이라는 평이 있다. 코를 꽃 속에 파묻고 취하게 만든다는 표현도 있다.


깨끗하지도 상쾌하지도 달콤하지도 않은데 그렇다고 지나치게 배설물 쪽으로 기울지도 않는다. 그 좁은 지점에 서 있다.



노트 표기가 재미있다.


공식적으로는 등나무와 나르시스라고만 적혀 있다. 어느 리뷰어가 이 표기를 두고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불평했는데 동의한다. 정작 가장 강한 재스민이 목록에서 빠져 있거나 뒤에 가 있다.


이런 일이 향수에서는 드물지 않다. 표기가 실제 구성을 정확히 반영하지 않는다. 마케팅 판단이 개입하기도 하고 영업 비밀 때문이기도 하다.


기록을 다루는 입장에서는 난감한 상황이다. 목록과 실물이 어긋날 때 무엇을 근거로 삼아야 하는가. 이용자는 목록을 보고 판단하는데 목록이 실물을 대표하지 않는다면 그 목록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다만 이 경우에는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등나무와 나르시스를 적은 것이 거짓말이 아니라 강조점의 문제일 수 있다. 무엇을 앞에 적느냐는 편집자의 선택이다. 표제는 내용의 요약이 아니라 독자를 어디로 안내할지에 대한 결정이다.


"제 이름표를 믿지 마시고 직접 맡아 보세요."



재스민이라는 재료 자체도 까다롭다.


이 꽃은 열에 약해서 증류할 수 없다. 끓이면 향이 파괴된다. 그래서 용매로 성분을 녹여 내는 방식을 쓴다. 이렇게 얻은 것을 앱솔루트라고 부른다. 앞서 만난 블랙커런트 버드도 같은 방식이고 로스팅 오크도 마찬가지다.


수확 시간도 정해져 있다. 재스민 상박은 해가 뜨기 전 새벽에 딴다. 볕이 오르면 향이 달아나기 때문이다. 수천 송이를 손으로 따서 얻는 양이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니 진짜 재스민 앱솔루트가 들어간 향수는 비쌀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어렵게 얻은 것을 다듬어서 순하게 만드는 일은 이상하게도 흔하다.


첫 향에서 나르시스가 온다. 봄 들판의 수선화다. 밝고 햇살 같다는 표현을 여러 후기에서 봤다. 이 꽃은 흰 꽃이면서도 초록의 결이 남아 있어서 시작을 너무 무겁게 만들지 않는다.


그다음이 본론이다. 재스민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방의 공기가 바뀐다. 인동덩굴과 등나무가 옆에 있는데 그 존재감이 크지 않다. 재스민이 다 먹는다.


이 향수가 온도에 민감하다는 후기가 여럿이다. 추울 때 더 강렬해진다는 사람도 있고 따뜻할 때만 화려하게 피어난다는 사람도 있다. 상반된 증언인데 둘 다 사실일 것이다. 인돌은 온도에 따라 휘발 속도가 크게 달라진다.


여름 끝 이 계절에 뿌리면 낮과 밤이 다르다. 볕이 있을 때는 나르시스가 앞에 서고 해가 지면 재스민이 진해진다. 같은 병에서 두 개의 향수가 나온다.



이 향수에는 인상적인 후기가 하나 있다.


어떤 사람이 올렌을 갖고 있다가 다른 재스민 향수들을 찾아 나섰다. 여러 병을 시도했는데 매번 같은 의문에 빠졌다고 한다. 대체 어떤 재스민이 이런 향을 내는 거지. 너무 청량하거나 너무 가볍거나 비누 같거나 자기가 아는 재스민과 전혀 달랐다는 것이다.


1년 만에 올렌으로 돌아왔고 그제야 이것이 찾던 향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썼다.


이 이야기가 좋았다. 무언가의 기준점을 이미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모르는 상태가 있다. 다른 것을 여러 개 겪고 나서야 처음 것이 기준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료를 찾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다. 처음 만난 텍스트가 좋은 텍스트였다는 것을 여러 권을 읽고 나서야 안다. 비교 대상이 없을 때 우리는 좋음을 인식하지 못한다.



탱고와 저녁 산바카라을 나갔을 때 이 향수를 뿌리고 있었다. 해가 진 뒤였고 바람이 서늘했다.


어느 담장 아래를 지나는데 탱고가 갑자기 멈췄다. 어딘가에서 꽃 냄새가 났다. 계절상 인동덩굴은 아니었을 텐데 비슷한 종류의 짙고 달콤한 냄새였다. 바람이 불 때만 왔다가 멎으면 사라졌다. 손목의 향과 담장의 냄새가 잠깐 겹쳤다.


그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 냄새는 나를 향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꽃은 벌이나 나방을 부르려고 이 분자를 뿜는다. 나는 그 신호를 엿듣고 있을 뿐이다.


향수는 그 엿들음을 상품으로 만든 것이다. 남의 언어를 받아 적어 팔고 있는 셈이다.


집에 돌아와 보보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꽃 향이라고 부르는 것이 사실은 꽃이 벌레에게 보내는 신호라는 것.


보보는 잠깐 생각하더니 미학에서도 비슷한 논쟁이 있다고 했다. 어떤 대상이 아름다운 것은 그 대상의 속성 때문인가 아니면 그것을 받는 쪽의 조건 때문인가. 꽃 향의 경우는 후자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수신자로 설계되지 않았는데도 그 신호를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니까.


그러면서 덧붙였다. 잘못 배달된 편지를 읽고 감동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정확한 비유였다.


올렌은 그 사실을 숨기지 않는 향수다. 사람이 듣기 좋게 다듬지 않았다. 꽃이 하던 말을 그대로 옮겼고 그래서 일부는 불편하다.


불편한 부분까지 옮긴 번역이 좋은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매끄럽게 다듬은 쪽이 읽기는 편하지만 원문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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