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를 연달아 만나는 일은 흔치 않다.
지난 호에 만난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넛과 오늘의 레드커런트는 2017년에 함께 나왔다. 같은 조향사 얀 바스니에의 손에서 같은 프로젝트로 태어났고 무엇보다 베이스가 동일하다. 로스팅 오크 앱솔루트. 참나무 조각을 씻어 고온에 볶아 얻는 그 물질이다.
바닥이 같고 그 위에 올린 것이 다르다. 한쪽은 그린 헤이즐넛과 시더우드를 얹었고 다른 한쪽은 레드커런트와 로즈를 얹었다.
같은 기초 자료를 두고 두 편의 논문이 나온 셈이다.
"저희는 형제입니다. 다만 성격이 정반대예요."
실제로 그렇다. 헤이즐넛 쪽이 초록빛에 마르고 서늘하다면 이쪽은 붉고 촉촉하고 밝다. 브랜드는 이 향수를 숲을 비추는 햇살에 비유했다. 같은 숲인데 한쪽은 그늘이고 한쪽은 볕이 드는 자리다.
레드커런트가 영국 향수에 등장하는 것에는 맥락이 있다. 영국에서 이 열매는 소스로 더 익숙하다. 설탕과 로즈마리를 넣어 졸인 레드커런트 젤리는 일요일 구이 요리에 곁들이는 전통 양념이고 크리스마스 식탁에도 빠지지 않는다. 양고기나 거위 구이 옆에 놓이는 그 붉은 것이다.
그러니 영국 사람에게 레드커런트는 정원의 열매인 동시에 식탁의 기억이다. 잉글리시 오크라는 이름 옆에 이 열매를 놓은 것은 숲과 집을 한 줄에 세운 셈이다.
이 컬렉션의 출발점도 알려져 있다. 조향사가 3년 전에 만들어 둔 어코드를 브랜드의 프래그런스 디렉터 셀린 루에게 보여줬고 그가 즉시 반응했다고 한다. 재료가 먼저 있고 그것을 쓸 자리를 나중에 찾은 경우다. 대개는 반대 순서일 텐데 이 컬렉션은 거꾸로 갔다.
첫 향은 레드커런트다. 붉은 열매의 새콤함이 정면으로 온다. 딸기나 라즈베리처럼 달지 않고 훨씬 날카롭다. 잼으로 만들기 전의 생과일 상태에 가깝다. 여기에 핑크 페퍼가 아주 옅게 섞이면서 살짝 알싸한 각을 세운다.
어느 리뷰어가 이 오프닝을 두고 호랑가시나무 잎을 찢었을 때의 상쾌함이 떠오른다고 썼다. 과일인데 잎사귀 같은 느낌이 섞인다는 뜻이다. 정확한 관찰이라고 생각한다. 이 향수의 과일은 완전히 익어 물러진 상태가 아니라 아직 단단한 상태다.
미들에 로즈가 있다고 적혀 있는데 이 부분이 재미있다.
여러 시향 후기가 장미를 거의 못 느낀다고 말한다. 노트 목록에는 분명히 있는데 실제로는 과일 향이 계속 앞에 서 있다는 것이다.
"장미는 제 뒤에 서 있습니다. 앞으로 나오지 않기로 했어요."
이런 배치가 향수에서는 드물지 않다. 목록에 이름을 올리되 전면에 나서지 않는 재료. 그 재료가 없으면 전체가 무너지지만 있는지조차 알기 어려운 자리.
기록의 세계에도 그런 항목이 있다. 목록에는 있는데 아무도 열람하지 않는 자료. 그런데 그것이 빠지면 컬렉션 전체의 성격이 달라진다. 존재의 방식이 사용의 빈도로만 측정되지는 않는다.
이 향수에서 장미가 하는 일이 그렇다. 레드커런트의 새콤함이 너무 날카로워지지 않도록 붙잡고 있다. 앞에 나서지 않으면서. 빼고 만들어 보면 그제야 무엇이 사라졌는지 알게 되는 종류의 재료다.
베이스에서 로스팅 오크가 올라온다. 그리고 여기가 두 형제의 차이가 가장 분명해지는 지점이다.
헤이즐넛 쪽에서는 오크가 확실히 앞에 나온다. 볶은 나무의 스모키함이 뚜렷하고 그래서 남성적이라는 평을 자주 듣는다. 레드커런트 쪽에서는 같은 오크가 훨씬 조용하다. 어느 리뷰어는 이를 두고 아주 은은하고 수줍은 오크 향이라고 표현했다.
같은 재료가 같은 양으로 들어갔다 해도 위에 무엇을 얹느냐에 따라 이렇게 달라진다. 밝고 새콤한 것이 위에 있으면 아래의 어두운 것이 배경으로 물러난다.
앞선 편에서 로스팅 오크의 달콤함이 페놀 성분에서 온다고 썼다. 조향사 본인이 그렇게 설명했다. 나무를 고온에 볶으면 리그닌이 분해되면서 페놀 계열 물질과 바닐린이 생긴다. 열세 번째 편에서 다룬 오래된 바카라의 냄새와 같은 원리다.
흥미로운 것은 이 달콤함이 레드커런트의 과일 단맛과 만났을 때다. 두 종류의 단맛이 겹치는데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하나는 신선하고 하나는 태워서 만든 것이다. 살아 있는 단맛과 가공된 단맛이 한 병에 있다.
두 향수를 동시에 낸 것도 생각해 볼 만하다. 하나만 내면 소비자는 그 향수를 다른 브랜드의 것과 비교한다. 둘을 함께 내면 비교의 축이 안쪽으로 들어온다. 이것과 저것 중에 무엇이 나에게 맞는가를 먼저 묻게 된다.
이 방식은 재료를 이해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로스팅 오크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가장 빠른 길은 그것이 다른 것과 만났을 때 어떻게 달라지는지 두 번 보여주는 것이다. 변수를 하나만 바꾼 두 판본을 나란히 놓는 셈이다.
자료를 다룰 때도 비슷한 방법을 쓴다. 판본이 여럿인 텍스트를 이해하려면 차이가 나는 부분을 대조한다. 같은 부분은 배경으로 물러나고 다른 부분이 드러난다. 이 컬렉션은 그 독해법을 상품 구성으로 만든 것이다.
이 향수에는 이상한 이력이 있다.
어느 리뷰어가 이 향수를 두고 일종의 통과의례 같았다고 썼다. 친구에서 친구로 비밀 악수처럼 전해졌다는 것이다. 누군가 이걸 뿌리고 나타나면 사람들이 물었다고 한다. 그거 뭐야.
향수가 유통되는 방식 중에 이런 경로가 있다. 광고나 매대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옮겨 다니는 길. 누군가에게서 맡고 이름을 묻고 찾아가서 사는 순환.
정보가 퍼지는 방식으로 보면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력한 형태다. 도서관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바카라은 서지 정보로 발견되고 어떤 바카라은 사람이 사람에게 건네서 발견된다. 후자로 발견된 바카라이 대체로 더 오래 읽힌다. 추천한 사람의 얼굴이 함께 따라오기 때문이다.
향수도 그렇다. 누가 뿌렸던 향수인지가 그 향수의 일부가 된다. 병에 적히지 않는 정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강하게 작동한다.
보보와 저녁 산바카라을 나갔던 날 이 향수를 뿌리고 갔다. 여름이 물러가는 중이라 해가 짧아졌고 공기에 서늘함이 섞이기 시작했다.
탱고가 앞에서 걷다가 이따금 멈췄다. 어딘가에서 저녁 준비하는 냄새가 흘러나오는 구간이 있었다. 기름 냄새와 마늘 냄새. 골목이란 그런 냄새의 지도로 되어 있다. 어느 집 창문에서는 텔레비전 소리가 새어 나왔고 그 다음 골목은 조용했다. 발소리가 바닥에 부딪히는 감각도 구간마다 달랐다. 아스팔트에서 보도블록으로 넘어가는 자리는 눈을 감고도 안다.
보보가 손목을 맡아 보더니 이건 아까 것과 다르냐고 물었다. 어제 뿌린 것이 헤이즐넛 쪽이었다. 나는 바닥은 같고 위가 다르다고 했다. 보보가 잠깐 생각하다 말했다. 같은 사람이 다른 옷을 입은 거네.
정확한 비유였다. 두 향수를 나란히 놓고 보면 결국 같은 목소리다. 말투가 다를 뿐이다.
잉글리시 오크 앤 레드커런트는 우디 계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좋은 입구가 된다. 여러 리뷰가 그 점을 지적한다. 나무 향이 부담스러운데 시도해 보고 싶은 사람이 딛기 좋은 첫 계단이라는 것이다. 과일이 앞에서 손을 잡아 주고 나무는 뒤에서 기다린다.
지속력은 중간 정도이고 확산은 크지 않다. 조 말론답게 다른 향과 겹쳐 쓰기 좋게 설계되어 있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오기 전 애매한 이 시기에 잘 맞는다. 아직 과일이 남아 있고 이미 나무가 마르기 시작하는 계절.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이 한 병에 있고 어느 쪽도 이기지 않는다. 계절이 그러하듯이 향도 어느 한쪽으로 결론 나지 않은 채 며칠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