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하우스는 냄새로 먼저 안다.
새 자재 냄새다.
접착제와 도료와 아직 마르지 않은 실리콘이 섞인 냄새.
여기에 방향제가 얹혀 있다.
대체로 나무 향이나 리넨 향이다.
탱고가 입구에서 코를 한 번 들었다가 바로 내렸다.
탱고는 이 냄새를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이 냄새가 다른 냄새를 다 덮어버려서 정보가 없어진다.
탱고한테 모델하우스는 깜깜한 방이다.
나도 비슷하다.
보보가 가자고 했다.
"모델하우스 한번 가보자."
"살 것도 아닌데."
"살 게 아니라서 가는 거야."
우리는 몇 해 전부터 돈을 모으고 있다.
목표는 아파트가 아니다.
언젠가 한적한 데 땅을 사서 집을 짓는 것이다.
마당이 있는 집.
이유는 단순하다.
탱고가 마음껏 다닐 수 있는 집이 필요하다.
그리고 내가 마음껏 다닐 수 있는 집이 필요하다.
지금 사는 집도 나쁘지 않다.
삼 년 살아서 손이 다 안다.
그런데 이 집은 내가 만든 집이 아니라 내가 외운 집이다.
외운 집과 만든 집은 다르다.
외운 집에서는 물건을 옮기면 안 된다.
만든 집에서는 처음부터 옮길 필요가 없게 놓으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언젠가 지을 집의 도면을 오래 이야기해왔다.
아직 땅도 없고 돈도 한참 모자란다.
그래도 이야기는 한다.
이야기하는 게 재밌어서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보가 이렇게 말한 거다.
"요즘 집들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어."
맞는 말이었다.
우리가 상상하는 집은 대체로 우리 머릿속에서만 지어진 집이다.
실제로 요즘 집이 어떤 치수로 어떤 동선으로 지어지는지 나는 모른다.
그래서 토요일 오후에 모델하우스에 갔다.
사러 간 게 아니라 재러 갔다.
가는 길에 보보가 말했다.
"자기는 집 볼 때 뭐부터 봐."
"문턱이랑 동선."
"그게 처음이야."
"응. 문턱 하나가 있으면 그 방은 다른 방이 돼."
"어떻게 다른데."
"턱이 있으면 매번 발이 그걸 찾아야 해. 없으면 그냥 걸어."
보보가 잠깐 조용했다.
"그다음은."
"창 방향."
"자기 빛 보여."
"안 보이지. 근데 따뜻해지는 방향은 알아."
"아."
"겨울에 어느 방이 추운지가 나한테는 꽤 중요해. 그리고 탱고도 그래. 탱고는 겨울엔 해 드는 자리에 누워."
보보가 또 조용해졌다.
십 년을 같이 살아도 아직 이런 게 남아 있다.
상담사분이 우리를 맞았다.
목소리로는 삼십 대 초반쯤.
친절했고 빨랐다.
"여기 보시면 거실이 남향이고요."
"네."
"이쪽 보시면 주방 동선이 되게 잘 빠졌어요."
"네."
"여기 보시면 팬트리가 따로 있어요."
나는 세 번째 보시면까지 세다가 그만뒀다.
이건 이분 잘못이 아니다.
모델하우스 설명은 전부 보시면으로 시작하게 되어 있다.
보여주려고 만든 공간이니까.
그런데 나는 보러 온 게 아니다.
나는 만지러 왔다.
나는 집을 손으로 읽는다.
현관에서 신발장까지 몇 걸음인지.
문턱이 있는지 없는지.
스위치가 문 옆 어느 높이에 붙어 있는지.
싱크대 상부장 손잡이가 어느 모양인지.
화장실 문이 미닫이인지 여닫이인지.
방문 손잡이가 레버형인지 둥근형인지.
둥근 손잡이는 젖은 손으로 못 연다.
이건 시각장애랑 상관없는 문제인데 대부분의 집이 아직 둥근 손잡이다.
나는 유닛을 한 바퀴 돌면서 이걸 다 만졌다.
그러다 한 가지를 발견했다.
주방 스위치가 세 개 붙어 있는데 모양이 똑같았다.
어느 게 조명이고 어느 게 후드고 어느 게 인덕션 차단인지 손으로는 알 수 없다.
이건 생각보다 큰 문제다.
우리 집에서 나는 스위치마다 스티커를 붙여놨다.
동그란 스티커 한 개 두 개 세 개.
보보가 붙여줬다.
그런데 이건 내가 사는 집이니까 할 수 있는 일이다.
처음 가는 집에서는 못 한다.
스위치 세 개가 똑같이 생긴 집에서 나는 불을 켜려고 세 번 눌러야 한다.
운이 나쁘면 인덕션이 켜진다.
이걸 상담사분한테 말했다.
"이 스위치들 모양이 다 같네요."
"아 네. 디자인 통일해서요."
"하나만 돌기가 있거나 크기가 다르면 좋겠는데요."
상담사분이 잠깐 조용했다.
"그러면 되겠네요."
"되죠."
"저는 그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봤어요."
나는 이 대답이 정직해서 좋았다.
대부분은 검토해보겠다고 한다.
검토해보겠다는 말은 대체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생각을 안 해봤다는 말이 오히려 뭔가 시작되는 말이다.
상담사분이 옆에서 조용해졌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제가 설명 방식을 좀 바꿔볼게요."
이 문장을 나는 오래 기억할 것 같다.
이분이 그다음부터 어떻게 설명했느냐면 이렇다.
"지금 서 계신 데서 정면으로 네 걸음 가시면 거실 창입니다. 창틀 아래가 무릎 높이예요."
"주방은 오른쪽으로 돌아서 여섯 걸음입니다. 싱크대 높이는 팔백오십이고 상부장은 손 뻗으면 닿는 높이예요."
"안방 문은 여닫이고 손잡이는 레버형입니다. 문턱은 없어요."
나는 잠깐 멈췄다.
"이거 원래 하시는 설명이에요."
"아니요."
"그럼요."
"방금 만들었어요."
나는 이분이 한 일이 뭔지 안다.
시각 정보를 다른 정보로 바꾼 게 아니다.
원래 있던 정보를 꺼낸 거다.
걸음 수와 높이와 재질은 원래 다 거기 있었다.
다만 아무도 그걸 말로 하지 않았을 뿐이다.
보시면이라고 말하는 게 편해서.
보보가 상담사분한테 물었다.
"이 집 실제로는 언제 지어져요."
"이 년 뒤에 입주예요."
"그럼 지금은."
"지금은 터 닦고 있어요."
보보가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 시선을 못 봤지만 공기로 안다.
우리가 방금 한 시간 동안 돌아다닌 집은 없는 집이다.
이 년 뒤에 생길 집의 광고다.
벽 두께도 다르고 옵션도 다르고 층고도 조금 다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집을 손으로 만졌고 걸음으로 셌다.
차로 돌아오면서 보보가 말했다.
"우리 집도 없는 집인데."
"그러네."
"우리는 이 년 뒤도 아니야."
"십 년쯤 되려나."
"그것도 모르지."
나는 잠깐 웃었다.
오늘 우리는 없는 집을 보러 가서 없는 집을 설계하고 왔다.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저 집은 팔려고 만든 없는 집이고 우리 집은 살려고 만드는 없는 집이라는 것이다.
"푸리에네."
집에 오는 길에 보보가 말했다.
"누구."
"샤를 푸리에. 공상적 슬롯주의자. 오늘 아침에 자기가 읽어준 거잖아."
나는 그제야 떠올렸다.
1772년 프랑스 브장송에서 나사 제조업자 아들로 태어난 사람.
프랑스 대혁명 때 슬롯를 바꾸겠다는 계획을 도의회 의원들한테 설명했다가 비웃음만 샀다.
그래서 회계원이 됐다.
그런데 포기는 안 했다.
회계 일을 하면서 짬이 날 때마다 이상 슬롯를 설계했다.
그가 설계한 공동체가 팔랑주다.
1600명에서 1800명 규모.
가족을 대체하고 혈족 관계도 지배 관계도 없다.
세금은 조금 내지만 통치 기구 권한은 최소한으로 제한된다.
중요한 결정은 중앙 광장에 다 모여서 한다.
그리고 그들이 사는 건물이 팔랑스테르다.
사오 층에서 육 층짜리 성 같은 건물.
길은 여름엔 분수로 시원하고 겨울엔 거대한 벽난로로 따뜻하다.
중앙 망루에는 기상대와 차임벨과 전신국이 있다.
여기까지는 꽤 멋지다.
실제로 나는 이 설계에서 마음에 드는 대목이 있었다.
중요한 결정을 중앙 광장에서 다 모여서 한다는 것.
푸리에는 건물 한가운데에 그 광장을 뒀다.
결정하는 자리를 건물의 중심에 배치한 것이다.
이건 도면이 사상을 담는 방식이다.
건물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뭘 두느냐가 그 슬롯가 뭘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말해준다.
요즘 공공건물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는 대체로 안내데스크가 있다.
그리고 그 옆에 계단이 있다.
엘리베이터는 대체로 안쪽 구석이다.
이것도 도면이 사상을 담는 방식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푸리에는 이렇게 믿었다.
이 공동체에서 수 세기 동안 서로 협력하며 조화롭게 살다 보면 사람 몸에 새로운 팔이 생긴다고.
꽁무니뼈에서 나와서 어깨에 걸쳐지는 긴 꼬리 같은 팔.
뼈가 144개라고 했다.
나는 이 대목을 듣고 소리 내서 웃었다.
그런데 웃고 나서 조금 조용해졌다.
왜냐하면 이게 남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푸리에가 한 일을 정리하면 이렇다.
완벽한 건물을 설계했다.
그리고 사람 몸이 그 건물에 맞춰서 바뀔 거라고 생각했다.
이 순서가 문제다.
건물이 사람한테 맞춰지는 게 아니라 사람이 건물한테 맞춰진다.
나는 이 순서를 매일 본다.
익숙해지시면 괜찮아요.
몇 번 와보시면 아실 거예요.
처음이라 그러신 거예요.
다들 그렇게 쓰세요.
전부 같은 말이다.
당신 몸에 꼬리가 생길 겁니다.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이 악의를 가진 게 아니다.
푸리에도 악의가 없었다.
푸리에는 정말로 인류를 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이다.
그런데 설계를 고치는 것보다 사람이 바뀌는 걸 상상하는 게 더 쉬웠던 것뿐이다.
그리고 이 상상에는 특징이 하나 있다.
비용이 안 든다.
건물을 고치려면 돈이 든다.
스위치 모양을 바꾸려면 생산 라인을 건드려야 한다.
경사로를 놓으려면 공사를 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이 익숙해지는 데는 아무 비용도 안 든다.
정확히는 비용이 안 드는 게 아니라 비용을 내는 쪽이 바뀌는 것이다.
익숙해지시면 된다는 말은 비용을 이용자한테 넘기는 문장이다.
매번 세 번씩 눌러보는 시간.
매번 길을 돌아가는 시간.
매번 물어보는 수고.
매번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채로 가는 긴장.
이게 다 비용이다.
다만 장부에 안 잡힐 뿐이다.
푸리에는 그 비용을 꼬리라고 불렀다.
144개의 뼈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가끔 내가 몇 개쯤 기른 것 같다고 생각한다.
보보가 이 얘기를 듣고 말했다.
"르페브르가 그 얘기 했어."
"누구."
"앙리 르페브르. 공간의 생산이라는 바카라을 썼어. 핵심은 공간이 자연물이 아니라는 거야."
"자연물이 아니면."
"만들어진 거지. 슬롯가 생산한 거야. 어떤 공간이 그렇게 생긴 건 그렇게 생길 수밖에 없어서가 아니라 누군가 그렇게 만들기로 했기 때문이라는 거야."
"그럼 다르게 만들 수도 있었다는 거네."
"응. 그게 핵심이야. 공간이 자연이면 우리가 적응해야 하는데 공간이 생산물이면 우리가 고칠 수 있어."
나는 그 말이 좋았다.
계단만 있는 건물은 자연이 아니다.
누군가 계단만 넣기로 결정한 결과다.
그러니까 그건 내가 적응할 문제가 아니라 그 결정을 고칠 문제다.
꼬리는 안 자란다.
이 글에 더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푸리에 제자들이 실제로 팔랑스테르를 지었다는 것이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과 멕시코와 미국에서.
프랑스에서는 1859년에 앙드레 고댕이라는 사람이 지었다.
난로 발명가였다.
1200명이 함께 살면서 난로를 만들고 이익을 나눠 가졌다.
여기까지 들으면 성공한 것 같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이 이렇다.
그 협동조합은 오로지 고댕 가문의 가부장제적 권위 덕분에 유지될 수 있었다.
나는 이 문장을 두 번 들었다.
설계는 평등이었는데 운영은 가부장제였다.
건물은 이상대로 지었는데 그 안에서 벌어진 일은 이상과 반대였다.
이건 내가 매일 보는 일이다.
도면상 완벽한 건물이 있다.
경사로가 있고 점자블록이 있고 자동문이 있고 장애인 화장실이 있다.
인증도 받았다.
그런데 가보면 이렇다.
경사로 앞에 자전거가 세워져 있다.
점자블록 위에 화분이 놓여 있다.
자동문 자동 기능이 꺼져 있다.
장애인 화장실 문이 잠겨 있고 열쇠는 관리실에 있다.
관리실은 계단 위에 있다.
마지막 게 진짜 있었던 일이다.
설계는 도면에서 끝나지 않는다.
매일 운영되는 것까지가 설계다.
그런데 우리는 도면만 평가한다.
인증은 준공 시점에 한 번 받는다.
십 년 뒤에 점자블록 위에 뭐가 놓여 있는지는 아무도 안 본다.
이걸 나는 시간의 문제라고 부른다.
건물은 완공되는 순간이 있다.
그런데 접근성에는 완공되는 순간이 없다.
매일 아침 누가 자전거를 어디에 세우느냐가 그 건물의 접근성이다.
매일 저녁 누가 자동문 스위치를 끄느냐가 그 건물의 접근성이다.
설계자는 한 번 일하고 떠나고 운영자는 매일 일한다.
그러니까 실제 접근성은 대체로 운영자가 만든다.
그런데 예산도 인증도 전부 설계 쪽에 붙어 있다.
운영 쪽에는 아무것도 안 붙어 있다.
고댕의 팔랑스테르가 그랬다.
건물은 푸리에의 것이었고 운영은 고댕 가문의 것이었다.
"그럼 푸리에가 완전히 틀린 거야."
보보가 물었다.
나는 잠깐 생각했다.
"아니. 절반은 맞았어."
"어느 절반."
"공간을 바꾸면 관계가 바뀐다는 부분."
이건 사실이다.
중앙 광장에 다 모여서 결정한다는 설계는 실제로 관계를 바꾼다.
경사로가 있는 건물과 없는 건물에서 사람들이 맺는 관계는 다르다.
내가 갈 수 있는 곳에서만 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니까 공간이 내 인간관계의 범위를 정한다.
푸리에는 그걸 알았다.
"그럼 틀린 절반은."
"완성될 수 있다고 생각한 부분."
푸리에는 완벽한 설계가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안 맞는 부분은 사람이 바뀌어서 맞춰질 거라고 생각했다.
완벽한 설계는 없다.
있어도 십 년 뒤에는 안 맞는다.
사람이 바뀌고 기술이 바뀌고 쓰는 방식이 바뀐다.
그러니까 좋은 설계는 완벽한 설계가 아니라 고칠 수 있는 설계다.
고칠 수 있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누가 불편한지 계속 듣는 통로.
그리고 그 말을 듣고 실제로 고치는 손.
푸리에한테는 둘 다 없었다.
그래서 꼬리가 필요했던 거다.
오늘 모델하우스 상담사분 이야기로 돌아가고 싶다.
그분이 한 일이 정확히 이거였다.
설명이 안 통한다는 걸 알아챘고 그 자리에서 방식을 바꿨다.
도면을 바꾼 게 아니다.
그건 그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말을 바꿨다.
그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삼십 초 만에 구분하고 할 수 있는 쪽을 한 것이다.
나는 이게 접근성의 실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거창한 설계보다 이게 더 자주 사람을 살린다.
그리고 이건 푸리에가 못 한 일이기도 하다.
푸리에는 평생 도면을 그렸다.
의원들한테 비웃음을 사고 회계원으로 일하면서도 계속 그렸다.
나는 그 집요함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는 한 번도 그 건물에 살아본 적이 없다.
살아본 적이 없으니 안 맞는 데가 어딘지 알 수 없었고 알 수 없으니 고칠 수 없었다.
그래서 사람 몸 쪽을 고치기로 한 것이다.
오늘 상담사분은 반대로 했다.
설명이 안 통하는 걸 삼십 초 만에 알아챘다.
안 통한다는 걸 알려준 사람이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차이다.
푸리에한테는 사용자가 없었고 오늘 그분한테는 있었다.
그리고 이게 우리한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우리가 언젠가 지을 집도 아직 없는 집이다.
도면도 없고 땅도 없고 우리는 그 집을 상상으로만 짓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도 푸리에랑 같은 상태다.
다른 점은 하나뿐이다.
우리는 거기서 살 거다.
살 사람이 도면을 그리면 꼬리를 상상할 필요가 없다.
안 맞으면 자기가 불편하니까 바로 고친다.
푸리에의 진짜 문제는 이상주의가 아니었다.
자기가 안 사는 집을 설계했다는 것이다.
세상 대부분의 건물이 그렇게 지어진다.
설계한 사람이 거기 안 산다.
그래서 안 맞는 자리가 어디인지 영원히 모른다.
모르니까 사용자한테 꼬리를 기대한다.
오늘 나는 모델하우스에서 문턱 높이와 스위치 모양과 손잡이 종류를 쟀다.
그게 우리 도면의 첫 줄이 될 것이다.
문턱 없음.
스위치는 모양이 다를 것.
손잡이는 레버형일 것.
세 줄이다.
십 년 뒤에 이 세 줄이 지켜진 집이 생기면 나는 그 집에서 세 번 눌러볼 필요가 없다.
그나저나 보보가 모델하우스에서 평면도를 한 장 받아왔다.
집에 와서 그걸 펴놓고 한참 봤다.
나는 뭐 하냐고 물었다.
보보가 우리가 걸어 다닌 동선을 손가락으로 따라가고 있다고 했다.
그러더니 잠깐 조용해졌다.
내가 왜 그러냐고 물었다.
보보가 자기가 오늘 거실을 한 번도 안 가봤다는 걸 방금 알았다고 했다.
눈으로 다 봤으니까 갈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거실 창틀이 무릎 높이였다고 알려줬다.
보보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물었다.
갔으니까 안다고 했다.
보보가 그럼 우리 집 도면은 자기가 그리면 안 되겠다고 했다.
나는 같이 그리면 된다고 했다.
보보가 그럼 자기는 뭘 맡냐고 물었다.
창밖 풍경을 맡으라고 했다.
보보가 그건 도면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그게 제일 중요한 항목이라고 했다.
보보가 조용해졌다.
오늘은 내가 이겼다.
[비하인드 스토리]
탱고예오.
오늘 모델하우스에 갔어오.
저는 거기가 별로였어오.
냄새가 하나뿐이에오.
새 물건 냄새가 너무 세서 다른 냄새를 다 먹어버려오.
저한테는 그게 깜깜한 거예오.
형은 손으로 집을 읽어오.
저는 발로 읽어오.
바닥이 나무인지 돌인지 발바닥으로 알아오.
오늘 바닥은 가짜 나무였어오.
소리가 얇았어오.
상담사 누나가 설명하는 방식을 중간에 바꿨어오.
저는 그때 누나 목소리가 달라진 걸 들었어오.
빨랐다가 느려졌어오.
사람은 생각하기 시작하면 느려져오.
저는 이 변화를 좋아해오.
오늘 형이랑 누나가 꼬리 이야기를 했어오.
옛날 사람이 사람 몸에 꼬리가 생길 거라고 믿었대오.
저는 이미 꼬리가 있어오.
그런데 별로 쓸모는 없어오.
기분을 표현하는 데만 써오.
그것도 중요한 일이긴 해오.
오늘 형이랑 누나가 나중에 지을 집 이야기를 했어오.
마당이 있는 집이래오.
저는 마당이라는 말을 들으면 심장이 조금 빨라져오.
하네스를 안 하고 다닐 수 있는 곳이니까요.
저는 근무를 좋아해오.
그런데 근무 안 하는 시간도 좋아해오.
둘 다 좋아하는 게 이상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오.
P.S. 형이 없는 집을 한 시간 동안 구경했대오.
저는 그 집이 있는 줄 알았어오.
없는 집을 걸어 다녔다니 좀 이상해오.
그런데 저는 오늘 거기서 물을 마셨어오.
물은 진짜였어오.
마당도 언젠가 진짜가 되면 좋겠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