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성한 사람만 지킨다

by김경훈

회의 자료를 회의 시작 십 분 전에 받았다.


종이로 받았다.

칠십 쪽쯤 되는 묶음이었다.

손에 들면 무게로 대략 안다.


나는 그것을 무릎에 올려놓고 회의 내내 넘기지 않았다.

넘길 이유가 없었다.


간사가 미안해했다.


"파일로 미리 보내드렸어야 했는데."


"괜찮습니다."


"다음부터는 꼭 보내드릴게요."


이 말도 나는 여러 번 들었다.

그리고 이 말을 한 사람 중에 실제로 보낸 사람이 절반쯤 된다.

나는 그 절반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기준이 낮아졌다는 건 안다.


회의는 두 시간이었다.

위원은 열네 명이었다.

당사자 위원은 두 명이었다.


나와 미현 씨.



미현 씨는 휠체어를 탄다.


우리는 이런 회의에서 자주 만난다.

정확히는 이런 회의에 부르는 당사자 명단이 그렇게 길지 않다.

그래서 늘 비슷한 사람들이 앉아 있다.


이건 좋은 일이 아니다.

당사자 위원이 늘 같은 몇 명이라는 건 당사자를 대표한다기보다 익숙한 사람을 부르는 것에 가깝다.


미현 씨도 그걸 안다.


"우리 또 만났네요."


"또 만났습니다."


"이번엔 몇 분 주던가요."


"이 분입니다."


"저도요."


두 시간 회의에서 당사자 두 명한테 각각 이 분씩.


사 분이다.



회의는 잘 진행됐다.


이건 비꼬는 게 아니다.

진짜로 잘 진행됐다.

슬롯자가 시간을 잘 지켰고 발언 순서가 공정했고 자료도 꼼꼼했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이미 다 정해져 있었다.


이걸 어떻게 아느냐면 대체로 문장의 시제로 안다.


검토하겠습니다가 아니라 검토했습니다.

어떻게 할지 논의해보겠습니다가 아니라 이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의견 주시면 반영하겠습니다가 아니라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문장이 특히 그렇다.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는 반영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접수했다는 뜻이다.


나는 이 분 동안 세 가지를 말했다.


첫째 안내 표지 계획에 음성 안내가 빠져 있다.

둘째 홈페이지 개편 시안이 이미지 기반이라 스크린리더로 안 읽힌다.

셋째 오늘 자료를 나는 못 읽었다.


세 번째를 말한 건 처음이었다.


말하고 나서 잠깐 회의실이 조용했다.


이 침묵을 나는 여러 번 겪었다.


이 침묵에는 종류가 있다.


하나는 당황한 침묵이다.

자기가 뭘 놓쳤는지 방금 안 사람들이 만드는 침묵.

이 침묵은 짧고 뒤에 말이 따라온다.


다른 하나는 곤란한 침묵이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지금 이 자리에서 다룰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한 사람들이 만드는 침묵.

이 침묵은 조금 길고 뒤에 다음 안건으로 넘어간다.


오늘 침묵은 두 번째였다.


슬롯자가 이렇게 말했다.


"네 위원님 의견 감사합니다.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나는 이 문장이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회의를 진행해야 하는 사람의 문장이다.

시간이 정해져 있고 안건이 남아 있으면 저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문제는 슬롯자가 아니다.


내 발언이 안건이 아니었다는 것이 문제다.


자료를 못 읽는 위원이 있다는 사실은 회의의 내용이 아니라 회의의 조건인데 조건을 다루는 순서가 회의에는 없다.



회의가 끝나고 미현 씨랑 밖으로 나왔다.


"오늘 세 번째 말한 거 좋았어요."


"고맙습니다."


"저는 그거 못 해요."


"왜요."


"제가 못 들어간 회의실 이야기를 하면 다음부터 안 부르더라고요."


나는 그 말에 웃을 수도 없고 안 웃을 수도 없었다.


우리는 근처 공원으로 갔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이었다.

회의장에서 멀지 않고 미현 씨가 다니기에 무리가 없는 길이다.

이건 미현 씨가 정했다.

어디로 갈지는 늘 미현 씨가 정한다.

선택지가 적은 쪽이 정하는 게 맞다.


탱고가 앞장섰다.

공원에 들어서자 소리가 달라졌다.

차 소리가 멀어지고 나무 소리가 들어왔다.

평일 오후라 사람이 적었다.


벤치에 앉았다.

미현 씨는 벤치 옆에 섰다.



"오늘 이 분 동안 말한 게 회의록에 어떻게 남을지 알아요."


미현 씨가 말했다.


"어떻게 남습니까."


"위원 의견 청취 후 논의함. 이 한 줄이요."


"그러면 뭘 말했는지는 안 남네요."


"안 남아요. 근데 참석은 남아요."


나는 이 구조를 안다.


참석은 남고 발언은 안 남는다.

그러면 나중에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당사자 위원이 참여한 절차였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는 사실만 필요한 거다.


이걸 부르는 말이 있다.

알리바이라고 한다.



오늘 아침에 읽은 글이 이 이야기였다.


북미 원주민 부족들의 회의 이야기였다.


파우와우라는 부족 회의가 있었다고 한다.

어떤 결정을 할 때마다 각자 의견을 냈다.

유럽의 공화제 혁명보다 훨씬 앞선 의회였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나도 들어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다음 문장에서 나는 멈췄다.


파우와우에서 결정이 났다고 해서 무조건 따라야 하는 건 아니었다는 것.

자기가 그 결정에 찬성 투표를 했을 때에만 따를 의무가 있었다는 것.


그러니까 부족 회의는 남에게 의견을 강요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자기 행동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한 장치였다는 것.


나는 이 대목을 세 번 들었다.



우리가 아는 회의는 반대다.


회의는 결정하는 자리다.

다수가 정하면 소수도 따른다.

그게 민주주의라고 배웠다.


그런데 파우와우는 그게 아니었다.


회의는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 정당성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결정은 각자가 한다.

회의는 내 행동이 부족 안에서 말이 되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다.


이 차이가 뭐냐면 이렇다.


우리 방식에서는 회의에 참석시키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다.

반대해도 결과는 같으니까.

그러니까 불러놓고 이 분 주면 된다.


파우와우 방식에서는 그게 불가능하다.

찬성하지 않은 사람은 따르지 않으니까.

설득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그냥 안 한다.


그러면 회의를 여는 쪽이 절박해진다.


설득해야 하니까.



"그거 좋네요."


미현 씨가 말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아무것도 못 정하는 거 아니에요."


"저도 그 생각을 했습니다."


"모두를 설득해야 하면 회의가 안 끝나잖아요."


나는 잠깐 생각을 정리했다.


"그런데 그 슬롯는 규모가 달랐습니다. 백오십 명쯤 되는 부족이었어요. 그리고 결정이 잘못되면 다 같이 굶는 구조였고요."


"작으니까 가능했던 거네요."


"규모도 있고 그리고 흩어질 수 있었다는 것도 컸을 겁니다."


이 글에서 흥미로운 대목이 하나 더 있었다.


남미 원주민 슬롯는 위계가 엄격하고 행정이 중앙에 집중돼 있어서 우두머리만 제거하면 슬롯 전체가 무너졌다고 한다.

북미는 수백 개 부족으로 흩어져 있어서 하나를 굴복시켜도 다음 부족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침략자 입장에서는 남미가 훨씬 공격하기 쉬웠다는 것이다.


"이거 제 분야에서는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건데요."


"단일 실패 지점이라고 합니다. 시스템에서 그것 하나가 무너지면 전체가 멈추는 지점이요."


"예를 들면요."


"공공기관 민원을 앱 하나로만 받으면 그 앱이 안 읽히는 순간 저는 아무것도 못 합니다. 전화도 되고 방문도 되고 문자도 되면 하나가 막혀도 다른 데로 갑니다."


미현 씨가 잠깐 조용했다.


"그거 효율이랑 반대잖아요."


"완전히 반대입니다."


"근데 그쪽이 안 무너지고요."


"안 무너집니다."


나는 조금 더 말하고 싶어졌다.


"효율이라는 말이 요즘 행정에서 통합이라는 말로 나옵니다. 창구를 하나로 모으고 시스템을 하나로 합치고 앱을 하나로 만들고요."


"그게 편하긴 하죠."


"대부분한테는 편합니다. 그런데 그 하나가 나한테 안 맞으면 나는 갈 데가 없어집니다. 예전에는 셋 중에 하나는 됐거든요."


"통합하면 선택지가 사라지는 거네요."


"선택지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실패 지점이 하나로 모이는 겁니다."


미현 씨가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저희 쪽은 그게 더 심해요."


"어떻게요."


"건물 하나를 잘 지어놓고 여기 다 되니까 여기로 오세요 하거든요. 그럼 그 건물까지 가는 게 문제인데 그건 아무도 안 세요."


"도착 지점만 세고 경로는 안 세는 거네요."


"네. 그리고 그 건물이 공사하면 그해는 그냥 없는 거예요."


이게 북미와 남미의 차이다.


한 곳에 모아두면 관리가 쉽고 관리가 쉬우면 무너뜨리기도 쉽다.

흩어져 있으면 관리가 어렵고 관리가 어려우면 무너뜨리기도 어렵다.


접근성은 대체로 후자를 요구한다.

그래서 늘 비효율로 보인다.



보보가 온 건 그 즈음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데리러 왔다.

미현 씨랑 인사를 하고 옆에 앉았다.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 설명했다.


파우와우 이야기랑 찬성한 사람만 따른다는 원칙 이야기.


보보가 다 듣고 나서 말했다.


"아렌트가 그 구분 했어."


"어떤 구분."


"권력이랑 폭력. 사람들은 보통 권력이 강제하는 힘이라고 생각하잖아. 근데 아렌트는 반대로 봤어. 권력은 사람들이 함께 행위할 때 생기는 거래."


"함께 행위할 때."


"응. 그러니까 권력은 사람들 사이에서 생기는 거야. 혼자서는 못 가져. 반대로 폭력은 혼자서도 쓸 수 있어. 도구만 있으면 되니까."


"그럼 강제하는 건 권력이 아니라 폭력이라는 거네."


"아렌트 식으로는 그래. 그리고 이런 말도 했어. 폭력이 나타나는 건 권력이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라고."


나는 그 말을 잠깐 곱씹었다.


"그럼 파우와우가 권력이네."


"응. 함께 행위하는 데서 나오는 거니까."


"그리고 이 분 주고 결정된 대로 가는 건."


"그건 권력이 아니라 절차지."


미현 씨가 웃었다.


"오늘 회의가 딱 그거였어요."



우리가 앉아 있는 공원 이야기를 해야겠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이다.


1907년 2월 대구의 한 출판사에서 특별회가 열렸다.

나라 빚 1300만 원을 갚지 못하면 큰일 난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담배를 끊어서 한 사람이 한 달에 20전씩 모으자는 제안이 나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사람들이 돈을 냈다.

그날 모인 돈이 2천 원쯤 됐다고 한다.


이게 전국으로 번졌다.

반찬을 줄이고 머리카락을 자르고 담배를 끊어서 돈을 모았다.


나는 이 이야기의 핵심이 액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핵심은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라에서 하라고 한 게 아니다.

법으로 정한 것도 아니다.

회의에서 다수결로 정해서 소수한테 강요한 것도 아니다.


각자가 자기 판단으로 참여했다.


그러니까 이건 파우와우다.


찬성한 사람이 따른 거다.


"그래서 이게 백십 년 넘게 기억되는 거예요."


미현 씨가 말했다.


"강제로 걷었으면 세금이었겠죠."


"세금은 공원 안 만들어요."


우리 셋이 잠깐 웃었다.


보보가 덧붙였다.


"그리고 이 운동은 실패했잖아요."


"실패했죠."


"빚을 못 갚았어요. 일제가 방해했고 모금은 흐지부지됐고요. 목표만 놓고 보면 실패한 운동이에요."


"그런데 공원이 있네요."


"그러니까요. 결과가 아니라 방식이 남은 거예요."


나는 그 말이 오늘 들은 것 중에 제일 좋았다.


결과가 아니라 방식이 남았다는 것.


무엇을 이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했느냐가 백십 년을 갔다는 것.


내가 하는 일도 대체로 결과가 잘 안 나온다.

의견을 내면 절반은 사라지고 반영된 것도 어설프게 반영된다.


그런데 방식은 남는다.


물어보고 했느냐 안 물어보고 했느냐.

이건 결과보다 오래 남는다.

왜냐하면 다음번 태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오늘 회의를 다시 생각했다.


내가 오늘 이 분 동안 한 말은 아마 반영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자리에 갔고 세 번째 항목을 말했다.

자료를 못 읽었다고 말한 것.


그건 반영을 기대하고 한 말이 아니다.


기록에 남기려고 한 말도 아니다.

어차피 회의록에는 한 줄로 남을 테니까.


왜 말했느냐면 그 방에 있던 열두 명이 그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중 몇 명은 잊을 것이다.

한두 명은 다음에 자료를 보낼 때 잠깐 멈칫할 것이다.


그 멈칫이 내가 오늘 얻은 전부다.


그리고 나는 그게 적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파우와우의 원리가 그거다.

설득된 사람만 움직인다.

설득되지 않은 사람은 어차피 안 움직인다.

제도로 강제해도 하는 척만 한다.


접근성 지침을 지키는 척하는 사이트를 나는 매일 본다.

지침을 안 지킨 사이트보다 지키는 척한 사이트가 더 안 읽힐 때도 있다.


강제는 형식을 만들고 설득은 습관을 만든다.


나는 습관 쪽이 오래 간다고 생각한다.



그나저나 집에 와서 보보가 회의 자료를 파일로 구해왔다.

간사한테 직접 연락해서 받았다고 했다.

나는 고맙다고 했다.

보보가 그 대신 조건이 있다고 했다.

칠십 쪽을 자기가 다 읽어줄 수는 없으니 요약본을 자기가 만들되 자기 해석이 들어가도 이의를 제기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건 자료가 아니라 사설이라고 했다.

보보가 그럼 종이로 읽으라고 했다.

나는 조건을 수락했다.

탱고가 그 협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오늘도 중재는 없었다.



[비하인드 스토리]


탱고예오.


오늘 회의실에 갔어오.

저는 회의실이 좀 지겨워오.

사람이 많은데 아무도 안 움직여오.

냄새가 두 시간 동안 거의 안 바뀌어오.

저한테는 이게 제일 심심한 상황이에오.


그런데 오늘은 한 번 재밌었어오.

형이 세 번째 말을 했을 때 방이 조용해졌어오.

사람 열두 명이 동시에 조용해지면 소리가 아주 커져오.

없어진 소리가 커지는 거예오.

설명하기 어려운데 저는 알아오.


회의 끝나고 공원에 갔어오.

미현 누나도 왔어오.

저는 미현 누나가 좋아오.

누나는 저랑 눈높이가 비슷해오.

저를 내려다보지 않는 사람은 흔하지 않아오.


오늘 형이랑 누나들이 회의 이야기를 했어오.

찬성한 사람만 지킨다는 이야기예오.

저는 이 원칙에 동의해오.

저는 형이 가자고 하면 가오.

그런데 위험하면 안 가오.

저는 형 말을 다 따르지 않아오.

제가 판단해서 아니면 버텨오.


훈련소에서 이걸 가르쳤어오.

지적 불복종이라고 한대오.

어려운 말이에오.

저는 그냥 안 가는 거예오.


P.S. 형이 공원에서 종소리 이야기를 했어오.

주말에 종을 친대오.

저는 큰 소리가 별로예오.

주말에는 다른 데 가면 좋겠어오.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목이 쉬면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