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100조 마리

마이크로바이옴이라는 낯선 동거인

by김경훈

아는 세균 이름을 말해보라고 하면 대부분 비슷한 답이 나온다.


결핵균, 페스트균, 식중독을 일으키는 대장균 같은 것들. 전부 병을 일으키는 쪽이다.


그럴 만하다. 우리가 세균이라는 단어를 처음 배운 맥락이 그랬기 때문이다. 손을 씻어야 하는 이유, 음식을 익혀 먹어야 하는 이유, 상처를 소독해야 하는 이유. 세균은 언제나 막아야 할 것으로 등장했다.


광고도 한몫했다. 세균을 몇 퍼센트 제거한다는 문구가 수십 년째 반복되고 있다. 그 문장에서 세균은 언제나 없애야 할 대상이다.


그런데 실제 비율을 보면 이 인상은 상당히 왜곡되어 있다.


병을 일으키는 세균은 극히 일부다. 대부분은 이롭거나 아무 해도 끼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대부분이 지금 이 순간 우리 몸에 살고 있다.


이런 인상의 왜곡은 생각보다 흔하다. 어떤 범주를 처음 배울 때 특수한 사례로 배우면 그것이 전형으로 자리 잡는다.


뉴스에 나오는 것들이 대개 그렇다. 비행기 사고가 보도되는 이유는 그것이 드물기 때문인데, 자주 보다 보면 흔한 일처럼 느껴진다.


세균도 마찬가지다. 문제를 일으키는 것들만 이름을 얻고 나머지는 이름 없이 산다. 그래서 세균이라는 단어에는 처음부터 부정적인 색이 입혀져 있다.



몸속에 사는 세균의 집합을 마이크로바이옴이라고 부른다.


한 사람 몸에 사는 세균은 종류만 수천 가지고 개수로는 100조 마리 정도로 추정된다.


이 숫자가 실감이 안 난다면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 몸을 이루는 인간 세포의 수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많다는 것이다.


즉 몸을 구성하는 것의 절반쯤은 엄밀히 말하면 내가 아니다. 나와 함께 사는 다른 생물들이다.


이들은 무임승차자가 아니다. 소화를 돕고 면역을 훈련시키고 일부 비타민을 만든다. 이들이 없으면 우리는 제대로 살 수 없다.


그러니까 관계는 상호적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살 곳과 먹을 것을 주고 그들은 우리 몸이 돌아가게 돕는다.



흥미로운 것은 이 조합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점이다.


지문처럼 개인차가 있다. 어떤 종류가 얼마나 사는지가 사람마다 다르고 그 차이가 실제로 몸에서 벌어지는 일을 바꾼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사람마다 다르게 처리되는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다. 어떤 사람은 잘 소화하는 것을 다른 사람은 소화하지 못한다. 같은 것을 먹었는데 한 사람은 아무렇지 않고 한 사람은 배가 아프다.


체취도 마찬가지다. 냄새는 대부분 피부에 사는 세균이 만든다. 사람마다 사는 세균이 다르니 나는 냄새도 다르다.


그러니까 우리가 개인차라고 부르는 것들 중 상당 부분이 사실은 세균의 차이일 수 있다.


이 관점은 몇 가지를 다르게 보게 만든다.


누군가 특정 음식을 못 먹는다고 할 때 우리는 그것을 취향이나 예민함으로 여기기 쉽다. 그런데 실제로 그 사람의 몸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을 수 있다. 같은 것을 먹어도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체질이라는 오래된 말이 있다. 근거 없는 말처럼 취급되기도 했는데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는 그 말이 가리키던 무언가가 실재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물론 옛날 사람들이 세균을 알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사람마다 몸이 다르게 반응한다는 관찰은 정확했던 셈이다.



이 분야에서 자주 인용되는 연구가 하나 있다.


워싱턴대학교의 제프리 고든 교수팀이 쌍둥이를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다.


연구팀이 쌍둥이를 택한 이유가 있다. 체중에는 유전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데 쌍둥이는 그 유전적 배경이 거의 같기 때문이다. 그러면 유전이 아닌 다른 요인을 볼 수 있다.


연구팀은 체중 차이가 큰 쌍둥이 네 쌍을 찾았다. 유전자는 거의 같은데 체형이 다른 경우다.


그리고 각각에게서 장내 세균을 채취해 무균 쥐에게 이식했다. 무균 쥐는 특수한 환경에서 길러 몸에 세균이 없는 상태의 쥐다. 그래서 무엇을 넣으면 그 효과만 볼 수 있다.


이 설계가 영리한 이유가 있다.


사람을 대상으로는 이런 실험을 할 수 없다. 세균을 빼고 다른 조건을 전부 같게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는 곳도 다르고 먹는 것도 다르고 움직이는 양도 다르다.


무균 쥐에게 옮기면 그 변수들이 통제된다. 같은 우리에서 같은 먹이를 먹는 쥐들 사이에 유일하게 다른 것이 이식받은 세균이 된다.


그러면 차이가 생겼을 때 그 원인을 세균으로 좁힐 수 있다.


결과가 인상적이었다. 체중이 많이 나가는 쪽에서 채취한 세균을 받은 쥐들이 눈에 띄게 살이 쪘다. 닷새쯤 지나면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같은 먹이를 먹었는데 결과가 달랐다는 것이다. 장내 세균이 에너지를 흡수하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연구에서 더 흥미로운 부분은 그다음이다.


연구팀이 두 종류의 쥐를 한 우리에서 함께 길렀다.


그러자 살이 쪘던 쥐들이 며칠 만에 원래 상태로 돌아갔다.


이유는 단순하다. 같은 공간에서 지내다 보니 세균이 섞인 것이다. 쥐들은 서로의 배설물에 접촉하는 일이 흔하고 그 과정에서 장내 세균이 옮겨간다.


한쪽 방향으로만 옮겨간 것이 특징이다. 마른 쪽 쥐의 세균이 살찐 쪽으로 옮겨가서 자리를 잡았고 반대 방향으로는 잘 일어나지 않았다.


이 결과를 두고 특정 세균 조합이 더 잘 정착한다는 해석이 나왔다. 다만 왜 그런지는 아직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다.


이 실험이 흥미로운 이유는 세균 구성이 고정된 것이 아님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유전자는 바뀌지 않는다. 태어날 때 정해지고 평생 간다. 그런데 마이크로바이옴은 다르다. 환경에 따라 달라지고 다른 개체와 접촉하면서도 달라진다.


그러니까 몸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유동적인 영역이 있는 셈이다. 타고나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선택하는 것도 아닌 중간 지대.


이런 영역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롭다. 우리는 보통 어떤 특성을 두고 타고난 것이냐 만들어진 것이냐를 묻는데 그 질문이 잘 작동하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여기서 조심할 것이 있다.


이 연구가 흥미롭다고 해서 사람에게 바로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첫째, 쥐와 사람은 다르다. 소화 구조가 다르고 먹는 것이 다르고 생활 조건이 다르다. 무균 쥐라는 조건도 자연 상태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 체중은 하나의 요인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유전, 생활 조건, 수면, 먹을 수 있는 것의 종류, 일하는 환경, 스트레스, 약물, 그리고 세균까지 여러 요인이 얽혀 있다. 그중 하나가 밝혀졌다고 나머지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셋째, 이런 연구가 잘못 쓰이는 방식이 있다. 체중을 개인의 의지 문제로 다루는 시각도 문제지만 반대로 균 하나로 설명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둘 다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들려는 시도다.


과학 연구는 대개 조건이 붙은 채로 나온다. 그 조건이 떨어져 나가면서 단순한 문장이 되면 원래 발견과 거리가 멀어진다.


이 연구가 실제로 보여준 것은 좁고 분명하다. 장내 세균이 에너지 대사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 그리고 그 세균 구성이 바뀔 수 있다는 것.


그 이상으로 나아가는 문장들은 대개 연구가 아니라 해석이다.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지는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단순한 설명을 원하고 연구는 복잡한 답을 내놓기 때문이다. 그 간격을 메우는 과정에서 조건들이 떨어져 나간다.


쥐에게서 관찰됐다는 조건, 무균 상태였다는 조건, 특정 기간 동안이라는 조건. 이런 것들이 하나씩 빠지면 결국 세균 하나로 체중이 결정된다는 문장만 남는다.


원래 연구자들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마이크로바이옴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는 소화에만 그치지 않는다.


뇌와의 연결도 연구되고 있다. 장내 세균이 면역세포나 호르몬이나 영양소를 매개로 뇌에 간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기분이나 기질에까지 연결된다는 보고들이 있다. 다만 이 영역은 아직 초기 단계고 인과 방향이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세균이 기분에 영향을 준 것인지, 기분 상태가 먹는 것과 생활을 바꿔서 세균이 달라진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둘 다 일어날 수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 분야의 발표들은 대개 조심스럽게 읽는 것이 좋다. 가능성이 보이는 단계와 확인된 단계는 다르다.


이 구분이 흐려지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아직 검증 중인 내용이 확정된 사실처럼 유통되고, 그것을 근거로 한 제품이나 조언이 나온다. 그리고 나중에 연구 결과가 수정되면 사람들은 과학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문제는 과학이 아니라 전달 과정에 있는 경우가 많다. 연구자들은 대체로 조심스럽게 말하고, 그 조심스러움이 전달 과정에서 사라진다.


그러니 어떤 발견에 대해 들었을 때 한 가지만 확인해도 도움이 된다. 이것은 무엇에서 관찰된 결과인가. 사람인가 동물인가. 몇 명을 대상으로 했는가. 얼마나 오래 지켜봤는가.


이 질문들은 어렵지 않고 대부분의 경우 답이 공개되어 있다.



독일 연구팀이 진행한 대규모 조사가 하나 있다.


유럽분자생물실험실 소속 연구팀이 207명에게서 얻은 자료를 분석해 방대한 유전 정보를 조사했다. 결과는 네이처에 실렸다.


그중 인상적인 발견이 있다. 사람마다 지닌 세균의 유전적 다양성이 사람 자체의 유전적 다양성과 거의 맞먹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 말을 풀어보면 이렇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다른 만큼, 그 사람들이 데리고 사는 세균들도 서로 다르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조사는 세균 구성이 바뀌는 속도도 보여줬다. 생각보다 느리다. 연 단위로 서서히 변한다.


며칠 만에 바뀐 쥐들과 대조적이다. 쥐들은 같은 우리에서 뒤섞여 살았고 사람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의 위생 환경에서는 사람 사이의 세균 교환이 훨씬 적게 일어난다. 손을 씻고 음식을 익히고 개인 용품을 쓴다. 그 덕분에 감염병이 줄었고 그만큼 세균 교환도 줄었다.



이 사실들을 모아놓고 보면 조금 이상한 그림이 나온다.


내 몸의 절반쯤은 내가 아닌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들은 사람마다 다르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 구성은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사는지에 따라 천천히 달라진다.


그러면 나는 어디까지가 나인가.


우리는 보통 자기 자신을 하나의 단위로 여긴다. 이 몸 안쪽이 나고 바깥쪽은 아니라고.


그런데 마이크로바이옴의 관점에서 보면 그 경계가 흐리다. 몸 안에 있지만 내 세포가 아닌 것들이 있고 그것들이 내 소화와 면역과 어쩌면 기분에까지 관여한다.


나는 하나의 개체라기보다 여러 생물이 모여 사는 공간에 가깝다.


이 표현이 과장처럼 들린다면 숫자를 다시 떠올려보면 된다. 100조이라는 수는 우리 몸의 인간 세포 수와 비슷한 규모다.


물론 무게로 따지면 세균이 차지하는 비중은 훨씬 작다. 세균 하나가 인간 세포보다 훨씬 작기 때문이다. 그러니 몸의 절반이 세균이라는 말은 개수에 한해서만 맞다.


다만 개수가 비슷하다는 사실만으로도 생각할 거리가 생긴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 얼마나 많은 부분이 내가 아닌 것들의 작업인가.


그리고 그 작업들은 내 의지와 무관하게 진행된다. 나는 그것을 지시하지도 않고 알아차리지도 못한다.



이 관점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내가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그렇다.


그런데 다르게 보면 이건 꽤 오래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 세포 안에 있는 미토콘드리아는 원래 독립된 세균이었다고 여겨진다. 아주 오래전 다른 세포 안으로 들어가 살기 시작했고 결국 하나가 됐다. 지금은 그것 없이 우리 세포가 작동하지 않는다.


생명은 원래 그런 식으로 만들어져왔다. 깔끔한 경계를 그어놓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이것저것이 섞이고 합쳐지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그러니 내 안에 다른 생물이 산다는 사실이 특별히 예외적인 상황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기본값에 가깝다.


이 관점은 다른 것들에도 적용된다.


우리가 쓰는 말은 대부분 물려받은 것이다. 생각하는 방식도 자라면서 흡수한 것이다. 취향조차 순수하게 내 것이라고 하기 어렵다.


순수한 나라는 것을 찾아 들어가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을지도 모른다. 남는 것은 여러 곳에서 온 것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모여 있는 상태뿐일 것이다.


그리고 그 배열이 사람마다 다르다. 개성이란 아마 그 배열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세균에 대한 시선은 지난 백 년 사이에 크게 바뀌었다.


항생제가 발견된 뒤 한동안 세균은 없애야 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 접근은 실제로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 감염병으로 죽는 사람이 급격히 줄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지나친 제거가 다른 문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 옳다기보다 균형의 문제로 옮겨간 셈이다. 해로운 것은 막되 전부를 없애려 하지는 않는 쪽으로.


항생제 자체를 의심하자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인류가 가진 가장 중요한 도구 중 하나다. 다만 도구를 어디에 얼마나 쓸지가 정교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전환은 과학에서 자주 일어난다. 하나의 발견이 강력한 해법을 주면 한동안 그쪽으로 쏠린다. 그러다 부작용이 보이면 조정이 들어온다.


지금 마이크로바이옴 연구가 주목받는 것도 그 조정의 일부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이 이야기의 결론이 무엇을 먹어야 한다거나 어떻게 관리해야 한다는 쪽으로 가는 것은 성급하다. 아직 그 정도로 정리된 단계가 아니다.


다만 하나는 분명해 보인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덜 독립적이다. 몸 안에서도 그렇고 밖에서도 그렇다.


무엇을 먹고 어디서 자고 누구와 시간을 보내는지가 몸 안의 구성을 조금씩 바꾼다. 그 변화는 느리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계속 일어나고 있다.


오래 함께 사는 사람들의 몸속 세균이 서로 닮아간다는 보고도 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것을 먹고 지내기 때문이다.


그러니 함께 산다는 말은 생각보다 문자 그대로일지도 모른다. 공간을 나누는 것을 넘어 몸의 구성까지 조금씩 겹쳐가는 것이다.


내 몸이 온전히 내 것이라는 감각은 편리하지만 정확하지는 않은 셈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100조 마리가 각자의 일을 하고 있다. 대부분은 내가 알지도 못하는 일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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