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본의 아키텍처

by김경훈

연구 계획서를 쓰다가 한 칸에서 오래 멈춘 적이 있다.


연구 대상 및 표본 추출 방법.


시각장애인의 정보 이용 경험을 다루는 연구였고

참여자를 몇 명 모아야 했다.


이 칸은 보통 5분이면 채운다.

어느 기관을 통해 몇 명을 어떤 기준으로 모집한다고 쓰면 된다.


그날은 커서를 놓고 한참 가만히 있었다.

화면 낭독기가 아무것도 읽지 않는 시간이 길어졌다.


방법은 사실상 정해져 있다.


복지관이나 자립생활센터나 관련 단체를 통해 모집한다.

혹은 협조를 받아 등록장애인 중에서 연락한다.


어느 경로를 택하든 출발점은 같다.

등록장애인 명부다.


그날 나는 그 칸을 채우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러면 등록되지 않은 사람은

내 연구에도 없는 사람이 되는구나.


이것은 그 생각을 따라가 본 기록이다.





없는 사람



연구에서 표본틀이라는 말을 쓴다.


표본을 뽑아낼 수 있는 전체 목록을 가리킨다.


이 목록에 없으면 뽑힐 수가 없다.

아무리 정교한 무작위 추출을 해도 목록 바깥은 못 건드린다.


장애 관련 연구에서 표본틀은 대체로 등록장애인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장애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의 상당 부분은

등록된 사람들에 대한 지식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장애인에 대한 지식이라고 부른다.


기능 제한을 겪지만 등록 기준에 안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연구에도 안 들어오고 통계에도 안 들어오고

그래서 정바카라 설계에도 안 들어온다.


연구자로서 이 사실이 나는 좀 불편하다.


내가 쓰는 논문들이 결국 제도가 이미 인정한 범위 안에서만

근거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다.


제도가 표본을 정하고 표본이 근거를 만들고

근거가 다시 제도를 정당화한다.


이 고리를 바깥에서 끊을 방법을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기능 제한을 직접 묻는 조사를 하면 된다.

등록 여부와 무관하게 걷기와 보기와 듣기와 기억하기의 어려움을 묻는 방식.


국제기구가 쓰는 표준 문항도 이미 나와 있다.


그런데 이런 조사는 대체로 연구비가 크고 표본이 커야 하고

행정 자료 연계가 안 되니 개별 연구자가 하기 어렵다.


그래서 국가 단위 조사에서 다뤄야 하는 영역인데

우리 국가 조사는 대체로 등록장애인을 모집단으로 잡는다.


이 지점에서 개별 연구자의 선택지가 사실상 사라진다.





5.1퍼센트



숫자부터 보자.


보건복지부의 2025년도 등록장애인 현황에 따르면

우리나라 등록장애인은 약 262만 7천 명이다.

전체 인구 대비 약 5.1퍼센트다.


이 숫자를 오래 보면 이상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회원국들의 근로가능연령 장애출현율 평균이 약 13.8퍼센트다.


덴마크가 20.7퍼센트

핀란드가 20.5퍼센트

헝가리가 22.1퍼센트

에스토니아가 23.0퍼센트 수준으로 나온다.


같은 자료에서 우리나라는 약 6.0퍼센트로 최저 수준이었다.


미국은 차이가 더 크다.


질병통제예방센터는 2024년 기준으로

미국 성인 인구의 약 28.7퍼센트가 장애를 경험한다고 발표했다.

4명 중 1명이 넘는다.


이동 관련 장애가 약 13.4퍼센트

인지장애가 약 12.5퍼센트 수준이다.


영국 통계청은 2023년 기준으로

인구의 약 24퍼센트인 1600만 명 이상을 장애 인구로 집계한다.


유럽연합과 경제협력개발기구가 함께 낸 보고서에서는

유럽 성인의 약 35퍼센트가 장기적 건강 문제나 기능 제한을 경험한다고 본다.

고령층에서는 절반 이상이 이동과 감각과 인지 기능의 제한을 겪는다.


세계보건기구는 전 세계 인구의 약 16퍼센트

그러니까 약 13억 명이 장애를 경험한다고 추정한다.


우리는 5.1퍼센트다.


이 숫자를 처음 진지하게 본 건 학부 때였던 것 같다.


그때는 우리나라가 아직 고령화가 덜 됐으니 그렇겠거니 했다.


지금은 그 설명이 잘 안 통한다.

우리는 이미 초고령슬롯에 들어갔고

등록장애인 중 65세 이상 비율이 절반을 넘었다.


고령화가 진행되면 장애출현율은 올라가는 게 자연스럽다.

그런데 우리 숫자는 그렇게 빠르게 안 오른다.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기능 제한의 상당 부분이

등록 기준 바깥에 머물기 때문일 것이다.





숫자가 다른 이유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게 있다.


이 숫자들을 그대로 나란히 놓고 비교하면 안 된다.


우리 숫자는 등록장애인 수다.

행정 절차를 통과한 사람의 수이고 명부에 이름이 있는 사람의 수다.


미국이나 유럽의 숫자는 대체로 설문조사 결과다.


걷거나 계단을 오르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까.

보는 데 안경을 써도 어려움이 있습니까.

집중하거나 기억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까.


이런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사람을 세는 방식이다.


그러니까 하나는 인정받은 사람의 수이고

다른 하나는 어려움을 겪는다고 답한 사람의 수다.


애초에 다른 걸 세고 있으니 숫자가 다른 게 당연하다.


그리고 설문 방식에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자기 보고에 기대면 과대 추정이 생길 수 있고

문항 표현에 따라 응답률이 크게 달라진다.


안경을 써도 보기 어렵냐고 물을 때

노안이 온 사람이 그렇다고 답하면 그 사람은 집계에 들어간다.


그러니까 28.7퍼센트라는 숫자가 곧

그만큼의 사람에게 지원이 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두 방식은 각각 다른 목적에 맞는다.


등록 기준은 급여 배분에 쓰기 좋고

설문 기준은 슬롯 전체의 기능 제한 규모를 파악하는 데 좋다.


문제는 우리가 앞의 숫자만 갖고 있다는 것이다.


배분에 쓸 자료는 있는데

어디에 얼마나 배분해야 하는지를 판단할 자료는 없다.


그래서 나는 이 비교에서 결론을 이렇게 좁히고 싶다.


한국에 장애인이 적다는 게 아니라

한국에서 장애인으로 인정되는 범위가 좁다는 것.


그리고 그 범위가 좁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슬롯가 무엇을 장애로 보는지를 말해 준다.





인정의 문턱



우리 체계에서 장애는 먼저 몸의 손상으로 판정된다.


의학적 진단을 받고

법정 장애유형에 해당하고

심사 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이 순서에서 삶의 어려움과 참여의 제한과 정보 접근의 장벽은

그다음 문제로 밀린다.


이 방식에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다.


객관적이고 검증 가능하고 예산 배분에 쓸 수 있다.

자의적 판단이 끼어들 여지가 적다.


그리고 과거에는 이 방식이 오히려 보호 장치였다.


문제는 이 방식이 놓치는 범주가 꽤 크다는 것이다.


법정 유형에 없는 만성질환.

일상은 되는데 노동은 어려운 상태.

변동이 큰 정신적 어려움.

노화와 겹쳐서 어디까지가 장애인지 애매한 경우.


이 사람들은 어려움이 없어서 장애인이 아닌 게 아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인정 기준에 안 맞아서 장애인이 아니다.


그리고 인정받지 못하면 활동지원과 이동지원과 보조공학과

교육지원과 돌봄과 소득보장 체계에서 동시에 빠진다.


여기서 앞선 글에서 다룬 이야기와 만난다.


장애는 진단서가 나오는 날 시작되는 게 아니라

배제되는 순간 시작된다.


그런데 지원은 진단서가 나온 다음에 시작된다.


여기에 등록을 안 하는 사람들도 있다.


기준에는 맞는데 등록하지 않는 경우다.


이유는 대체로 하나다.

등록하면 따라붙는 시선이 싫어서.


취업에 불리할까 봐 안 하는 사람이 있고

자녀 혼사에 영향이 있을까 봐 안 하는 어른이 있고

그냥 그 단어를 자기에게 붙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


이 선택을 비난할 수 없다.

그 시선이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낮은 등록률에는 두 가지가 섞여 있다.

문턱이 높아서 못 들어온 사람과 문이 열려 있어도 안 들어온 사람.


앞쪽은 제도를 고치면 되고

뒤쪽은 슬롯를 고쳐야 한다.


그리고 두 숫자를 우리는 구별해서 세지 않는다.





보통의 몸



왜 우리 기준이 유독 좁을까.


제도 설계의 문제이기도 하고 재정의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그 아래에 다른 게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슬롯가 오랫동안 상정해 온 보통의 몸이다.


빠르게 걷고 오래 일하고 혼자 이동하고

디지털 기기를 능숙하게 다루고 표준적인 방식으로 소통하는 몸.


이 기준에 가까우면 시민으로 자연스럽게 인정된다.

멀어지면 자기 불편을 계속 증명해야 한다.


푸코가 말한 정상성의 권력이 이 지점에서 보인다.


근대 슬롯는 사람을 억압하는 방식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를 나누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병원과 학교와 복지제도와 행정 절차가

사람을 분류하고 판정하고 관리한다.


장애등록제도도 그 계보 위에 있다.


어떤 몸을 제도 안으로 들이고 어떤 몸을 바깥에 둘지를 정하는 장치다.


그 결과 장애인은 권리의 주체이기 전에 심사의 대상이 된다.


자기 삶을 설명하는 대신 결핍을 증명하게 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보다 무엇을 못 하는지를 말하게 된다.


나는 이 구조를 인정조사를 받으면서 몸으로 겪은 적이 있다.

그때는 그게 그 제도 하나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다르게 본다.

등록제도부터 인정조사까지 같은 논리가 관통하고 있다.


권리의 체계라기보다 선별의 체계에 가깝다.





디지털 슬롯에서



이 문제가 요즘 특히 중요해진 이유가 있다.


키오스크와 모바일 앱과 음성인식과 무인 행정서비스는

대체로 표준 사용자를 전제한다.


빠르게 읽고 정확히 누르고 즉시 판단하고 오류 없이 반응하는 사람.


현실의 사람은 그렇게 단일하지 않다.


느리게 읽는 사람.

손 떨림이 있는 사람.

음성인식이 잘 안 되는 사람.

복잡한 화면을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


이 사람들도 시민이다.


그런데 제도적으로 장애인으로 인정되지 않으면

그 어려움은 개인의 불편으로 축소된다.


접근성은 권리가 아니라 배려가 되고

배제는 차별이 아니라 사용 미숙으로 해석된다.


이 전환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나는 여러 번 봤다.


키오스크 앞에서 오래 서 있는 노인에게

사람들은 차별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 익숙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해석 안에서 해결바카라은 교육이 된다.

그리고 기기는 안 고친다.


이 구조에서 이득을 보는 쪽이 어디인지도 생각해 볼 만하다.


인정 범위가 좁으면 접근성 의무를 지는 범위도 좁아진다.

대상이 5퍼센트일 때와 25퍼센트일 때

기업과 기관이 느끼는 압력은 완전히 다르다.


그러니까 좁은 정의는 단순한 행정 관행이 아니라

비용 배분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 말을 음모론처럼 하고 싶지는 않다.

누가 의도적으로 좁혀 놓은 게 아니라

좁은 상태가 유지되는 데 아무도 불편하지 않았을 뿐이다.


제도는 대체로 그런 방식으로 굳는다.


인정 범위가 좁으면 이런 일이 계속 생긴다.

문제를 제기할 자격이 있는 사람의 수가 적어지기 때문이다.





넓힌다는 것



그래서 인정 범위를 넓히자는 이야기를 하면

대체로 예산 걱정이 먼저 나온다.


그 걱정은 근거가 있다.

대상이 늘면 지출이 는다.


다만 넓힌다는 게 반드시 모두에게 같은 급여를 준다는 뜻은 아니다.


앞서 다른 글에서 다룬 방식들이 여기서도 쓰인다.


필요를 중심으로 지원 수준을 정하는 방식.

일시적 기능 제한에 대한 별도 창구.

등록 여부와 무관하게 접근성 조정을 요구할 권리.


세 번째가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급여를 주는 것과 조정을 요구할 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다른 일이고

후자는 비용이 훨씬 적게 든다.


그리고 후자만으로도 꽤 많은 게 달라진다.


문서를 접근 가능한 형식으로 달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시험 시간을 조정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것.

그 요청이 거부되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것.


이건 등록장애인만의 권리일 이유가 없다.


미시간에서 내가 손목을 다쳤을 때

그 학교의 사무실은 나에게 등록 여부를 묻지 않았다.

무엇이 필요한지를 물었다.


그 차이가 결국 5.1퍼센트와 28.7퍼센트의 차이일 것이다.


이런 방식에는 부수 효과도 있다.


조정을 요청하는 사람이 늘면 그 요청이 데이터가 된다.


어느 기관에 어떤 요청이 몇 건 들어왔는지가 쌓이면

그게 곧 그 슬롯의 기능 제한 지도가 된다.


지금은 그 지도가 없다.

요청할 자격이 있는 사람만 요청할 수 있으니

요청 건수 자체가 인정 범위 안에서만 발생한다.


인정 범위를 넓히는 일은 그래서 지원을 늘리는 일이면서

동시에 모르던 걸 알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제목: 표본의 아키텍처 혹은 세지 않은 사람들.


통계는 세상을 비추는 거울처럼 이야기되지만

실제로는 세는 방법이 세상을 만든다.


무엇을 세기로 했는가.

어디에 목록을 두었는가.

그 목록에 들어가려면 무엇을 통과해야 하는가.


이 세 가지가 정해지고 나면

그 바깥의 삶은 자료에서 사라지고

자료에서 사라진 삶은 정바카라에서도 사라진다.


연구자로서 나는 이 순환의 안쪽에서 일한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더 자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논문에서 표본의 한계를 적는 건 형식적인 절차처럼 여겨진다.

대체로 맨 뒤에 한 문단으로 들어가고 아무도 잘 안 읽는다.


그런데 장애 관련 연구에서 그 문단은 형식이 아니다.


누가 이 연구에 들어오지 못했는지를 적는 자리이고

그 명단이 사실상 제도의 경계선이다.


그러니까 그 문단을 성실하게 쓰는 일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결론: 낮은 장애출현율은 우리 슬롯가 건강하다는 증거가 아니다.

우리가 장애를 좁게 정의하고 엄격하게 승인한다는 증거에 가깝다.


장애는 예외적인 소수의 조건이 아니다.

노화와 질병과 사고와 정신적 어려움과 디지털 배제 속에서

누구나 그 경험에 가까워진다.


그렇다면 장애정바카라은 특정 집단을 위한 주변 정바카라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 언젠가 마주할 조건을 준비하는 보편 정바카라이어야 한다.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왜 우리나라에는 장애인이 이렇게 적은가.


그나저나 그 연구 계획서는 결국 통상적인 방식으로 썼다.

등록장애인 중에서 참여자를 모집한다고 적었다.

다르게 쓸 방법을 못 찾았기 때문이다.

다만 논의 부분에 한 문단을 넣었다.

이 연구의 표본은 등록장애인에 한정되므로

제도 밖에 있는 사람들의 경험은 반영되지 않았다는 문장.

연구의 한계라고 적었지만 사실은 제도의 한계다.

탱고는 그날도 바카라상 밑에서 자고 있었다.

저 녀석은 어느 통계에도 안 잡히는데 내 하루에서는 비중이 꽤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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