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의 아키텍처

by김경훈

회의 자료에 내 이름이 이렇게 적혀 있었다.


장애인 당사자 위원 김경훈.


틀린 표기는 아니다.

나는 장애인이고 그 자리에 당사자 자격으로 갔다.


다만 그 다섯 글자가 하는 일이 생각보다 크다.


그 자리에서 내가 하는 말은 한 사람의 의견이 아니라

당사자의 목소리로 기록된다.


이것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

내가 대표할 수 없는 사람들을 계속 떠올린 기록이다.





내 조건 목록



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나는 내 조건을 속으로 세어 봤다.


시각장애가 있다.

그리고 남성이다.

30대다.

대구 도심에 산다.

박사과정에 있고 소득이 불안정하지만 있다.

배우자가 있고 안내견이 있다.

한국 국적이고 한국어가 모국어다.


이 목록에서 첫 줄만 빼면 나머지는 대체로 유리한 조건들이다.


그리고 그 유리함은 내가 매일 겪는 불편의 상당 부분을 덜어 준다.


밤에 혼자 다니는 일이 무섭지 않은 건 시각장애와 무관하다.

활동지원사가 남성이어도 불편하지 않은 것도 그렇다.

새로운 기기를 익히는 데 오래 걸리지 않는 것도

내가 30대이고 학교에 있기 때문이다.


버스가 안 와도 택시를 부를 수 있는 것도

접근 가능한 자료를 요청할 창구를 아는 것도

그 요청을 반복할 여력이 있는 것도


전부 시각장애와 별개의 조건에서 온다.


그러니까 내가 그 회의실에서 말하는 장애인의 경험은

정확히 말하면 도시에 사는 30대 남성 연구자의 시각장애 경험이다.


이 문장을 회의록에는 적을 수 없다.

칸이 하나뿐이니까.


이런 생각을 처음 한 건 몇 해 전이었다.


어느 자리에서 활동지원 시간 이야기가 나왔고

내가 지금 받는 시간으로도 그럭저럭 지낸다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이었다.

나는 혼자 하는 일이 많고 배우자가 있고 낮에는 학교에 있다.


그런데 그 말이 회의록에 이렇게 남았다.

당사자 의견으로는 현행 시간이 대체로 적정하다고 봄.


그 문장이 이후 어디에 쓰였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날 내 조건이 다른 사람의 시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당사자의 말은 개인의 말로 남지 않는다.

그게 당사자 참여의 힘이고 동시에 위험이다.





더해지는 것과 곱해지는 것



인권 분야에서 이 문제를 설명하는 개념이 두 개 있다.


하나는 다중차별이다.


한 사람이 둘 이상의 차별 요인을 갖고 있어서

각각의 차별을 중첩해서 겪는 현상.


장애여성이 장애로 인한 차별과 성차별을 함께 겪는 것.

고령장애인이 장애로 인한 불이익과 연령 차별을 동시에 겪는 것.


여러 요인이 한 사람에게 겹쳐서 나타나는 상태다.


다른 하나는 복합차별이다.


여러 요인이 단순히 더해지는 게 아니라

서로 결합해서 새로운 형태의 차별을 만들어 내는 현상이다.


미국의 법학자 킴벌리 크렌쇼가 교차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것이 이쪽이다.


개인이 가진 여러 슬롯적 정체성이 교차하면서

그 어느 하나로도 설명되지 않는 독특한 불평등이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다.


이 구별이 왜 중요하냐면 대응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더해지는 것이면 각각을 따로 해결해도 된다.

장애 차별을 줄이고 성차별을 줄이면 합이 줄어든다.


곱해지는 것이면 그렇게 안 된다.

둘 다 줄여도 그 교차점에 남는 게 있다.


그리고 현실에서 사람들이 겪는 건 대체로 뒤쪽이다.


크렌쇼가 이 개념을 설명할 때 쓴 비유가 교차로였다.


사거리에서 사고가 나면

어느 방향에서 온 차 때문인지 특정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런데 바카라임을 묻는 절차는 한 방향을 특정하라고 요구한다.

특정하지 못하면 아무도 바카라임지지 않는 상태가 된다.


나는 사거리를 소리로 건넌다.

그래서 이 비유가 유난히 잘 와닿는다.


사거리에서 소리는 겹친다.

어느 차가 어느 방향에서 오는지 분리해 듣는 게 가장 어려운 지점이다.


겹친 소리를 하나씩 떼어 내라고 요구하면

결국 아무 소리도 정확히 말할 수 없게 된다.





어느 쪽에서도



가장 자주 인용되는 사례가 장애여성의 고용이다.


기업이 장애인 채용에서는 남성을 선호하고

여성 채용에서는 비장애인을 우선하면

장애여성은 양쪽 어디에서도 충분한 기회를 얻지 못한다.


두 경로가 모두 열려 있는데 그 사람만 지나갈 수 없다.


이럴 때 통계는 문제를 잘 못 잡는다.


장애인 고용률을 보면 채용이 되고 있고

여성 고용률을 보면 채용이 되고 있다.


두 숫자를 나란히 놓아도

그 교차점의 숫자는 따로 계산하지 않으면 안 보인다.


통계에서 이걸 교차 분석이라고 부른다.

기술적으로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장애 유형별 통계와 성별 통계를 각각 내는 대신

장애 유형과 성별과 연령과 지역을 교차해서 내면 된다.


문제는 교차할수록 각 칸의 표본이 작아진다는 것이다.


농어촌에 사는 60대 여성 시각장애인은 몇 명일까.

그 수가 적으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다는 이유로

그 칸은 대체로 발표에서 빠진다.


가장 겹겹이 불리한 사람이

표본이 작다는 이유로 통계에서 먼저 사라진다.


이건 분석의 기술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알고 싶은가의 문제다.


폭력의 위험에서도 비슷한 구조가 나타난다.


장애여성은 성폭력과 학대의 위험에서

비장애 여성과 다른 종류의 취약성을 겪는다.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돌봄에 대한 의존과 슬롯적 고립이 결합되면서

장애 차별이나 성차별 어느 하나로도 설명되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신고하려면 그 사실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하고

전달하려면 의사소통 지원이 있어야 하고

지원하는 사람이 가해자와 관계된 사람이 아니어야 한다.


이 조건들이 한꺼번에 충족되어야 신고가 가능하다.


그러니까 이건 개별 차별의 합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문제다.


그리고 이런 구조에서는 지원 제도가 오히려 위험 요인이 되기도 한다.


돌봄을 받는 관계에서는 힘의 차이가 생긴다.

그 사람이 오지 않으면 하루가 무너지니까 관계를 끊기 어렵다.


이건 장애인 전반의 문제인데

여기에 성별이 겹치면 성격이 달라진다.


그래서 장애여성 지원 논의에서

활동지원사 성별 선택권이나 독립적인 신고 경로 같은 항목이 나오는 것이다.


장애 정바카라만 보거나 여성 정바카라만 봐서는

이런 항목이 왜 필요한지가 잘 안 보인다.





고령장애인



고령장애인의 디지털 소외도 같은 구조다.


지금 은행 업무와 병원 예약과 민원 처리와 승차권 예매가

대부분 스마트폰으로 옮겨 갔다.


시각장애가 있는 노인은 작은 화면을 읽기 어렵다.

청각장애가 있는 노인은 음성 안내 중심 서비스를 쓰기 어렵다.

지체장애가 있는 노인은 터치 조작 자체가 어렵다.


그리고 여기에 디지털 학습 기회의 부족이 더해진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겪는 건

장애인의 디지털 격차와 노인의 디지털 격차를 더한 것이 아니다.


장애인 대상 교육은 대체로 젊은 사람을 전제로 설계되고

노인 대상 교육은 대체로 비장애인을 전제로 설계된다.


그래서 두 교육이 다 있는 동네에서도

고령장애인이 들어갈 과정은 없는 경우가 생긴다.


앞서 인공지능 리터러시 교육 이야기를 쓸 때

나는 복지 예산과 교육 예산 사이의 틈을 짚었다.


여기서도 같은 틈이 나온다.

다만 이번에는 대상 설정의 틈이다.


각각의 제도가 성실하게 운영되고 있는데

그 사이로 빠지는 사람이 생긴다.


이 틈은 누구의 실수도 아니어서 고치기가 더 어렵다.


그리고 이 집단은 앞으로 가장 빠르게 커진다.


장애인구 중 65세 이상 비율이 이미 절반을 넘었다는 숫자를

나는 앞선 글에서 두 번쯤 인용했다.


그러니까 고령장애인은 소수 집단이 아니다.

장애인구의 다수 쪽에 가깝다.


그런데 정바카라의 기본 이미지는 여전히

젊고 활동적인 장애인 쪽에 맞춰져 있다.


자립생활과 노동시장 참여와 디지털 활용.

전부 중요한 의제이고 나도 그 이야기를 많이 한다.


다만 그 의제 목록이 장애인구의 절반을 제대로 담고 있는지는

따로 물어봐야 한다.





나머지 목록



이 목록은 더 길어질 수 있다.


이주장애인은 장애에 대한 편견과 함께

국적과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인한 차별을 겪는다.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이

한국 수어나 한국어 기반 보조기기를 써야 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면

그 어려움의 성격이 짐작된다.


빈곤장애인은 경제적 제약과 장애가 결합되면서

교육과 취업과 문화생활 전반에서 밀려난다.


앞서 장애비용 이야기를 쓸 때 확인한 구조가 여기서 작동한다.

추가비용이 실질소득을 줄이고 줄어든 소득이 기회를 좁힌다.


농어촌에 사는 장애인에게는

의료와 복지 서비스 접근성의 한계가 더 붙는다.


버스가 하루에 두 번 다니는 곳에서

저상버스 보급률이라는 숫자는 거의 의미가 없다.


이 사람들의 경험은 서로 다르다.

그리고 그 어느 것도 장애인의 경험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묶이지 않는다.


내가 그 회의실에서 당사자 위원으로 앉아 있을 때

대표할 수 없던 것이 바로 이 다양성이다.





법의 칸



제도 쪽으로 오면 문제가 더 분명해진다.


우리나라에는 개별 차별금지 제도들이 있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각각 필요해서 만들어졌고 실제로 역할을 해 왔다.


문제는 현실의 차별이 이 법들이 나눠 놓은 범주보다 복합적이라는 것이다.


장애여성이 채용에서 불이익을 받았을 때

그게 장애 때문인지 여성이라서인지

아니면 장애여성이기 때문인지를 가르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구제 절차는 대체로 사유를 특정하라고 요구한다.


특정하면 그 사유에 해당하는 법으로 판단하고

특정하지 못하면 절차가 진행되기 어렵다.


당사자가 자기 경험을 법의 칸에 맞춰 잘라야 하는 구조다.


그리고 잘라 낸 부분은 기록에 남지 않는다.


이건 입증 바카라임의 문제이기도 하다.


차별을 주장하려면 대체로 비교 대상이 필요하다.

같은 조건에서 다른 사람은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를 보여 줘야 한다.


장애여성이 채용 차별을 주장하려면 비교 대상을 누구로 잡을까.


비장애 여성으로 잡으면 장애 차별만 보이고

남성 장애인으로 잡으면 성차별만 보인다.


정작 자기와 같은 조건의 사람은

애초에 그 회사에 없어서 비교할 수가 없다.


비교 대상이 없다는 사실 자체가 차별의 증거인데

그 증거가 입증을 막는 구조가 된다.


이 대목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논의가 나온다.


여러 차별 사유를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여러 사유가 동시에 작용하는 상황을 인정하며

실질적인 구제 방안을 마련하자는 취지다.


이 법을 둘러싼 논쟁이 우리 슬롯에 오래 있었다는 걸 나는 안다.

어떤 사유를 포함할 것인지를 두고 의견이 크게 갈린다는 것도 안다.


여기서 그 전체를 다룰 생각은 없다.


다만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가 우리나라에 대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여러 차례 권고했다는 사실은 짚어 두고 싶다.


그 권고의 근거가 이 글에서 말한 교차 구조이기 때문이다.


해외 사례를 보면 영국은 평등법을 통해

장애와 성별과 연령과 인종 등을 통합적으로 보호하고

공공기관에 평등 증진 의무를 둔다.


캐나다는 교차성 관점을 인권정바카라 전반에 반영해

장애여성과 원주민 장애인과 이주장애인 정바카라을 별도로 다룬다.


독일은 일반평등대우법으로 여러 사유를 함께 규율하고

유럽연합은 교차성을 평등정바카라의 핵심 원칙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 나라들이 완벽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사유를 하나만 고르게 하지 않는다는 점은 공통된다.





다시 그 회의실로



이 글을 쓰면서 나는 결론을 하나 내렸다.


당사자 참여를 늘리자는 요구는 옳다.

나는 이 시리즈에서 그 이야기를 여러 번 했다.


그런데 그 요구에는 조건이 하나 붙어야 한다.


당사자를 한 명만 부르면 그 사람은 자기 조건을 대표하게 된다.

그리고 그 조건은 대체로 부르기 쉬운 조건이다.


말이 되고 이동이 되고 시간이 되고 연락이 닿는 사람.


내가 그 자리에 불려 가는 이유의 상당 부분이 이 조건 때문이다.

장애인이라서가 아니라 회의에 올 수 있는 장애인이라서.


그러니까 당사자 위원 한 명은

당사자 참여의 시작이지 완성이 아니다.


여성과 고령자와 농어촌 거주자와

의사소통에 지원이 필요한 사람이 같은 테이블에 있어야

그 자리가 비로소 현실을 반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비용이 든다.

이동 지원과 의사소통 지원과 시간 보상.


그 비용을 안 쓰면 결국 부르기 쉬운 사람만 오게 되고

그렇게 모인 의견이 당사자의 목소리로 기록된다.


그리고 이건 내가 말을 아껴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경험은 내 경험대로 정확하고 그건 말할 가치가 있다.


다만 말할 때 조건을 붙이는 습관을 들이려고 한다.


제 경우에는 이렇습니다.

다만 혼자 사는 분이나 지방에 계신 분은 다를 수 있습니다.


이 한 줄을 붙이는 데 3초가 걸린다.

그리고 그 3초가 회의록에 남는 문장의 성격을 바꾼다.


당사자성은 권위가 아니라 자료다.

자료에는 언제나 수집 조건이 붙어 있어야 한다.





제목: 대표의 아키텍처 혹은 내가 대표할 수 없는 사람들.


차별은 사유별로 오지 않는다.

사람에게 온다.


그리고 사람은 여러 조건을 동시에 갖고 산다.


지금 우리 제도는 그 사람을 만나면 먼저 분류한다.

어느 사유에 해당하는지 정하고 그에 맞는 창구로 보낸다.


행정적으로는 합리적인 방식이다.

담당이 정해져야 일이 진행되니까.


다만 그 분류 과정에서 잘려 나가는 부분이 있고

그 부분이 대체로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결론: 차별금지 제도는 특정 집단에게 무언가를 더 주는 장치가 아니다.

누구나 동등한 시민으로 살 수 있는 최소 조건을 만드는 장치다.


경사로가 특혜가 아니고 점자 안내가 특혜가 아니듯

차별받지 않을 권리도 특혜가 아니다.


고령화와 디지털 전환이 동시에 진행되는 슬롯에서

교차하는 조건을 가진 사람은 앞으로 더 늘어난다.


장애가 있는 노인.

장애가 있는 이주민.

장애가 있는 빈곤 가구.


이 목록이 길어질수록

사유를 하나만 고르게 하는 제도는 점점 더 안 맞게 된다.


그나저나 회의가 끝나고 담당자가 다음에도 꼭 나와 달라고 했다.

나는 고맙다고 답하고 한 가지를 부탁했다.

다음에는 장애여성 한 분을 같이 불러 달라고.

담당자가 알겠다고 했고 그 말이 지켜질지는 아직 모른다.

탱고는 그날도 두 시간을 발치에서 보냈다.

저 녀석은 어느 위원회에서도 대표로 불린 적이 없는데

사실 내가 아는 것의 절반쯤은 저 녀석 덕에 안 것이다.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전력의 아키텍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