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째 목이 안 나온다.
감기 끝물이다.
열은 없고 기침도 거의 멎었는데 목만 안 돌아왔다.
소리를 내면 바람 새는 소리가 먼저 나온다.
그다음에 말이 나오는데 두 번째 음절쯤에서 끊긴다.
목이 쉬어본 사람은 알 거다.
불편한 정도가 아니다.
사흘째가 되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내가 없어진다.
이 문장을 쓰면 사람들이 과장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
그런데 과장이 아니다.
사흘 동안 나는 여러 번 없어졌다.
없어졌다가 다시 나타났고 또 없어졌다.
나타나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어떻게든 소리를 내는 것.
월요일 아침에 학교에서 그걸 처음 느꼈다.
복도에서 아는 선생님이 지나갔다.
발소리로 알았다.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소리가 안 나왔다.
정확히는 나왔다.
나한테는 들렸다.
그런데 그분한테는 안 들렸다.
그분은 그냥 지나갔다.
나는 복도에 서서 잠깐 가만히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면.
그분은 나를 봤다.
나는 그분을 못 봤다.
그리고 나는 소리를 못 냈다.
그러면 우리는 마주친 게 아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이 아무한테도 등록되지 않았다.
나는 목소리로 공간을 차지한다.
이건 비유가 아니라 실무다.
엘리베이터에 타면 안녕하세요 하고 소리를 낸다.
누가 있는지 확인하려고 내는 소리이기도 하고 내가 여기 있다고 알리는 소리이기도 하다.
좁은 통로에서 마주 오는 사람이 있으면 죄송합니다 하고 먼저 말한다.
그러면 상대가 비켜준다.
말을 안 하면 나는 장애물이 된다.
말을 하면 사람이 된다.
이건 시각장애인만의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다만 나한테는 대체 수단이 없다는 게 다르다.
눈이 보이면 눈짓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거나 시선을 맞추거나 손을 살짝 드는 것으로 저기 사람 있어요를 전달할 수 있다.
나는 그게 안 된다.
내 신호는 전부 소리다.
그래서 목이 쉬면 나는 신호가 없는 사람이 된다.
그 사흘 동안 몇 가지가 더 있었다.
카페에서 주문을 못 했다.
정확히는 못 한 게 아니라 세 번 말해야 했다.
직원이 못 알아들어서가 아니다.
내가 소리를 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버스에서 내릴 때 기사님한테 감사합니다를 못 했다.
이건 습관이라 안 하면 하루 종일 걸린다.
엘리베이터에서 누가 몇 층 가세요 하고 물었을 때 대답을 못 했다.
그분이 다시 물었고 나는 손가락으로 숫자를 만들었는데 그분은 그걸 봤을 것이다.
나는 그분이 봤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이 마지막 게 제일 이상했다.
내 신호가 상대한테 도착했는지를 나는 소리로만 확인한다.
아 네 하는 대답.
버튼 누르는 소리.
숨소리의 변화.
손가락으로 숫자를 만들면 그게 도착했는지 알 수 없다.
발신은 했는데 수신 확인이 없는 상태.
사흘 내내 그 상태였다.
돌이켜보면 나는 목소리를 두 가지로 쓰고 있었다.
하나는 내용을 보내는 목소리다.
그건 누구나 그렇게 쓴다.
다른 하나는 존재를 보내는 목소리다.
여기 사람이 있다는 신호.
두 번째 목소리는 내용이 없어도 된다.
안녕하세요든 죄송합니다든 어 네든 아무거나 된다.
중요한 건 소리가 났다는 사실이다.
목이 쉬니까 첫 번째는 어떻게든 됐다.
문자를 쓰면 되고 천천히 쥐어짜면 됐다.
두 번째가 안 됐다.
존재를 보내는 신호는 짧고 빠르고 반사적이어야 하는데 그게 안 나왔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한테 문자를 보낼 수는 없다.
약국에 갔다.
동네 약국이고 십 년쯤 된 곳이다.
약사 선생님이 나를 알아본다.
"어 목소리가."
나는 손짓으로 목을 가리켰다.
"감기 끝나고 안 돌아오시는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되셨어요."
"사흘."
이 두 음절을 내는 데 숨을 두 번 썼다.
"성대 쉬셔야 하는데 말을 많이 하시는 직업이잖아요."
나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약사 선생님이 뭘 꺼내는 소리가 났다.
"이거 소염제랑 진해거담제인데요. 목소리 빨리 돌아오게 하는 약은 사실 없어요. 붓기 빼주는 거고 나머지는 안 쓰시는 게 약입니다."
"안 쓰는 게."
"네. 말 안 하시는 게 제일 좋은 약이에요."
나는 이 말을 듣고 잠깐 웃었다.
웃는 소리도 제대로 안 나왔다.
약을 받으면서 물었다.
"이거 어떻게 구분해요."
"봉투에 요일이랑 시간 적혀 있는데."
"저는 못 읽어요."
약사 선생님이 아 하고 소리를 냈다.
이 소리를 나는 자주 듣는다.
나쁜 소리가 아니다.
자기가 방금 뭘 놓쳤는지 아는 사람이 내는 소리다.
"제가 봉투를 다르게 접어드릴까요."
나는 잠깐 멈췄다.
"어떻게요."
"아침 건 그냥 두고 점심 건 한 번 접고 저녁 건 두 번 접으면 손으로 아시겠어요."
"아실 것 같은데요."
"그럼 그렇게 해드릴게요."
약사 선생님이 봉투를 접는 소리가 났다.
바스락 소리가 세 종류였다.
이건 지침에 없는 방법이다.
점자도 아니고 음성 안내도 아니다.
그냥 종이 접기다.
그런데 작동한다.
나는 이런 걸 볼 때마다 접근성이라는 말이 오히려 방해가 될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접근성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먼저 떠올리는 게 장비다.
점자 프린터.
음성 안내 기기.
전용 앱.
그런 것들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다.
필요하다.
그런데 그것들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은 손을 놓는다.
우리 가게는 그런 거 없어서요.
이 말을 나는 자주 듣는다.
그런데 오늘 약사 선생님은 종이를 접었다.
장비가 없어서 못 한 게 아니라 방법을 몰라서 안 했던 것뿐이다.
그리고 방법은 대체로 물어보면 나온다.
"이거 어떻게 구분해요."
이 질문 하나에 이분은 삼 초 만에 답을 만들었다.
십 년 동안 아무도 이 질문을 안 했거나 아무도 대답을 안 했거나 둘 중 하나다.
집에 와서 보보한테 그 이야기를 했다.
정확히는 문자로 했다.
목이 안 나오니까 사흘째 문자로 대화하고 있다.
보보가 퇴근하고 와서 물었다.
"오늘 어땠어."
나는 종이에 적었다.
아니 사실은 휴대폰에 적어서 보여줬다.
없는 사람 같았어.
보보가 잠깐 조용했다.
"무슨 뜻이야."
나는 아침에 복도에서 있었던 일을 적었다.
인사를 하려다 못 했고 그분이 그냥 지나갔다는 것.
보보가 그걸 다 읽고 나서 말했다.
"하이데거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자기 경우는 더 직접적이네. 집이 아니라 문이야."
나는 그 말이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집은 안에 있는 거다.
문은 밖으로 나가는 거다.
내 언어는 내 안에 있는 게 아니라 밖으로 나가는 통로다.
그 통로가 막히면 나는 안에 갇힌다.
오늘 아침에 읽은 글이 이 얘기였다.
탈무드에 사람한테 입이 두 개 있다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윗입과 아랫입.
윗입은 말이다.
말로 사람은 공간 속에 자기 자리를 잡고 타인과 관계를 맺는다.
아랫입은 생식기다.
그걸로 사람은 시간 속에 자기 자리를 잡는다.
부모와 자녀라는 관계로 자기 존재를 규정한다.
그러니까 윗입은 공간의 문제를 풀고 아랫입은 시간의 문제를 푼다.
재밌는 건 그 글에 이런 대목이 있다는 것이다.
병을 고치려고 약을 먹더라도 너무 많이 먹지는 말라고.
약이 말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막아서 오히려 병을 키운다고.
이천 년 전 사람이 쓴 문장인데 오늘 약사 선생님이 나한테 한 말이랑 거의 같다.
말 안 하시는 게 제일 좋은 약이에요.
보보한테 이 이야기를 하다가 아랫입 대목이 나왔다.
나는 이 부분을 어떻게 쓸지 사흘 동안 생각했다.
쓰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자주 듣는 말이 있어서다.
우리는 결혼한 지 몇 해 됐고 그래서 사람들이 묻는다.
아이 계획 있으세요.
이건 어느 부부나 듣는다.
무례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나는 이 질문 자체는 별로 신경 안 쓴다.
문제는 그다음에 따라오는 질문이다.
혹시 유전되면 어떡해요.
이 질문은 성격이 다르다.
앞의 질문은 우리한테 하는 질문이다.
뒤의 질문은 나에 대한 질문이다.
정확히는 내가 물려주면 안 되는 것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나는 이 질문에 여러 번 대답해봤다.
의학적으로 대답한 적도 있고 통계로 대답한 적도 있다.
그런데 요즘은 대답을 안 한다.
대답을 하면 그 전제를 받아들이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 질문의 구조가 뭐냐면 이렇다.
당신 같은 사람이 늘어나면 안 된다는 문장을 걱정의 형식으로 바꾼 것이다.
그리고 걱정의 형식을 쓰면 반박하기가 어려워진다.
반박하면 예민한 사람이 되고 안 하면 동의한 사람이 된다.
이건 내가 연구에서 자주 보는 구조다.
배제를 배려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
계단만 있는 건물에서 위험하니까 오지 마시라고 하는 것.
프로그램 신청을 받으면서 안전상 어렵다고 하는 것.
그리고 아이 이야기를 하면서 유전을 걱정해주는 것.
전부 같은 문법이다.
그리고 이 문법의 특징은 대답할 자리를 안 준다는 것이다.
계단만 있는 건물이 위험하다고 말할 때 그 위험은 내가 만든 게 아니다.
건물이 만든 거다.
그런데 문장의 주어는 내가 된다.
유전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물려줄까 봐 걱정된다는 문장의 주어는 나다.
그런데 실제로 걱정되는 대상은 나 같은 사람이 사는 세상이다.
세상을 고칠 생각이 없으면 그 걱정은 나한테 온다.
이게 이 질문이 불편한 진짜 이유다.
질문이 무례해서가 아니라 질문의 주어가 잘못 놓여 있어서다.
보보가 이 얘기를 듣더니 이렇게 말했다.
"근데 그 탈무드 얘기 다시 봐봐."
나는 다시 들었다.
"아랫입이 시간 속에 자리를 잡게 해준다고 했잖아. 자녀를 통해서 부모랑 다른 가치를 구현한다고."
"응."
"그럼 핵심은 유전이 아니라 다름이네."
나는 그 말에 잠깐 멈췄다.
"부모랑 똑같은 걸 물려주는 게 목적이면 그건 복제잖아. 근데 저 글은 부모의 가치와 다른 가치를 구현하는 권능이라고 썼어. 이어지는 게 아니라 달라지는 게 요점이야."
"그러면 유전 걱정은 애초에 방향이 반대네."
"응. 같은 걸 물려줄까 봐 걱정하는 건데 원래 목적은 다른 게 나오는 거야."
나는 그 말이 오늘 들은 것 중에 제일 좋았다.
목이 쉬어서 대답은 못 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탱고 이야기를 해야겠다.
목이 쉬고 나서 제일 걱정한 게 탱고였다.
안내견한테 내리는 지시는 대부분 말이다.
직진 좌회전 우회전 정지 찾아.
이 말들이 안 나오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
첫날은 좀 헤맸다.
소리가 안 나오니까 나는 하네스만 잡고 있었다.
그런데 탱고가 알아서 갔다.
정확히는 알아서 간 게 아니다.
내가 어디로 가려는지 몸으로 알려주고 있었다는 걸 나는 그때 알았다.
발끝 방향.
어깨의 각도.
하네스를 쥔 손의 힘.
멈추기 직전에 미세하게 느려지는 걸음.
탱고는 삼 년 동안 그걸 읽어온 거다.
내 말은 확인용이었을 뿐이다.
사흘째 저녁에 나는 이걸 깨닫고 조금 우울해졌다.
그동안 내가 지시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탱고가 읽고 있었다.
그런데 곧 다르게 생각하게 됐다.
우리는 원래 말로만 대화한 게 아니었던 거다.
윗입이 막혀도 남는 통로가 있었다.
나는 그게 있는 줄 몰랐을 뿐이다.
사흘째 밤에 나는 이 생각을 오래 했다.
탈무드는 입이 두 개라고 했다.
말과 몸.
공간과 시간.
그런데 그 두 개는 사실 한 가지를 하고 있다.
관계를 만드는 일이다.
말로 사람은 옆에 있는 사람과 연결되고 몸으로 사람은 앞뒤 세대와 연결된다.
방향이 다를 뿐이다.
가로로 잇는 입과 세로로 잇는 입.
그리고 두 입 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한다.
말은 듣는 사람이 있어야 말이 되고 몸은 다른 몸이 있어야 몸이 된다.
받는 쪽이 없으면 둘 다 그냥 소리와 살일 뿐이다.
그러니까 이 글이 말하는 두 개의 입은 결국 두 개의 문이다.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문.
목이 쉬어서 사흘 동안 문 하나가 닫혔을 때 나는 그걸 알았다.
문이 닫히면 나는 사라지는 게 아니다.
여전히 여기 있다.
다만 아무도 그걸 모른다.
이게 사라지는 것과 뭐가 다른지 나는 사흘 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저녁에 보보가 물었다.
"목 언제 돌아온대."
나는 손가락 두 개를 폈다.
"이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보가 잠깐 있다가 말했다.
"자기 사흘 동안 말 안 하니까 어때."
나는 휴대폰에 적었다.
내가 평소에 말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알았어.
보보가 웃었다.
"나는 삼 년 전에 알았어."
나는 반박하고 싶었는데 목이 안 나와서 못 했다.
이게 제일 억울한 부분이다.
말이 많은 사람한테서 말을 빼앗으면 그 사람은 논쟁에서 진다.
내용이 없어서가 아니라 통로가 없어서 진다.
이것도 접근성 문제다.
그나저나 보보가 사흘 동안 아주 신이 나 있었다.
평소에는 내가 말을 많이 해서 자기 차례가 늦게 온다고 했다.
이번 주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고 했다.
칸트 이야기를 사십 분 동안 했다고 한다.
나는 사십 분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반박도 못 했다.
목이 돌아오면 사십 분치를 돌려받겠다고 적어서 보여줬다.
보보가 그건 소급이 안 된다고 했다.
탱고가 그 순간 자리를 옮겼다.
나는 탱고의 판단이 늘 옳다고 생각한다.
[비하인드 스토리]
탱고예오.
이번 주에 형 목소리가 안 나와오.
저는 첫날에 좀 당황했어오.
형이 입을 움직이는데 소리가 안 났어오.
저는 형 입 모양을 볼 수 없어오.
저는 소리를 듣는 개예오.
그런데 하루 지나니까 괜찮았어오.
저는 원래 형 목소리로만 다니는 게 아니었어오.
형 발이 먼저 방향을 정해오.
어깨가 그다음에 따라와오.
손이 마지막에 힘을 줘오.
저는 이 순서를 알아오.
말은 그다음에 나와오.
말이 나올 때쯤에는 저는 이미 알고 있어오.
형은 이걸 몰랐대오.
사흘 만에 알았대오.
저는 삼 년 전부터 알고 있었어오.
이걸로 형을 놀리고 싶은데 형이 지금 말을 못 해서 반응이 없어오.
아쉬워오.
약국 선생님이 봉투를 세 가지로 접어주셨어오.
저는 그 소리를 들었어오.
한 번 접는 소리랑 두 번 접는 소리가 달라오.
사람들은 이런 걸 잘 모르는 것 같아오.
P.S. 형이 사흘 동안 조용했어오.
집이 아주 조용했어오.
저는 처음에 좋았어오.
지금은 시끄러운 게 좋아오.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