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의 아키텍처

by김경훈

"선생님 하나 여쭤볼게요."


김순덕 선생님이 우편물을 정리하는 소리가 잠깐 멈췄다.

선생님은 우리 집에 오는 활동지원사다.


"만약에요. 우리가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요. 선생님이 애기 목욕시키는 거 도와주실 수 있어요?"


봉투 넘기는 소리가 다시 나기 전에 잠깐의 정적이 있었다.


"그건 안 돼요."

"안 되는 게 아니라 못 하시는 거예요?"

"둘 다요. 제 업무가 아니에요."


김 선생님은 미안해하지 않았다.

그게 좋았다.


미안해했다면 나는 그걸 개인의 융통성 문제로 이해했을 것이다.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해 줬기 때문에 제도의 문제라는 게 분명해졌다.


그리고 잠시 뒤 이렇게 덧붙였다.

"근데 현장에서는 다들 조금씩 해요. 안 할 수가 없으니까."


이 두 문장 사이가 이 글의 출발점이다.

규정에는 없고 현장에서는 일어나는 일.


이것은 그 짧은 대답 뒤에 있는 문장 하나에 관한 기록이다.

이용자 본인의 활동을 지원한다는 문장.





두 개의 제도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는 이용자 본인의 일상생활과 슬롯활동을 지원하는 제도다.


식사와 이동과 위생과 가사를 돕는다.

그 대상은 이용자 본인이다.


이 문구는 나쁜 뜻으로 쓰인 게 아니다.

활동지원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이 문구는 오히려 보호 장치였다.


가족 전체의 가사도우미로 쓰이지 않도록

그리고 활동지원사가 무한정 확대되는 업무에 시달리지 않도록

지원 대상을 명확히 한정한 것이다.


지금도 그 취지는 유효하다.

김 선생님이 우리 집 저녁 설거지까지 하게 되는 건 옳지 않다.


문제는 그 경계선이 부모 역할 앞에서 어떻게 작동하느냐다.


아이를 안아 욕실로 옮기는 일.

유모차를 접고 펴는 일.

예방접종 때문에 병원에 가는 일.

어린이집 상담에 참석하는 일.


이 중에서 어디까지가 본인의 활동이고 어디부터가 자녀 돌봄인가.


경계가 애매한 정도가 아니다.

사실상 같은 동작이다.


내가 아이를 안고 병원에 가는 일은 나의 이동이면서 동시에 자녀 돌봄이다.

하나의 행위인데 제도는 그걸 두 개로 나눠서 하나만 인정한다.


이런 경계는 현장에서 결국 사람이 판단하게 된다.


그리고 판단을 개인에게 맡기면 두 가지 결과가 나온다.

융통성 있는 사람을 만나면 도움을 받고

원칙적인 사람을 만나면 못 받는다.


같은 제도 안에서 어떤 이용자는 되고 어떤 이용자는 안 되는 상태.


이건 지원하는 쪽에도 좋지 않다.

규정에 없는 일을 하다 문제가 생기면 바카라임은 그 개인에게 간다.


그래서 이 틈은 이용자와 활동지원사 양쪽 모두를 불안하게 만든다.

경계가 애매한 제도의 비용은 늘 현장에 있는 두 사람이 나눠 낸다.


그럼 나머지 하나는 어디서 지원받는가.

아이돌봄서비스가 있다.


그런데 그 제도의 목적은 아동의 돌봄 공백을 메우는 것이다.

부모가 없거나 일하러 나갔을 때 아이를 대신 돌봐 주는 것.


부모가 집에 있는데 부모 역할을 수행하도록 곁에서 보조하는 것은

그 제도의 설계 목적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된다.


활동지원은 나를 지원하고 아이는 지원하지 않는다.

아이돌봄은 아이를 지원하고 내가 부모 노릇 하는 걸 지원하지는 않는다.


부모 역할이라는 행위 자체는 어느 쪽에도 없다.


장애인복지와 아동복지 사이에 틈이 하나 있고

장애인 부모는 정확히 그 틈에 서 있다.





남는 선택지



그 틈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배우자가 한다.

그게 안 되면 친정이나 시댁 부모가 한다.

그것도 안 되면 형제자매가 한다.


국가가 설계하지 않은 영역을 가족이 메운다.


이 구조를 나는 이미 한 번 다뤘다.

활동지원사인 김 선생님이 퇴근하면 자기 아들의 무급 활동지원사가 되는 이야기였다.


같은 구조가 방향만 바꿔서 반복된다.

그때는 자식을 돌보는 부모였고 이번에는 자식을 돌보려는 부모다.


그리고 이 구조의 결과는 늘 비슷하다.

누군가 한 사람이 경력을 접거나 잠을 줄인다.


여기서 조금 이상한 지점이 있다.


지금 이 나라는 저출생을 국가적 위기로 다룬다.

부모급여와 아동수당과 첫만남이용권과 아이돌봄 확대와 육아휴직 개선이 매년 발표된다.

투입된 재정은 수백조 원 규모로 이야기된다.


그 많은 정바카라 목록 안에서

장애인 부모를 전제로 설계된 항목을 나는 찾지 못했다.


낳으라고 말하는 정바카라은 아주 많고

낳은 다음에 키울 수 있게 해 주는 정바카라은 특정한 몸을 기준으로만 있다.


이건 인구 규모로 설명되지 않는다.


저출생 정바카라은 원래 소수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모든 부모를 대상으로 한다.


그런데 그 모든에 장애인 부모가 들어 있는지는 확인된 적이 없다.

장애인 부모가 몇 명인지에 대한 정기 통계조차 잘 보이지 않는다.


세지 않은 사람은 대상 설계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대상 설계에 없으면 예산 항목에도 없다.


이 순서를 나는 이 시리즈에서 여러 번 확인했다.

세지 않는 것에서 시작해 없는 것으로 끝나는 순서.





숫자



육아정바카라연구소가 2025년에 낸 자료가 있다.

장애가 있는 부모의 양육 현실을 다룬 연구다.


몇 가지 숫자가 눈에 남았다.


지적장애가 있는 부모의 73.0퍼센트가

자신의 장애가 자녀의 성장과 발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적장애 부모의 30.2퍼센트는 양육 정보 부족을 문제로 꼽았고

청각장애 부모의 41.1퍼센트는 자녀와의 의사소통 어려움을 꼽았다.


지체장애와 시각장애가 있는 부모들은

주변의 편견과 슬롯적 시선으로 인한 부담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경험했다.


다른 조사에서는 장애인 부모의 52.3퍼센트가 양육에 상당한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고

여성 장애인의 경우 그 비율이 76.9퍼센트였다.


자녀의 교육과 양육 과정에서 차별을 경험했다는 응답은 14.1퍼센트였고

중증장애인의 경우 27.2퍼센트였다.


첫 번째 숫자를 나는 오래 봤다.


73.0퍼센트가 자기 장애가 아이에게 영향을 줄까 걱정한다는 것.


이 걱정이 어디서 오는지 생각해 보면

그건 그 사람의 몸에서 오는 게 아니라 주변에서 온다.


아이가 커서 부모 때문에 불편해지면 어쩌나.

학교에서 놀림받으면 어쩌나.

내가 못 해 주는 게 있어서 아이가 손해 보면 어쩌나.


이 걱정들의 공통점이 있다.

전부 슬롯의 반응을 미리 계산한 걱정이라는 것.


지원이 부족한 슬롯에서 부모의 불안은

자기 능력에 대한 불안이 아니라 슬롯에 대한 예측이 된다.


그리고 이 예측은 대체로 정확하다.


차별을 경험했다는 응답이 중증장애인에게서 27.2퍼센트로 나온다는 건

그 걱정이 과민함이 아니라 관찰이라는 뜻이다.


이 지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장애인 부모에게 필요한 게 심리 상담이나 자신감 회복 프로그램이라는 식의 결론이

가끔 나오는데 순서가 틀렸다.


불안의 원인이 밖에 있으면 밖을 고쳐야 한다.

안을 고치라고 하면 그건 예측이 정확한 사람에게

예측을 틀리게 하라고 요구하는 셈이 된다.





질문의 자리



다른 나라들이 완벽해서 인용하는 게 아니다.

다만 질문이 어디서 시작되는지가 다르다.


스웨덴에서는 장애인 부모를 돌봄이 필요한 장애인으로만 보지 않는다.

부모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시민으로 놓고 시작한다.


그래서 정바카라의 질문이 이렇게 된다.

이 사람이 부모가 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이 사람이 부모 역할을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가정방문 서비스와 부모 교육과 사례관리와 개인 지원이 연결된다.

장애는 부모 역할을 제한하는 이유가 아니라 지원이 필요한 이유로 해석된다.


영국은 지방정부의 욕구 평가에서 부모 역할 수행에 필요한 지원을 검토한다.

필요하면 가사 지원과 이동 지원과 육아 보조 인력을 제공하고

직접예산 제도를 통해 부모가 원하는 지원인을 직접 고용할 수 있게 한다.


이 직접예산이라는 방식이 흥미롭다.


서비스를 정해 놓고 고르게 하는 게 아니라

예산을 주고 그 사람이 자기 상황에 맞게 쓰게 하는 것.


부모 역할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부모는 목욕이 어렵고 어떤 부모는 등하원이 어렵고

어떤 부모는 학교와 소통하는 게 어렵다.


메뉴판 방식으로는 이 다양성을 못 담는다.


물론 직접예산에도 문제는 있다.


예산을 주고 알아서 쓰라고 하면

그 사람이 좋은 지원인을 찾고 계약하고 관리하는 일까지 떠맡게 된다.

그건 그 자체로 상당한 노동이다.


선택권을 준다는 말이 바카라임을 넘긴다는 말이 되는 경우를 우리는 여러 번 봤다.


그래서 직접예산에는 대체로 코디네이터가 따라붙는다.

돈만 주는 게 아니라 그 돈을 쓰는 과정을 함께 설계해 주는 사람.


이 부분이 빠지면 좋은 제도가 부담으로 바뀐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제23조도 같은 방향을 말한다.

장애인이 결혼과 가족생활과 부모 역할에서 비장애인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이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차별하지 말라는 수준이 아니라

부모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 자체를 국가의 바카라임으로 적어 둔 것이다.





특혜라는 말



이 이야기를 하면 특혜라는 단어가 종종 따라온다.


비장애인 부모도 힘든데 왜 장애인 부모만 더 지원하느냐는 것.


그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육아는 누구에게나 힘들고 지금 젊은 부모들의 사정도 좋지 않다.


다만 질문을 이렇게 바꿔 보면 어떨까.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경사로가 특혜인가.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안내가 특혜인가.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이 특혜인가.


대부분은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그것들은 더 주는 게 아니라

같은 곳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만큼을 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장애인 부모 지원도 같은 성격이다.

남보다 좋은 부모가 되게 해 달라는 게 아니라

평범한 부모 노릇을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한 가지 더 짚고 싶다.


이 논의가 자주 막히는 지점은 아이의 이익이라는 말이다.


아이에게 좋은 게 우선 아니냐는 말.

그 말 자체는 맞다.


그런데 그 말이 실제로 쓰이는 방식을 보면

장애인 부모의 양육 능력을 심사하는 쪽으로 자주 흐른다.


지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양육을 평가하면

결과는 언제나 부족으로 나온다.


지원 없이 재고 그 결과로 지원 여부를 정하면

그건 순환이지 평가가 아니다.


아이의 이익을 진짜로 따지려면

충분한 지원이 있는 상태를 기준으로 따져야 한다.


그리고 이건 부모만을 위한 정바카라도 아니다.


지원을 받은 부모는 아이와 안정적인 관계를 만들 수 있고

아이는 자기 가족 안에서 자랄 수 있다.


지원이 없으면 그 가족은 쉽게 위기에 놓이고

그 부담은 결국 아이에게 간다.


그러니까 장애인 부모 양육지원은

장애인복지와 아동복지와 가족정바카라이 만나는 자리에 있는 투자다.


지금 그 자리는 비어 있다.





필요한 것



제도적으로 필요한 건 사실 복잡하지 않다.


첫째는 활동지원과 아이돌봄 사이의 틈을 메우는 새 항목이다.

영아 목욕과 수유 보조와 병원 동행과 등하원 지원과

가정방문형 부모 교육과 양육 코칭과 긴급 돌봄을 포괄하는 지원.


둘째는 활동지원 인정조사에 부모 역할을 반영하는 것이다.


지금의 인정조사는 개인의 신체 기능과 일상생활 수행능력을 중심으로 본다.

그 틀에서 부모 역할은 아예 항목에 없다.


자녀가 몇 살인지 양육 바카라임이 어느 정도인지 장애 유형이 무엇인지에 따라

필요한 시간이 달라진다는 걸 조사에 넣어야 한다.


측정 항목에 없는 필요는 존재하지 않는 필요가 된다.

이건 이 시리즈에서 몇 번이나 반복해 온 이야기다.


셋째는 정보다.


장애인 부모를 위한 육아 정보가 지금 거의 없다.

시각장애가 있는 부모가 아이 체온을 어떻게 확인하는지

청각장애가 있는 부모가 밤에 아이 울음을 어떻게 아는지

이런 것들은 이미 누군가 해내고 있는 일인데 기록으로 잘 안 남는다.


경험은 있고 자료는 없는 상태.

그러면 매번 처음부터 각자 알아내야 한다.


이건 내 전공 쪽 문제이기도 해서 좀 더 말하고 싶다.


정보가 없다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아무도 모른다는 뜻과 아는 사람이 있는데 기록되지 않았다는 뜻.


장애인 육아는 뒤쪽이다.


이미 아이를 키운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은 각자 방법을 찾아냈고

그 방법은 대체로 그 집에서만 쓰이다 사라진다.


이걸 모으는 일은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다.

어려운 건 그걸 모을 이유를 제도가 인정하는 일이다.


장애인 육아 정보를 공적으로 축적한다는 건

장애인이 부모가 되는 것을 정상적인 경로로 전제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정보를 모으는 행위 자체가 이미 하나의 입장이다.





제목: 본인의 아키텍처 혹은 부모 역할은 누구의 활동인가.


이용자 본인의 활동.

이 다섯 글자가 이 글의 전부다.


제도를 만들 때 본인이라는 단어는 대상을 분명히 하기 위해 쓰였다.

그리고 그 명확함이 실제로 많은 것을 지켜 왔다.


다만 사람의 삶은 본인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군가의 배우자가 되고 부모가 되고 자식이 된다.

그 관계 속의 행위들은 본인의 활동이면서 동시에 남을 위한 활동이다.


자립생활 운동이 오래전부터 말해 온 것도 이것이다.

자립은 혼자 사는 능력이 아니라 자기 삶을 스스로 정하는 상태라는 것.


그 정의를 따르면 부모가 되기로 정하는 일도 자립의 일부다.

그리고 그 결정을 실행할 조건이 없으면 결정권은 형식으로만 남는다.


제도가 본인에서 멈추면

그 사람은 개인으로만 지원받고 관계 속의 존재로는 지원받지 못한다.


결론: 우리는 장애인이 아이를 낳을 권리는 인정하게 됐다.

아이를 키울 권리는 아직 제도에 적혀 있지 않다.


낳는 것은 순간이고 키우는 것은 20년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 제도는 앞의 순간까지만 따라온다.


저출생을 걱정하는 나라라면 출산 이후의 삶도 함께 바카라임져야 한다.

그 바카라임의 대상에 어떤 몸까지 포함되는지가

그 나라가 누구를 부모로 상정하고 있는지를 말해 준다.


그나저나 그날 저녁 보보에게 김 선생님 이야기를 했다.

보보가 한참 듣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우리는 미리 알아보고 시작해야겠네.

나는 그게 좀 이상하다고 했다.

아무도 아이 낳기 전에 제도를 먼저 조사하지는 않으니까.

보보가 답했다. 그러니까 그게 문제인 거지.

탱고는 그 대화 내내 소파 아래에서 자고 있었다.

저 녀석은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돌봄 계획이 이미 다 서 있는 구성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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