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호의 아키텍처

by김경훈

햄버거를 먹으러 갔다.


들어가자마자 키오스크 안내 음성이 들렸다.

어서 오세요 주문은 화면에서 해 주세요.


나는 그 옆에 있는 호출벨을 눌렀다.

어디 있는지 아는 집이라 가능했다.


이 문장에 조건이 하나 붙어 있다는 걸 짚어 두고 싶다.

어디 있는지 아는 집.


처음 가는 가게에서는 호출벨을 못 찾는다.

벨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가게에 잘 안 간다.

아는 집만 간다.


이건 취향이 아니라 동선의 문제다.

접근성이 없는 도시에서 사람은 자기 생활 반경을 스스로 줄인다.


직원이 왔다.

메뉴를 읽어 주고 주문을 받고 카드를 대신 꽂아 줬다.

빠르고 친절했다. 3분도 안 걸렸다.


그러니까 그날 나는 아무 문제 없이 햄버거를 먹었다.


만약 그 자리에서 누가 설문지를 내밀고

키오스크와 직원 중 어느 쪽이 편하냐고 물었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직원이라고 답했을 것이다.


이것은 그 대답이 어디에 쓰이는지를 알게 된 뒤의 기록이다.





72.3퍼센트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근거로 든 자료가 있다.


2024년 장애인차별금지법 이행 실태조사 결과다.


시각장애인의 72.3퍼센트와 휠체어 이용자의 61.5퍼센트가

직원을 통한 주문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필요한 지원을 묻는 항목에서는

직원 배치 또는 호출벨 설치를 시각장애인 78.7퍼센트와 휠체어 이용자 64.6퍼센트가 1위로 꼽았다.


이 숫자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했다.


첫째. 맞는 조사다. 나도 그렇게 답했을 것이다.

둘째. 그런데 이 숫자가 왜 저기 쓰이지.


두 번째 생각이 든 이유는 이 숫자가 나온 조사의 이름 때문이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이행 실태조사.


차별이 얼마나 시정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려고 만든 조사다.

그러니까 이 조사의 목적은 진단이다.


진단 자료가 완화의 근거로 인용되면 조사의 성격이 바뀐다.

아픈 곳을 찾으려고 찍은 사진이 수술을 미룰 근거가 되는 셈이다.


정부는 이 결과를 근거로

소상공인 등이 예외적 접근성 개선 조치를 선택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혔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접근 가능한 키오스크를 갖추는 대신

직원을 두거나 호출벨을 달아도 정당한 편의를 제공한 것으로 본다는 것.


당사자가 직원을 선호한다고 했으니 직원으로 갈음하겠다는 논리다.


논리 자체는 매끄럽다.

그런데 나는 이 매끄러움이 좀 불편했다.


이 대목에서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


소상공인의 부담은 실제다.

15평짜리 가게를 혼자 운영하는 사람에게

기기를 통째로 바꾸라는 요구는 가볍지 않다.


정부가 그 현실을 고려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장애계도 그걸 모르지 않는다.


내가 걸린 건 부담을 고려했다는 부분이 아니다.

그 결정의 근거 자리에 당사자 조사가 놓였다는 부분이다.





선호는 어디서 오는가



조사 방법론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 중 하나가 선호 질문이다.


선호는 진공에서 생기지 않는다.

지금 존재하는 선택지들 사이에서 생긴다.


내가 직원 주문을 선호한다고 답할 때

내 머릿속에서 비교되는 건 이 두 가지다.


지금 실제로 겪는 키오스크. 그리고 지금 실제로 겪는 직원.


지금 실제로 겪는 키오스크는 화면을 못 읽고

음성 안내가 있어도 이어폰이 필요하고

메뉴 구조가 복잡하고

시간이 초과되면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것과 사람을 비교하면 당연히 사람이 낫다.


내가 비교하지 못한 게 하나 있다.

잘 만들어진 접근 가능한 키오스크.


써 본 적이 없으니 비교 대상에 넣을 수가 없다.


그러니까 이 조사가 측정한 건 정확히 이것이다.

현재 시장에 있는 키오스크보다 사람이 낫다.


그건 사실이다.

다만 그 문장은 접근 가능한 키오스크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키오스크가 얼마나 못 쓸 물건인지를 증명하는 문장에 가깝다.


같은 데이터로 정반대의 결론을 낼 수 있다.

그리고 어느 쪽 결론을 내느냐는 데이터가 아니라 정바카라 방향이 정한다.





써 본 적 없는 것



이 문제를 정보학에서는 자주 만난다.


이용자에게 어떤 서비스가 필요하냐고 물으면

대체로 지금 쓰는 서비스의 개선판을 말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형태를 요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상상할 근거가 없으니까.


그래서 이용자 조사만으로 설계를 정하면

기존 구조가 그대로 재생산된다.


이용자 조사가 쓸모없다는 말이 아니다.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답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말이다.


지금 무엇이 불편하냐고 물으면 진단이 나온다.

무엇을 선호하냐고 물으면 현재 선택지의 순위가 나온다.


진단은 설계에 쓸 수 있고 순위는 설계에 쓸 수 없다.

그런데 정바카라은 대체로 순위 쪽을 인용한다.

숫자가 깔끔하니까.


만약 이렇게 물었다면 답이 달랐을 것이다.


음성으로 전체 메뉴를 들을 수 있고

이어폰 없이도 쓸 수 있고

화면 높이가 조절되고

시간 초과가 없는 키오스크가 있다면 그걸 쓰시겠습니까.


이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데 이 질문은 하기 어렵다.

그런 물건이 아직 흔치 않아서 응답자가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없는 것에 대한 선호를 묻지 못하는 것.

이게 접근성 정바카라에서 이용자 조사가 갖는 구조적 한계다.


이 한계를 넘는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실제로 만들어서 써 보게 하고 그다음에 묻는 것.

사용성 시험이라고 부르는 절차다.


접근 가능한 기기를 시범 설치하고

당사자가 몇 주 써 본 뒤에 다시 조사하면

그때 나오는 숫자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비용이 든다. 시간도 든다.

설문지 돌리는 것보다 훨씬 번거롭다.


그런데 그 번거로움을 건너뛰고 나온 숫자로

제도의 방향을 정하는 건 순서가 뒤바뀐 일이다.





8명과 4명



이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하는 데는 개인적인 이유가 있다.


몇 해 전 나는 저시력 시각장애 대학생 8명과 비장애 대학생 4명을 대상으로

키오스크 사용성을 평가하는 연구를 했다.


무인 증명서 발급기와 패스트푸드점 키오스크를 실제로 쓰게 하고

제이콥 닐슨의 5가지 사용성 평가 기준으로 측정했다.

학습용이성 효율성 기억용이성 오류방지성 만족도.


결과는 예상 범위 안에 있었다.


작은 글자 크기.

낮은 명도 대비.

물리적 버튼의 부재.

화면 확대와 축소 기능의 부족.


개선 방안도 그만큼 단순했다.

글자를 키우고 대비를 높이고 물리 버튼을 넣고 확대 기능을 붙이고

화면 구성을 일관되게 하고 음성 피드백을 제공할 것.


여기까지가 논문에 들어간 내용이다.


그런데 나는 그 연구를 하면서 다른 것도 봤고

그건 사용성 점수로는 잘 담기지 않았다.





저시력이라는 자리



저시력은 전맹과 다른 자리에 있다.


보이긴 한다.

그래서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전맹인 사람은 화면 앞에서 도움을 요청하기가 차라리 명확하다.

안 보인다고 말하면 상황이 설명된다.


저시력인 사람은 그 말을 못 한다.

안 보이는 게 아니라 잘 안 보이는 것이고

그 상태를 짧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


실험 중에 이런 장면을 여러 번 봤다.


화면에 얼굴을 아주 가까이 붙이면 글자가 읽힌다.

그런데 그 자세는 뒤에서 보면 이상해 보인다.


그래서 참여자들은 그 자세를 잘 안 취했다.

뒤에 사람이 있을 때는 더 안 했다.

안 하면 못 읽고 못 읽으면 아무거나 누르게 된다.


읽을 수 있는 방법을 알면서 쓰지 않는 것.

이건 사용성 문제가 아니라 다른 종류의 문제다.


시간 초과도 그랬다.


확대해서 읽으면 한 화면에 들어오는 글자가 적어진다.

그러면 여러 번 밀어서 읽어야 하고 그만큼 느려진다.


느려지면 시간이 초과되고 화면은 처음으로 돌아간다.

처음으로 돌아가면 다시 확대해야 한다.


정확히 읽으려고 할수록 더 자주 초기화되는 구조였다.


사용성 점수에서 이건 과제 완수 시간으로 기록된다.

숫자로는 그냥 좀 오래 걸린 것이다.


실제로 그 안에서 벌어진 일은

읽기를 포기하는 편이 과제를 완수하는 데 유리한 상황이었다.





잘 쓴다는 것



이런 것들을 보면서 나는 방법론을 하나 더 붙이게 됐다.


사용성 평가는 과제를 마쳤는지를 잘 잰다.

그리고 그 과제를 마치기 위해 무엇을 감수했는지는 잘 재지 못한다.


그래서 현상학적 접근이 필요했다.

경험이 그 사람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묻는 방식.


같은 참여자가 이렇게 말한다.

주문은 했어요.


이 문장은 성공으로 기록된다.


그런데 그 뒤에 이런 말이 붙는다.

근데 뭘 시켰는지는 나와서 확인했어요.


이 두 문장 사이의 간격이 이 글 전체의 주제다.


과제는 완수됐고 이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 간격은 선호 조사에서도 똑같이 사라진다.

호출벨로 주문을 마쳤느냐고 물으면 나는 그렇다고 답하니까.





혼자 먹는다는 것



숫자 이야기를 잠깐 접고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호출벨을 누르고 직원의 도움을 받아 주문하는 일은

실제로 잘 작동한다.

나는 그 방식으로 몇 년째 밥을 먹고 있다.


그런데 그 과정에는 매번 같은 순간이 있다.


메뉴를 읽어 달라고 부탁하는 순간.

뒤에 줄이 있으면 그 줄의 소리를 의식하는 순간.

카드를 다른 사람 손에 건네는 순간.


이 순간들이 견딜 수 없이 괴로운 건 아니다.

익숙해졌고 대부분의 직원은 친절하다.


다만 그 순간마다 나는 손님이 아니라 도움받는 사람이 된다.


혼자 밥을 먹으러 들어간 가게에서

혼자 주문을 마치지 못한다는 것.


이건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조금 다른 종류의 문제다.


호출벨을 눌러 해결되는 건 주문이지 자립이 아니다.


그리고 이 차이는 조사 항목으로 잘 잡히지 않는다.

이용에 어려움이 있었습니까라고 물으면 나는 없었다고 답한다.

실제로 없었으니까.


그 답이 모여서 만족도 통계가 되고

그 통계가 다시 지금 방식으로 충분하다는 근거가 된다.


만족도라는 지표에는 원래 이런 성질이 있다.


기대가 낮으면 만족도가 높게 나온다.

오래 배제되어 온 집단일수록 기대치가 낮다.


그래서 접근성 만족도 조사에서 높은 숫자가 나왔다면

그건 좋은 신호일 수도 있고

그 집단이 요구하는 법을 잊었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두 경우를 구별하려면 만족도 말고 다른 걸 물어야 한다.

무엇을 혼자 할 수 있었는지.





4퍼센트



한편 숫자 쪽은 이렇게 흘러왔다.


국회 자료에 따르면 국내 키오스크는

2021년 약 21만 대에서 2023년 약 53만 6천 대로 늘었다.

2년 만에 155퍼센트 증가다.


같은 기간 접근성 실태조사에서

휠체어 이용자의 접근을 좌우하는 작동부 높이 기준을 충족한 기기는 4퍼센트 수준이었다.


기기는 두 배 반으로 늘었고 쓸 수 있는 기기는 거의 늘지 않았다.


이 두 숫자를 나란히 놓으면 지난 몇 년이 어떤 시기였는지가 보인다.


접근성이 후퇴한 시기가 아니었다.

접근성은 조금씩 나아졌다.


다만 무인화가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그래서 상대적으로는 뒤로 밀렸다.


이게 요즘 접근성 문제의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문을 닫아서 못 들어가는 게 아니라

문이 새로 생기는 속도를 열쇠가 못 따라가는 것.


제도는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으로 키오스크 접근성 의무가 생겼고

2024년 1월 공공기관부터 시작해 단계적으로 적용됐다.

기존에 설치된 기기까지 포함해 올해 1월 28일부터 전면 적용됐다.


정부는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보급사업으로 설치 비용의 상당 부분을 지원하고 있다.

소상공인의 부담을 줄이려는 조치이고 필요한 정바카라이다.


그런데 지원 규모는 연간 수천 대 수준이다.

이미 설치된 수십만 대를 생각하면 속도가 맞지 않는다.


여기서 딜레마가 생긴다.


의무를 그대로 밀면 영세 자영업자가 감당하기 어렵다.

그건 사실이다. 기기 한 대 값이 작은 돈이 아니다.


의무를 완화하면 접근성은 계속 미뤄진다.

이것도 사실이다.


정부는 앞쪽을 걱정했고 장애인단체는 뒤쪽을 걱정했다.

양쪽 다 근거가 있다.


내가 문제 삼고 싶은 건 어느 쪽이 옳으냐가 아니다.

그 결정의 근거로 당사자 선호 조사가 쓰였다는 점이다.


유예 자체가 문제라는 말도 아니다.

현실적인 속도 조절은 어느 정바카라에나 필요하다.


다만 유예에는 두 가지가 붙어야 한다.

언제까지인가. 그때까지 무엇을 준비하는가.


기존 설치 기기의 의무 적용일을 2026년 1월 28일로 잡았던 것처럼

날짜가 명시되면 그건 유예다.


날짜 없이 예외 조치의 범위만 넓히면

그건 유예가 아니라 방향의 변경에 가깝다.


부담이 커서 유예한다고 말하는 것과

당사자가 원해서 그렇게 한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앞의 문장은 언젠가 갚아야 할 빚으로 남는다.

뒤의 문장은 갚을 필요가 없는 것으로 정리된다.


그리고 뒤의 문장에는 한 가지가 더 붙는다.

나중에 이 문제를 다시 제기하는 사람이 자기 집단의 조사 결과와 싸워야 한다는 것.


당사자들이 그렇게 답했는데 왜 또 요구하느냐는 말.

이 말은 반박하기가 꽤 까다롭다.


숫자는 이미 나와 있고 그 숫자를 만든 건 우리다.


그래서 나는 조사에 답할 때 요즘 좀 조심스러워졌다.

내 대답이 어디에 인용될지 모르니까.


이건 건강한 상태가 아니다.

조사 대상이 답을 전략적으로 계산하기 시작하면 그 조사는 이미 망가진 것이다.


조사를 신뢰할 수 있으려면

그 조사 결과가 어떻게 쓰일지에 대한 규칙이 먼저 있어야 한다.





예외와 설계 사이



직원 호출이 나쁜 게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기기가 고장 났을 때. 메뉴가 복잡할 때. 그날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사람에게 물어볼 수 있다는 건 좋은 서비스의 조건이다.


문제는 그게 유일한 방법일 때다.


비장애인 손님도 직원에게 물어본다.

다만 그건 선택이다. 키오스크로도 되고 사람에게도 되니까.


나에게는 선택이 아니다.

호출벨을 못 찾으면 그날 주문은 끝이다.


같은 도움인데 하나는 서비스이고 하나는 유일한 통로다.

그리고 이 차이가 존엄의 차이를 만든다.


한 가지 더 있다.

호출벨과 지원 인력은 사람에게 의존하는 방식이라 변동이 크다.


점심시간에는 직원이 바쁘다.

새벽에는 직원이 없다.

아르바이트가 바뀌면 그 사람은 호출벨이 왜 울리는지 모른다.


기기는 고장 나지 않는 한 어제와 오늘이 같다.

사람은 요일과 시간과 컨디션에 따라 다르다.


지원 인력을 접근성 수단으로 인정한다는 건

그 서비스의 접근성을 매일 달라지는 값으로 두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값이 낮은 날 손해를 보는 건 언제나 같은 사람들이다.


재활공학에서 보조공학을 설명할 때 이런 표현을 쓴다.

사람이 기계에 맞추는 게 아니라 기계가 사람에게 맞추는 기술.


이 정의를 따르면 방향은 분명하다.

접근성 기능을 따로 붙이는 게 아니라 기본 기능으로 넣는 것.


내장형 보조공학이라고 부르는 접근이다.

음성 피드백과 화면 확대와 색 대비 조절과 여러 입력 방식과 촉각 인터페이스를

장애인용 옵션이 아니라 그 기기의 기본 사양으로 두는 것.


그리고 이건 소수를 위한 사양이 아니다.


낮은 화면 높이는 휠체어 이용자만 편한 게 아니라 어린이와 고령자에게도 편하다.

음성 안내는 시각장애인만 쓰는 게 아니라 노안이 온 사람에게도 쓸모가 있다.

시간 초과가 없는 설계는 손이 느린 모두에게 좋다.


지금 우리나라 키오스크 시장에서 이 사양들은 추가 옵션이다.

추가 옵션은 언제나 먼저 빠진다.


이건 제조 쪽 문제이기도 하다.


접근성 기능을 표준 사양으로 넣으면 대량 생산 단가에 녹는다.

옵션으로 두면 소량 생산이 되어 단가가 올라간다.

단가가 오르면 아무도 안 고르고 안 고르니 더 소량이 된다.


그러니까 접근성이 비싼 이유의 상당 부분은

접근성이 옵션이기 때문이다.


의무화가 비용을 올린다는 주장과

의무화가 비용을 내린다는 주장이 동시에 성립하는 지점이 여기다.


단기적으로는 앞이 맞고 몇 년 단위로는 뒤가 맞는다.

그리고 우리 제도는 대체로 단기 쪽만 계산해 왔다.





제목: 선호의 아키텍처 혹은 없는 것을 선호할 수는 없다.


조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72.3퍼센트는 진짜 숫자다.


다만 숫자는 질문의 모양을 그대로 따라간다.

그리고 질문은 지금 존재하는 것들로만 만들어진다.


그래서 선호 조사는 현재를 잘 설명하고 미래를 잘 설명하지 못한다.


한 번도 접근 가능한 키오스크를 써 보지 못한 사람에게

접근 가능한 키오스크가 필요하냐고 묻는 일은

애초에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그 답을 근거로 접근 가능한 키오스크를 만들지 않으면

다음 조사에서도 같은 답이 나온다.


몇 해 전 그 실험에서 나는 참여자들이 과제를 마치는 걸 봤다.

숫자로는 대부분 완수였다.


그 완수의 안쪽을 다시 물었을 때 나온 이야기는 전혀 달랐다.

읽기를 포기해야 완수가 되는 구조였고

사람들은 그걸 자기 눈 탓으로 말했다.


조사는 답을 모으는 일이지만

어떤 답은 질문을 바꾸기 전에는 절대 나오지 않는다.


선호가 현실을 만들고 현실이 다시 선호를 만든다.

이 고리를 끊는 건 조사가 아니라 결정이다.


결론: 도움을 받아 주문을 마치는 것과 혼자 주문을 마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앞의 것은 문제가 해결된 상태이고 뒤의 것은 문제가 없는 상태다.


패스트푸드가 다시 모두에게 빠른 음식이 되는 날은

조리 속도가 빨라지는 날이 아니다.


누구도 호출벨을 먼저 찾지 않아도 되는 날이다.


그나저나 그날 햄버거는 맛있었다.

직원분이 감자튀김 소금 적게 해 드릴까요 하고 먼저 물어봐 줬다.

키오스크에는 그런 옵션이 없다.

사람이 기계보다 나은 지점이 분명히 있고 그건 없어지면 안 된다.

다만 나는 그 친절을 선택해서 받고 싶다.

탱고는 그동안 테이블 밑에서 감자튀김 냄새를 맡으며 참고 있었다.

저 녀석에게는 어차피 어떤 키오스크도 접근 가능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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