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먼저

by김경훈

[가게 기록]


이발소 · 아버지가 40년

나 · 물려받은 지 3년

그 전 직업 · 물류창고

자격증 · 3년 전 취득

의자 · 두 개

현재 상태 · 영업 중



손재주


나는 손재주가 없다.


이건 겸손이 아니라 진짜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미술 시간에 만들기를 하면 항상 제일 못했다.


아버지가 이발소를 하셨는데 나는 한 번도 배울 생각을 안 했다. 아버지도 배우라고 안 하셨다.


물류창고에서 8년 일했다. 무거운 거 나르는 일이다. 그건 손재주가 필요 없다.


3년 전에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뇌졸중이다. 왼쪽이 안 움직이신다. 말씀도 잘 못하신다.


가게를 닫아야 했는데 어머니가 우셨다.


40년 한 가게다.


그래서 내가 학원에 다녔다. 1년 배우고 자격증을 땄다.


1년 배워서 되는 일이 아니다. 그건 나도 안다.


그래도 문을 열었다.



처음 여섯 달


처음에는 진짜 못했다.


손님 머리를 망친 적이 여러 번이다. 어떤 아저씨는 화를 내고 나갔다. 나는 돈을 안 받았다.


밤에 마네킹 머리를 놓고 연습했다. 학원에서 쓰던 거다.


늘긴 늘었다. 그런데 느렸다.


아버지는 한 사람에 20분이었다. 나는 40분이 걸렸다.


손님이 줄었다.


어머니가 그만하라고 하셨다. 아버지 병원비도 있는데 이걸 붙들고 있을 게 아니라고 하셨다.


나도 그만할 생각이었다.


작년 봄까지 그랬다.


그때 아버지한테 한 번 갔다.


가서 혼자 얘기했다. 아버지는 대답을 못 하시니까 나 혼자 얘기했다.


죄송한데 못 하겠다고 했다.


가게를 접겠다고 했다.


아버지가 눈을 감으셨다.


주무시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아니었다.


간호사가 그날 아버지 혈압이 높았다고 했다.


나는 그러고 나왔다.


그다음 주부터 손이 그랬다.



어느 날부터


작년 봄 어느 날이었다.


손님이 앉았고 내가 가위를 들었다.


그다음이 기억이 안 난다.


정신을 차리니까 다 잘라놨다.


무서운 게 아니라 그때는 그냥 어리둥절했다. 사람이 일하다가 멍하니 하는 경우가 있으니까 그런가 보다 했다.


손님이 거울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오늘 잘 나왔네.


시계를 봤다.


18분이었다.


그때까지 내 최고 기록이 35분이다.


그날 이후로 자주 그런다.


일주일에 두어 번쯤이다.


가위를 들면 그다음이 없다. 끝나 있다.


그리고 그런 날은 잘 나온다.



잘 나온다


잘 나온다는 게 뭐냐면 이런 거다.


머리는 자르고 나서 며칠 지나면 티가 난다. 처음엔 다 괜찮아 보이는데 자라면서 모양이 무너진다.


잘 자른 머리는 자라도 모양이 산다.


내가 자른 건 무너진다.


그런데 그런 날 자른 건 안 무너진다.


손님들이 다시 온다.


작년 여름부터 손님이 늘었다.


지금은 아버지 하실 때만큼은 아니어도 먹고는 산다.


어머니가 좋아하신다.


나는 안 좋아한다.


내가 잘해서 그런 게 아니니까 안 좋아한다.



적는 이유


내가 이런 걸 적는 사람이 아니다.


학교 다닐 때 일기 숙제도 안 했다. 글씨도 못 쓴다.


그런데 적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유가 있다.


기억이 안 나는 시간이 늘어난다.


작년 봄에는 한 사람 자를 때 한 번이었는데 요즘은 하루가 통째로 빈 날도 있다.


가게 문 열고 나서 닫을 때까지가 안 난다.


손님이 몇 명 왔는지도 모른다. 돈통을 보면 여덟이나 아홉 명분이 들어 있다.


그날 뭘 먹었는지도 모른다.


배는 안 고프다.


그러니까 먹기는 먹은 것이다.


적어놓으면 나중에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적는다.


지금 이건 손이 안 쓴다. 이건 내가 쓴다.


이건 구별이 된다.



가위


가위가 여러 자루 있다.


아버지 것이 서랍에 있다. 나는 내 것을 쓴다. 학원 다닐 때 산 거다.


작년 여름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아버지 가위를 들고 있었다.


그건 서랍 안쪽에 있다. 천으로 싸서 넣어놨다.


꺼낸 기억이 없다.


다시 넣었다.


그 주에 또 그랬다.


세 번째부터는 그냥 뒀다. 꺼내놓고 쓴다.


아버지 가위는 무겁다. 내 것보다 무겁고 날이 길다.


손에 안 맞는다.


들면 손목이 아프다.


그런데 그런 날은 안 아프다.



순서


이발에는 순서가 있다.


학원에서는 오른쪽부터 배운다. 오른손잡이는 오른쪽부터 시작해서 뒤로 돌아 왼쪽으로 간다.


나는 그렇게 배웠다.


아버지는 왼쪽부터 하셨다.


이건 내가 어릴 때 본 거다. 가게에서 놀면서 봤다.


그때는 그게 다른 방식인 줄도 몰랐다.


지금 나는 왼쪽부터 한다.


정신 차리면 왼쪽부터 해놨다.


한번은 일부러 오른쪽부터 해보려고 했다.


손이 안 갔다.


이건 좀 이상한데 팔이 안 움직인 게 아니다. 움직이는데 오른쪽으로 안 간다. 가려고 하면 왼쪽으로 간다.


세 번 해보고 그만뒀다.


손님을 앉혀놓고 그러고 있을 수는 없다.


집에서도 해봤다.


마네킹 머리를 꺼내서 해봤다.


집에서는 됐다.


오른쪽부터 잘렸다.


가게에서만 안 된다.


정확히는 그 의자 앞에서만 안 된다.


의자가 두 개인데 하나는 아버지가 쓰시던 거고 하나는 내가 새로 놨다.


새 의자에서는 된다.


아버지 의자 앞에서만 안 된다.


그 의자를 안 쓰면 되는데 손님들이 그 의자에 앉으신다.


내가 새 의자 쪽으로 안내를 해도 그 의자에 앉으신다.


앉으시고 나서 아 여기가 편하네 하신다.



집


집에서도 그런다.


이건 작년 겨울부터다.


밥을 먹다가 젓가락질이 달라진다.


나는 젓가락을 좀 이상하게 잡는다. 어릴 때부터 그랬고 어머니가 여러 번 고치려고 하셨는데 안 고쳐졌다.


정신을 차리면 제대로 잡고 있다.


제대로 잡으면 편해야 하는데 안 편하다. 남의 손 같다.


아내가 그걸 봤다.


당신 젓가락질 언제 고쳤어.


나는 대답을 못 했다.


아내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버님이랑 똑같이 잡네.


아내는 아버지 젓가락질을 안다. 명절마다 봤으니까 안다.


그날 밤에 나는 젓가락을 다시 잡아봤다.


원래 방식으로 잡아봤다.


잡혔다.


밥을 못 집었다.


3년 동안 그렇게 먹었는데 못 집었다.



거울


이발소는 거울이 크다.


일하다 보면 자기 모습이 보인다.


작년 가을에 거울을 보다가 멈췄다.


내 자세가 아버지 자세였다.


아버지는 자를 때 왼발을 반걸음 앞으로 내고 몸을 조금 트셨다. 허리가 안 좋으셔서 그렇게 하셨다고 어머니가 그러셨다.


나는 허리가 안 좋지 않다.


그 자세를 하고 있었다.


발을 제자리로 옮겼다.


옮기니까 손이 안 나갔다.


가위가 안 움직였다.


발을 다시 내밀었다.


움직였다.



그 손님들


아무 손님한테나 그러는 게 아니다.


정신을 차려보면 그 손님들이다.


아버지 단골이다.


우리 동네에서 40년 다니신 분들이다. 아버지 쓰러지시고 안 오시다가 작년부터 다시 오신다.


그분들이 앉으면 그렇게 된다.


젊은 손님이 앉으면 안 그런다. 그런 날은 40분 걸리고 나는 땀을 흘린다.


그분들은 오시면 별말을 안 하신다.


거울 보고 앉으시고 다 되면 좋다고 하시고 가신다.


한 분이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자네 아버지 손이네.


내가 아버지한테 배운 적이 없다고 말씀드렸다.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배운 게 아니라 받은 거지.


그러고 나가셨다.


나는 그 말을 무슨 뜻으로 하신 건지 여쭤보지 못했다.


그분들 얘기를 하나만 더 하겠다.


그분들은 예약을 안 하신다.


그런데 겹치지 않는다.


우리 가게는 의자가 두 개고 나 혼자 하니까 한 명씩 받는다. 겹치면 기다리셔야 한다.


3년 동안 그분들이 기다리신 적이 없다.


한 분 끝나면 다음 분이 오신다.


한번은 세어봤다. 앞사람이 나가고 다음 사람이 들어올 때까지 몇 분인지 봤다.


40초쯤이다.


다섯 번 봤는데 다 그쯤이었다.


밖에서 기다리시나 싶어서 나가봤다.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문이 열리고 들어오셨다.


어디서 오셨느냐고 여쭤봤다.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집에서 왔지.


집이 여기서 걸어서 10분이라고 하셨다.



면도


면도는 아직 못 한다.


이건 확실히 못 한다. 무서워서 못 한다.


목에 칼을 대는 일이다. 잘못하면 사람이 다친다.


학원에서 배우긴 했는데 실전에서는 안 한다. 손님이 면도 해달라고 하면 죄송하다고 하고 안 한다.


3년 동안 한 번도 안 했다.


지난달에 한 번 했다.


아버지 단골 중에 제일 오래된 분이 오셨다.


그분이 면도까지 하고 가겠다고 하셨다.


나는 안 된다고 말씀드리려고 했다.


그 말을 하려는데 손이 이미 비누를 개고 있었다.


그다음이 없다.


정신을 차리니까 끝나 있었다.


그분 얼굴이 깨끗했다.


안 베였다.


수건으로 닦아드리는데 손이 안 떨렸다.


그분이 가시고 나서 나는 화장실에 가서 손을 봤다.


떨리고 있었다.


일할 때는 안 떨리고 끝나면 떨린다.


그날 저녁에 면도칼을 꺼내봤다.


아버지 면도칼이다. 접이식이고 손잡이가 뿔이다.


내 얼굴에 대봤다.


거울 앞에서 목에 대봤다.


손이 안 움직였다.


손님한테는 하는데 나한테는 안 한다.


나는 그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다르게 생각하게 됐다.


손이 나를 안 자르는 게 아니라 나를 자를 필요가 없어서 안 하는 것이다.


나는 손님이 아니다.


나는 여기서 다른 것이다.



굳은살


손에 굳은살이 있다.


이발사는 가위를 잡는 자리에 생긴다. 엄지와 약지다.


내 굳은살은 학원 다닐 때 생겼다.


작년 겨울에 자리가 바뀐 걸 알았다.


원래 자리 것은 그대로 있고 다른 데 하나가 더 생겼다.


엄지 뿌리 쪽이다.


이 자리는 가위를 그렇게 잡으면 생긴다. 옛날 방식이다. 요즘은 그렇게 안 잡는다.


아버지가 그렇게 잡으셨다.


아버지 손을 나는 안다. 어릴 때 자주 잡았다.


그 자리에 굳은살이 있었다.


지금 내 손에 있다.


나는 그렇게 잡은 적이 없다.


일부러 그렇게 잡아보려고 하면 안 잡힌다.


정신을 차려보면 그렇게 잡고 있다.


원래 자리 굳은살은 얇아지고 있다.


새로 생긴 게 두꺼워지고 있다.


손은 쓰는 자리에 굳은살이 생기고 안 쓰는 자리는 없어진다.


그러니까 내 손은 요즘 그 방식으로만 쓰인다는 뜻이다.


내가 쓰는 시간보다 그 시간이 길다는 뜻이다.



병실


아버지는 요양병원에 계신다.


한 달에 두어 번 간다.


말씀은 거의 못 하신다. 알아들으시는지도 모르겠다. 눈은 뜨고 계신다.


작년 12월에 갔을 때다.


옆에 앉아 있는데 아버지 오른손이 움직였다.


이불 위에서 움직였다.


처음엔 그냥 경련인가 했다.


보다가 알았다.


가위질이었다.


엄지와 약지가 벌어졌다 오므라졌다 했다.


박자가 있었다.


나는 그걸 안다. 매일 하는 동작이다.


그 자리에서 내 손도 움직였다.


주머니 안에서 움직였다.


같은 박자였다.


나는 손을 꺼내서 반대쪽 손으로 잡았다.


잡고 있어야 멈춘다.


그날 간호사한테 물어봤다.


아버지 손이 자주 저러시느냐고 물었다.


간호사가 이렇게 말했다.


원래는 안 그러세요.


원래는이라는 말이 걸려서 다시 물었다.


간호사가 차트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드님 오시는 날에만 그러시네요.


기록이 있느냐고 물었다.


간병 기록에 적혀 있다고 했다. 환자 상태가 달라지면 적는다고 했다.


내가 온 날짜와 아버지 손이 움직인 날짜가 같았다.


작년 3월부터다.


작년 봄이다.


내 손이 처음 그런 게 작년 봄이다.



어머니


어머니한테 이 얘기를 했다.


다 말씀드리지는 않았다. 손이 저절로 움직인다고만 했다.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아버지도 그랬어.


무슨 말씀이시냐고 여쭤봤다.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아버지도 할아버지 가게 물려받았잖아.


그건 나도 안다. 할아버지도 이발사셨다.


어머니가 이어서 말씀하셨다.


네 아버지가 처음에 못했어. 진짜 못했어.


그러다가 갑자기 잘하게 되셨느냐고 여쭤봤다.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때 네 할아버지가 편찮으셨지.


나는 더 안 여쭤봤다.


여쭤보면 어머니가 우실 것 같았다.


며칠 뒤에 어머니가 먼저 말씀하셨다.


밥을 차려주시면서 이러셨다.


네 아버지가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제일 잘하셨어.


나는 숟가락을 놨다.


어머니가 이어서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40년 하셨지.


내가 여쭤봤다.


아버지가 그거 아셨을까요.


어머니가 한참 계시다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알았겠지.


그러고 이렇게 덧붙이셨다.


말은 안 하셨어.


나는 아버지가 말을 안 하신 게 아니라 못 하신 거라고 생각한다.


말하면 그만둬야 하니까 못 하신 거다.


그만둘 수가 없다.


가게가 있고 식구가 있으니까 못 그만둔다.


나도 지금 그렇다.



어젯밤


어젯밤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새벽에 가셨다.


어머니하고 병원에 가서 절차를 밟았다.


장례는 내일부터다.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날이다.


그런데 아침에 눈이 떠졌다.


옷을 입었다.


가게로 걸어왔다.


왜 왔는지 나도 모르겠다.


문 앞에 서 있다가 열쇠를 꺼냈다.


손이 먼저 꺼냈다.



오늘


문을 열었다.


셔터를 올리고 불을 켜고 수건을 삶았다.


그러고 앉아 있었다.


손님이 올 리가 없다. 오늘 연다고 아무한테도 안 했다.


한 분이 오셨다.


아버지 단골 중에 제일 오래된 분이다. 지난달에 면도해드린 분이다.


그분이 문을 열고 들어오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 여셨네.


나는 아버지 얘기를 하려고 했다.


그 말이 안 나왔다.


대신 앉으시라고 했다.


그분이 앉으셨다.


나는 아버지 가위를 들었다.


지금 여기까지가 기억난다.


이 다음부터는 안 날 것이다.


끝나면 그분이 거울을 보고 좋다고 하실 것이다.


그 뒤에 무슨 말을 하실지는 안다.


지난번에도 하셨다.


자네 아버지 손이네.


이번에는 그 말이 맞다.


가위가 손에 맞는다.


무겁지 않다.


한 가지만 더 적는다.


나는 아들이 하나 있다. 여섯 살이다.


가게에 데려온 적이 몇 번 있다.


그 애가 여기서 논다. 의자를 돌리고 빗을 만지고 그런다.


지난주에 데려왔는데 그 애가 빗을 잡고 있는 걸 봤다.


잡는 자리가 이상했다.


엄지 뿌리로 잡고 있었다.


여섯 살은 그렇게 안 잡는다.


나도 그렇게 못 잡았다. 정신을 차려야 그렇게 잡힌다.


그 애는 그냥 잡고 있었다.


내가 가서 빗을 뺐다.


그 애가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나는 위험하다고 했다.


빗은 안 위험하다.


앞으로 안 데려올 것이다.


데려오면 안 된다.


그런데 어머니가 데려오라고 하신다. 손자 보고 싶다고 하신다.


여기 말고 집에서 보시면 되는데 자꾸 가게로 오라고 하신다.


40년 이 가게에서 사신 분이다.


그것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손님이 앉아 계신다.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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