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인

by김경훈

[관리 기록]


부서 · 지방청 증거물 관리

직무 · 압수물 및 증거물 보관 관리

근속 · 14년

보관 건수 · 4만여 점

문제 · 봉투 1점

현재 상태 · 근무 중



보관실


이 방에는 창이 없다.


온도 18도 습도 45퍼센트로 맞춰져 있다. 종이가 상하고 섬유가 삭으면 안 되니까 그렇게 한다.


선반이 열두 줄이다. 줄마다 층이 여섯이고 층마다 상자가 스무 개쯤 들어간다.


상자 안에 봉투가 있다.


증거물은 봉투에 넣고 봉한다. 봉투 겉에 사건번호와 품목과 압수 일시와 압수자와 봉인자가 적힌다.


봉인은 스티커다. 뜯으면 표가 나게 되어 있다. 뜯고 다시 붙일 수 없다. 붙이면 아래 무늬가 어긋난다.


한 번 봉하면 감정하러 나갈 때나 재판 때만 연다. 열면 개봉 기록이 남는다.


내 일은 세는 것이다.


들어온 것과 나간 것과 남아 있는 것을 맞춘다.


14년 했다.


여기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는 안 본다. 품목명만 본다. 의류. 흉기. 족적. 그런 식으로 적혀 있다.


품목명만 봐도 대충 안다.


그래도 안 본다.


보면 못 센다.


14년 전에 이 자리로 올 때 앞사람이 한 말이 있다.


여기는 물건이 있는 데가 아니라 사건이 있는 데다.


그때는 무슨 말인지 몰랐다.


지금도 잘 모르겠는데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이 방에 4만 점이 있다. 그 뒤에 4만 개보다 적은 수의 사건이 있다. 한 사건에 증거물이 여러 점이니까 그렇다.


사건 하나에 사람이 몇 명씩 붙어 있다.


나는 그 사람들을 안 센다.


봉투를 센다.



재물조사


1년에 한 번 전수 조사를 한다.


상자를 다 꺼내서 봉투를 세고 대장과 맞춘다. 두 달 걸린다.


혼자 안 한다. 둘이 한다. 한 사람이 세고 한 사람이 적는다. 둘이 서명한다.


14년 동안 안 맞은 적이 세 번 있다.


세 번 다 사람 실수였다. 상자를 잘못 넣었거나 대장 기재를 빠뜨렸다.


찾으면 나온다.


2019년에 처음 안 맞았다.


한 점 많았다.


찾았다. 나왔다.


봉투가 있었다.



대장에 없는 것


봉투는 정식 규격이었다.


우리가 쓰는 것이다. 겉면 인쇄도 같고 크기도 같다.


기재란이 다 채워져 있었다.


사건번호가 있었다. 품목이 있었다. 압수 일시가 있었다. 압수자 이름이 있었다. 봉인자 이름이 있었다.


봉인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어긋난 데가 없었다. 한 번도 안 뜯긴 봉인이다.


대장에 그 사건번호가 없었다.


전산에도 없었다.


사건번호를 조회하면 사건이 나와야 한다. 접수 부서와 담당자와 죄명이 뜬다.


조회 결과 없음으로 나왔다.



번호


사건번호는 형식이 있다.


앞이 연도다. 뒤가 접수 일련번호다.


그 봉투 번호를 봤다.


연도가 그해보다 뒤였다.


2019년에 발견했는데 번호는 2020년이었다.


아직 오지 않은 해다.


접수번호도 있었다. 여섯 자리다.


그 자리에서 나는 그게 오타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판단하는 게 제일 편하다.


다음 해에 그 번호를 다시 조회했다.


2020년이 됐으니까 이제 조회가 될 수도 있었다.


조회됐다.


사건이 있었다.


살인이었다.


발생 일자가 그해 3월이다.


내가 그 봉투를 발견한 건 그 전해 11월이다.


넉 달 전이다.


나는 그 사건 자료를 다 읽었다.


읽으면 안 되는 건 아니다. 증거물 관리자는 사건 개요를 본다.


읽었다.


피해자는 서른한 살 여자다.


이름을 여기 적지 않겠다. 그건 그 사람 이름이고 내가 여기 적을 게 아니다.


나는 그 이름을 안다. 안 잊는다.


여섯 명 다 안다.



품목


품목명은 이렇게 적혀 있었다.


단추 1점.


봉투 안이 만져진다. 얇은 봉투라 손끝으로 누르면 안에 든 것 모양이 잡힌다.


단추였다. 지름 1센티미터쯤 되는 것이다. 구멍이 넷인 게 만져졌다.


2020년 그 사건 증거물 목록을 봤다.


단추가 있었다.


피해자 옷에서 떨어진 것이다. 현장에서 수거됐다.


우리 보관실에 그 사건 증거물이 들어와 있다. 정상 절차로 들어왔다.


그 안에 단추가 있다.


그러니까 단추가 두 개다.


하나는 정상 증거물이고 하나는 그 전해에 나타난 것이다.


정상 증거물 쪽 봉투를 눌러봤다.


아무것도 안 만져졌다.


납작했다.



서명


봉인자 이름이 있다고 했다.


내 이름이었다.


압수자 이름은 다른 사람이었다. 우리 청에 없는 이름이다. 확인했다.


봉인자 칸은 내 이름이고 옆에 서명이 있다.


내 서명이다.


나는 서명을 빨리 쓴다. 성 자를 크게 쓰고 나머지를 흘린다. 마지막에 아래로 한 번 긋는다.


그 획이 있었다.


14년 동안 몇만 번 썼다. 내 서명은 내가 안다.


나는 그 봉투를 봉한 적이 없다.



보고


2019년에 상급자에게 보고했다.


정식으로 했다. 문서로 올렸다.


회신이 왔다.


대장 기재 누락으로 판단됨. 해당 물품 별도 보관 후 관련 사건 확인 시 정식 편철할 것.


그러니까 그냥 갖고 있으라는 뜻이다.


별도 보관함에 넣었다.


2020년 3월에 그 사건이 발생했다.


나는 그때 다시 보고를 올렸다.


회신이 왔다.


해당 사건 증거물은 정상 접수되었음. 별도 보관 물품은 사건과의 관련성이 확인되지 않으므로 현행 유지할 것.


그 뒤로 아무도 안 물어봤다.



매년


2020년 재물조사에서 또 한 점 많았다.


봉투가 있었다.


사건번호 연도가 2021년이었다.


품목명이 있었다.


열쇠 1점.


2021년에 그 번호를 조회했다.


살인이었다.


증거물 목록에 열쇠가 있었다.


2021년 재물조사에서 또 한 점 많았다.


2022년도 그랬다. 2023년도 2024년도 그랬다.


여섯 개다.


여섯 건 다 살인이다.


여섯 건 다 미제다.


우리 청 관할에서 그 6년 동안 미제로 남은 살인이 여섯 건이다.


정확히 여섯 건이다.



여섯 건


여섯 건을 다시 봤다.


미제 사건 자료는 우리 부서에서도 볼 수 있다. 증거물을 관리하니까 사건 개요는 열람이 된다.


여섯 건에 공통점을 찾아봤다.


피해자 성별이 다르다. 나이대가 다르다. 발생 장소가 다르다. 시간대가 다르다.


관할 경찰서도 넷으로 갈린다.


수사 기록상 연결점이 없다.


한 가지만 같았다.


여섯 건 다 증거가 부족했다.


수사 보고서에 그렇게 적혀 있다. 결정적 증거 미확보. 그 표현이 여섯 번 나온다.


그리고 여섯 건 다 그 결정적 증거가 무엇이었는지는 적혀 있다.


단추다. 열쇠다. 섬유다. 족적이다. 유리편이다. 모발이다.


현장에서 수거됐고 감정에 넘어갔고 결과가 안 나왔다.


여섯 건 다 감정 불능이었다.


시료 부족 또는 훼손으로 감정 불가.


감정실에서 그렇게 회신했다.


그 증거물들은 우리 보관실에 있다. 지금도 있다.


꺼내서 무게를 재봤다.


여섯 개 다 3그램이었다.


봉투만 3그램이다.


안에 아무것도 없다.



별도 보관함


여섯 개를 한 상자에 넣어뒀다.


캐비닛 아래 칸에 있다. 열쇠는 내가 갖고 있다.


작년에 한 가지를 확인했다.


무게를 쟀다.


여섯 개 다 12그램이었다.


단추가 12그램이고 열쇠가 12그램이고 나머지 넷도 12그램이다.


단추와 열쇠는 무게가 다르다. 단추는 1그램도 안 나간다.


봉투 자체가 3그램이다.


봉투를 빼면 9그램이다.


여섯 개 다 9그램이다.


품목이 다 다른데 무게가 같다.


12그램은 어디서 본 숫자다 싶어서 찾아봤다.


성인 손톱 열 개 무게가 그쯤이다.


그건 인터넷에 나오는 숫자고 정확한 건 아니다.


나는 왜 그걸 찾아봤는지 모르겠다.



출입 기록


보관실은 출입 통제 구역이다.


카드를 대야 열린다. 누가 언제 들어왔고 언제 나갔는지 다 남는다.


우리 부서에서 카드가 있는 사람은 넷이다.


재물조사에서 봉투가 나온 날들을 뽑았다.


여섯 번 다 그 전날 밤에 출입 기록이 있었다.


시각이 같았다.


밤 11시 20분 입실.

밤 11시 47분 퇴실.


27분이다.


여섯 번 다 27분이다.


출입자는 나였다.


내 카드 번호가 찍혀 있다.


나는 야근을 안 한다. 14년 동안 밤 11시에 청사에 있었던 적이 몇 번 없다. 있으면 기억한다.


여섯 번 다 그날 저녁에 나는 집에 있었다.


아내한테 물어볼 수도 있었다.


안 물어봤다.


물어보면 아내가 왜 그런 걸 묻느냐고 할 것이고 그러면 설명을 해야 한다.


설명할 말이 없다.


시디브이도 봤다.


보관실 앞 복도에 카메라가 있다.


여섯 번 다 그 시각 영상이 없었다.


파일이 없는 게 아니라 그 27분만 없다. 앞뒤는 있다.


정보화 담당한테 물었다.


그런 식으로는 안 지워진다고 했다. 지우려면 통째로 지워야 한다고 했다.



개봉


작년 12월에 하나를 열었다.


이건 규정 위반이다. 개봉하려면 절차가 있고 입회자가 있어야 한다.


혼자 열었다.


첫 번째 것을 열었다. 2019년에 나온 단추다.


봉인을 뜯었다. 아래 무늬가 어긋났다. 이제 다시 못 붙인다.


안을 봤다.


비어 있었다.


봉투를 흔들었다. 아무것도 안 나왔다.


뒤집어서 털었다.


아무것도 없다.


저울에 다시 올렸다.


12그램이었다.


빈 봉투가 12그램이다.


새 봉투를 꺼내서 재봤다. 3그램이다.


같은 규격 같은 재질이다.


나는 그날 그 봉투를 원래 자리에 넣고 캐비닛을 잠갔다.


일주일 뒤에 다시 열어봤다.


봉인이 붙어 있었다.


어긋난 데가 없었다.


내가 뜯은 자리다. 뜯으면 아래 무늬가 어긋난다고 했다. 그게 이 스티커를 쓰는 이유다.


안 어긋나 있었다.


무게를 쟀다.


12그램이다.


손끝으로 눌러봤다.


단추가 만져졌다.



감정


올해 2월에 감정을 의뢰했다.


정식으로는 못 한다. 사건번호가 있어야 의뢰가 되니까 그렇다.


아는 사람에게 부탁했다. 감정실에 후배가 있다.


봉투 안쪽을 면봉으로 훑어서 줬다.


시료 채취 목적을 안 물어봤다. 그 친구는 원래 안 묻는다.


일주일 뒤에 연락이 왔다.


디엔에이가 나왔다고 했다.


누구냐고 물었다.


그 친구가 잠깐 말을 안 했다.


그러고 이렇게 말했다.


선배 이거 데이터베이스에 있는데요.


누구냐고 다시 물었다.


선배예요.


우리는 직원 디엔에이를 등록해둔다. 현장에 들어가면 오염이 생기니까 배제용으로 등록한다. 14년 전에 등록했다.


내 것이 나왔다.


내가 그 봉투를 만졌으니까 나올 수 있다. 그건 맞다.


내가 그렇게 말했다.


그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바깥이면요. 근데 안쪽이잖아요.


봉인 안 뜯긴 봉투 안쪽이잖아요.


나는 뜯었다고 말 안 했다.


그 친구는 내가 뜯었는지 모른다.


여섯 개 중에 하나만 뜯었다. 시료는 다섯 개에서도 뽑았다.


다섯 개는 안 뜯긴 것들이다.


다섯 개 다 나왔다.


그 친구가 이틀 뒤에 다시 연락했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달랐다.


선배 그거 어디서 났어요.


말 안 했다.


그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제가 그거 하나 더 돌렸어요. 미제 데이터베이스에 걸어봤어요.


걸렸느냐고 물었다.


여섯 건에 걸렸어요.


여섯 건 다 미제 살인이라고 했다.


각 사건 현장에서 나온 미확인 시료하고 일치한다고 했다.


그 시료들은 원래 감정 불능이었다고 했다. 양이 모자라서 결과가 안 나온 것들이다.


이번에는 나왔다고 했다.


여섯 건 다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나라고 했다.


그 친구가 마지막에 이렇게 물었다.


선배 저 이거 정식으로 올려야 되는데요.


올리라고 했다.


두 달 지났다. 아무 연락이 없다.


그 친구는 지금 다른 청으로 갔다. 인사 발령이 났다.


내 전화를 안 받는다.



여섯 날


여섯 건 발생 일시를 뽑았다.


그날 내가 어디 있었는지 확인했다.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근무 기록이 있고 출입 기록이 있고 카드 사용 내역이 있다.


여섯 건 중 넷은 근무 중이었다.


청사 안에 있었다. 출입 기록이 있고 업무 처리 기록도 있다. 그 시각에 전산에 접속해서 대장을 수정한 이력이 남아 있다.


두 건은 휴일이었다.


한 건은 아내와 처가에 있었다. 사진이 있다.


한 건은 혼자 집에 있었다.


그 한 건만 증명이 안 된다.


여섯 건 중 다섯 건은 내가 다른 데 있었다는 게 기록으로 남아 있다.


기록이 있는데도 디엔에이가 나온다.


두 가지 중 하나다.


기록이 틀렸거나 감정이 틀렸다.


나는 14년 동안 기록을 관리했다.


기록은 잘 안 틀린다.


그건 내가 제일 잘 안다.



올해


올해 재물조사가 지난주에 끝났다.


한 점 많았다.


일곱 번째다.


사건번호 연도가 내년이다.


품목명을 봤다.


품목명 칸이 비어 있었다.


여섯 개는 다 적혀 있었다. 단추. 열쇠. 섬유. 족적. 유리편. 모발.


일곱 번째만 비어 있다.


압수 일시 칸도 비어 있다.


압수자 칸도 비어 있다.


봉인자 칸에 내 이름이 있다.


서명이 있다.



오늘


지금 이 봉투가 내 바카라상 위에 있다.


손끝으로 눌러봤다.


안에 든 것이 만져진다.


여섯 개는 다 얇았다. 단추도 열쇠도 얇다. 봉투가 납작했다.


이건 두껍다.


봉투가 불룩하다.


무게를 쟀다.


12그램이다.


이 크기에 12그램이 나올 수가 없다.


내년 사건번호를 조회해봤다. 아직 안 나온다. 내년이 안 왔으니까 그렇다.


접수 일련번호는 있다.


그 번호를 나는 계산해봤다.


우리 청 연간 접수 건수로 보면 그 번호는 대략 2월 중순이다.


지금 12월이다.


두 달쯤 남았다.


여섯 번은 다 발생한 뒤에 알았다.


이번에는 미리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품목명이 없으면 뭘 찾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봉인자 칸에 내 이름이 있다는 것만 안다.


캐비닛에 넣고 잠갔다.


열쇠는 내가 갖고 있다.


한 가지를 더 적어둔다.


여섯 개는 다 발생 전에 나타났다. 그건 확인했다.


나타난 시점과 발생 시점 사이가 넉 달에서 다섯 달이다.


그 사이에 나는 아무것도 안 했다.


몰랐으니까 안 했다.


이번에는 두 달 남았고 나는 알고 있다.


알고 있는데 할 수 있는 게 없다.


품목명이 비어 있으니까 무엇을 막아야 하는지 모른다.


접수 일련번호로 시기만 안다.


경찰은 그런 걸로 못 움직인다.


나는 14년 동안 서류를 만들었다. 어떤 서류가 움직이고 어떤 서류가 안 움직이는지 안다.


이건 안 움직이는 쪽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 있다.


두 달 동안 아무 데도 안 가는 것이다.


집하고 청사만 다니고 밤에는 안 나가고 아내 옆에 있는 것이다.


그러면 여섯 번처럼 안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여섯 번 중에 넷은 내가 청사에 있을 때였다.


이 방 안에 있을 때였다.


지금 밤 11시 18분이다.


나는 오늘 야근을 안 했다.


집에 왔고 아내는 자고 있다.


방금 청사 출입 시스템에 접속해봤다.


내 카드가 방금 찍혔다.


11시 2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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