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흔드는 데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이 사실을 나는 택시를 기다릴 때마다 떠올린다.
기사가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면 그건 나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과 같다.
경적을 울리거나 창문을 내리고 부르거나 전화를 걸어야 비로소 사건이 된다.
그날은 전화가 왔다.
"고객님 저 도착했는데요. 길 건너편입니다. 바로 건너편이니까 오시면 됩니다."
바로 건너편.
나는 그 말을 5년쯤 들어 왔다.
그리고 그 말의 뜻을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것은 이동약자 교통서비스에서 쓰이는 몇 개의 단어를 다시 정의해 본 기록이다.
정의를 다시 쓰는 일은 정보학의 오래된 업무다.
사전을 만들고 분류표를 짜고 용어의 범위를 정하는 일.
바깥에서 보면 한가한 작업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어떤 단어의 범위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그 안에 들어가는 사람과 밖에 남는 사람이 갈린다.
그리고 밖에 남은 사람은 대체로 자기가 왜 밖에 있는지도 모른다.
도착이라는 단어도 그렇다.
지금 그 단어의 정의 안에 나는 들어가 있지 않다.
바로
교통약자 콜택시를 부르고 봉무공원 근처에서 기다리던 오후였다.
탱고가 옆에 앉아 있었고 배차 문자가 온 지 12분이 지나 있었다.
전화를 받고 나는 물었다.
"건너편 어디쯤이세요?"
"바로 앞이요. 저 보이시죠?"
보이시죠.
그 말에 악의는 없다.
기사분들은 하루에 수십 명을 태우고 대부분은 그 말이 통한다.
나는 앞이 안 보인다고 말했다.
잠깐 침묵이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그러면 제가 갈까요?"
이건 좋은 반응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기사분들은 이렇게 답한다.
문제는 이 대화 자체가 매번 새로 시작된다는 것이다.
호출 시스템에는 내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정보가 등록되어 있다.
안내견 동반 여부도 등록되어 있다.
그런데 그 정보가 기사에게 어떤 형태로 전달되는지 나는 모른다.
전달됐다면 보이시죠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정보를 등록하는 것과 그 정보가 필요한 사람에게 닿는 것은 다른 일이다.
등록은 우리 쪽에서 하고 전달은 시스템이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스템에서 이 두 단계 사이가 가장 얇다.
접수 화면에는 칸이 있는데 배차 화면에는 그 칸이 없는 경우가 많다.
있어도 기사가 운전 중에 볼 수 있는 위치가 아닌 경우가 많다.
그러면 결국 그 정보는 통화로 다시 전달된다.
내 입으로.
바로라는 말의 실제 뜻은 이렇다.
말하는 사람의 몸을 기준으로 가까운 거리.
그리고 이 정의에는 듣는 사람이 빠져 있다.
건너편
나에게 건너편은 두 가지 문제다.
하나는 어디로 건너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건넌 다음에 차를 어떻게 찾느냐는 것이다.
횡단보도까지 가려면 방향을 알아야 하고
음향신호기가 있는 횡단보도인지도 알아야 한다.
없으면 사람이 건너는 소리를 듣고 따라 건넌다.
비 오는 날에는 그 소리가 잘 안 들린다.
건너고 나면 차가 어디 있는지 다시 찾아야 한다.
차는 계속 조금씩 움직인다.
뒤차가 오면 앞으로 빼고 신호가 바뀌면 조금 나간다.
그래서 전화를 계속 켜 둔 채로 건넌다.
지금 몇 미터쯤이요. 조금만 더요. 아 지나치셨어요.
이 통화에는 묘한 긴장이 있다.
상대는 미터로 말하고 나는 걸음으로 듣는다.
5미터라고 하면 나는 대략 일곱 걸음쯤으로 바꾼다.
그런데 사람마다 5미터의 감각이 다르다.
운전석에서 보는 5미터와 서 있는 사람의 5미터가 다르고
차 안에서 보면 옆 차선 하나가 통째로 빠져 있는 경우도 있다.
거리를 말로 옮기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번역이다.
그리고 그 번역이 틀리면 차도 한가운데서 멈추게 된다.
휠체어 이용자에게 이 건너편은 완전히 다른 무게다.
높은 턱이 있고 경사가 있고 불법 주정차 차량이 있고 보도가 끊겨 있다.
보행신호는 짧고 전동휠체어에는 배터리 잔량이 있다.
비가 오면 조작부가 젖고 눈이 오면 바퀴가 헛돈다.
실제 거리 환경에서 승하차 위치 선택을 조사한 연구가 있다.
휠체어와 보행보조기구 이용자 25명에게 접근 가능한 경로를 안내했더니
67퍼센트가 도로를 건너는 경로 대신 주차장 쪽 경사로를 이용하는 지점을 선택했다.
전동휠체어 이용자는 전원이 그랬고 수동휠체어 이용자는 79퍼센트가 그랬다.
여러 번 도로를 건너야 하는 선택지를 고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표본은 작다.
그래도 이 결과가 말해 주는 건 분명하다.
장애인은 가까워 보이는 곳을 고르지 않는다.
안전하게 닿을 수 있는 곳을 고른다.
그 둘은 자주 다른 장소다.
한 가지 더 있다.
건너편으로 가는 동안 나는 계속 늦고 있다는 걸 안다.
기사분은 기다리고 있고 뒤에는 다음 배차가 있고 미터기는 돌고 있다.
그러면 걸음이 빨라진다.
빨라진 걸음은 안 그래도 위험한 길에서 더 위험해진다.
이게 이 상황의 가장 나쁜 부분이다.
가장 조심해야 할 사람이 가장 서두르게 되어 있다는 것.
서두르지 말라고 말해 주는 기사분들도 있다.
그 한마디가 실제로 걸음을 늦춘다.
그러니까 이건 심리의 문제이기도 하고 그래서 말로 상당 부분 해결된다.
건너편이라는 말의 실제 뜻은 이렇다.
지도에서는 20미터이고 몸으로는 알 수 없는 거리.
그리고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거리.
도착
이 단어가 이 글의 핵심이다.
시스템에서 도착은 차량이 호출 좌표 근처에 정차한 시점을 뜻한다.
그 순간 기록이 남고 대기시간 집계가 끝나고 서비스 품질 지표가 계산된다.
그런데 이용자에게 도착은 다른 시점이다.
내가 그 차에 안전하게 탄 순간이다.
이 두 도착 사이에 시간이 있다.
그날 나에게는 6분이었다.
휠체어 이용자에게는 더 길 수 있고 어떤 날에는 아예 닫히지 않는다.
문제는 그 6분이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스템 로그에는 정시 도착으로 남는다.
이런 걸 정보학에서는 지표와 현상의 어긋남이라고 부른다.
측정 가능한 것을 측정하다 보면 어느새 측정 가능한 것만 관리하게 되는 현상.
차량이 좌표에 도착한 시각은 자동으로 기록된다. GPS가 알아서 찍는다.
승객이 실제로 탄 시각은 아무도 안 찍는다. 찍을 장치가 없으니까.
그래서 앞의 숫자는 매달 보고서에 올라가고 뒤의 시간은 아무 데도 안 올라간다.
그리고 보고서에 없는 시간은 개선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건 기술의 한계가 아니다.
탑승 완료 버튼 하나면 끝나는 문제다.
다만 그 버튼을 만들려면 도착의 정의를 먼저 바꿔야 한다.
미국에서는 장애인법에 따른 보완적 교통서비스를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의 서비스로 규정한다.
차량이 도로변에 서면 바카라임이 끝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장애 특성이나 날씨나 턱 같은 물리적 장벽 때문에 출입구와 차량 사이를 이동하기 어려우면
필요한 범위에서 도로변을 넘어선 지원을 하도록 되어 있다.
물론 무제한은 아니다.
운전자나 다른 사람의 안전을 위협하는 지원까지 요구하지는 않는다.
핵심은 무조건 문 앞에 대라는 게 아니라
이용자가 실제로 이동을 완성할 수 있는지를 개별적으로 판단하라는 것이다.
런던의 다이얼 어 라이드도 비슷한 방향이다.
이용자가 앱에 선호하는 승하차 주소와 접근성 관련 요구를 저장해 둘 수 있고
차량 위치와 도착 예정시간 변경을 전달받는다.
승하차 장소를 지도 좌표가 아니라 이용자의 접근성 정보와 함께 관리한다는 뜻이다.
도착이라는 말의 실제 뜻은 이렇다.
차가 멈춘 순간이 아니라 사람이 탄 순간.
그리고 지금 우리 시스템은 앞의 정의를 쓰고 있다.
미탑승
이 단어가 가장 아프다.
차량이 반대편에 도착하고 이용자가 그리로 갈 수 없으면 어떻게 되는가.
시간이 지나면 배차가 취소된다.
그리고 그 기록은 이용자 쪽에 남는다.
미탑승. 혹은 승객 사정에 의한 취소.
이게 반복되면 페널티가 붙는 지역도 있다.
그리고 페널티가 아니어도 사람은 위축된다.
다음에 부를 때 미안한 마음으로 부르게 된다.
기록이 잘못 남으면 바카라임의 방향이 뒤집힌다.
차량이 접근 불가능한 곳에 선 것이 원인인데
기록에는 이용자가 안 탄 것으로 남는다.
이건 앞서 다른 글에서 썼던 것과 같은 구조다.
이동의 문제가 개인의 이력으로 기록되는 것.
그리고 이 기록은 조용히 사람을 바꾼다.
몇 번 그런 일을 겪고 나면 여유 시간을 늘려서 부른다.
1시간 일찍 부르고 1시간 일찍 나가서 기다린다.
그러면 미탑승은 줄어든다. 통계는 좋아진다.
그 대신 하루에서 2시간이 사라진다.
그 2시간은 어느 통계에도 안 잡힌다.
개인이 알아서 흡수한 비용이니까.
접근성이 부족한 슬롯에서 장애인의 하루가 짧은 이유가 여기 있다.
게을러서가 아니라 완충 시간을 계속 쌓아야 해서 그렇다.
미탑승이라는 말의 실제 뜻은 이렇다.
탈 수 없었던 사람이 안 탄 사람으로 기록되는 일.
기사의 사정도 있다
이 글을 쓰면서 조심하고 싶은 게 있다.
기사분들에게 무조건 문 앞에 대라고 요구하는 글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일방통행이 있고 공사 구간이 있고 불법 주정차 차량이 줄지어 서 있다.
승강설비를 펼치려면 공간이 필요한데 그 공간이 없는 곳이 많다.
요청대로 세우는 것이 다른 차량과 승객의 안전을 위협하는 경우도 있다.
장애인 당사자들도 그걸 모르지 않는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 아무 데나 무조건 세워 달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요구는 훨씬 단순하다.
못 세우면 미리 전화해서 같이 정하자는 것.
건너편에 도착해 놓고 오시면 됩니다라고 하는 것과
지금 그쪽에 못 대는데 어디가 편하시냐고 묻는 것.
이 두 문장 사이에 서비스의 전부가 들어 있다.
앞의 문장은 바카라임을 넘기고 뒤의 문장은 바카라임을 나눈다.
그리고 뒤의 문장에는 시간이 3초쯤 더 든다.
우버와 리프트를 이용한 휠체어 사용자 조사에서
전동휠체어 이용자의 평균 대기시간은 33분이었고 접이식 휠체어 이용자는 17분이었다.
응답자의 37퍼센트가 운전자에게 적어도 가끔은 승차를 거절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런데 이용자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꼽은 개선바카라은 차량 증차가 아니었다.
운전자의 장애 이해와 응대 교육이었다.
숫자보다 대화가 먼저라는 뜻이다.
교육이라는 말도 조심해서 써야 한다.
장애 이해 교육이라고 하면 대체로 장애 유형별 특성을 설명하는 강의가 된다.
그런 강의를 몇 시간 듣는다고 현장이 바뀌지는 않는다.
기사분들에게 필요한 건 장애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몇 개의 문장이다.
못 세울 것 같으면 도착 전에 전화한다.
보이시죠 대신 지금 어느 쪽이 편하시냐고 묻는다.
위치를 바꾸기 전에 이용자에게 먼저 말한다.
안내견은 좌석 발밑에 앉는다.
네 문장이면 오늘 내가 겪은 일의 대부분이 사라진다.
그리고 이 네 문장은 교육보다 배차 화면 한 줄로 전달하는 편이 훨씬 빠르다.
101.4퍼센트
국토교통부 2023년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교통약자는 약 1586만 명이다.
그리고 특별교통수단 차량은 법정 기준 대비 101.4퍼센트까지 확보됐다.
기준을 넘겼다.
이건 오랫동안 요구해 온 결과이고 분명한 진전이다.
그런데 이 숫자와 내가 봉무공원 앞에서 보낸 6분 사이에는 아무 관계가 없다.
차가 부족해서 생긴 6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관리하는 지표는 차량 대수와 대기시간이다.
관리하지 않는 지표가 있다.
접근 가능한 위치에 도착했는가.
이 지표가 없으니 개선할 대상도 없다.
측정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다루어진다.
호출 앱에서 도로의 어느 쪽인지 건물의 어느 출입구인지 경사로가 어디 있는지를
이용자가 미리 지정할 수 있어야 한다.
지정 장소에 못 세우면 바꾸기 전에 이용자와 협의하도록 해야 한다.
같은 장소에서 문제가 반복되면 그곳에 안전한 승하차 구역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차량이 반대편에 서서 늦어진 걸 승객의 지각으로 처리하면 안 된다.
전부 큰 예산이 드는 일이 아니다.
대부분은 데이터 항목 하나와 통화 한 번의 문제다.
그런데 예산이 안 든다는 게 오히려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차량 20대 증차는 사업이 된다. 예산 항목이 생기고 담당자가 붙고 성과가 보고된다.
호출 화면에 출입구 선택란을 넣는 일은 사업이 아니다.
그건 시스템 개선 요청 목록의 47번쯤에 적혀 있다가 예산 심의 때 제일 먼저 지워진다.
작고 결정적인 개선이 늘 뒤로 밀리는 이유는 효과가 없어서가 아니다.
자랑할 사진이 안 나와서다.
제목: 건너편의 아키텍처 혹은 도착이라는 말에 대하여.
이동권 논의는 오랫동안 숫자로 이루어져 왔다.
저상버스 몇 대 특별교통수단 몇 대 법정 기준 몇 퍼센트.
그 숫자들이 필요했고 그걸 만드느라 많은 사람이 오래 싸웠다.
그런데 그 숫자가 채워진 다음에도 나는 여전히 길 건너에서 전화를 받는다.
차는 왔다. 나는 못 탄다.
그리고 시스템은 그 차가 도착했다고 기록한다.
도착이라는 단어의 정의가 시스템과 사람 사이에서 어긋나 있는 한
차를 아무리 늘려도 그 어긋남은 그대로 남는다.
정의를 바꾸는 일은 예산이 거의 들지 않는다.
그런데 정의가 바뀌면 측정이 바뀌고 측정이 바뀌면 관리가 바뀐다.
그래서 나는 이런 단어들을 계속 붙잡고 있는 것이다.
결론: 장애인이 요구하는 건 특별대우가 아니다.
호출한 차를 자기가 실제로 탈 수 있는 곳에서 만나게 해 달라는 것이다.
비장애인에게 도로 반대편은 몇 걸음이다.
어떤 사람에게 그 몇 걸음은 오늘의 외출을 포기하게 만드는 거리다.
차량의 도착은 지도 위 좌표에 멈추는 순간이 아니다.
승객이 안전하게 그 차에 올랐을 때다.
이 작은 차이를 이해하는 데서 이동권은 시작된다.
그나저나 그날 결국 기사분이 유턴해서 이쪽으로 왔다.
차에 타면서 죄송하다고 했더니 기사분이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제가 죄송하죠 몰랐습니다.
나는 그 말이 좋았다.
몰랐다는 말은 이제 알았다는 뜻이니까.
탱고는 뒷좌석 발밑에서 늘 그렇듯 얌전히 엎드렸다.
기사분이 개가 이렇게 조용하냐고 놀라셨다.
6분 기다리는 동안 이미 지칠 대로 지쳐서 그런 거였는데 나는 그냥 원래 점잖다고 했다.
저 녀석 체면도 좀 세워 줘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