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보가 태워다 주겠다고 했다.
차로 가면 2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였다.
나는 버스로 가겠다고 했다.
오늘 가는 자리가 접근성 관련 자문회의였기 때문이다.
접근성을 논의하러 가면서 그 자리까지 가는 길을 안 겪어 보는 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결과부터 말하면 나는 회의에 15분 늦었다.
그리고 그날의 여정에서 규정을 위반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이것은 모든 구간이 기준을 통과했는데 전체가 실패한 어느 여정의 기록이다.
08시 42분 집
현관에서 탱고 하네스를 채웠다.
가기 전에 회의 참석 확인을 해야 했다.
전날 문자로 링크가 왔고 온라인으로 참석 여부를 체크하는 시스템이었다.
화면 낭독기로 페이지를 열었다.
제목이 읽혔고 안내 문구가 읽혔고 참석 버튼이 읽혔다.
여기까지는 문제없었다.
버튼을 누르니 본인인증 단계로 넘어갔다.
간편인증을 선택했다.
그다음 화면에서 낭독기가 말했다.
이미지.
인증서 선택 화면의 버튼들이 전부 이미지로 되어 있었다.
대체 텍스트가 없었다.
그 사이트는 웹 접근성 인증 마크가 붙어 있는 사이트였다.
붙어 있는 게 거짓말은 아니다.
인증은 사이트 본체를 대상으로 받는다.
본인인증 모듈은 외부 업체 것이고 그건 심사 범위 밖이다.
결국 보보를 불렀다.
보보가 화면을 보고 눌러 줬다.
이건 사실 아주 흔한 구조다.
접근성 심사는 대체로 사이트 단위로 이루어지고
결제와 인증과 지도와 챗봇은 대부분 외부 모듈이다.
그리고 사람이 막히는 지점은 거의 언제나 그 외부 모듈이다.
본체는 통과하고 이음새에서 막힌다.
아침 8시 42분에 이미 오늘의 주제가 다 나와 있었던 셈이다.
이 구간의 규정 위반: 없음.
09시 05분 정류장
집 앞 정류장까지는 점자블록이 잘 깔려 있다.
발끝으로 선형 블록을 따라가다 점형 블록이 나오면 멈추면 된다.
이건 정말 잘 되어 있는 편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어느 버스가 오는지 어떻게 아는가.
정류장에는 도착 정보 안내기가 있다.
화면으로 나온다.
음성 안내 버튼이 달린 곳도 있는데 우리 동네 정류장에는 없다.
방법은 두 가지다.
휴대폰 앱을 쓰거나 사람에게 묻거나.
앱을 썼다.
버스 도착 정보는 잘 읽혔다. 3분 뒤 도착.
그런데 앱은 버스가 어디쯤 오는지는 알려 줘도
지금 내 앞에 선 버스가 그 버스인지는 알려 주지 않는다.
정류장에 버스가 두 대 동시에 서면 앞차인지 뒤차인지 알 수 없다.
저상버스 안내 방송은 문을 열면 나온다.
하지만 문 열리는 소리를 들으려면 그 문 앞에 있어야 하고
문이 어디 열릴지는 버스가 서 봐야 안다.
결국 나는 정류장 앞에 서서 버스가 설 때마다 물었다.
"이거 몇 번이에요?"
세 번째에 맞는 버스가 왔다.
묻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친절하게 알려 준다.
다만 묻는 쪽은 매번 타이밍을 재야 한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타는 그 짧은 사이에 물어야 하고
너무 늦으면 버스가 떠나고 너무 이르면 아직 문이 안 열려 있다.
그리고 버스 안 승객들이 다 듣는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산다.
실제로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 아무것도 아닌 일이 하루에 네 번 있으면
저녁에는 아무것도 아니지 않게 된다.
이 구간의 규정 위반: 없음.
저상버스는 배차되어 있었고 점자블록도 있었고 도착 정보 시스템도 작동했다.
09시 34분 하차 이후
목적지 정류장에서 내렸다.
여기서부터 건물 입구까지가 오늘의 최대 난관이었다.
정류장에서 건물까지는 200미터쯤이다.
그 200미터에 점자블록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류장은 시 교통 부서 소관이고 건물 앞 보도는 구청 소관이고 건물은 민간 소유다.
각각의 기준을 각각 충족했다.
그 사이를 바카라임지는 부서가 없을 뿐이다.
나는 탱고와 함께 걸었다.
탱고는 길을 안다기보다 장애물을 피한다.
공사 펜스가 있으면 돌아가고 사람이 있으면 비켜 준다.
목적지를 아는 건 내 몫이다.
가로수 간격을 세면서 걸었다.
평소 다니는 길이면 이 방법이 잘 통하는데 처음 가는 길에서는 잘 안 통한다.
두 번 지나쳤다가 되돌아왔다.
이 구간의 규정 위반: 없음.
그리고 이 구간에는 아예 담당자가 없다.
09시 51분 로비
건물은 좋았다.
자동문이 있고 단차가 없고 안내 점자블록이 로비 한가운데까지 이어져 있었다.
2년 전에 리모델링했다고 나중에 들었다.
점자블록이 끝나는 지점에 안내데스크가 있었다.
있었던 자리다.
지금은 키오스크가 있다.
방문객 등록을 키오스크로 하도록 바뀌었다고 했다.
키오스크에는 음성 안내 기능이 있었다.
이어폰 단자도 있었다.
디지털포용법 시행 이후 무인정보단말기 이용 편의 규정이 생겨서 새로 들어온 기기라고 했다.
이어폰이 없었다.
나는 이어폰을 안 가지고 다닌다.
보조 이어폰을 비치해 둔 곳도 있다는데 여기는 없었다.
음성 안내를 스피커로 틀 수도 있다.
그러면 내 이름과 방문 목적과 연락처가 로비에 울려 퍼진다.
경비원이 도와줬다.
친절했다.
내 신분증을 받아서 대신 입력해 줬다.
여기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예전에는 안내데스크에 사람이 있었고 나는 그 사람에게 말하면 됐다.
지금은 접근성 있는 키오스크가 생겼고 나는 경비원에게 부탁하고 있다.
기술이 들어오면서 없어진 사람 자리를
그 기술을 못 쓰는 사람을 돕느라 다른 사람이 메우고 있는 것이다.
효율화의 결과가 다시 사람의 호의로 보전되는 구조.
그리고 그 호의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이 구간의 규정 위반: 없음.
접근성 있는 키오스크가 설치되어 있었다.
10시 15분 회의실
회의는 10시에 시작했고 나는 15분 늦었다.
자리에 앉으니 옆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
회의 자료가 인쇄물로 배포되어 있었다.
"자료 파일로 받을 수 있을까요?"
담당 주무관이 미안해하며 메일로 보내 줬다.
PDF였다.
열었더니 낭독기가 아무것도 읽지 않았다.
스캔본이었다. 종이를 스캔해서 만든 이미지 파일.
문서 자체는 원래 한글 파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걸 인쇄하고 그 인쇄물을 다시 스캔해서 PDF로 만든 것이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아마 도장이 찍혀 있었을 것이다.
한글 원본 파일을 달라고 했다.
찾는 데 10분이 더 걸렸다.
그러니까 이 문서는 이렇게 이동했다.
컴퓨터에서 만들어져서 종이가 되었다가 다시 이미지가 되었다.
처음 상태가 가장 접근 가능했고 단계를 거칠수록 나빠졌다.
우리는 디지털 전환이라는 말을 진보의 방향으로 쓴다.
그런데 현장에서 벌어지는 디지털 전환의 상당수는
디지털을 종이처럼 다루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스캔한 이미지는 화면 위에 올라간 종이일 뿐이다.
이 구간의 규정 위반: 없음.
자료는 요청 즉시 전자파일로 제공되었다.
곱셈
회의는 디지털 접근성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준비해 간 발언 대신 아침에 온 길을 말했다.
집에서 여기까지 6개 구간을 지났다.
각 구간은 자기 기준을 충족했다.
웹 접근성 인증 저상버스 배차 점자블록 설치 접근성 키오스크 자료 전자파일 제공.
그런데 나는 15분 늦었고 세 번 남의 도움을 받았다.
이걸 설명하는 방법은 곱셈밖에 없다.
각 구간이 90퍼센트씩 작동해도 6번 곱하면 53퍼센트가 된다.
한 구간이 0이면 나머지가 아무리 100이어도 전체는 0이다.
우리는 접근성을 덧셈으로 관리한다.
경사로 몇 개 저상버스 몇 대 인증 사이트 몇 곳.
그 숫자들을 더해서 올해 접근성이 개선되었다고 발표한다.
그런데 한 사람의 하루는 덧셈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곱셈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곱셈에서는 하나의 0이 전부를 지운다.
평가 단위를 시설에서 여정으로 바꿔야 한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저상버스 보급률이 아니라 실제 탑승 성공률을 봐야 하고
웹 접근성 인증률이 아니라 신청 완료율을 봐야 한다.
그런데 지금 어느 부처도 여정을 담당하지 않는다.
여정에는 소관 부서가 없다.
정류장에서 건물까지 그 200미터처럼.
회의실이 잠깐 조용했다.
그리고 한 분이 이렇게 물었다.
그러면 오늘 어느 부분을 개선하면 됐을까요.
나는 답을 못 했다.
정확히 말하면 답이 하나가 아니어서 못 했다.
인증 모듈을 고치면 아침이 해결되고
정류장 음성 안내를 달면 09시가 해결되고
보도에 점자블록을 이으면 200미터가 해결된다.
그런데 그중 하나만 하면 나는 여전히 늦는다.
이게 접근성 예산 심의에서 늘 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나씩 놓고 보면 각각은 큰 효과가 없어 보인다.
효과는 이어졌을 때만 나타나는데
예산은 언제나 하나씩 심의된다.
조민석
회의가 끝나고 한 사람이 다가왔다.
조민석 씨. 24세. 전동휠체어를 쓴다고 했다.
당사자 자문위원으로 이번에 처음 위촉됐다고 했다.
"아까 말씀하신 거 저도 비슷해요."
"어떤 게요?"
"저 특성화고 나와서 취업했었거든요. 사무직으로요. 6개월 하고 그만뒀어요."
"회사가 안 좋았어요?"
"아니요. 사람들은 좋았어요. 근데 출근이 안 됐어요."
회사는 접근 가능한 건물에 있었다고 했다.
문제는 집에서 회사까지였다.
장애인 콜택시는 예약이 안 되는 날이 많았고 지하철역에서 회사까지 경사가 심했다.
6개월 동안 지각이 반복됐고 결국 본인이 먼저 그만뒀다고 했다.
"제가 능력이 없어서 그만둔 게 아닌데 이력서에는 6개월 근무로 남아요."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이동의 문제가 고용의 실패로 기록된다.
그리고 그 기록은 다음 취업에 영향을 준다.
접근성 결핍은 그 순간의 불편으로 끝나지 않고 이력이 되어 따라다닌다.
우리가 흔히 보는 통계가 있다.
15세 이상 장애인의 취업자 비율 37.2퍼센트.
전체 인구는 63.3퍼센트.
이 숫자를 볼 때 사람들은 대체로 능력이나 의지를 떠올린다.
그런데 그 숫자 안에는 조민석 씨의 6개월이 들어 있다.
그리고 그 6개월 안에는 예약이 안 되던 콜택시와 경사가 심한 300미터가 들어 있다.
결과 지표만 관리하면 원인은 사라지고 바카라임은 개인에게 돌아온다.
조민석 씨에게 지금은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었다.
자격증 준비하면서 다시 취업 준비 중이라고 했다.
"이번에는 회사 고를 때 위치부터 봐요."
"어떻게 보세요?"
"집에서 몇 분인지 말고 콜택시가 그 시간대에 잡히는지를 봐요. 그다음에 지하철역에서 회사까지 경사를 봐요. 그러고 나서 회사가 뭐 하는 곳인지 봐요."
순서가 그렇게 되어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이 마지막이었다.
우리는 청년에게 꿈을 물어보고 적성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어떤 청년에게 진로 선택의 1순위 변수는 경사도와 배차다.
그건 꿈이 작아서가 아니라 통로가 좁아서 생긴 순서다.
통로
접근권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다.
문을 여는 권리다.
교육을 받으려면 학교에 갈 수 있어야 한다.
일을 하려면 출근할 수 있어야 한다.
아프면 병원에 갈 수 있어야 한다.
2023년 실태조사에서 필요할 때 병의원에 가지 못한 경험이 17.3퍼센트였고
그 이유 1위가 이동 불편으로 36.5퍼센트였다.
이동의 문제가 건강의 문제로 바뀌는 데는 아무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그래서 접근권은 여러 권리 중 하나가 아니다.
권리와 권리 사이를 잇는 이음새다.
건축에서 가장 자주 무너지는 곳은 기둥이 아니라 접합부다.
자재는 규격을 통과했는데 이어 붙인 자리가 새는 일.
지금 우리 접근성 정바카라이 딱 그렇다.
접근성의 대상도 계속 넓어져 왔다.
처음에는 건물이었고 그다음이 이동이었고 그다음이 정보와 의사소통이었다.
그다음이 웹과 모바일이었고 지금은 데이터와 인공지능이다.
그런데 이 단계들은 앞의 것이 끝나고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아직 보도에 점자블록이 안 이어져 있는데 복지 신청은 앱으로 옮겨 가고
아직 버스에서 내가 몇 번인지 묻고 있는데 안내데스크는 키오스크가 된다.
장애인은 아날로그 장벽과 디지털 장벽을 동시에 겪는다.
그리고 새 장벽이 생기는 속도가 옛 장벽이 없어지는 속도보다 대체로 빠르다.
시설 기준도 있고 교통 기준도 있고 웹 기준도 있고 이제 디지털포용법도 있다.
각각 나쁘지 않다.
문제는 그것들을 이어 붙인 자리에 아무도 서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제목: 이음새의 아키텍처 혹은 준수율 100퍼센트의 실패.
우리는 접근성을 부품으로 관리해 왔다.
경사로를 놓고 저상버스를 늘리고 웹사이트를 고쳤다.
그 하나하나는 다 필요했고 다 진전이었다.
그런데 한 사람의 하루는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집을 나서서 목적지에 닿고 필요한 걸 하고 안전하게 돌아오는 하나의 선이다.
그 선 어딘가가 한 번 끊기면 앞뒤가 아무리 훌륭해도 그날은 실패한다.
생애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대학으로 대학에서 온라인 게임으로 온라인 게임에서 다음 온라인 게임으로 넘어가는 그 이음새마다
지원이 끊기면 사람은 매번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끊긴 자리들이 쌓이면 나중에는 개인의 이력처럼 보인다.
조민석 씨의 6개월처럼.
결론: 접근권 없는 슬롯권은 선언에 머문다.
그러나 슬롯권 없는 접근권도 마찬가지다.
들어갈 수는 있지만 살아갈 수는 없는 빈 건물이 된다.
이제 물어야 할 것은 경사로를 몇 개 놓았는가가 아니다.
그 경사로가 버스로 이어지고 버스가 교실로 이어지고 교실이 일터로 이어지는가.
이음새를 세는 통계는 아직 우리에게 없다.
한 가지만 덧붙이고 싶다.
접근성이 좋아지면 일할 수 있게 되고 일하면 살아갈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면 안 된다.
그건 결국 일하지 않는 사람의 생존은 다시 심의 대상이 된다는 뜻이 되니까.
접근권은 자격을 심사하는 장치가 아니다.
선택지를 늘리는 장치다.
일하고 싶은 사람이 일할 수 있고 쉬어야 하는 사람이 쉴 수 있는 조건.
그 두 가지가 같이 있을 때만 통로라는 말이 성립한다.
그나저나 회의가 끝나고 보보가 데리러 왔다.
차에 타자마자 보보가 물었다.
그래서 오늘 몇 번 남한테 물어봤어.
세 번이라고 했다.
보보는 아침에 인증서 눌러 준 것까지 네 번이라고 정정했다.
정확하다.
탱고는 200미터를 두 번 왕복한 게 억울했는지 뒷자리에서 한숨을 쉬었다.
저 녀석 입장에서는 오늘 근무 시간이 두 배였을 것이다.
아무래도 논문 공저자 자리를 슬슬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