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프의 아키텍처

by김경훈

8개월 만에 다시 그 암장에 갔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부터 냄새가 올라왔다.

습한 공기와 탄산마그네슘 가루 냄새.

어딘가에서 사람이 매트로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몸이 기억을 꺼냈다.

아 여기구나.


지난 1월에 나는 여기서 처음으로 벽을 올랐다.

서지안 센터장이 등 뒤에 서서 오른손 2시 방향 30센티미터 하고 외쳤고

나는 그 목소리와 손끝만 믿고 중력과 싸웠다.

완등하고 나서 매트로 떨어졌을 때 그 순간이 그해 가장 안전했다.


그래서 다시 왔다.

보보와 탱고도 같이 왔다.


그리고 카운터에서 나는 이 문장을 다시 들었다.


"죄송한데 시각장애인 분은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안전 문제가 있어서요."


이것은 한 사람이 만들어 놓은 길이 그 사람과 함께 사라진 자리에 다시 섰던 어느 여름 저녁의 기록이다.





3개월 전에 그만두셨어요



"서지안 센터장님 안 계신가요?"

내가 물었다.


"아 센터장님이요. 3개월 전에 그만두셨어요. 서울 쪽 아카데미로 가셨습니다."


목소리의 주인은 윤태경이라고 했다.

20대 후반쯤으로 들렸고 말투에 미안함이 잔뜩 묻어 있었다.

불친절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친절해서 더 곤란해하는 쪽에 가까웠다.


"저는 여기 회원이었습니다. 1월부터 3월까지 다녔어요."

"아 그러셨어요? 잠시만요."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회원 관리 프로그램을 뒤지는 모양이었다.


"김경훈 회원님. 네 기록 있으시네요. 3월까지 이용하셨고요."

"그 밑에 뭐라고 적혀 있나요?"

"어... 특이사항에 시각장애 주의요망 이렇게만 되어 있는데요."


시각장애 주의요망.

여섯 글자였다.


서지안 센터장과 나는 두 달 넘게 같이 훈련했다.

그 사이에 우리가 만든 방법이 여러 개 있었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에 남은 건 여섯 글자였고

그중 네 글자는 나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나를 조심하라는 경고였다.


주의요망이라는 말을 곱씹어 봤다.

그 말의 주어는 내가 아니다.

그 말을 읽는 직원이다.

조심하라는 대상은 내 안전이 아니라 이 회원을 받았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다.


기록은 그 조직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를 정확하게 보여 준다.

그 한 줄에는 내가 어떻게 벽을 오르는지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사고가 될 수 있는지가 적혀 있었다.


윤태경 씨 잘못이 아니다.

그는 그 칸에 적힌 걸 읽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칸에 그것만 적혀 있으면 누구라도 같은 문장을 말하게 된다.

안전 문제가 있어서요.





남아 있는 테이프



윤태경 씨가 난처해하는 동안 나는 벽 쪽으로 걸어갔다.

탱고가 옆에서 걸었다. 매트 위를 걷는 감촉이 물렁했다.


손을 뻗어 홀드를 더듬었다.

거친 표면. 그리고 그 위에 붙어 있는 무언가.


테이프였다.


서지안 센터장이 붙였던 것이다.

홀드마다 촉감이 다른 테이프를 붙여서 어떤 홀드인지 손으로 구별할 수 있게 한 것.

매끈한 테이프는 잡는 홀드 오돌토돌한 테이프는 발로 딛는 홀드.

그 규칙을 우리 둘이서 만들었다.


테이프는 아직 붙어 있었다.

8개월이 지났는데 그대로였다.


"저기 이 테이프 뭔지 아세요?"

윤태경 씨가 다가와서 봤다.

"아 그거요. 예전부터 붙어 있던 건데 뭔지 몰라서 그냥 뒀어요. 루트 표시인가 했는데 색깔 규칙이 안 맞아서요."


그렇겠지.

눈으로 보면 그건 아무 의미 없는 테이프다.

색깔로 읽으면 규칙이 없고 손으로 읽어야 규칙이 있다.


물건은 남았는데 왜가 사라진 것이다.


이게 무서운 건 언제든 떼어질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뜻을 모르는 물건은 결국 정리 대상이 된다.

루트를 새로 세팅하거나 청소를 하다가 누군가 이건 뭐지 하고 떼면 그걸로 끝이다.

사실 8개월이나 붙어 있었던 게 운이 좋았던 쪽에 가깝다.


접근성 장치는 대체로 이런 식으로 사라진다.

철거되거나 반대에 부딪혀서가 아니라

왜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 채로 조용히 없어진다.


나는 그때 기분이 좀 이상했다.

화가 나지는 않았다.

그냥 아주 조용한 종류의 서운함이 있었다.

누군가 나를 위해 만든 것이 여전히 거기 있는데 아무도 그게 뭔지 모른다는 것.





내가 설명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다음에 벌어진 일이 이 글의 핵심이다.


나는 윤태경 씨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테이프는 촉감으로 홀드를 구별하려고 붙인 겁니다. 매끈한 건 손 오돌토돌한 건 발이요."

"아 그렇구나."


"그리고 소리로 방향을 알려 주시면 됩니다. 시계 방향으로요. 오른손 2시 방향 30센티미터 이런 식으로."

"그렇게 하면 되는군요."


"저는 유도 유단자라 낙법은 됩니다. 그러니까 떨어지는 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서 센터장님도 처음에 그거 확인하고 시작하셨습니다."

"아 낙법."


윤태경 씨는 성실하게 들었다.

정말 성실하게 들었다.

그리고 20분쯤 뒤 우리는 벽 앞에 섰고 나는 다시 올랐다.


벽 앞에 섰을 때 손끝이 먼저 알아봤다.

8개월 전에 잡았던 홀드였다.

표면이 조금 더 닳아 있었다.


윤태경 씨의 목소리는 서지안 센터장보다 반 박자 느렸다.

확신이 없어서 그런 거였다.

오른손 2시 방향이요 하고 말한 뒤에 30센티미터 정도 될까요 하고 되물었다.


그 반 박자가 벽 위에서는 꽤 길다.

손을 뻗은 채로 공중에서 기다리는 시간이니까.

팔이 떨렸고 나는 그냥 감으로 뻗었다. 잡혔다.


이것도 기록되지 않는 종류의 차이다.

같은 방법을 써도 확신이 있는 목소리와 없는 목소리는 다르다.

그 확신은 반복에서 오고 반복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 오늘 이 사람이 나를 어색하게 대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이 어색함을 매번 처음부터 겪어야 하느냐다.


그날 나는 완등했다.

그러니까 결과만 보면 해피엔딩이다.


그런데 돌아오는 차 안에서 보보가 말했다.

"오늘 자기가 강사였네."


맞는 말이었다.


서지안 센터장이 두 달에 걸쳐 시행착오로 알아낸 것들을

그 방법의 대상이었던 내가 새 직원에게 20분 만에 압축해서 전달했다.

나는 그 방법을 다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당사자니까 잊을 수가 없다.


이게 이상한 구조라는 걸 깨닫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서비스를 받으러 간 사람이 그 서비스의 방법을 가르치고 왔다.

그리고 이건 나만 겪는 일이 아니다.


병원에서 담당의가 바뀌면 다시 설명한다.

활동지원사가 바뀌면 다시 설명한다.

복지관 담당자가 바뀌면 다시 설명한다.

학교 선생님이 바뀌면 다시 설명한다.


장애가 있는 사람은 평생 자기 설명서를 들고 다닌다.

그리고 그 설명서는 종이가 아니라 입으로 되어 있어서 매번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한다.


비장애인에게는 이게 잘 안 보일 수 있다.

새 담당자에게 자기 상황을 한 번 말하는 게 뭐 그리 힘드냐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한 번이면 안 힘들다.


문제는 횟수다.

병원 은행 관공서 헬스장 미용실 식당.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앞부분이 있다.

저는 앞이 안 보입니다로 시작해서 그러니까 이렇게 해 주시면 됩니다로 끝나는 3분짜리 서문.


그 서문을 하루에 두 번 하면 6분이고

1년이면 36시간이 넘는다.

시간이 아까워서 하는 말이 아니다.

매번 자기를 설명하는 위치에 서면 사람은 조금씩 다른 종류의 피로를 갖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서문을 하기 싫어서 그냥 안 가게 된다.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만 시키던 시절과 정확히 같은 종류의 포기다.

접근성이 없는 곳이라서 안 가는 게 아니라

설명하기 지쳐서 안 가는 것이다.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 종류의 배제다.





좋은 사람의 한계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서지안 센터장을 탓하는 글이 아니다.


그는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좋은 설계자였다.

안전이라는 말로 문을 닫는 대신 그 말로 문을 여는 방법을 알던 사람이다.

그가 없었으면 나는 지금도 벽에 못 올랐을 것이다.


문제는 그가 부족했다는 게 아니다.

그가 알아낸 것을 담아 둘 그릇이 그 조직에 없었다는 것이다.


정보학에서는 이런 걸 암묵지라고 부른다.

말로 정리되지 않은 채 사람의 몸과 감각에 붙어 있는 지식.

자전거 타는 법이나 좋은 반죽의 손맛 같은 것들.

암묵지는 강력하지만 옮기기가 어렵다.

그리고 옮기지 못한 암묵지는 그 사람이 나가는 문으로 함께 나간다.


암묵지를 옮기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적을 자리다. 둘째는 적을 시간이다.


그 암장에는 둘 다 없었다.

회원 관리 프로그램의 특이사항 칸은 한 줄짜리였고

서지안 센터장은 센터장 업무와 강습과 루트 세팅을 혼자 했다.

그런 사람에게 당신이 알아낸 걸 문서로 남기라고 요구하는 건

현실을 모르는 소리에 가깝다.


그러니까 이건 개인의 성실성 문제가 아니라 자리의 문제다.

적을 칸이 한 줄이면 여섯 글자밖에 안 남는다.

시각장애 주의요망.


한 가지 더 있다.

좋은 사람이 있는 조직은 기록을 안 남기는 경향이 있다.


그 사람이 다 해결해 주니까 아무도 불편하지 않고

불편하지 않으니까 문제가 있다는 걸 모른다.

서지안 센터장이 있는 동안 그 암장은 접근성이 좋은 암장이었다.

그건 사실이었다. 다만 그 사실이 건물이 아니라 사람 한 명에게 얹혀 있었을 뿐이다.


좋은 사람은 그래서 역설적인 존재다.

그 사람 덕분에 지금이 좋아지고

그 사람 덕분에 구조를 만들 필요를 못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나가는 날 조직은 자기가 얼마나 아무것도 아니었는지 알게 된다.





매뉴얼이라는 함정



이럴 때 흔히 나오는 답이 매뉴얼이다.

장애인 응대 매뉴얼을 만들자.


좋은 생각이고 나도 그런 매뉴얼 작업에 몇 번 참여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게 있다.

매뉴얼은 자꾸 두꺼워진다.


장애의 정의부터 시작해서 유형별 특성 의사소통 방법 주의사항 금지 행동 상황별 대응까지

넣다 보면 어느새 수십 페이지가 된다.

그리고 그 문서를 직원에게 준다. 참고하세요.


직원 입장에서 그건 업무가 하나 더 늘어난 것이다.

회원 응대하고 예약 관리하고 수업 준비하고 시설 점검하는 사이에

장애에 관한 수십 페이지를 공부하라는 요구가 추가된다.

그래서 안 읽힌다.

안 읽히는 매뉴얼은 아무리 정확해도 현장을 못 바꾼다.


좋은 매뉴얼은 더 많이 알게 하는 문서가 아니다.

덜 고민하게 하는 문서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 회원은 공간 파악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합니다라는 문장.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여전히 막막하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라는 건데.


그 자리에 이런 문장이 있으면 다르다.

방향은 시계 방향으로 말한다.

거리는 센티미터로 말한다.

홀드는 촉감이 다른 테이프로 구별한다.

낙법 여부를 먼저 확인한다.


이건 지식이 아니라 행동이다.

윤태경 씨가 필요했던 건 장애에 관한 이해가 아니라 이 네 줄이었다.

그리고 그 네 줄은 이미 존재했다. 서지안 센터장의 머릿속에.


여기서 한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문서가 있어도 현장의 판단을 없앨 수는 없다.


같은 시각장애라도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낙법을 배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고

소리로 방향을 잡는 게 익숙한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다.

진단명 하나로 그 사람이 설명되면 그건 이미 틀린 문서다.


그러니까 문서의 목적은 답을 주는 게 아니다.

출발점을 주는 것이다.


윤태경 씨가 그 열두 줄을 읽고 다음 회원에게 그대로 적용하면 안 된다.

다만 그 열두 줄이 있으면 완전히 백지에서 시작하지는 않는다.

무엇을 물어봐야 하는지를 알게 되는 것.

그게 기록이 해 줄 수 있는 최대치이고 사실 그거면 충분하다.





그래서 그 뒤에



일주일쯤 뒤 윤태경 씨에게서 연락이 왔다.


"회원님 저번에 알려 주신 거요. 그거 어디다 적어 두면 좋을까요? 저도 언젠가 그만둘 텐데 그러면 또 똑같아질 것 같아서요."


나는 그 문장이 좋았다.

저도 언젠가 그만둘 텐데.


자기가 영구적이지 않다는 걸 아는 사람만 기록을 남긴다.

자기가 계속 있을 거라고 믿는 조직은 아무것도 안 적는다.


우리는 몇 가지를 정했다.

회원 특이사항 칸을 늘리는 건 프로그램을 못 고쳐서 안 되고

대신 공용 폴더에 회원별 지원 방법 문서를 만들기로 했다.

길게 쓰지 않기로 했다. 한 명당 열 줄 안쪽.

장애 유형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만 적기로 했다.


그리고 하나 더.

내가 동의한 내용만 적기로 했다.

당사자 동의 없이 몸에 관한 정보가 돌아다니는 건 지원이 아니라 감시다.

필요한 정보가 필요한 사람에게 내가 허락한 만큼만 가는 것.

그 선을 지키지 않으면 연속성은 금방 관리로 변한다.


그래서 지금 그 암장 공용 폴더에는 내 이름으로 된 문서가 하나 있다.

열두 줄이다.

그 문서를 다음 사람이 읽을지는 모르겠다.

읽어도 그대로 될지 모르겠다.


그래도 여섯 글자보다는 낫다.





제목: 테이프의 아키텍처 혹은 좋은 사람이 떠난 뒤에 남는 것.


우리는 장애인 서비스를 이야기할 때 자꾸 좋은 사람을 찾는다.

장애를 이해하고 눈치가 빠르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

그런 사람은 실제로 있고 만나면 인생이 달라진다.


그런데 좋은 사람은 반드시 떠난다.

이직하고 휴직하고 승진하고 이사한다.

그리고 그가 나가는 문으로 그가 알아낸 모든 것이 함께 나간다.


그 자리에 남는 건 두 가지다.

아무도 뜻을 모르는 테이프 몇 조각.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자기를 설명해야 하는 사람.


시스템을 만들자는 말은 사람을 부품으로 만들자는 말이 아니다.

정반대다.

반복되는 판단과 시행착오를 구조가 대신 떠맡아서

사람이 사람에게 쓸 힘을 남겨 두자는 말이다.


그리고 그 구조가 생겼을 때 가장 편해지는 건 운영자가 아니다.

매번 자기 몸을 처음부터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다.


결론: 배리어프리는 좋은 사람을 기다리는 일이 아니다.

좋은 사람이 알아낸 것을 평범한 사람도 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그래야 그 선생님 계실 때 참 좋았어요라는 말 다음에

그래도 여기는 괜찮아요라는 말이 올 수 있다.

지금 우리 슬롯의 많은 서비스는 아직 앞 문장에서 끝난다.


그나저나 탱고는 그날 암장에서 매트 위를 아주 좋아했다.

푹신하니까 눕기 좋았던 모양이다.

내가 벽에 매달려 있는 동안 저 밑에서 늘어져 자고 있었다고 한다.

보보 말로는 내가 완등했을 때 딱 한 번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잤다고 한다.

서지안 센터장이 있을 때는 그렇게 짖더니.

저 녀석도 좋은 사람이 없으면 텐션이 떨어지는 모양이다.

개한테도 인수인계가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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