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음

by김경훈

[근무 기록]


병원 · 지역 종합병원 산부인과

직무 · 분만실

근속 · 31년

야간 인력 · 3명

연간 분만 · 400건대

문제 · 계측표 한 줄

현재 상태 · 야간 근무 중



소리


이 방은 소리로 굴러간다.


분만실 문은 두껍다. 밖에서는 안이 잘 안 들린다. 안에서는 밖이 들린다. 그렇게 만들어놨다.


들리는 소리가 정해져 있다.


태아 심음 모니터가 계속 돈다. 말발굽 소리 비슷하다. 분당 120에서 160 사이면 정상이다. 빨라지거나 느려지면 소리로 먼저 안다. 화면을 보기 전에 귀가 안다.


수액 펌프가 돌아간다. 낮고 규칙적이다.


산모 호흡이 있다. 진통이 오면 짧아지고 사이에는 길어진다. 그 간격으로 진통 주기를 잰다. 시계를 안 봐도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울음이 있다.


31년 동안 그 소리를 몇 번 들었는지는 모른다. 세어본 적 없다. 세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은 센다.


이 얘기를 하기 전에 하나만 적어둔다.


이 방에서 나쁜 일이 있었느냐고 물으면 있었다. 31년이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얘기는 안 할 것이다. 그건 그 가족들 얘기고 내가 여기 적을 게 아니다.


내가 적는 건 숫자 얘기다.


숫자는 아무한테도 안 속한다.



울음


신생아 울음은 다 다르다.


이건 아기 엄마들도 안다. 신생아실에 열 명이 있어도 자기 애 소리를 안다.


우리도 안다.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안다.


첫 울음은 폐가 처음 열리는 소리다. 그 전까지 폐는 물로 차 있다. 태어나면서 눌려서 물이 빠지고 공기가 들어간다.


그 첫 소리는 좀 젖어 있다. 갈라진다. 두 번째 세 번째로 가면서 맑아진다.


건강한 아기는 나오고 몇 초 안에 운다. 늦으면 우리가 자극을 준다. 발바닥을 문지르고 등을 쓸어준다.


울면 다들 숨을 쉰다. 분만실 안에 있는 어른들 전부가 그때 같이 숨을 쉰다.


31년 하면 그 순간이 안 무뎌진다.


이건 자랑이 아니고 그냥 사실이다.


작년 2월부터 그 소리가 한 번 더 난다.


한 달에 한 번이다.


정확히 한 번이다.



2월


그날 새벽 3시 20분에 아기가 나왔다.


정상 분만이었다. 산모는 초산이었고 진통이 길었다. 열여섯 시간쯤 걸렸다.


아기가 울었다.


건강한 소리였다.


우리 셋이 각자 할 일을 했다. 나는 아기를 받아서 닦고 계측대로 옮겼다. 체중을 재고 신장을 재고 밴드를 채웠다.


그때 울음이 한 번 더 났다.


내 손에 있는 아기는 안 울고 있었다. 그때는 조용했다. 닦아주면 대개 조용해진다.


문 쪽에서 났다.


문은 닫혀 있었다.


같이 있던 후배한테 물었다. 방금 옆방에서 났느냐고 물었다.


그 애가 옆방 비었다고 했다.


그날 밤 분만은 우리 한 건이었다.


나는 그때 별생각 없이 넘겼다.


이 일은 소리가 많이 겹친다. 심음 모니터도 울고 수액 펌프도 울고 밖에서 방송도 나온다. 열여섯 시간 진통을 같이 보고 나면 귀가 피곤하다.


새벽 3시 20분이었다.


31년 하면 새벽 3시에 뭘 잘못 들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래서 아무한테도 더 안 물었다.


그 밤을 다시 떠올린 건 한 달 뒤다.



기록


우리는 다 적는다.


분만 기록지가 있고 신생아 계측표가 있고 산모 기록지가 있다. 전산에도 넣고 종이로도 남긴다.


신생아 계측표는 한 줄에 한 명이다.


날짜. 시각. 성별. 체중. 신장. 두위. 흉위. 아프가 점수. 산모 이름. 밴드 번호.


작년 3월 계측표를 뽑아봤다.


그 달 분만이 34건이었다.


계측표는 35줄이었다.


한 줄이 더 있었다.


그 줄에는 날짜와 시각과 체중만 있었다.


성별 칸이 비어 있었다. 신장도 두위도 흉위도 비어 있었다. 아프가 점수도 없었다. 산모 이름도 없었다.


밴드 번호도 없었다.


체중만 있었다.


3120그램이었다.



폐기물


분만하면 폐기물이 나온다.


의료폐기물이라 따로 처리한다. 전용 용기에 넣고 무게를 달아서 업체에 넘긴다. 비용이 무게로 나간다.


태반도 여기 들어간다. 태반은 보통 500그램쯤 나간다. 아기 체중의 6분의 1쯤이다.


그러니까 분만 건수와 폐기물 무게는 대충 비례한다.


작년 3월 폐기물 무게를 봤다.


34건치고 많았다.


한 건분쯤 많았다.


4월도 그랬다. 5월도 그랬다.


12개월을 다 봤다. 매달 한 건분 많다.


이건 소리가 아니다. 소리는 착각일 수 있다.


무게는 착각이 아니다.



밴드


신생아 밴드는 수량을 관리한다.


손목에 채우는 띠다. 산모용과 아기용이 한 세트다. 같은 번호가 찍혀 있다. 바뀌면 큰일이 나니까 세트로 관리한다.


한 세트씩 봉해져 있고 쓸 때 뜯는다.


재고를 매달 맞춘다.


작년 3월에 재고가 맞았다.


34세트가 나갔고 34세트가 쓰였다.


그러니까 계측표의 그 한 줄은 밴드를 안 썼다.


우리 병원에서 밴드 없이 계측대에 올라가는 아기는 없다.


계측대에 올리면 밴드를 채운다. 그게 순서다. 31년 동안 그 순서가 안 바뀌었다.



전산


계측표는 종이다.


같은 내용이 전산에도 들어간다. 우리가 손으로 적고 나중에 입력한다.


전산을 봤다.


그 줄이 없었다.


작년 12개월치를 다 확인했다. 전산에는 분만 건수만큼만 있다. 34건이면 34줄이다.


종이에만 있다.


그러면 누가 종이에 그 줄을 적었느냐가 문제가 된다.


계측표는 한 장에 열두 줄이다. 우리 셋이 돌아가면서 적는다. 필체를 보면 누가 적었는지 안다. 31년 같이 일한 사이라 다 안다.


그 줄 필체를 봤다.


내 필체였다.


숫자 3을 쓸 때 나는 위쪽을 각지게 쓴다. 우리 병원에서 나만 그렇게 쓴다. 학교 다닐 때부터 그랬다.


3120에서 3이 두 번 나온다. 둘 다 각져 있었다.


12개월치를 다 봤다.


전부 내 필체였다.


나는 그 줄들을 적은 기억이 없다.



계측대


계측대는 저울이다.


아기를 눕히면 무게가 뜬다. 10그램 단위까지 나온다.


교정을 받는다. 1년에 한 번 업체가 와서 분동을 올리고 확인한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 아침에 영점을 잡는다.


작년 4월부터 영점이 이상했다.


아침에 아무것도 안 올려놓고 영점 버튼을 누르면 0이 된다. 그게 정상이다.


누르기 전 값이 0이 아니었다.


3120이었다.


밤새 아무도 안 올려놨다. 계측대에는 커버를 씌워놓는다. 커버 무게는 저울에 안 잡히게 되어 있다.


3120그램이 떠 있다.


영점을 잡으면 0이 된다. 그날 하루는 정상이다.


다음 날 아침에 다시 3120이다.


업체를 불렀다.


분동을 올려서 확인했다. 1킬로그램 분동에 1킬로그램이 나왔다. 5킬로그램 분동에 5킬로그램이 나왔다.


정상이라고 했다.


기사한테 아침에 3120이 떠 있다고 말했다.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전원 껐다 켜보세요.


껐다 켰다.


0이었다.


그다음 날 아침에 3120이었다.


기사한테 다시 전화했다. 그 사람이 이번에는 저울을 아예 새것으로 바꿔주겠다고 했다.


바꿨다.


3120이었다.



매달


계측표를 12개월치 다 뽑았다.


작년 2월부터 올해 1월까지다.


매달 한 줄씩 있었다.


체중은 매번 3120그램이다.


시각이 다르다. 날짜도 다르다. 규칙을 못 찾았다.


한 가지는 찾았다.


그 줄이 있는 날은 전부 그 달의 마지막 분만일이었다.


그 달 마지막 아기가 나온 날 밤이다.


그 아기가 나오고 나서 그 줄이 생긴다.


시각도 봤다.


그 달 마지막 분만 시각과 그 줄 시각의 차이를 계산했다.


12개월 다 47분이었다.


마지막 아기가 나오고 47분 뒤다.


47분이면 우리가 뒷정리를 끝내고 산모를 병실로 올리는 시간이다. 분만실이 비는 시각이다.



후배


같이 야간을 서는 애가 둘 있다.


한 명은 5년 차고 한 명은 2년 차다.


5년 차한테 물어봤다. 울음이 두 번 나는 것 같은 날 없느냐고 물었다.


그 애가 없다고 했다.


2년 차한테 물었다.


그 애가 좀 있다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그거 옆방에서 나는 거 아니에요.


옆방이 비었으면.


그럼 아니겠네요.


그러고 그 애가 한마디 더 했다.


근데 저는 그냥 소리가 겹치는 건 줄 알았어요. 반사되는 거요.


들었느냐고 물었다.


그 애가 대답을 안 했다.


그날 이후로 그 애는 마지막 주 야간을 안 선다. 근무표를 바꿔달라고 했다고 한다.


이유는 안 말했다고 한다.


수간호사가 나한테 물었다. 그 애랑 무슨 일 있었느냐고 물었다.


없다고 했다.


정말 없었다.



빈 방


우리 분만실은 세 개다.


1번과 2번은 자주 쓴다. 3번은 예비다. 두 개가 다 차면 쓴다.


한 달에 두세 번 쓴다.


작년 여름에 3번 방 점검을 했다. 안 쓰는 방도 정기적으로 본다. 흡인기와 산소 배관과 분만대를 확인한다.


들어갔다.


방 냄새가 달랐다.


빈 방은 소독약 냄새만 난다. 사람이 안 다니니까 그것만 남는다.


3번 방에 다른 냄새가 있었다.


신생아 냄새다.


이걸 설명하기가 어렵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한테서 나는 냄새가 있다. 비린 것도 아니고 단 것도 아니고 그 사이 어디쯤이다. 양수 냄새가 조금 섞여 있다.


31년 맡았다.


빈 방에서 그 냄새가 났다.


분만대를 만졌다. 시트가 씌워져 있었다. 팽팽했다.


시트 아래에 손을 넣었다.


매트리스가 미지근했다.


3번 방은 그때 두 달 넘게 안 썼다.


시트를 걷어봤다.


깨끗했다. 우리가 씌워놓은 그대로다.


매트리스에 손바닥을 대고 있었다. 30초쯤 있었다.


미지근한 게 유지됐다. 내 손 때문에 데워진 게 아니다. 손을 떼고 옆자리에 대보면 차갑다.


옆으로 20센티미터만 옮기면 차갑다.


돌아와서 그 자리를 다시 만지면 미지근하다.


크기를 재봤다. 손 뼘으로 쟀다.


한 뼘 반쯤이다.


신생아 몸 길이다.



31년 전


내가 이 병원에 온 게 스물세 살 때다.


첫 야간 근무 때 선배가 한 말이 있다.


그날 밤에 분만이 두 건 있었다. 둘 다 무사히 끝났다.


새벽에 스테이션에 앉아 있는데 선배가 이러셨다.


너 아까 세 번 들었지.


무슨 말씀이시냐고 물었다.


선배가 웃으면서 아니라고 하셨다. 잘못 말했다고 하셨다.


그러고 커피를 타 오셨다.


나는 그 말을 31년 동안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하고 있었다는 걸 작년 2월에 알았다.


그 선배는 15년 전에 정년으로 나가셨다. 재작년에 돌아가셨다.



옛날 계측표


병원 서고에 옛날 기록이 있다.


보존 기간이 지난 건 폐기하는데 분만 기록은 오래 둔다. 신생아 관련 기록은 특히 오래 둔다.


1990년대 것까지 있었다.


한 해를 골라서 봤다. 1994년이다.


12개월치 계측표를 다 넘겼다.


매달 한 줄씩 있었다.


날짜와 시각과 체중만 있는 줄이다.


체중이 3120그램이다.


1994년이면 계측대가 지금 것이 아니다. 저울이 바뀌었고 건물도 한 번 증축했다. 분만실 위치도 옮겼다.


3120이다.


그 위 연도도 봤다. 1988년까지 올라갔다. 그 아래는 기록이 없다.


전부 있었다.


한 가지가 달랐다.


1994년 줄은 필체가 내 것이 아니었다. 당연하다. 그때 나는 스물여섯이었고 이 병원에 있었지만 계측표를 그렇게 쓰지 않았다.


그 필체를 나는 안다.


31년 전 첫 야간 근무 때 나한테 커피를 타 주신 분이다.


1988년 줄도 봤다. 같은 필체였다.


그러니까 그분이 시작한 게 아니다. 그분도 물려받았다.


물려받았다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아무도 나한테 이걸 물려준 적이 없다.



수첩


우리 어머니가 남기신 게 하나 있다.


모자보건수첩이다. 내 것이다. 어머니가 나 낳으실 때 받으신 거고 이사를 몇 번 다녀도 안 버리셨다.


작년 가을에 꺼냈다.


앞장에 출생 기록이 있다.


병원 이름이 적혀 있다.


이 병원이다.


나는 이걸 알고 있었다. 우리 병원에서 태어났다는 건 입사할 때부터 알았다. 그게 여기 온 이유이기도 했다.


출생 체중을 봤다.


3120그램이었다.


나는 그 페이지를 오래 봤다.


같은 체중으로 태어나는 아기는 많다. 3120은 아주 흔한 무게다. 우리 병원 평균이 3200 근처다.


이건 우연일 수 있다. 정말 그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그날 그 수첩을 다시 넣어뒀다.



서고


이번 달에 다시 서고에 갔다.


내가 태어난 해 기록을 찾았다.


없었다.


그해 것만 없었다. 앞뒤 해는 다 있다.


서고 담당한테 물었다. 그해 것이 왜 없느냐고 물었다.


그 사람이 목록을 확인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목록에는 있는데요.


목록에 있고 실물이 없다는 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대출 기록을 봤다. 서고 자료를 꺼내가면 적게 되어 있다.


대출 기록이 있었다.


날짜가 작년 2월이었다.


대출자 이름이 내 이름이었다.


나는 작년 2월에 서고에 간 적이 없다.


반납란도 봤다.


비어 있었다.


서고 담당한테 그 자료가 아직 대출 중이냐고 물었다.


그 사람이 그렇다고 했다. 3년 넘게 안 들어온 자료가 몇 건 있는데 그중 하나라고 했다.


찾아드릴까요 하고 물었다.


내가 됐다고 했다.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자리에 있을 거예요. 한번 보세요.


내 자리는 스테이션 옆 캐비닛이다. 31년 쓴 자리다.


찾아봤다.


없었다.


캐비닛을 다 비워서 확인했다. 서랍도 다 뺐다. 아래쪽 안 쓰는 칸까지 다 봤다.


없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 캐비닛을 잠그고 다닌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오늘


지금 새벽 3시 12분이다.


이번 달 마지막 분만이 어제 저녁에 끝났다. 아기도 산모도 좋다. 산모는 지금 병실에서 자고 있다.


그러니까 오늘 밤이다.


1번 방과 2번 방은 비었다. 3번 방도 비었다.


나는 스테이션에 앉아 있다.


5년 차는 병동에 올라갔고 2년 차는 오늘 근무가 아니다.


계측대 커버를 아까 걷어봤다.


3120이 떠 있다.


지금 3번 방 쪽에서 소리가 났다.


첫 울음이다. 젖어 있고 갈라진다.


31년 들었으니까 안다.


한 번 나고 멎었다.


건강한 아기는 한 번만 안 운다. 첫 소리가 나면 두 번째 세 번째가 이어진다. 숨을 쉬기 시작했으니까 계속 운다.


한 번만 났다.


그러면 우리는 뛰어간다. 그건 훈련이다. 생각하고 가는 게 아니라 몸이 먼저 간다.


나는 지금 일어나 있다.


밴드를 한 세트 챙겼다.


이건 순서다. 계측대에 올리면 밴드를 채운다.


31년 동안 안 바뀌었다.


밴드에 번호가 찍혀 있다. 아까 봉투를 뜯으면서 봤다.


내 모자보건수첩에 적힌 번호와 같은 번호다.


수첩은 집에 있다. 나는 그 번호를 외운 적이 없다.


그런데 안다.


지금 3번 방 문 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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