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 기록]
현장 · 폐업 상가 지하
장비 · 금고실 도어 1점
설치 · 20년 전 본인 시공
경력 · 31년
동행 · 없음
현재 상태 · 내부
의뢰
전화가 온 게 화요일 오후였다.
폐업 정리 업체라고 했다. 지하에 금고실이 있는데 안에 뭐가 있는지 모르겠고 열쇠도 없고 조합도 모른다고 했다. 건물주도 모른다고 했다. 철거 전에 열어야 한다고 했다.
주소를 듣고 알았다.
내가 20년 전에 시공한 데다.
그 말은 안 했다. 말하면 단가가 내려간다. 자기가 단 걸 자기가 여는 건데 왜 돈을 다 받느냐고들 한다.
수요일 아침에 갔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스물두 칸이었다. 시멘트 계단은 발소리가 위로 뜬다. 아래로 갈수록 소리가 짧아진다. 벽이 좁아지면 그렇게 된다.
지하는 냄새로 안다. 물이 고인 데는 곰팡이 냄새가 나고 안 고인 데는 종이 삭는 냄새가 난다. 여기는 후자였다.
문 앞에 섰다.
손으로 훑었다. 두께 30센티미터쯤. 힌지가 안쪽에 있다. 다이얼이 하나 있고 그 아래 키홀이 하나 있다.
내 물건이다.
31년 하면 자기가 단 물건은 만지면 안다. 다이얼 노브 마감이 내가 쓰던 업체 것이고 손잡이 각도도 내가 잡던 각도다.
문 앞에 서서 한 번 더 확인했다.
경첩 위쪽에 표시가 있다. 나는 시공을 끝내면 경첩 위쪽에 줄을 세 개 긋는다. 내 표시다. 나중에 하자 나면 내 물건인지 아닌지 알아야 하니까 그렇게 한다.
손끝으로 만졌다.
세 개였다.
그 아래에 하나가 더 있었다.
네 번째 줄이다. 위치가 살짝 아래고 길이도 짧다.
나는 세 개만 긋는다. 31년 동안 세 개였다.
그때는 그냥 긁힌 자국인가 했다.
다이얼
금고 다이얼은 소리로 딴다.
영화에서 청진기를 대는 건 실제로 있는 방법이다. 요즘 물건은 안 통하는데 20년 전 물건은 통한다.
원리는 이렇다. 안쪽에 원판이 여러 개 겹쳐 있다. 원판마다 홈이 하나씩 파여 있다. 홈이 전부 한 줄로 서면 걸쇠가 그 자리로 떨어진다. 그때 손잡이가 돌아간다.
원판을 돌리다 보면 걸쇠가 홈 근처를 지날 때 저항이 아주 조금 달라진다. 소리도 달라진다. 딸깍이 아니라 톡 하는 정도다.
이건 귀보다 손끝이 먼저 안다. 손끝이 알고 나서 귀가 확인한다.
나는 청진기를 안 쓴다. 31년 하면 안 쓰게 된다.
원판이 몇 장인지는 다이얼을 한 바퀴 돌려보면 대충 안다. 저항이 걸리는 자리 개수로 센다.
돌렸다.
여섯 장이었다.
여섯 자리 조합이라는 뜻이다.
20년 전에 내가 단 물건은 대부분 네 장이었다. 여섯 장은 은행에나 넣던 거다. 상가 지하에 넣을 물건이 아니다.
그래도 뭐 손님이 원하면 넣어준다. 20년 전 일이라 기억이 안 난다.
작업을 시작했다.
시작하기 전에 가방에서 메모지를 꺼냈다. 자리를 하나씩 잡을 때마다 적는다. 안 적으면 중간에 놓친다. 31년 동안 그렇게 했다.
가방은 문 앞에 놓고 메모지랑 볼펜만 주머니에 넣었다.
그게 지금 내 주머니에 있다.
첫 번째 자리
1시간 40분 걸렸다.
여섯 자리 중에 첫 자리를 잡는 게 제일 오래 걸린다. 기준이 없으니까 그렇다.
잡고 나면 나머지는 빨라진다. 첫 자리가 기준이 되니까 나머지 다섯 개를 그 기준에 걸어서 찾는다.
두 번째 자리 40분.
세 번째 자리 25분.
네 번째 자리 20분.
다섯 번째 자리 15분.
여섯 번째 자리 10분.
다 합쳐서 3시간 30분이다.
손잡이를 돌렸다.
무거웠다. 20년 안 열린 물건은 다 무겁다. 그리스가 굳어서 그렇다.
두 손으로 돌렸다.
돌아갔다.
문이 열렸다.
안
들어갔다.
이게 실수였다는 걸 나중에 알았는데 그때는 실수라고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금고실 문은 안쪽에 해제 레버가 있다. 법으로 그렇게 되어 있다. 사람이 갇히면 안 되니까 그렇게 만든다.
내가 20년 전에 그 레버를 달았다.
안은 넓지 않았다. 걸음으로 넷에 셋이다. 선반이 세 벽에 붙어 있다.
선반은 비어 있었다.
손바닥으로 다 훑었다. 먼지가 손에 묻는데 두껍지는 않았다. 20년치 먼지는 아니다. 몇 년치다.
바닥도 훑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돌아서서 문을 밀었다.
닫혔다.
내가 민 게 아니다. 나는 안에서 밖으로 밀었고 문은 안쪽으로 닫혔다.
30센티미터짜리 문이 저절로 닫힐 무게가 아니다.
바람으로도 안 닫힌다. 지하고 창이 없다.
레버
안쪽 해제 레버를 찾았다.
문 안쪽 오른편 허리 높이에 있다. 내가 다는 자리가 거기다. 31년 동안 그 자리에 달았다.
손이 갔다.
레버가 있었다.
잡았다. 아래로 내렸다.
안 걸렸다.
레버를 내리면 안쪽 걸쇠가 빠지면서 손잡이가 돌아가야 한다. 레버는 내려갔는데 그 뒤에 아무 소리도 안 났다.
레버만 움직이고 걸쇠는 안 움직인 거다.
연결이 끊겨 있다는 뜻이다.
세 번 더 했다. 같았다.
문 안쪽을 손으로 다 훑었다. 점검구가 있다. 나사 네 개로 막혀 있다. 드라이버가 필요하다.
내 공구는 밖에 있다.
문 앞에 가방을 놓고 들어왔다. 안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확인만 하고 나올 생각이었으니까 그렇게 했다.
주머니를 뒤졌다.
핸드폰. 담배. 라이터. 차 열쇠. 텐션 렌치 하나. 픽 두 개.
핸드폰은 안 터진다. 지하 3미터에 강철 30센티미터면 당연하다.
렌치 끝으로 나사를 돌려봤다. 십자 나사에 일자 렌치라 안 물린다. 세 번 시도하고 그만뒀다. 나사머리 뭉개면 나중에 진짜 못 연다.
한 가지 더 확인했다.
레버를 내릴 때 소리가 어떻게 나야 하는지 나는 안다. 내가 31년 동안 그 소리를 들었다.
레버를 내리면 안에서 두 번 소리가 난다. 레버 자체가 걸리는 소리가 한 번 나고 그 다음에 걸쇠가 빠지는 소리가 한 번 난다. 두 번째 소리가 진짜다.
지금은 첫 번째 소리만 난다.
그러면 연결 막대가 빠진 거다.
연결 막대는 문 안쪽 판 사이에 들어 있다. 20년 지나면 그리스가 굳어서 뻑뻑해지긴 하는데 빠지지는 않는다. 나사로 고정하니까 안 빠진다.
내가 조인 나사다.
내가 조인 나사가 빠지려면 누가 풀어야 한다.
점검구 나사 네 개를 손끝으로 만졌다.
십자 홈에 흠이 있었다.
드라이버가 미끄러진 자국이다. 잘못 물려서 돌리면 그렇게 된다. 네 개 다 있었다.
내가 시공할 때는 안 미끄러진다. 31년 하면 그런 자국 안 남긴다.
누가 이 나사를 열었다 닫았다.
시간
라이터를 켜봤다.
불이 붙었다. 계속 붙어 있었다.
산소가 있다는 뜻이다.
금고실은 밀폐가 아니다. 환기 구멍이 있다. 법으로 그렇게 되어 있다. 내가 20년 전에 뚫었다.
구멍을 찾았다. 천장 왼쪽 구석에 있었다. 손가락 두 개 들어가는 크기다.
손을 대봤다. 바람이 있다.
들어오는지 나가는지 확인하려고 라이터를 가까이 댔다. 불꽃이 안쪽으로 눕는다. 들어오는 쪽이다.
죽지는 않는다.
물은 없다. 사람은 물 없이 사흘쯤 간다. 그건 안다.
핸드폰 시계를 봤다. 배터리는 71퍼센트다.
문 닫힌 시각이 11시 12분이었다.
폐업 정리 업체가 오후에 온다고 했다. 견적 확인하러 온다고 했다.
기다리면 된다.
그렇게 생각했다.
이 일 하면서 갇힌 적이 두 번 있다. 둘 다 15분 안에 나왔다. 안에서 여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문이 안 열리면 힌지를 보고 힌지가 안 되면 벽을 본다.
31년 하면 안 열리는 건 없다.
그 생각으로 31년을 살았다.
지금 이 방에서는 그 생각이 별 도움이 안 된다.
벽
기다리면서 벽을 만졌다.
31년 하면 손이 안 쉰다. 뭐라도 만진다.
왼쪽 벽 아래쪽에서 뭔가 걸렸다.
긁은 자국이다.
세로로 그은 자국이 여러 개 있다. 네 개씩 긋고 다섯 번째를 가로로 그었다.
세어봤다.
세 묶음하고 낱개 두 개다. 열일곱이다.
강철에 이 정도 자국을 내려면 뭔가 단단한 걸로 오래 그어야 한다.
나는 그 자국을 한참 만졌다.
이 금고실은 20년 동안 안 열렸다.
정리 업체 말로는 열쇠도 조합도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 이 자국은 20년 전에 난 것이다.
내가 문을 달고 나서 누가 안에 들어갔다는 뜻이다.
자국을 더 찾아봤다.
벽 네 면을 아래에서 위까지 다 훑었다. 손바닥으로 훑고 손끝으로 다시 훑었다.
왼쪽 벽에 열일곱 개.
오른쪽 벽에도 있었다. 손끝에 겨우 걸릴 정도로 얕다.
세어봤다. 아홉 개다.
뒤쪽 벽에도 있었다. 스물셋이다.
문 안쪽에도 있었다. 세 개다.
다 합하면 쉰둘이다.
깊이가 다 달랐다. 왼쪽 것이 제일 깊고 문 안쪽 것이 제일 얕다.
깊이가 다르면 그은 사람이 다르다는 뜻이다. 같은 사람이 같은 도구로 그으면 깊이가 비슷하다.
네 사람이다.
한 사람이 열일곱을 세고 한 사람이 아홉을 세고 한 사람이 스물셋을 세고 한 사람이 셋을 세었다.
셋을 센 사람이 제일 나중이다. 문 안쪽은 마지막에 손이 가는 자리다. 왼쪽 벽부터 시작해서 다 차면 문으로 간다.
문 안쪽에는 자리가 많이 남았다.
먼지
기다리는 동안 먼지를 다시 만졌다.
31년 하면 먼지로 시간을 잰다. 이건 자물쇠보다 먼저 배운 거다. 오래 안 연 문은 손잡이에 먼지가 두껍고 자주 여는 문은 손잡이만 반들반들하다.
밀폐된 데서 먼지 쌓이는 속도는 느리다. 사람이 안 드나들면 더 느리다. 20년이면 손끝에 뭉쳐서 밀린다. 굴러다닐 정도로 쌓인다.
여기 선반 먼지는 손끝에 얇게 묻는다. 밀리지는 않는다.
3년이나 4년쯤이다.
밖에서 딴 문이다. 20년 동안 아무도 못 열었다는 문이다.
3년 전에 누가 여기 들어왔다.
들어와서 닫고 나갔다는 뜻이다.
안에서는 못 나간다. 레버가 안 걸린다.
그러면 밖에서 누가 열어줬다는 뜻이다.
바닥 먼지도 다시 만졌다. 벽 자국 근처만 먼지가 덜했다.
거기만 누가 앉아 있었다.
20년 전
기억을 더듬었다.
20년 전에 나는 서른셋이었다. 그해에 시공한 게 열몇 건이다. 다 기억은 안 난다.
이 현장은 조금 기억난다.
지하로 짐을 내리는 게 힘들었다. 계단이 좁아서 도어를 세워서 내렸다. 인부를 넷 썼다.
의뢰인 얼굴은 기억 안 난다. 목소리도 기억 안 난다.
한 가지만 기억난다.
조합을 여섯 자리로 해달라고 했다.
내가 네 자리면 충분하다고 했다. 여섯 자리는 은행에나 쓰는 거고 잊어버리면 본인이 곤란하다고 했다.
그 사람이 그랬다.
여섯 자리로 해주세요.
그 목소리는 기억이 안 나는데 그 말은 기억난다.
그리고 시공 끝나고 조합을 알려드릴 때 그 사람이 안 받아 적었다.
보통은 받아 적는다. 수첩에 적거나 핸드폰에 넣는다. 그 사람은 그냥 들었다.
외웠느냐고 물었더니 됐다고 했다.
핸드폰
배터리 43퍼센트다.
오후 3시가 넘었다. 아무도 안 왔다.
계단이 스물두 칸이다. 사람이 내려오면 발소리가 들린다. 강철 30센티미터를 통과하는 소리가 있느냐 하면 있다. 낮은 소리는 통과한다. 발소리는 낮다.
문에 귀를 대고 있었다.
아무 소리도 안 났다.
핸드폰으로 통화 기록을 봤다. 화요일 오후에 받은 그 번호가 있다.
눌러봤다. 신호가 안 간다. 당연하다.
기록을 다시 봤다.
발신번호가 안 떠 있었다.
수신 기록에 번호 자리가 비어 있다. 나는 그날 그걸 안 봤다. 전화가 오면 그냥 받는다. 이 일은 모르는 번호로 오는 게 대부분이다.
번호 없이 온 전화를 받고 주소를 듣고 여기 왔다.
주소는 맞았다. 금고실은 있었다.
한 가지 더 봤다.
문자함을 열었다. 화요일에 그 업체가 주소를 문자로 보내줬다.
문자도 발신번호가 없었다.
번호 없이 오는 문자는 없다. 광고 문자도 번호가 뜬다. 스팸도 뜬다.
문자 내용은 주소 한 줄이다.
그 아래에 한 줄이 더 있었다.
안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는 그 문장을 화요일에 읽었다. 읽고 그냥 넘어갔다. 비어 있으니까 열어달라는 소리로 알아들었다.
지금 다시 읽으니까 다르게 읽힌다.
들어가지 말라는 소리로도 읽힌다.
조합
배터리 12퍼센트다.
할 게 없어서 다이얼을 생각했다.
안쪽에는 다이얼이 없다. 밖에만 있다. 그러니까 조합을 안다고 해도 안에서는 못 쓴다.
그래도 생각했다.
내가 아까 딴 여섯 자리를 적어놨다. 작업할 때는 항상 적는다.
주머니에서 메모지를 꺼냈다.
핸드폰 불빛에 비춰서 봤다.
여섯 자리를 봤다.
그게 무슨 숫자인지 그때 알았다.
우리 딸 생일이다.
여덟 자리로 쓰면 연도가 들어가는데 앞 두 자리를 빼면 여섯 자리가 된다.
20년 전에 우리 딸은 두 살이었다.
의뢰인이 여섯 자리로 해달라고 했고 내가 그 자리에서 숫자를 정해줬을 것이다. 그런 경우가 있다. 손님이 아무거나 해달라고 하면 내가 정한다.
내가 정한 숫자를 20년 뒤에 내가 땄다.
3시간 30분 걸려서 땄다.
그런데 20년 전에 우리 딸이 두 살이면 나는 그때 딸 생일을 외우고 있었다.
지금도 외운다.
그러면 나는 아까 다이얼을 딸 때 이 숫자가 나오는 걸 몰랐다는 얘기가 된다.
한 자리씩 찾으면 그렇게 된다. 한 자리 찾고 다음 자리 찾고 하니까 여섯 개가 다 모이기 전에는 무슨 숫자인지 모른다.
여섯 번째 자리가 나왔을 때 나는 그걸 안 봤다. 손잡이부터 돌렸다.
메모지에 적어놓고 안 읽었다.
읽었으면 안 들어갔을까.
그건 모르겠다.
지금
배터리 4퍼센트다.
라이터는 아직 켜진다.
환기 구멍에 바람은 계속 들어온다.
문에 귀를 대고 있었다. 계속 대고 있었다.
방금 소리가 났다.
계단 소리다.
스물두 칸을 내려오는 소리다. 나는 세었다.
스물두 번 났다.
그리고 문 앞에서 멈췄다.
다이얼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지금 돌고 있다.
첫 자리를 잡는 데 1시간 40분 걸린다. 나는 그걸 안다. 이 물건에서 그렇게 걸린다.
그러니까 밖에 있는 사람도 그걸 안다.
다이얼 돌리는 속도로 안다. 서두르지 않는다. 원판이 여섯 장인 걸 이미 아는 사람이 돌리는 속도다.
처음 만지는 사람은 그렇게 못 돌린다.
두 번째 자리에서는 40분이 걸릴 것이다. 세 번째는 25분이다.
3시간 30분 뒤에 열린다.
그때 나는 나가면 된다.
나가려면 밖에 사람이 없어야 한다.
문은 안쪽으로 열린다.
기다리는 동안 왼쪽 벽에 자국을 하나 그었다.
렌치 끝으로 그었다. 잘 안 그어진다. 힘을 줘야 한다.
열여덟 개째다.
왼쪽 벽에 그었다. 열일곱 개 옆에 그었다.
깊이가 같았다.
밖에서 다이얼이 계속 돈다.
여섯 자리는 내가 정한 숫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