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집을 배신할 때

새로 찾은 맛이 더 맛있는 이유

by김경훈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하면 한동안 실험이 시작된다.


이 골목 저 골목 들어가본다. 어떤 집은 좋았고 어떤 집은 다시 갈 이유가 없었다. 몇 달이 지나면 대충 지도가 그려진다. 국수는 저기, 늦은 밤에는 여기, 손님이 오면 그 집. 이제 고민할 필요가 없다. 배가 고프면 검증된 곳으로 간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앞을 지나다가 새로 생긴 가게를 본다. 잠깐 망설인다. 늘 가던 곳으로 가면 실패할 일이 없다. 새 가게는 모른다. 맛없을 수도 있고 비쌀 수도 있고 그냥 한 끼를 버릴 수도 있다.


그런데도 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리고 그 집이 맛있으면, 이상하게 단골집에서 먹을 때보다 더 기쁘다.


같은 정도로 맛있는데 왜 더 기쁠까.


이건 음식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연히 집어 든 바카라이 좋았을 때, 처음 가본 길이 뜻밖에 근사했을 때, 아무도 안 알려준 방법으로 문제가 풀렸을 때. 우리는 이런 경험을 유독 오래 기억한다. 검증된 것에서 얻은 만족보다 스스로 찾아낸 것에서 얻은 만족이 더 진하게 남는다.


우연이 아니다. 뇌가 실제로 그렇게 반응하고 있다.



프랑스 국립 보건의학연구소의 쾨슐랭 박사 연구팀이 이 문제를 뇌 활동 차원에서 들여다봤다. 결과는 사이언스에 실렸다.


연구의 출발점은 우리가 매일 하고 있는 선택이다. 인간은 늘 두 가지 전략 사이에서 움직인다. 하나는 정보 탐색이고 다른 하나는 정보 이용이다.


정보 탐색은 모르는 것을 알아보는 일이다. 새 가게에 들어가보고 새 길로 가보고 안 읽던 분야의 바카라을 펼쳐본다. 실패할 수 있지만 새로운 것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


정보 이용은 이미 아는 것을 쓰는 일이다. 검증된 가게로 가고 익숙한 길로 다니고 잘하는 방식으로 처리한다. 실패 확률이 낮고 효율적이다.


둘 다 필요하다. 탐색만 하면 매번 도박을 하는 셈이고 이용만 하면 세상이 변한 것을 모른 채 살게 된다. 단골집 요리사가 바뀌었을 수도 있고 새로 생긴 집이 훨씬 나을 수도 있다. 계속 같은 곳만 가면 그 사실을 영영 알 수 없다.


이 문제는 사실 공학에서도 오래 다뤄온 주제다. 여러 선택지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좋은지 모르는 상태에서, 아는 것을 계속 쓸 것인가 모르는 것을 시험해볼 것인가.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시험에는 비용이 든다. 이 문제에 완벽한 해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상황에 따라 최적의 비율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매일 별생각 없이 처리하는 저녁 메뉴 결정이 실은 이 난제의 축소판인 셈이다.


그러니까 문제는 언제 탐색하고 언제 이용할 것인가다. 그리고 우리 뇌는 이 판단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하고 있다.



연구팀이 관찰한 결과 이 판단에는 여러 부위가 나눠서 관여하고 있었다.


지금 하고 있는 선택이 잘 되고 있는지 판단할 때는 내측 전전두엽이 움직였다. 다른 선택지가 더 나을지 가늠할 때는 전두극피질이 활성화됐다. 실제로 전략을 바꾸기로 결정하는 순간에는 선조체가 반응했다.


결과가 나온 뒤에도 갈렸다. 선택이 성공했을 때는 중격핵이, 실패했을 때는 전대상피질이 활성화됐다.


이름이 낯설어서 어렵게 들리지만 정리하면 단순하다. 판단하고, 비교하고, 결정하고, 결과를 평가하는 각 단계마다 전담 회로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냥 오늘은 저기 가볼까 하고 넘기는 그 순간에 뇌 안에서는 상당히 체계적인 절차가 돌아가고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지금 선택을 평가하는 부위와 다른 선택지를 가늠하는 부위가 따로 있다는 점이다. 이 둘이 분리되어 있다는 것은 뇌가 늘 두 가지를 동시에 계산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 이걸 계속할까와 저건 어떨까. 만족하고 있는 순간에도 뒤편에서는 다른 가능성이 계속 검토되고 있다.


우리가 좋은 것을 누리면서도 자꾸 다른 데를 기웃거리는 이유가 여기 있다. 배은망덕해서가 아니라 그 회로가 원래 항상 켜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나온다.


실패했을 때 반응하는 전대상피질은 원래 통증을 담당하는 회로다. 몸이 다쳤을 때 아프다고 알리는 그 장치가, 선택이 실패했을 때도 똑같이 작동한다.


뼈아픈 실패라는 표현이 있다. 은유라고 생각했는데 뇌의 관점에서는 정확한 서술이었던 셈이다. 실패는 실제로 아픈 것과 같은 회로를 쓴다.


이건 진화가 자원을 아끼는 방식이기도 하다. 새로운 기능이 필요할 때마다 새 회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을 전용한다. 몸의 손상을 감지하던 장치가 판단의 실패를 감지하는 데 재활용됐다. 둘 다 이건 피해야 한다는 신호를 보내야 하니 굳이 따로 만들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실패를 대하는 우리 태도도 설명해준다. 실패가 유난히 견디기 힘든 이유, 한 번 크게 실패한 뒤 그 영역을 회피하게 되는 이유. 그것은 나약해서가 아니라 통증 회로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픈 것을 피하려는 것은 생명체의 기본 반응이다.


같은 회로가 슬롯적 배제를 겪을 때도 반응한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따돌림을 당하거나 거절당했을 때 활성화되는 부위가 물리적 통증과 겹친다. 마음이 아프다는 말도, 상처받았다는 말도 은유가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 언어가 몸의 감각에서 마음의 감각으로 단어를 빌려 쓰는 이유가 여기 있는지도 모른다. 애초에 뇌가 그 둘을 같은 장치로 처리하고 있으니 언어도 자연스럽게 같은 단어를 쓰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실패한 사람에게 그만한 일로 왜 그러느냐고 말하는 것은 다친 사람에게 그만한 상처로 왜 그러느냐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통증의 크기는 본인의 회로가 정한다.



그런데 이 연구의 핵심 발견은 성공 쪽에 있었다.


성공했을 때 반응하는 중격핵의 활동을 비교해보니 차이가 있었다. 정보 이용에 성공했을 때보다 정보 탐색에 성공했을 때 훨씬 활발하게 움직였다.


같은 크기의 성공인데 뇌가 다르게 반응한 것이다.


단골집에서 맛있게 먹은 것과 새 가게에서 맛있게 먹은 것. 맛의 정도가 동일해도 후자에서 더 큰 쾌감이 발생한다. 우리가 막연히 느끼던 그 차이가 실제로 측정된 것이다.


새로 발견한 지름길이 특별히 기분 좋은 것도 이 때문이다. 시간이 3분 줄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그 3분에 이상하게 기분이 좋다. 남들이 안 쓰는 방법으로 문제를 풀었을 때, 아무도 추천하지 않은 바카라이 좋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효용은 같은데 보상이 다르다.


이 차이는 우리가 무언가를 추천할 때의 미묘한 감각도 설명해준다. 누가 알려준 맛집에 가서 맛있게 먹는 것과 내가 찾아낸 집이 맛있는 것은 기쁨의 종류가 다르다. 전자는 정보 이용이고 후자는 정보 탐색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가 발견한 가게를 유난히 아끼고 남에게 알려줄 때 뿌듯해한다. 그 가게의 맛에 자기 판단이 얹혀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좋다는 곳을 다 가봤는데 별 감흥이 없는 경우도 있다. 맛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발견의 몫이 빠져 있어서다. 남이 다 검증해둔 곳에는 도박이 없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탐색은 도박이기 때문이다.


새 가게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결과가 나올 때까지 우리는 불확실한 상태에 놓인다. 이 불확실성 자체가 가벼운 불쾌감이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은 편안하지 않다. 주문을 하고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마음 한구석에 작은 긴장이 있다.


그러다 결과가 좋으면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난다.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안도와 좋은 결과를 얻은 만족. 이 둘이 겹쳐서 쾌감이 커진다.


익숙한 선택에는 이 구조가 없다. 단골집에 갈 때는 애초에 긴장이 없다. 맛있을 것을 알고 갔고 맛있었다. 예상이 맞은 것뿐이다. 해소할 불확실성이 없으니 해소의 쾌감도 없다.


그러니까 새 가게의 맛있음에는 도박에 이긴 기쁨이 얹혀 있다. 음식값에 포함되지 않은 보너스다.


여기에 하나가 더 있다. 결단 자체가 주는 만족이다. 익숙한 곳으로 가는 것은 선택이라기보다 습관에 가깝다. 반면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로 한 것은 분명한 결단이다. 그 결단이 옳았다는 것이 확인되면, 결과에 대한 만족뿐 아니라 판단력에 대한 만족까지 생긴다. 내가 잘 골랐다는 감각이다.


이 감각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우리는 결과만큼이나 그 결과를 내가 만들어냈다는 사실에서 만족을 얻는다. 똑같은 성과라도 시켜서 한 것과 스스로 판단해서 한 것은 다르게 기억된다. 탐색에는 언제나 자기 판단이 개입한다. 그래서 성공했을 때 돌아오는 보상에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가 포함된다.


반면 실패했을 때는 이것이 반대로 작동한다. 결과가 나빴다는 것뿐 아니라 내 판단이 틀렸다는 것까지 함께 온다. 탐색이 성공하면 더 기쁘고 실패하면 더 아픈 이유가 이것이다. 판돈에 자신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구조를 알고 나면 인간이 왜 가만히 있지 못하는지가 조금 설명된다.


합리적으로만 따지면 우리는 훨씬 적게 탐색해야 한다. 검증된 선택지가 있는데 굳이 실패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계속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 여행지를 바꾸고 안 하던 취미를 시작하고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기도 한다.


이건 비합리적인 행동처럼 보이지만 뇌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탐색에 성공했을 때 더 큰 보상을 주도록 설계되어 있으니, 그 보상을 향해 움직이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그리고 이 설계에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환경은 변한다. 어제 열매가 많던 나무가 오늘도 그렇다는 보장이 없다. 늘 가던 곳만 가는 개체는 환경이 바뀌는 순간 취약해진다. 반면 가끔 새로운 곳을 확인하는 개체는 변화를 먼저 감지한다.


탐색은 비용이 든다. 그래서 그냥 두면 아무도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니 그 비용을 상쇄할 보상을 붙여둘 필요가 있었다. 새로운 것을 찾아냈을 때의 그 짜릿함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려고 진화가 붙여둔 유인바카라인 셈이다.


집단 차원에서 보면 더 흥미롭다. 모두가 탐색만 하면 집단 전체가 위험해지고 모두가 이용만 하면 집단 전체가 정체된다. 그런데 실제 집단을 보면 늘 두 종류의 사람이 섞여 있다. 새로운 것을 먼저 시도해보는 사람이 있고 검증된 것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 어느 쪽이 옳다기보다 그 비율이 유지되는 것이 집단에 유리했을 것이다.


호기심이 유난히 강한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태어나는 이유가 여기 있는지도 모른다. 개인 차원에서는 손해를 보더라도 집단 차원에서는 그런 사람이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다. 아무도 안 가본 곳에 먼저 가보는 사람이 없으면 지도는 영원히 그대로다.



다만 이 구조에는 함정도 있다.


탐색의 쾌감이 크다는 것은 그 쾌감 자체를 쫓게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의 흥분만 반복해서 소비하는 상태. 취미를 계속 바꾸고 늘 새 프로젝트를 벌이지만 어느 것도 깊어지지 않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탐색의 목적은 원래 더 나은 것을 찾아 그것을 이용하는 데 있다. 탐색해서 좋은 것을 찾았으면 한동안 그것을 쓰는 것이 맞다. 그런데 탐색 자체가 목적이 되면 찾은 것을 활용할 시간이 없다. 계속 지도만 그리고 목적지에는 가지 않는 셈이다.


반대 방향의 함정도 있다. 실패의 통증을 몇 번 겪고 나면 탐색을 아예 멈추게 되는 것이다. 전대상피질이 열심히 일한 결과다. 그렇게 되면 세상이 바뀌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단골집 맛이 예전 같지 않은데도 계속 가게 된다. 비교할 대상이 없으니 나빠진 것도 모른다.


더 곤란한 것은 이 상태가 편안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탐색을 멈추면 실패도 없다. 매번 예상한 결과를 얻고 아플 일이 없다. 문제는 그 안정이 정지와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잘 지내고 있다고 느끼는 동안 선택지는 조용히 줄어든다.


그리고 오래 탐색하지 않으면 탐색하는 능력 자체가 무뎌진다. 새로운 것을 판단하는 감각은 쓰지 않으면 둔해진다. 그러면 어쩌다 시도해도 실패할 확률이 높아지고, 그 실패가 다시 탐색을 막는다. 한번 이 고리에 들어가면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결국 문제는 비율이다. 얼마나 탐색하고 얼마나 이용할 것인가. 정답은 없지만 방향은 있다. 환경이 빠르게 변하는 영역일수록 탐색의 비중을 높여야 하고, 안정적인 영역에서는 이용에 무게를 두어도 된다.


시간의 흐름도 이 비율을 바꾼다. 남은 기간이 길수록 탐색이 유리하다. 지금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 앞으로 오래 써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남은 기간이 짧으면 확실한 것을 택하는 편이 낫다. 새로 발견해봐야 쓸 시간이 없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의 관계망이 좁아지는 현상을 이렇게 설명하는 연구자들이 있다. 슬롯성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전략이 바뀐 것이라고. 젊을 때는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이 합리적이고 나이가 들면 확실히 좋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합리적이다. 같은 사람이 다른 계산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 관점이 맞는다면 젊은 사람의 방황과 나이 든 사람의 고집은 둘 다 나름의 최적화 결과다.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도 계산의 전제가 다르기 때문이다.



다시 새로 생긴 가게 앞으로 돌아가보자.


문을 열지 말지 망설이는 그 순간, 우리 안에서는 여러 회로가 동시에 일하고 있다. 지금 아는 선택지가 얼마나 괜찮은지, 저기가 더 나을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 실패하면 얼마나 아플지.


그리고 우리는 대개 계산을 끝내지 못한 채로 문을 연다. 그냥 오늘은 저기 가볼까 하면서.


그 가벼운 충동이 사실은 오래된 설계의 결과다. 인류가 한곳에 머물지 않고 계속 어딘가로 움직여온 이유가 그 안에 들어 있다.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고 아무도 살지 않는 땅으로 걸어간 사람들이 있었다. 대부분은 실패했을 것이다. 그런데 몇몇이 성공했고, 그 성공이 인류의 지도를 넓혔다.


그 사람들을 움직인 것이 거창한 사명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새로운 것을 찾아냈을 때의 그 짜릿함, 지금 우리가 새 가게에서 느끼는 것과 같은 종류의 기쁨이 거기 있었을 것이다.


새로 찾은 집이 맛있었다면 그 맛에는 정보 하나가 더 붙어 있다. 내가 아직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인.


그래서 더 맛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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