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맞는다는 것
마음이 맞는 사람이 있다.
같이 있으면 편하고 대화가 끊기지 않고 무슨 말을 해도 이상하게 잘 통하는 사람. 반대로 아무리 예의를 갖추고 노력해도 계속 어긋나는 사람도 있다. 누구나 두 종류의 사람을 안다.
그런데 마음이 맞는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이 막힌다. 취향이 비슷한 것인가. 그렇다면 취향이 비슷한데도 불편한 사람은 왜 있는가. 성격이 잘 맞는 것인가. 그렇다면 성격이 정반대인데 편한 사람은 어떻게 설명하는가.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 잡히지 않는 개념이다. 분명히 존재하는데 정의할 수 없다.
게다가 이 감각은 일방적일 수도 있다. 나는 저 사람과 잘 통한다고 느끼는데 상대는 전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서로 어색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둘 다 상대를 편하게 느끼고 있었던 경우도 있다. 감각이 이렇게 어긋나는데 그것을 어떻게 실체가 있는 것이라 부를 수 있을까.
프린스턴대학교의 유리 해슨 교수 연구팀이 이 모호한 것을 붙잡아보기로 했다.
방법은 단순했다.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동안 각각의 뇌 활동을 fMRI로 촬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의 뇌가 어떤 패턴을 보이는지 비교했다.
말처럼 간단한 실험은 아니다. fMRI 장치는 좁고 시끄럽고 움직이면 안 된다. 그 안에서 자연스러운 대화를 유도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 방법을 택한 이유는 분명하다. 대화가 잘 통했느냐를 당사자에게 물으면 주관적인 답이 돌아온다. 뇌 활동은 그 주관을 우회해서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창이다.
결과는 인상적이었다. 대화가 잘 통할 때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뇌 활동 패턴이 서로 닮아갔다. 전두엽과 측두엽과 두정엽을 포함한 뇌 전체에서 활동 패턴이 겹쳤다. 두 사람의 뇌가 비슷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대화가 어긋나기 시작하면 이 겹침이 사라졌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마음이 통했다는 표현이 은유가 아니었던 셈이다. 두 사람의 뇌가 실제로 서로를 복사하고 있었다. 우리가 오랫동안 감각으로만 알고 있던 것에 물리적인 근거가 붙은 것이다.
여기까지는 예상 가능한 이야기다. 흥미로운 것은 그다음이다.
연구팀이 두 사람의 뇌 활동을 정밀하게 비교해보니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다. 시차가 있었다. 듣는 사람의 뇌가 말하는 사람의 뇌보다 평균 3초 정도 뒤처졌다.
당연한 일이다. 말을 듣고 이해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소리가 귀에 도착하고 그것이 단어로 해석되고 의미가 조립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3초의 지연은 이해라는 작업에 드는 비용이다.
이 지연을 없앨 방법은 없어 보인다. 물리적으로 소리가 먼저 발생해야 그것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원인이 결과보다 앞선다는 것은 어길 수 없는 순서다. 듣는 쪽이 말하는 쪽보다 뒤에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론처럼 보인다.
그런데 한 부위가 예외였다.
좌반구 후두부의 측두엽 상부 피질. 이 영역에서는 오히려 듣는 사람의 뇌가 먼저 움직였다. 말하는 사람보다 앞서서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부위의 활동이 강할수록 대화가 잘 통했다.
듣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보다 먼저 반응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아직 나오지 않은 말에 어떻게 반응할 수 있는가.
답은 이 부위가 무슨 일을 하는지에 있다. 측두엽 상부 피질은 예측을 담당하는 영역이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상대의 말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음에 무슨 말이 올지 미리 그려보고 있다. 그 예측이 맞아떨어지는 순간 대화는 매끄러워진다. 상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미 그 자리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맞는다는 것의 정체가 여기 있다.
취향이 같아서가 아니다. 성격이 비슷해서도 아니다. 상대가 다음에 할 말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마음이 맞는다고 부른다.
이 설명은 우리가 겪는 여러 경험을 잘 설명해준다.
말이 자꾸 겹치는 대화가 있다. 서로 동시에 입을 열고 미안하다며 물러나고 다시 동시에 말하기 시작한다. 이건 예측이 어긋나고 있다는 신호다. 상대의 문장이 언제 끝날지 읽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는 대화도 있다. 상대가 말을 마쳤는데 내가 반응하기까지 한 박자가 뜬다. 이것도 같은 문제다. 미리 준비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매번 새로 시작해야 한다.
편한 사람과의 대화에서는 이런 일이 거의 없다. 상대가 말을 마치는 순간 이미 내 대답이 준비되어 있다. 심지어 상대가 문장을 절반쯤 말했을 때 나머지를 알아차리기도 한다. 그래서 끝까지 듣지 않아도 대화가 이어진다.
말을 자르는 것과 말을 이어받는 것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예측이 틀렸으면 무례한 개입이 되고 예측이 맞으면 자연스러운 흐름이 된다. 같은 행동인데 결과가 정반대다.
실제로 대화를 분석해보면 사람들의 발화 사이 간격은 놀랍도록 짧다. 대개 0.2초 안팎이다. 그런데 한 문장을 머릿속에서 조립하는 데는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이 든다. 계산이 맞지 않는다. 답은 하나뿐이다. 우리는 상대의 말이 끝나기 전에 이미 대답을 만들고 있다.
그러니까 대화는 순서대로 주고받는 일이 아니다. 겹쳐서 진행되는 일이다. 상대가 말하는 동안 나는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다음을 준비하고 있다. 잘 맞는 대화란 이 겹침이 매끄럽게 이루어지는 상태다.
그렇다면 이 예측 능력은 어디서 오는가.
기본적으로는 축적이다. 그 사람과 오래 지내면 말투와 사고방식과 관심사가 쌓인다. 어떤 화제에서 어떤 방향으로 갈지 감이 생긴다. 그래서 오래된 친구와의 대화는 편하다. 데이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처음 만난 사람과도 이상하게 잘 통하는 경우가 있다. 이건 축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여기서는 공유하는 틀이 작동한다.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거나 같은 분야에서 일했거나 같은 종류의 바카라을 읽어온 사람들은 세계를 비슷한 방식으로 조직한다. 어떤 이야기가 나오면 어디로 이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지에 대한 감각이 겹친다. 그래서 개인적인 정보가 없어도 예측이 가능하다.
같은 업계 사람끼리 처음 만나도 대화가 술술 풀리는 이유가 이것이다. 상대를 모르지만 상대가 속한 문법을 알고 있다.
같은 바카라을 읽은 사람들끼리, 같은 도시에서 자란 사람들끼리,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것을 겪은 사람들끼리 유독 말이 잘 통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공유된 배경은 그 자체로 예측의 재료가 된다. 어떤 이야기를 꺼냈을 때 설명해야 할 것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의 경계가 겹치기 때문이다. 매번 처음부터 설명해야 하는 대화는 그것만으로도 피곤하다.
반대로 이것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서로 다른 문법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노력해도 계속 어긋난다. 나쁜 의도가 없어도 그렇다. 예측이 반복적으로 빗나가면 대화는 피로해지고, 그 피로가 상대에 대한 감정으로 오해되기 쉽다. 저 사람과는 안 맞는다는 판단이 사실은 예측 실패의 누적일 수 있다.
세대 간 대화가 자주 삐걱거리는 것도 여기에 걸쳐 있다. 같은 단어를 쓰지만 그 단어가 놓이는 자리가 다르다. 어떤 말 뒤에 무엇이 오는 것이 자연스러운지에 대한 감각이 서로 다르게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악의 없는 문장이 무례하게 들리고 배려로 한 말이 참견으로 도착한다. 예측 모델이 서로 다른 판본을 쓰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어긋남이 인격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좋은 사람들끼리도 예측이 안 맞으면 대화는 힘들어진다. 우리는 그 힘듦의 원인을 상대의 성격이나 태도에서 찾으려 하지만, 실제로는 조율되지 않은 두 개의 모델이 부딪히고 있을 뿐인 경우가 많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둘 것이 있다.
예측이 잘 되는 것과 좋은 대화인 것은 다르다.
예측이 완벽하게 맞는 대화는 편안하지만 새로운 것이 없다. 서로 아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 된다. 실제로 우리는 그런 대화를 나눈 뒤 즐거웠지만 별 내용은 없었다고 느낄 때가 있다.
좋은 대화에는 적당한 어긋남이 필요하다. 예측 가능한 틀 안에서 예상하지 못한 것이 나올 때 대화는 살아난다. 완전히 낯설면 따라갈 수 없고 완전히 익숙하면 지루하다. 그 사이 어딘가에 좋은 대화가 있다.
음악에서 리듬이 작동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박자를 예측할 수 있어야 몸을 맡길 수 있지만, 예측대로만 흘러가면 밋밋하다. 좋은 연주는 예측을 만들어놓고 살짝 배신한다. 대화도 그렇다.
그러니까 마음이 맞는다는 것은 예측이 100퍼센트 맞는 상태가 아니다. 예측이 작동하는 상태다. 틀에서 벗어난 말이 나와도 왜 그 말이 나왔는지 따라갈 수 있는 상태.
농담이 성립하는 조건도 같다. 웃음은 예측이 배신당하는 순간에 터진다. 그런데 아무 예측도 없는 상태에서는 배신도 없다. 상대의 사고 흐름을 어느 정도 따라가고 있어야 그것이 갑자기 방향을 틀 때 웃을 수 있다. 그래서 아무하고나 농담이 통하지 않는다. 잘 웃는 사이라는 것은 예측이 잘 되는 사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말수가 적은 사람들끼리도 편할 수 있는 이유 역시 여기 있다. 대화의 양이 문제가 아니다. 침묵이 어색하지 않다는 것은 상대가 지금 말하지 않는 이유까지 예측되고 있다는 뜻이다. 저 사람이 지금 생각을 정리하고 있구나, 혹은 그냥 조용히 있고 싶구나. 그것이 읽히면 침묵도 대화의 일부가 된다.
해슨 교수 연구팀의 결과를 조금 더 넓게 보면 다른 이야기가 보인다.
우리 뇌가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만 꼽으라면 아마 예측일 것이다. 하버드대학교의 버 교수는 뇌를 앞을 읽고 행동하는 조직이라고 불렀다.
뇌는 세상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끊임없이 다음에 무엇이 올지 예상하고 미리 준비한다. 계단을 내려갈 때 발밑을 매번 확인하지 않는 것도, 컵을 잡을 때 무게를 미리 짐작하고 힘을 조절하는 것도 예측이다. 예측이 맞으면 우리는 그것을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틀렸을 때에만 알아차린다. 계단 하나가 예상과 다르면 그제야 발이 놀란다.
대화도 마찬가지다. 예측이 잘 될 때 우리는 예측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저 편하다고 느낀다. 어긋날 때에야 무언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니까 마음이 맞는다는 느낌은 뇌가 자기 일을 잘 해내고 있다는 신호다. 상대를 향해 예측 장치를 돌렸는데 그것이 계속 맞아떨어지는 상태. 그때 느끼는 만족감이 우리가 편안함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편안함이라는 감정의 성격이 달라진다. 편안함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잘 작동하고 있는 상태다. 힘을 들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그 작업이 성공적이어서 의식에 보고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잘 돌아가는 기계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반대로 불편한 대화가 유독 피곤한 것도 설명이 된다. 예측이 계속 빗나가면 뇌는 매번 새로 계산해야 한다. 상대의 다음 말을 짐작할 수 없으니 준비할 수도 없고, 나온 말을 그때그때 처리해야 한다. 한 시간의 대화가 하루치의 피로처럼 느껴지는 날이 있다면, 그날의 뇌는 실제로 초과 근무를 한 것이다.
이 관점은 인간관계를 조금 다르게 보게 만든다.
우리는 보통 마음이 맞는 것을 운명처럼 여긴다. 맞는 사람과 안 맞는 사람이 정해져 있다고. 그런데 예측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건 상당 부분 학습의 문제다.
상대에 대한 정보가 쌓이면 예측이 정확해진다. 처음에는 어긋나던 대화가 시간이 지나면서 맞아 들어가는 경우가 실제로 많다. 첫인상이 좋지 않았던 사람과 나중에 가까워지는 일이 드물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노력해도 끝내 맞지 않는 관계도 있다. 세계를 조직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면 예측 모델을 세우기가 어렵다. 그런 경우 억지로 맞추려는 것보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편이 낫다.
다만 안 맞는다는 판단을 내리기 전에 한 가지는 물어볼 만하다. 내가 저 사람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는가. 예측이 빗나가는 것이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 부족일 수도 있다.
그리고 예측의 방향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만하다. 우리는 상대를 예측할 때 대개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삼는다. 내가 저 상황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테니 저 사람도 그러겠지. 이 방식은 나와 비슷한 사람에게는 잘 통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계속 빗나간다. 그리고 빗나간 결과를 상대의 이상함으로 해석하게 된다.
더 정확한 예측은 상대의 자리에서 하는 예측이다. 저 사람이 살아온 방식이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볼까. 이건 훨씬 품이 많이 드는 일이고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낯선 사람과의 대화가 어려운 것이다.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노력이 실제로 비싸기 때문이다.
이해라는 말이 원래 그런 뜻일지도 모른다. 상대의 자리에 예측 장치를 세워보는 일.
3초라는 숫자로 돌아가보자.
말을 듣고 이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3초다. 그런데 마음이 맞는 대화에서는 뇌의 어떤 부분이 그 3초를 앞질러 간다. 아직 오지 않은 말을 향해 미리 손을 뻗는다.
듣는다는 것이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라는 뜻이다. 잘 듣는 사람은 조용히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부지런히 앞서 나가는 사람이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그리면서 듣는다.
경청이라는 말을 우리는 흔히 침묵과 인내로 이해한다. 끼어들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는 것. 물론 그것도 중요하다. 다만 이 연구가 보여주는 잘 듣기는 조금 다른 그림이다. 상대가 어디로 가려는지를 함께 그려보는 일. 조용히 있는 것과 따라가고 있는 것은 다르다. 아무 생각 없이 조용한 사람도 있고 열심히 따라가면서 조용한 사람도 있다. 말하는 쪽은 그 차이를 대개 알아차린다.
그러니까 누군가와 마음이 맞았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두 사람의 뇌가 서로를 향해 열심히 일한 결과다. 편안했던 그 대화의 배후에 꽤 분주한 계산이 있었던 것이다.
말이 나오기 전에 이미 도착해 있는 것. 우리가 오랫동안 마음이라고 불러온 것의 정체가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