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율 기록]
장소 · 모름
방 · 1개
악기 · 업라이트 피아노 1대
도구 · 튜닝 해머 1개 뮤트 웨지 12개 음차 1개
회차 · 6회째
현재 상태 · 조율 중
A4
깨어난 자리에서 먼저 한 것은 손뼉이었다.
한 번 치면 소리가 돌아온다. 돌아오는 속도로 방 크기를 안다. 여기는 짧게 돌아왔다. 넓지 않다.
천장은 낮다. 손뼉 소리가 위에서 눌린다. 3미터는 안 된다.
바닥은 나무다. 발로 밟아보면 안다. 콘크리트는 발바닥에 딱딱하게 걸리고 나무는 아주 미세하게 눌린다.
벽을 짚고 한 바퀴 돌았다. 손 짚은 횟수로 세면 가로 다섯 세로 넷쯤이다.
문은 하나다. 손잡이가 없다.
등이 켜져 있는지 꺼져 있는지는 모른다. 나한테는 상관없는 정보다. 35년 동안 필요했던 적이 없다.
방 가운데에 피아노가 있었다.
업라이트다. 손으로 위판을 짚고 옆면을 훑고 다리를 만졌다. 국산이다. 이 정도 두께와 이 정도 다리 모양이면 대충 30년쯤 된 물건이다.
위판에 도구가 놓여 있었다.
튜닝 해머. 자루가 나무다. 손에 익은 무게였다.
뮤트 웨지. 세어보니 12개다.
음차. 이건 만져보면 안다. 아래쪽에 각인이 있다.
음차를 무릎에 쳐서 피아노 위판에 갖다 댔다. 나무가 소리를 키운다.
440이 났다.
건반 뚜껑을 열고 A4를 눌렀다.
낮았다.
맥놀이가 초당 두 번쯤이었다. 2헤르츠 정도 낮다는 뜻이다.
나는 해머를 들었다.
여기가 어디고 누가 나를 여기 넣었는지는 그때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도 잘 모른다.
내 앞에 어긋난 피아노가 있으면 나는 그걸 맞춘다. 35년 동안 그렇게 살았다.
그 전에 문을 확인은 했다.
밀고 당기고 옆으로 밀어봤다. 경첩 위치를 손으로 찾았다. 안쪽으로 열리는 문이었다. 손잡이가 있어야 할 자리는 매끈했다.
벽도 다 만졌다. 콘센트가 하나 있었다. 스위치는 없었다.
천장은 안 닿는다. 피아노 위에 올라가면 닿겠지만 그건 안 했다. 피아노 위판에 올라서는 건 이 일 하는 사람은 안 한다.
10분쯤 그러고 나서 해머를 들었다.
10분이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방은 작고 나는 손이 빠르다.
F3에서 F4까지
조율은 순서가 있다.
먼저 기준음을 잡는다. A4다. 음차에 맞춘다.
그다음이 중요하다. F3에서 F4까지 한 옥타브를 먼저 잡는다. 이걸 템퍼먼트라고 한다. 이 12개 음을 평균율로 나누어 놓고 나머지는 여기에서 옥타브로 뻗어 나간다.
평균율은 완벽하지 않다. 완벽하면 못 쓴다.
5도를 완벽하게 맞추면 그 음들을 12번 쌓았을 때 처음 자리로 안 돌아온다. 그래서 5도를 아주 조금씩 좁힌다. 3도는 조금 넓힌다.
그 조금을 무엇으로 재느냐 하면 맥놀이로 잰다.
두 음이 어긋나면 소리가 울렁거린다. 초당 몇 번 울렁이는지를 센다.
이 대역에서 5도는 초당 0.7번쯤 울렁여야 한다. 3도는 초당 7번쯤이다. 이 속도는 기계로 안 잰다. 몸이 안다.
중고음 건반 하나에는 현이 3줄 걸려 있다. 뮤트 웨지를 양쪽에 끼워서 가운데 한 줄만 울리게 하고 그 한 줄을 잡는다. 12음을 다 잡고 나서 웨지를 빼고 세 줄을 서로 맞춘다.
세 줄이 맞으면 소리가 하나가 된다. 안 맞으면 소리 끝이 갈라진다. 갈라지는 건 아주 작아도 들린다.
그게 조율사가 하는 일의 전부다. 나머지는 다 이 반복이다.
템퍼먼트에 40분 걸렸다.
아래로
저음부가 어렵다.
저음 현은 굵은 심선에 가는 구리선을 감아놓은 것이다. 감은 현이라고 부른다. 이건 배음이 흐리다. 기음이 뭉개져서 귀로 잡기가 어렵다.
그래서 저음은 기음이 아니라 배음으로 잡는다. 그 음의 두 번째 배음이 위쪽 옥타브 음과 맞는지를 듣는다.
제일 아래 8개는 현이 한 줄씩이다. 그 위로 올라가면서 두 줄이 되고 더 올라가면 세 줄이 된다.
한 줄짜리는 웨지가 필요 없다. 그냥 잡으면 된다. 대신 배음이 지저분해서 판단이 오래 걸린다.
A0까지 내려가는 데 1시간 20분 걸렸다.
내려가면서 손끝이 알려주는 게 있다.
핀이 헐거운 악기는 해머를 돌릴 때 저항이 없다. 쑥 돌아간다. 그런 피아노는 맞춰놔도 사흘이면 풀린다. 주인한테 미리 말해줘야 한다.
이 피아노는 핀이 단단했다.
너무 단단했다.
35년 하면서 이렇게 단단한 핀은 몇 번 못 봤다. 새 악기도 이 정도는 아니다.
핀이 이렇게 단단하면 조율이 안 풀려야 한다.
위로
고음부는 반대 문제다.
고음 현은 짧고 뻣뻣하다. 뻣뻣한 현은 배음이 이론값보다 높게 나온다. 이걸 인하모니시티라고 한다.
그래서 고음은 계산대로 맞추면 안 된다. 옥타브를 이론값보다 넓게 잡아야 귀에 맞는다. 이걸 스트레치라고 한다.
넓히는 정도는 악기마다 다르다. 현이 짧은 업라이트는 많이 넓혀야 하고 긴 그랜드는 덜 넓힌다.
이 피아노는 많이 넓혀야 하는 쪽이다.
C8까지 올라가는 데 1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
전체 4시간 10분쯤 걸렸다.
다 끝내고 나서 한 번 훑어 쳤다. 아래에서 위로 반음씩 올라가면서 다 눌러봤다.
깨끗했다.
35년 하면 자기가 한 일이 잘됐는지 안 됐는지는 안다.
잘됐다.
이 방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기분이 좋았다.
문
훑어 치기가 끝나자마자 소리가 났다.
딸깍이다. 문 쪽에서 났다.
가서 밀었다. 열렸다.
나갔다.
들어간 데도 방이었다.
손뼉을 쳤다. 같은 크기였다. 발로 밟아보니 나무였다. 벽을 짚고 돌아보니 가로 다섯 세로 넷이었다.
가운데 피아노가 있었다.
업라이트다. 같은 두께 같은 다리다.
위판에 해머와 웨지 12개와 음차가 놓여 있었다.
나는 조율 핀을 만졌다.
아까 방에서 A4 핀 옆쪽에 손톱으로 흠집을 하나 냈다. 습관이다. 오래 다니는 집 피아노에는 내 표시를 남긴다. 다음에 갔을 때 누가 손댔는지 알려고 그렇게 한다.
흠집이 있었다.
같은 피아노다.
음차를 쳐서 위판에 댔다. 그러고 A4를 눌렀다.
맥놀이가 있었다.
4시간 걸려 맞춘 것이 다시 어긋나 있었다.
똑같이 2헤르츠 낮았다.
첫 번째 방에서 처음 눌렀을 때와 같은 양이다.
230
두 번째 조율을 시작하기 전에 현을 세어봤다.
세는 방법이 있다. 브리지 위를 손끝으로 훑으면 현이 하나씩 걸린다. 손톱 옆면으로 훑으면 더 잘 걸린다. 열 개씩 끊어서 세고 그때마다 다른 손 손가락을 하나씩 접는다.
230줄이었다.
업라이트면 그쯤이 맞다. 건반이 88개고 저음 8개는 한 줄 그 위 스물몇 개는 두 줄 나머지는 세 줄이다. 다 더하면 220에서 230 사이가 나온다.
정상이다.
두 번째 조율은 3시간 50분 걸렸다. 첫 번째보다 빨랐다. 이 악기를 이미 한 번 해봤으니까 그렇다.
한 가지가 걸렸다.
조율이 풀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습도가 변하거나 온도가 변하거나 많이 쳤거나다. 피아노는 나무라서 습도에 제일 민감하다. 여름 장마 지나면 다 어긋난다.
여기는 습도가 안 변한다. 손등으로 안다. 습하면 피부에 얇게 붙는 느낌이 있고 건조하면 당긴다. 매번 같다.
온도도 안 변한다.
그리고 아무도 안 쳤다.
그런데 어긋나 있다.
어긋난 방향도 봤다. 전체가 골고루 내려가 있으면 그건 습도나 온도다. 몇 개만 튀어 있으면 그건 누가 쳤거나 핀이 헐거운 것이다.
전체가 골고루 내려가 있었다.
정확히 골고루였다.
정확히 골고루라는 건 자연에서는 잘 안 나온다.
문이 열렸다.
세 번째 방도 같았다.
시간
시계가 없다.
시각장애인이 시계를 못 본다는 얘기가 아니다. 나는 말하는 시계를 쓴다. 그게 주머니에 없다. 지갑도 없고 열쇠도 없다. 옷만 그대로 입고 있다.
그래서 조율 시간으로 잰다.
조율은 몸이 시간을 안다. 템퍼먼트 40분 저음 1시간 20분 고음 1시간 조금이다. 이건 35년 동안 몸에 박힌 속도다. 손님 집에 가면 두 시간 반이면 끝난다고 미리 말한다. 그 말이 틀린 적이 거의 없다.
여기서 잰 시간이다.
1회차 4시간 10분.
2회차 3시간 50분.
3회차 3시간 40분.
4회차 3시간 30분.
5회차 3시간 20분.
6회차는 아직 안 끝났다.
점점 빨라진다. 같은 악기를 반복하니까 당연하다.
합하면 18시간 30분이다.
여기 이틀도 안 있었다는 소리다.
그런데 배가 고픈 정도로 세면 그것보다 훨씬 길다.
수염으로도 재봤다. 턱을 만져보면 안다. 나는 하루만 안 깎아도 손끝에 걸린다.
지금 턱은 열흘쯤이다.
18시간 30분과 열흘은 안 맞는다.
둘 중 하나가 틀렸다. 어느 쪽이 틀렸는지는 모른다.
226
세 번째 방에서 다시 세어봤다.
226줄이었다.
4줄이 줄었다.
어디가 줄었는지 찾는 데 오래 걸렸다. 브리지를 구간별로 다시 세었다.
저음 두 줄짜리 구간에서 네 개가 한 줄이 되어 있었다.
핀은 그대로 있다. 핀은 두 개인데 현이 하나만 걸려 있다. 빈 핀은 만져보면 안다. 현이 감겨 있어야 할 자리가 매끈하다.
건반을 눌러봤다.
소리는 났다.
두 줄이 한 줄이 되면 소리가 훨씬 얇아져야 한다. 힘이 반으로 줄어야 한다.
얇아지긴 했다. 반은 아니었다.
나는 그 네 개를 여러 번 눌러봤다. 그러고 다음 조율을 했다.
건반은 88개 그대로다. 그건 매번 센다.
세는 방법도 정해져 있다. 제일 왼쪽 흰건반부터 오른쪽으로 훑는다. 검은건반은 2개와 3개가 번갈아 나온다. 그 묶음으로 센다. 흰건반 52개 검은건반 36개다. 합이 88이다.
여섯 번 다 88이었다.
현은 줄어드는데 건반은 안 줄어든다.
안 나가기
네 번째 방에서 실험을 했다.
조율을 다 끝냈다. 문이 딸깍 하고 열렸다.
안 나갔다.
그 방에 앉아 있었다. 한참 있다가 A4를 눌렀다. 음차를 쳐서 대봤다.
맥놀이가 없었다.
5도를 짚어봤다. 3도도 짚어봤다. 훑어 쳐봤다. 다 깨끗했다.
더 오래 앉아 있었다. 잠도 그 방에서 잤다.
깨서 다시 확인했다.
깨끗했다.
피아노는 안 어긋난다.
앉아 있는 동안에는 안 어긋난다.
문을 나가야 어긋난다.
이걸 확인하고 나서 한 가지를 더 해봤다. 문을 열어놓고 반만 나갔다. 한 발은 이 방에 두고 한 발만 넘겼다.
그러고 뒤로 물러났다.
피아노를 확인했다. 깨끗했다.
두 발을 다 넘기고 나서 뒤를 돌았다.
문이 닫혀 있었다. 손잡이가 없어져 있었다.
나가면 돌아갈 수 없다.
버티면 굶는다. 물과 음식은 다음 방에 있다.
나는 나흘째에 나갔다.
몸
다섯 번째 방에서 음차를 의심했다.
음차는 금속이라 온도에 따라 아주 조금 변한다. 뜨거우면 낮아지고 차가우면 높아진다. 그런데 그 변화는 아주 작다. 사람이 알아챌 정도가 아니다.
여기 온도는 안 변한다. 팔뚝 안쪽으로 재보면 안다. 매번 같다.
그래도 의심이 들면 확인해야 한다.
확인할 방법이 하나 있다.
나는 35년 동안 매일 아침에 가게에서 음차를 쳤다. 일 시작하기 전에 한 번 친다. 그게 습관이다. 하루도 안 빠졌다.
그 소리는 몸에 있다.
절대음감 얘기가 아니다. 나는 절대음감이 없다. 그런데 매일 아침 35년이면 그 소리 하나는 몸에 새겨진다. 12000번쯤 들은 소리다.
음차를 쳤다.
낮다.
아주 조금 낮다. 440에서 1헤르츠는 대략 4센트다. 반음이 100센트다.
내가 느끼기에 회차마다 2센트쯤 낮아진다.
2센트는 아무것도 아니다. 훈련된 사람도 잘 못 잡는다. 나도 확신이 안 선다.
6회차면 12센트다. 반음의 8분의 1이다.
아직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아직 이걸 확인하지 못했다.
내 귀가 낮아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것도 가능한 얘기다. 여기서 며칠째인지 모르겠고 잠도 제대로 안 잤다. 피곤하면 귀가 흐려진다.
음차가 낮아지는 것과 내 귀가 낮아지는 것은 안에서는 구별이 안 된다.
기준이 하나뿐이면 그렇게 된다.
88
여섯 번째 방에서 현을 세었다.
88줄이었다.
두 번 세었다. 손을 바꿔서 한 번 더 세었다.
88이다.
건반 하나에 현 하나다.
세 줄짜리가 없다. 두 줄짜리도 없다. 저음부터 고음까지 전부 한 줄이다.
이건 피아노가 아니다. 이런 악기는 없다.
웨지 12개는 여전히 위판에 놓여 있다. 쓸 데가 없는데 놓여 있다.
건반을 아래에서 위로 다 눌러봤다.
88개가 다 소리가 났다.
한 줄짜리 고음은 거의 안 들려야 한다. 고음 세 줄이 한 줄이 되면 그건 소리라기보다 딱 소리에 가까워진다.
다 제대로 났다.
그러고 A4를 눌렀다.
소리가 안 났다.
한 번 더 눌렀다. 안 났다.
세게 눌렀다. 안 났다.
옆 건반을 눌렀다. Ab4는 났다. Bb4도 났다. A4만 안 났다.
액션을 확인했다. 건반을 누르면 지렛대가 움직이고 해머가 올라가서 현을 때린다. 손가락을 넣어서 해머 움직임을 만졌다.
해머는 정상적으로 올라갔다.
올라가서 아무것도 안 때렸다.
그건 손끝으로 안다. 해머가 현을 때리면 되튄다. 안 때리면 끝까지 올라갔다가 그냥 떨어진다.
떨어졌다.
A4
손을 넣어서 확인했다.
A4 자리에 핀이 두 개 있다. 세 개여야 하는데 두 개다. 다른 자리도 다 그렇다.
두 핀 다 매끈했다.
현이 없다.
브리지 쪽도 만졌다. 없다. 해머가 때릴 자리에도 없다. 손가락을 넣어서 위아래로 훑었다.
A4에는 현이 없다.
다시 건반을 눌렀다.
소리가 났다.
세 번 눌렀다. 세 번 다 났다.
음차를 쳐서 위판에 댔다. 그러고 A4를 같이 눌렀다.
맥놀이가 있었다.
맥놀이는 소리가 두 개 있어야 생긴다. 하나만 있으면 안 생긴다.
초당 세 번쯤이다. 3헤르츠 낮다.
한 가지 더 확인했다.
댐퍼다. 건반에서 손을 떼면 댐퍼가 현에 닿아서 소리를 끈다. 페달을 밟으면 댐퍼가 다 떨어져서 소리가 길게 남는다.
A4를 누르고 손을 뗐다.
소리가 끊겼다.
댐퍼가 무언가를 눌러서 끈 것이다.
페달을 밟고 다시 눌렀다. 소리가 길게 남았다.
그러니까 이건 액션 착각이 아니다. 없는 현을 댐퍼가 정확히 누르고 있다.
나는 그 자리에 한참 서 있었다.
그러고 해머를 들었다.
A4 핀에 걸었다. 잘 걸린다. 핀 머리는 사각이고 해머 소켓도 사각이라 딱 맞는다.
돌리면 무엇이 조여지는지는 모른다.
35년 동안 나는 안 보고 조율했다. 손으로 했다. 손으로 하는 일에서 안 보인다는 건 문제가 된 적이 없다.
이번에도 손으로 한다.
돌렸다.
장력이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