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 기록]
시설 · 화장품 제조 공장 향료 조합실
직무 · 조향
근속 · 8년
대상 품목 · 20년 된 단일 제품
원본 처방 · 원료 34종
문제 · 피크 1개
현재 상태 · 리뉴얼 진행 중
처방전
향은 종이에 적혀 있어요.
이게 이 일 시작할 때 제일 이상했어요. 향은 공기고 냄새인데 우리가 다루는 건 표예요. 원료 이름이 왼쪽에 있고 오른쪽에 숫자가 있어요. 그게 다예요.
처방전이라고 불러요.
숫자 단위는 그램이에요. 소수점 아래 세 자리까지 써요. 0.001그램까지 재요.
왜 그렇게까지 하냐면 어떤 원료는 0.01그램만 더 들어가도 향이 다른 게 돼요. 알데하이드류가 특히 그래요. 조금이면 반짝이고 조금 더 들어가면 비누 냄새가 나고 더 들어가면 그냥 못 쓰게 돼요.
우리 회사 제품 하나가 20년째 팔려요.
향이 20년 동안 안 바뀌었어요. 아니 정확히는 세 번 바뀌었는데 소비자가 모를 정도로만 바뀌었어요. 원료가 단종되면 어쩔 수 없이 바꿔야 하거든요.
작년에 그걸 다시 손보게 됐어요.
제가 맡았어요.
칭량
조합실은 냄새가 없어야 해요.
이게 좀 우스운데 향료 조합실이 무취예요. 환기가 세고 항온항습이 걸려 있어요. 22도 45퍼센트요.
냄새가 남아 있으면 다음 걸 못 만들거든요.
들어갈 때 향수를 뿌리면 안 돼요. 로션도 안 돼요. 저는 8년 동안 무향 제품만 써요. 집에서 김치찌개를 끓이면 다음 날 조합실에 못 들어가요.
원료는 갈색 병에 들어 있어요. 빛에 상하니까요. 병이 300개 좀 넘게 있어요.
칭량은 순서가 있어요.
많이 들어가는 것부터 재요. 베이스가 되는 것들이요. 그다음에 미량인 것들을 넣어요. 순서를 바꾸면 오차가 커져요.
저울은 0.001그램까지 나오는 거예요. 문을 닫고 재요. 사람이 옆에서 숨만 쉬어도 숫자가 흔들리거든요.
34종을 다 재면 두 시간쯤 걸려요.
다 재고 합계를 봐요.
처방전 합계와 실제 합계가 맞아야 해요.
맞았어요. 매번 맞았어요.
한 번은 소수점 아래 네 자리까지 나오는 저울로 재봤어요. 연구소 것을 빌렸어요.
34종 합계가 처방전 값보다 0.0003그램 많았어요.
이건 오차예요. 이 정도는 저울 자체 오차 범위 안이에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세 번을 재도 0.0003이 나왔어요.
오차는 흔들려야 하잖아요. 어떤 때는 더 나오고 어떤 때는 덜 나오고요.
세 번 다 같은 방향으로 같은 크기였어요.
그때 저는 이걸 그냥 넘겼어요. 3만분의 1이잖아요.
지금은 그때 안 넘겼으면 좋았겠다 싶어요.
숙성
향은 섞고 나서 바로 안 써요.
숙성을 시켜요. 마세라이션이라고 해요. 몇 주에서 몇 달 두면 원료들이 서로 자리를 잡아요.
갓 섞은 건 각 원료가 따로 놀아요. 알코올도 튀고요. 숙성하면 그게 하나가 돼요.
우리는 4주 둬요.
숙성 중에는 안 건드려요. 어두운 데 두고 온도만 맞춰줘요.
4주 뒤에 열면 냄새가 달라져 있어요.
이건 매번 신기해요. 8년 해도 신기해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안에서 뭔가 일어난 거잖아요.
작년 5월에 시작한 배치를 6월에 열었어요.
열자마자 알았어요.
하나가 더 있었어요.
이건 설명이 좀 필요해요.
향을 4주 만에 열면 처음 몇 초가 제일 중요해요. 코가 아직 순응 안 된 상태거든요. 3초쯤 지나면 코가 익숙해져서 잘 안 잡혀요.
그 3초에 알았어요.
병뚜껑을 다시 닫고 5분 있다가 다시 열었어요.
또 3초에 잡혔어요.
노트
향에는 층이 있어요.
처음에 뜨는 게 톱노트예요. 가볍고 빨리 날아가요. 시트러스나 허브 같은 것들이요.
그다음이 미들노트예요. 꽃 종류가 여기 있어요.
마지막이 베이스노트예요. 무겁고 오래가요. 나무나 수지나 머스크 같은 거요.
우리 제품은 미들이 중심이에요. 자스민이랑 로즈가 축이고 베이스에 샌달우드가 깔려요.
제가 6월에 맡은 건 베이스 쪽이었어요.
샌달우드 아래에 하나가 더 깔려 있었어요.
무슨 냄새냐고 물으면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이 일 하는 사람들은 냄새를 다른 냄새로 설명해요. 그게 유일한 방법이거든요. 젖은 돌 냄새라든가 비 온 뒤 아스팔트 냄새라든가요.
그 냄새는 그렇게 안 됐어요.
비슷한 걸 못 찾겠어요.
굳이 말하면 따뜻해요. 냄새인데 온도가 있어요. 손등에 대면 손등이 조금 따뜻해지는 것 같아요.
물론 안 따뜻해요. 온도계로 재봤어요.
분석
기계에 걸었어요.
GC-MS라고 해요. 향료를 성분별로 쪼개서 뭐가 얼마나 들어 있는지 보는 장비예요.
결과가 그래프로 나와요. 성분마다 봉우리가 하나씩 서요. 그걸 피크라고 불러요.
우리 제품 원본 데이터가 있어요. 20년 전 거요. 그때도 이 기계로 찍었어요.
원본에 피크가 218개예요. 원료가 34종인데 원료 하나에 성분이 여러 개 들어 있으니까 그렇게 돼요. 천연 원료는 성분이 수십 개씩이거든요.
제가 만든 배치를 찍었어요.
219개였어요.
하나가 더 있었어요.
위치를 봤어요. 피크는 나오는 시각이 정해져 있어요. 성분마다 기계를 통과하는 속도가 다르거든요. 그 시각을 머무름 시간이라고 해요.
새 피크는 22.4분이었어요.
원본에는 22.4분에 아무것도 없어요.
재현
다시 만들었어요.
같은 처방으로 다시 34종을 쟀어요. 두 시간 걸렸고 합계 맞았어요. 4주 숙성했어요.
찍었어요.
219개였어요. 22.4분에 있었어요.
세 번 더 했어요. 네 번 다 있었어요.
피크 면적도 봤어요. 면적이 곧 양이에요.
네 번 다 같았어요.
원료 병을 다 의심했어요. 34종을 하나씩 따로 찍었어요. 원료 하나에 22.4분짜리가 섞여 있으면 그게 원인이니까요.
34종에 없었어요.
알코올도 찍었어요. 물도 찍었어요. 병도 찍었어요. 빈 병에 알코올만 넣고 4주 두고 찍어봤어요.
없었어요.
34종을 다 섞어야 생겨요.
관능
패널을 불렀어요.
관능 검사예요. 훈련받은 사람들이 냄새를 맡고 뭐가 느껴지는지 적어요. 우리 회사에 여섯 명 있어요.
시향지에 찍어서 돌렸어요.
여섯 명이 다 원본과 같다고 했어요.
제가 베이스 쪽에 뭐 없느냐고 물었어요. 이렇게 물으면 안 돼요. 유도 질문이거든요. 그래도 물었어요.
다들 샌달우드요 하고 대답했어요.
그 아래에요.
없는데요.
그날 저녁에 혼자 다시 맡았어요.
있었어요.
기계에는 있고 저한테는 있는데 여섯 명한테는 없어요.
이게 제일 이상한 부분이에요. 왜냐면 사람 코가 기계보다 예민한 성분이 있거든요. 어떤 건 기계가 못 잡는데 사람이 맡아요. 반대도 있고요.
그런데 이건 기계가 잡았어요.
기계가 잡은 걸 훈련받은 여섯 명이 못 맡아요.
한 번 더 해봤어요.
이번에는 유도 질문 없이 했어요. 시향지를 두 장 줬어요. 하나는 원본이고 하나는 제 배치예요. 어느 쪽이 어느 쪽인지 안 알려주고요.
같은 걸 구별하는 시험이에요. 삼점 시험이라고 하는 게 있는데 그 비슷한 거예요.
여섯 명 중에 다섯 명이 못 골랐어요. 그냥 찍었어요.
한 명이 골랐어요.
제일 어린 사람이에요. 입사 2년 차요.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었어요.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어요.
이쪽이 좀 더 오래 남아요.
무슨 냄새가 남느냐고 물었어요.
냄새는 아닌데 그냥 남아요.
그 사람은 그 뒤로 그 얘기를 안 해요. 제가 두 번 더 물었는데 두 번 다 기억이 안 난다고 했어요.
단종 원료
혹시나 해서 옛날 원료를 찾아봤어요.
우리 회사는 원료 대장을 남겨요. 언제 어떤 원료를 썼고 언제 단종됐는지가 다 있어요.
20년 전 대장을 봤어요.
그때 이 제품 처방이 34종이 아니었어요.
35종이었어요.
하나가 2006년에 빠졌어요.
빠진 이유가 적혀 있었어요.
공급 중단.
원료명을 봤어요. 천연 수지 계열이었어요. 특정 지역에서만 나는 거고 그 지역 사정으로 수입이 끊겼대요. 그런 일은 흔해요.
그 원료 표준 데이터가 남아 있나 찾았어요.
우리 회사는 원료를 받으면 다 찍어놔요. 20년 전 데이터도 서버에 있어요.
찾았어요.
주 성분 피크가 22.4분이었어요.
없는 병
창고를 뒤졌어요.
혹시 그 원료가 병째 남아 있나 싶었어요. 20년 전 거면 상했겠지만 있으면 확인은 되니까요.
없었어요.
폐기 대장에 2006년에 폐기했다고 적혀 있었어요. 잔량 1.2킬로그램이요.
폐기 확인 서명도 있었어요.
그러니까 그 원료는 이 건물에 없어요.
그런데 제가 만든 배치에서 나와요.
양을 계산해봤어요. 피크 면적으로 역산하면 배치당 0.4그램쯤이에요.
제가 지금까지 다섯 배치를 만들었어요. 2그램이에요.
1.2킬로그램이면 3000배치예요.
서명
폐기 대장을 다시 봤어요.
2006년 4월이에요. 원료명이 있고 잔량이 있고 폐기 사유가 있어요. 그리고 확인자 서명란이 두 칸이에요.
한 칸은 담당자고 한 칸은 입회자예요.
담당자 칸에 전임자 이름이 있었어요. 그분이요.
입회자 칸이 비어 있었어요.
그런데 도장이 찍혀 있었어요.
이름이 안 적힌 자리에 도장만 찍혀 있어요. 인주가 번져서 글자가 안 읽혀요.
우리 회사는 폐기할 때 두 사람이 서명해야 해요. 한 사람만 하면 대장이 안 넘어가요. 결재가 안 나요.
이건 넘어갔어요. 결재 도장이 다 찍혀 있어요.
그해 대장을 다 넘겨봤어요. 폐기 건이 스물 몇 건 있었어요.
다른 건들은 입회자 이름이 다 적혀 있어요.
이 건만 비어 있어요.
그 도장을 손끝으로 만져봤어요. 20년 된 인주는 마르면 살짝 도드라져요.
도드라져 있었어요.
찍힌 건 맞아요.
전임자
2006년에 이 제품을 담당했던 사람을 찾았어요.
지금 다른 회사에 계세요. 업계가 좁아서 연락처는 금방 알았어요.
전화를 드렸어요. 제 소개를 하고 리뉴얼 얘기를 했어요.
그분이 반가워하셨어요. 그 제품 얘기를 한참 하셨어요.
제가 물었어요. 2006년에 원료 하나 빠졌잖아요.
그분이 그랬어요.
빠졌죠.
빼고 나서 향이 안 달라졌어요.
그분이 잠깐 아무 말씀도 안 하셨어요.
그러고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안 달라졌어요.
이상하지 않으셨어요.
이상했죠.
어떻게 하셨어요.
그냥 뒀어요.
왜요.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향이 안 달라졌으면 그건 잘된 거예요. 우리 일은 안 달라지게 하는 게 일이에요.
그러고 화제를 바꾸셨어요. 요즘 원료 값 얘기를 하셨어요.
끊기 전에 한 마디 더 하셨어요.
혹시 22.4에 뭐 보이면 그냥 두세요.
제가 22.4라고 말씀드린 적이 없어요.
손
작년 가을부터 손에서 나요.
퇴근하고 집에 가서 씻어요. 조합실에서 나올 때도 씻고요. 향료 만지는 사람은 하루에 스무 번은 씻어요.
씻고 나면 아무 냄새도 안 나야 해요.
손등에서 나요.
손바닥은 아니에요. 손등만이에요. 오른손 왼손 둘 다요.
비누로 씻어도 나요. 알코올로 닦아도 나요.
한 번은 무향 세정제로 세 번 씻고 바로 맡아봤어요.
났어요.
그 따뜻한 냄새요.
남편한테 맡아보라고 했어요. 아무 냄새도 안 난대요. 손 좋다고 하더라고요.
병원에 가볼까 했어요. 후각 이상은 병일 수 있으니까요. 환후라고 하는 게 있대요. 없는 냄새를 맡는 거요.
그런데 기계가 잡잖아요.
제가 병이면 기계는 뭐예요.
그래서 이걸 해봤어요.
손을 씻은 물을 받았어요. 무향 세정제로 씻고 헹군 물이요. 비커에 받아서 그대로 기계에 걸었어요.
향료 분석하는 방법으로는 물을 못 찍어요. 전처리를 해야 해요. 유기 용매로 뽑아내는 과정이 있어요.
연구소 분한테 부탁했어요. 이유는 안 물어보시더라고요.
결과가 왔어요.
22.4분에 있었어요.
면적은 아주 작았어요. 배치에서 나오는 것의 100분의 1쯤이요.
그분이 이렇게 물으셨어요.
이거 뭐 만지셨어요.
우리 제품 만졌다고 했어요.
그럼 그거겠네요 하고 넘어가셨어요.
그런데 저는 그 주에 우리 제품을 안 만졌어요.
리뉴얼 처방 검토만 했어요. 서류만 봤어요.
시제품
12월에 시제품이 나왔어요.
리뉴얼 처방을 확정하고 소량 생산을 해요. 그걸 사내 평가에 올려요.
제가 확정한 처방은 34종이에요. 그 원료는 안 넣었어요. 있지도 않고요.
생산 라인에서 만들었어요. 조합실이 아니라 공장이에요. 탱크가 다르고 사람이 다르고 저는 근처에도 안 갔어요.
찍었어요.
219개였어요.
22.4분에 있었어요.
면적도 같았어요.
제 손이 안 닿은 배치예요.
그래서 저는 그때 좀 편해졌어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요.
제 문제가 아니라는 거니까요.
오늘
이번 주에 신입이 왔어요.
스물여섯 살이고 코가 좋아요. 훈련받으면 잘할 것 같아요.
관능 훈련을 시켜요. 원료를 하나씩 맡히고 이름을 외우게 해요. 300종을 다 외우는 데 2년쯤 걸려요.
오늘 우리 제품을 맡혔어요. 이건 훈련이 아니라 그냥 회사 대표 제품이니까 알아두라고 준 거예요.
그 애가 시향지를 코에 대고 한참 있었어요.
그러고 물었어요.
선배님 이거 아래에 뭐 하나 더 있는데 뭐예요.
저는 대답을 안 했어요.
정확히는 대답을 못 했어요.
왜냐면 저는 오늘 그게 안 맡아졌거든요.
어제까지 맡았어요. 아침에도 맡았어요.
오후부터 안 나요.
손등도 안 나요. 아무리 맡아도 안 나요.
기계에는 있어요. 아까 다시 찍었어요. 22.4분에 있어요. 면적 같아요.
저는 이제 못 맡아요.
그 애는 맡아요.
지금 그 애가 시향지를 들고 제 앞에 서 있어요.
무슨 냄새냐고 다시 물어요.
저는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없는데 하고 말하면 돼요. 여섯 명이 저한테 했던 그 말이요. 그러면 그 애는 자기가 잘못 맡았다고 생각할 거예요. 신입은 선배가 없다고 하면 없는 줄 알아요.
전임자가 저한테 한 게 그거예요.
그냥 두세요.
그렇게 말하면 이 일은 계속 굴러가요. 20년 굴러왔잖아요. 아무도 손해를 안 봤어요. 제품은 잘 팔리고 소비자는 좋아하고 소비자가 좋아하니까 우리 회사가 있고요.
말해주면 그 애는 저처럼 될 거예요.
저는 이걸 1년 반 봤어요. 그 사이에 이게 손등으로 왔고 오늘 손등에서 나갔어요.
나가서 어디로 갔는지 저는 알아요.
그 애가 아직 서 있어요.
시향지를 코에 대고 있어요. 아까부터 그러고 있어요.
말리고 싶은데 말릴 이유를 못 대겠어요.
향은 안 달라졌거든요.
우리 일은 안 달라지게 하는 게 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