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 관리 기록]
발전소 · 아이슬란드 북동부 지열
직무 · 저류층 관리
근속 · 16년
관리 정정 · 생산정 18기 재주입정 7기
문제 정정 · 1기
검층 주기 · 연 2회
현재 상태 · 근무 중
검층
이 일은 아래를 못 본다.
2킬로미터 아래에 뭐가 있는지 아무도 안 봤다. 앞으로도 안 볼 것이다. 사람이 내려갈 수 있는 온도가 아니고 장비도 오래 못 버틴다.
그래서 우리는 줄에 매달아 내린다.
검층 도구는 손가락 굵기의 쇠막대다. 안에 센서가 들어 있다. 케이블에 매달아서 아래로 내린다. 내리면서 온도와 압력을 잰다.
윈치가 돌아가는 소리를 나는 좋아한다. 낮고 규칙적이다. 1분에 30미터씩 내려간다. 2000미터면 한 시간 넘게 걸린다.
그 소리를 한 시간 듣고 있으면 아래를 보고 있는 기분이 든다.
착각이다. 나는 숫자만 본다.
16년 동안 그랬다.
여기서 겨울은 길다. 12월에는 해가 네 시간쯤 뜬다. 그러면 사람들이 실내에서 더 오래 있고 실내에 오래 있으면 숫자를 더 오래 본다.
이 이야기는 겨울에 시작됐다.
한 가지 더 적어둔다.
나는 이 발전소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 남쪽에서 왔고 처음 왔을 때는 2년만 있을 생각이었다.
16년 있었다.
여기 사람들은 아래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이 섬은 아래가 뜨거워서 사람이 산다. 온천도 아래에서 오고 난방도 아래에서 오고 전기도 아래에서 온다.
나도 그렇게 배웠다.
아래는 자원이다. 그렇게 배웠고 16년 동안 그렇게 알았다.
온도 프로파일
정정마다 온도 곡선이 있다.
깊이에 따라 온도가 어떻게 오르는지 그린 것이다. 우리는 이걸 프로파일이라고 부른다.
지열 지역은 깊이 100미터마다 온도가 오른다. 여기는 100미터당 15도쯤 오른다. 세계 평균의 다섯 배쯤 된다. 그래서 이 나라에 발전소가 있다.
곡선 모양이 다 다르다.
물이 흐르는 층이 있으면 그 구간에서 온도가 평평해진다. 물이 열을 옮겨서 위아래를 같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걸 유동 구간이라고 한다.
균열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온도가 꺾인다.
16년 하면 곡선만 봐도 그 정정 성격을 안다. 어느 층에서 물이 나오고 어디가 막혀 있는지가 다 그림에 있다.
K-9 곡선은 정상이다.
정상인데 전체가 3.1도 높다.
K-9
K-9은 1998년에 뚫었다.
깊이 2140미터고 생산정이다. 매일 뜨거운 물과 증기를 뽑아 올린다. 발전소 터빈으로 간다.
내가 온 게 2009년이니까 이 정정은 나보다 열한 살 위다.
2019년 겨울 검층에서 처음 봤다.
전년 대비 3.1도 높았다.
깊이 전체가 그렇다. 500미터에서도 3.1도 높고 1500미터에서도 3.1도 높고 바닥에서도 3.1도 높다.
이게 이상하다.
지열 정정 온도는 균일하게 안 움직인다. 어떤 층은 오르고 어떤 층은 내리고 어떤 층은 그대로다. 물이 어디로 흐르느냐에 따라 다르니까 그렇다.
전체가 같은 값으로 움직이는 건 두 가지 경우다.
장비 교정이 틀렸거나 계산에 상수가 잘못 들어갔거나다.
둘 다 확인했다. 아니었다.
재검
같은 달에 세 번 더 내렸다.
다른 검층 도구를 썼다. 우리 회사 것 말고 용역 업체 것을 빌렸다. 교정 성적서가 붙은 물건이다.
3.1도였다.
옆 정정에도 같은 도구를 내렸다. K-8과 K-10이다. 거리가 각각 300미터와 400미터다.
K-8은 정상이었다. K-10도 정상이었다.
같은 도구 같은 날 같은 사람이다.
K-9만 3.1도다.
그해 봄 검층에서도 3.1도였다. 가을에도 3.1도였다.
6년째 3.1도다.
생산
발전소 입장에서 이건 좋은 소식이다.
온도가 높으면 엔탈피가 높다. 같은 유량으로 더 많은 전기를 만든다.
K-9 발전량이 실제로 늘었다.
정확히 말하면 계산상 늘어야 하는 만큼 늘었다. 3.1도에 해당하는 만큼이다.
이게 나를 제일 괴롭히는 부분이다.
온도 센서가 틀렸으면 발전량은 안 늘어야 한다. 발전량은 터빈에서 재니까 별개 계통이다.
터빈이 실제로 더 돈다.
그러니까 3.1도는 진짜다. 숫자가 아니라 열이다.
어디서 오는 열인지를 모를 뿐이다.
재주입
우리는 쓴 물을 다시 넣는다.
터빈을 돌리고 나온 물은 아직 뜨겁다. 그걸 그냥 버리면 저류층 압력이 떨어진다. 30년 돌리면 발전소가 죽는다.
그래서 재주입정으로 다시 내려보낸다. 7기가 있다.
넣은 물의 양과 뽑은 물의 양을 매일 맞춘다.
이건 회계 같은 것이다. 들어간 것과 나온 것이 맞아야 한다.
2019년부터 K-9 구역 수지가 안 맞는다.
뽑은 양이 넣은 양보다 많다.
하루에 4세제곱미터쯤이다. 전체 유량에 비하면 아주 작다. 1퍼센트도 안 된다.
저류층은 원래 자연 함양이 있다. 빗물과 지하수가 흘러든다. 그러니까 넣은 것보다 더 나오는 게 그 자체로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상한 건 다른 정정에는 그 여분이 없다는 것이다.
K-9에만 있다.
7년 동안 하루 4세제곱미터씩이면 1만 세제곱미터가 넘는다.
어디선가 물이 들어온다.
들어오는 물은 뜨겁다.
마그마
이 나라에서 지열정 온도가 갑자기 오르는 원인은 하나뿐이다.
마그마가 위로 올라오는 것이다.
2009년에 남쪽 프로젝트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 4킬로미터를 뚫으려고 시작했는데 2100미터에서 마그마를 만났다. 900도가 넘는 것이 그 깊이에 있었다.
아무도 예상 못 했다. 그 자리에 마그마가 있다는 걸 몰랐다.
그 정정은 결국 못 쓰게 됐다. 초고온 증기에 염화수소가 섞여 나와서 설비를 다 갉아먹었다.
그래서 우리는 온도가 오르면 긴장한다.
마그마가 올라오면 신호가 있다.
지진이 는다. 미소지진이라고 하는 아주 작은 것들이다. 지표가 부푼다. 가스 성분이 바뀐다. 이산화탄소와 황화수소 비율이 달라진다.
셋 다 확인했다.
지진계는 조용하다. 6년 동안 이 구역에서 유의미한 미소지진이 없었다.
지표 변형도 없다. 위성으로 잰다. 밀리미터 단위까지 본다. 안 부풀었다.
가스 성분도 안 변했다.
마그마는 아니다.
화학
물 성분도 봤다.
지열수에는 실리카와 염화물이 녹아 있다. 온도가 높을수록 실리카가 더 녹는다. 이 관계는 잘 알려져 있어서 실리카 농도로 저류층 온도를 역산할 수 있다.
이걸 지화학 온도계라고 한다.
K-9 물을 분석했다.
실리카로 계산한 온도가 3.1도 높게 나왔다.
이건 센서와 무관한 방법이다. 물을 병에 담아서 실험실에 보내면 실험실에서 농도를 잰다. 그 농도를 식에 넣으면 온도가 나온다.
같은 값이 나왔다.
염화물로도 해봤다. 나트륨과 칼륨 비율로도 해봤다. 방법이 여러 개 있다.
전부 3.1도 높았다.
방법마다 식이 다르고 가정이 다르다. 실리카 식과 나트륨 칼륨 식은 서로 안 맞는 경우가 흔하다. 10도씩 벌어지기도 한다.
이번에는 안 벌어졌다.
전부 정확히 3.1이었다.
이건 원래 안 되는 일이다.
냄새
황화수소 냄새는 여기 사람들한테 일상이다.
썩은 달걀 냄새라고들 하는데 16년 맡으면 그게 그냥 일터 냄새가 된다. 수돗물에서도 난다. 이 나라 온수는 지열수를 쓰니까 샤워할 때도 난다.
농도가 높으면 오히려 냄새가 안 난다. 후각이 마비돼서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코를 안 믿고 검지기를 쓴다.
K-9 웰헤드 근처 냄새가 다르다.
황화수소는 그대로 있다. 그 아래에 다른 게 하나 있다.
젖은 재 냄새다.
불을 끄고 물을 부은 다음 날 아궁이에서 나는 냄새 같은 것이다.
검지기를 여러 대 가져다 댔다. 황화수소 이산화탄소 메탄 수소를 다 쟀다.
다른 정정과 같았다.
측정되는 성분은 다 같은데 냄새가 하나 더 있다.
나는 이걸 보고서에 안 썼다.
냄새는 근거가 아니다. 여기 사람들은 그런 걸 안 쓴다.
기록
작년에 옛날 기록을 찾았다.
이 발전소는 1977년부터 돌아간다. 검층 기록이 종이로 남아 있다. 창고에 상자로 있다.
K-9은 1998년 정정이니까 그때부터 있다.
1998년부터 2019년까지 22년치를 다 폈다.
정상이었다.
그런데 다른 게 보였다.
1998년 시추 보고서에 이상 항목이 하나 있었다.
2140미터에서 시추를 멈췄다. 계획은 2400미터였다.
멈춘 이유가 적혀 있었다.
시추 중 순환 유실 발생. 공동 추정. 시추 중단.
순환 유실은 시추할 때 넣는 진흙이 안 돌아오는 현상이다. 아래 어딘가에 빈 공간이 있으면 그리로 빠진다. 흔한 일이다.
빠진 양이 적혀 있었다.
3100세제곱미터다.
31이라는 숫자를 보고 나는 한참 앉아 있었다.
3.1도와 3100은 관계가 없다. 단위가 다르고 물리량이 다르다. 이건 나도 안다.
그래도 한참 앉아 있었다.
1998년
시추 보고서를 쓴 사람을 찾았다.
지금은 은퇴했고 레이캬비크에 산다. 회사 명부에 연락처가 있었다.
전화를 걸었다. 여든 가까운 분이었다.
K-9 얘기를 꺼냈다. 순환 유실 얘기를 꺼냈다.
그분이 기억한다고 했다.
그해 여름이었다고 했다. 밤에 유실이 시작됐고 새벽까지 진흙을 계속 부었다고 했다.
멈추셨느냐고 물었다.
멈춘 게 아니라 채워졌다고 했다.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그분이 이렇게 말했다.
어느 순간 안 빠지더라고. 다 찼나 보다 했지.
계산을 안 해보셨느냐고 물었다.
했지. 3100입방이면 꽤 큰 방인데.
그 뒤에 시추를 왜 안 이어가셨느냐고 물었다.
한참 조용했다.
그러고 이렇게 말했다.
그건 내가 정한 게 아니야.
누가 정했느냐고 물었다.
그분이 대답을 안 하고 다른 얘기를 시작했다. 요즘 무릎이 안 좋다는 얘기였다.
나는 5분쯤 더 듣다가 인사하고 끊었다.
그 5분 동안 그분은 K-9이라는 말을 한 번도 안 썼다.
그 정정이라고만 했다.
빈 공간
2140미터에 공동이 있다.
1998년에 진흙 3100세제곱미터가 그 안으로 사라졌다.
그게 얼마나 큰 공간이냐면 확실치 않다. 진흙이 다 고여 있을 수도 있고 균열을 타고 퍼졌을 수도 있다.
케이싱은 1950미터까지 시멘트로 굳혔다. 그 아래는 슬롯 라이너다. 구멍이 뚫린 관이다. 물이 들어오라고 그렇게 한다.
그러니까 K-9 바닥은 그 공동으로 열려 있다.
26년 동안 열려 있었다.
2019년 겨울부터 3.1도가 올라온다.
무엇이 그 공간을 데우는지는 모른다. 마그마는 아니다. 그건 확인했다.
열은 어디선가 와야 한다.
열역학은 그 점에서 아주 엄격하다. 없는 데서 생기지 않는다. 반드시 어디선가 온다.
윈치
올해 봄 검층 때 내가 직접 나갔다.
보통은 용역 팀이 한다. 나는 사무실에서 데이터를 받는다.
그날은 나갔다.
바깥이 영하 12도였다. 웰헤드 주변만 눈이 녹아 있다. 아래에서 열이 올라오니까 그렇다. 이건 어느 정정이나 그렇다.
K-9 주변은 눈 녹은 자리가 더 넓다.
윈치를 돌렸다.
케이블이 내려가는 소리를 들었다. 낮고 규칙적이다. 1분에 30미터다.
1800미터쯤에서 소리가 바뀌었다.
윈치 부하가 잠깐 가벼워졌다. 아주 잠깐이다. 2초쯤이다.
케이블 장력계를 봤다. 값이 안 변했다.
소리만 바뀌었다.
용역 팀장한테 물었다. 방금 뭐 있었냐고 물었다.
그 사람이 아무것도 없었다고 했다.
들으셨냐고 물었다.
무슨 소리요.
그러고 계속 내렸다.
2100미터쯤에서 또 그랬다. 이번에는 3초였다.
바닥까지 내리고 다시 올렸다. 올라올 때는 안 그랬다.
내려갈 때만 그렇다.
케이블은 같은 자리를 두 번 지난다. 내려갈 때 한 번 올라올 때 한 번이다.
한 번만 뭔가를 지난다.
다른 발전소
이 나라 지열 업계는 좁다.
여름에 다른 발전소 사람을 만났다. 남쪽에서 온 사람이고 20년 넘게 했다.
정정 온도가 균일하게 오르는 경우를 본 적 있느냐고 물었다.
그 사람이 커피를 내려놓았다.
몇 도.
3.1이라고 했다.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2.8이에요.
몇 년 됐느냐고 물었다.
11년요.
한 정정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다. 그 정정만 그렇고 나머지는 정상이라고 했다.
시추할 때 순환 유실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 사람이 나를 한참 봤다. 그러고 이렇게 말했다.
그건 어떻게 아세요.
나는 대답을 안 했다.
그 사람도 더 안 물었다.
우리는 그날 그 얘기를 더 안 했다. 그 사람이 자기 발전소 신규 정정 계획 얘기를 시작했고 나는 들었다.
이번 겨울
12월 검층이 지난주였다.
곡선을 열었다.
3.1도였다.
7년째다.
한 가지가 달라졌다.
바닥 구간이다. 2100미터 아래 40미터 구간에서 곡선이 조금 평평해졌다.
평평해진다는 건 그 구간에서 물이 흐른다는 뜻이다.
작년까지는 안 평평했다.
유동 구간이 새로 생겼다.
새 균열이 열렸다는 뜻이다. 그건 지진 없이도 생긴다. 압력이 바뀌면 기존 균열이 조금씩 벌어진다.
물이 어디로 흐르는지는 추적자로 알 수 있다. 재주입정에 표지 물질을 넣고 어느 생산정에서 나오는지 보는 방법이다.
이번 주에 넣었다.
보통 며칠에서 몇 주 걸린다.
오늘 아침에 K-9에서 검출됐다.
우리가 넣은 추적자가 아니었다.
성분표를 봤다. 우리가 쓰는 물질이 아니다. 실험실에서 세 번 확인했다. 이 발전소에서 쓴 적 없는 화합물이다.
남쪽 발전소에 전화를 걸어볼 수는 있다.
거리가 400킬로미터다. 지질학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번호는 갖고 있다.
아직 안 걸었다.
걸면 그쪽에서도 자기네 K-9을 갖고 있을 것이다. 2.8도짜리 정정이다.
그 사람도 나처럼 7년이나 11년을 혼자 봤을 것이다.
두 사람이 통화를 하면 그때부터 이건 두 사람의 일이 된다.
두 사람의 일이 되면 보고를 해야 한다.
보고를 하면 K-9을 막을 것이다. 시멘트로 채워서 죽인다. 이 나라에서는 그렇게 한다. 남쪽 그 정정도 그렇게 됐다. 지금은 웰헤드만 남아 있고 안은 콘크리트다.
K-9은 우리 발전소 생산량의 9퍼센트를 만든다.
막으면 그만큼이 없어진다.
이건 내가 정할 일이 아니다.
1998년 그분도 자기가 정한 게 아니라고 했다.
내일 아침에 검층을 한 번 더 내린다. 이번에는 바닥 40미터 구간만 천천히 내릴 것이다.
윈치를 내가 돌릴 것이다.
1800미터에서 소리를 들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