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by김경훈

[운용 기록]


시설 · 심우주 지상국

직무 · 추적 데이터 검증

근속 · 11년

담당 안테나 · 34미터 3기

대상 탐사선 · 7기

문제 대상 · 1기

현재 상태 · 야간 근무 중



거리


우리는 거리를 시간으로 잰다.


전파를 보낸다. 탐사선이 받는다. 받은 즉시 되쏜다. 그게 돌아온다. 그 왕복 시간을 잰다.


빛의 속도는 정해져 있다. 초당 299792458미터다. 이 숫자는 정의값이다. 측정값이 아니라 정의값이라 오차가 없다.


왕복 시간을 반으로 나눠서 광속을 곱하면 거리가 나온다.


이걸 레인징이라고 한다.


탐사선은 받은 신호를 바로 안 되쏜다. 처리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은 기체마다 알려져 있고 표에 있다. 그걸 뺀다.


우리가 재는 건 결국 시간뿐이다.


시간을 재는 건 수소 메이저 시계다. 3000만 년에 1초 틀리는 물건이다. 시설에 세 대 있고 서로 비교하면서 돈다.


그래서 나는 거리를 본 적이 없다.


11년 동안 숫자만 봤다.


이 일을 하다 보면 그게 이상하지 않아진다.


30 천문단위라는 게 얼마나 먼지 나는 모른다. 알 방법이 없다. 사람 감각으로 안 들어오는 거리다.


내가 아는 건 8시간 20분이다.


그건 안다. 저녁에 신호를 보내고 아침에 답을 받는 시간이다. 하룻밤이다.


그래서 나는 그 기체를 하룻밤 거리에 있는 것으로 여긴다.


11년 하면 그런 식으로 바뀐다.



잔차


레인징 값은 그냥 쓰지 않는다.


궤도 모델이 있다. 탐사선이 지금 어디 있어야 하는지 계산해 놓은 것이다. 태양의 중력과 행성들의 중력과 태양광 압력까지 다 넣어서 푼다.


모델이 예측한 값과 실제 측정값을 뺀다. 그 차이를 잔차라고 한다.


잔차는 0에 가까워야 한다. 정확히 0은 안 나온다. 나오면 그게 더 이상하다.


보통 몇 미터에서 몇십 미터 사이에서 흔들린다. 태양 코로나를 지나면 커지고 태양에서 멀면 작아진다. 플라스마가 전파를 늦추기 때문이다.


이건 다 알려진 현상이다. 보정식이 있다.


내 일은 잔차를 보고 이상한 게 있는지 판단하는 것이다.


야간에 혼자 앉아서 화면을 본다. 7기 분량이다.


대부분의 밤에는 아무 일도 없다.


이 일이 지루하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한다.


지루한 게 맞다. 지루하지 않으면 뭔가 잘못된 것이다. 항법에서 사건이 생기면 그건 대개 나쁜 사건이다.


11년 동안 나쁜 사건이 세 번 있었다. 두 번은 지상국 장비 고장이었고 한 번은 기체 안전 모드 진입이었다. 셋 다 며칠 안에 정리됐다.


정리 안 된 건 하나다.



DS-4


DS-4는 외행성계로 나간 기체다.


발사한 지 14년 됐다. 지금 태양에서 30 천문단위쯤 나가 있다. 왕복 지연이 8시간이 넘는다.


명령 하나 보내면 답이 오는 데 8시간 걸린다는 뜻이다.


이 기체를 처음 맡은 게 4년 전이다.


첫해에는 정상이었다. 잔차가 20미터 안에서 흔들렸다. 그 거리에서는 좋은 값이다.


3년 전 봄에 바뀌었다.


잔차가 음수로 붙었다.


음수라는 건 실제 측정 거리가 모델 예측보다 짧다는 뜻이다. 탐사선이 계산보다 가까이 있다는 뜻이다.


값은 120000킬로미터쯤이었다.


시간으로 고치면 0.4초다.



0.4


0.4초는 애매한 숫자다.


크기로만 보면 크다. 12만 킬로미터는 지구 열 바퀴가 넘는다.


그런데 전체에서 보면 작다. 왕복 8시간에서 0.4초면 700만분의 1도 안 된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무도 뭐라고 안 했다.


궤도 결정은 원래 잔차를 좀 안고 간다. 다음 번 궤도 갱신 때 흡수되면 그만이다.


흡수가 안 됐다.


궤도를 다시 풀어도 0.4초가 남았다. 모델을 갱신하면 잠깐 0으로 붙었다가 다음 측정에서 다시 0.4로 돌아왔다.


3년 동안 그랬다.


정확히 0.4초다.


측정마다 소수점 아래로 조금씩 흔들려야 하는데 안 흔들린다. 우리 장비 분해능이 나노초 수준이다. 0.4초는 그 분해능으로 보면 아주 큰 숫자다.


큰 숫자가 안 흔들린다.



검토 1


가능한 원인을 순서대로 봤다.


첫째. 탐사선 처리 지연 변화.


기체가 신호를 받아서 되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바뀌었을 수 있다. 노후화되면 그럴 수 있다.


확인 방법이 있다. 처리 지연은 주파수 대역마다 다르다. X 대역과 Ka 대역을 따로 재보면 차이가 나온다.


두 대역 다 0.4초였다.


같은 값이면 기체 내부 지연이 아니다. 대역이 다르면 회로가 다르고 회로가 다르면 지연도 다르게 나와야 한다.


둘째. 지상국 장비 지연.


우리 쪽 케이블과 증폭기와 다운컨버터에서 지연이 생긴다. 이건 매일 교정한다. 신호를 안테나까지 보냈다가 되돌려서 재는 방식이다.


교정값은 나노초 단위다.


0.4초짜리 지연이 우리 쪽에 있으면 나머지 6기도 다 틀려야 한다.


6기는 정상이다.


셋째. 시계.


수소 메이저 세 대를 비교했다. 서로 안 틀렸다. 외부 기준하고도 비교했다. 안 틀렸다.


시계가 틀렸으면 7기가 다 같이 틀린다.



검토 2


넷째. 궤도 모델.


여기가 제일 그럴듯했다.


30 천문단위 바깥에서는 모델이 완벽하지 않다. 카이퍼 벨트 천체들의 질량 분포를 다 모르고 태양광 압력 모델도 근사다.


과거에 파이어니어 이상 현상이라는 게 있었다. 탐사선이 계산보다 미세하게 감속되는 것처럼 보였던 일이다. 나중에 기체 자체에서 나오는 열복사로 설명됐다.


그러니까 모델 오차가 이상 신호처럼 보이는 건 이 분야에서 낯설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이쪽을 오래 잡고 있었다.


부순 건 다른 사람이다.


동료가 궤도를 완전히 새로 풀었다. 다른 소프트웨어로 풀었다. 다른 기관 것을 빌려 썼다.


같은 값이 나왔다.


모델이 틀렸으면 두 소프트웨어가 다르게 틀려야 한다. 근사 방식이 다르니까 다르게 틀린다.


같게 나왔다.


그리고 모델 오차라면 시간에 따라 누적되거나 변해야 한다. 3년이면 궤도가 상당히 움직인다.


0.4초는 안 움직였다.



각도


다섯째를 확인하는 데 오래 걸렸다.


거리 말고 각도로도 위치를 잡을 수 있다.


델타 DOR이라는 방법이 있다. 두 지상국이 같은 탐사선 신호를 동시에 받는다. 도착 시각 차이를 잰다. 그 차이로 하늘에서의 방향을 잡는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퀘이사 신호를 같은 방식으로 잰다. 퀘이사는 아주 멀리 있어서 위치가 고정된 것으로 친다. 기준점이 된다.


이 방법은 거리를 안 쓴다. 각도만 잰다.


DS-4를 이 방법으로 잡았다.


모델하고 맞았다.


각도는 맞고 거리만 짧다.


각도가 맞으면 방향은 맞다는 뜻이다. 우리가 겨누는 자리에 기체가 있다. 그런데 그 방향으로 12만 킬로미터 앞에 있다.


일곱째도 해봤다.


도플러다. 신호 주파수 변화로 속도를 잰다. 거리와는 다른 물리량이다.


DS-4 도플러는 모델하고 맞았다. 초당 몇 밀리미터 수준까지 맞았다.


속도가 맞고 각도가 맞는데 거리만 짧다.


속도가 맞다는 건 이상하다.


지금 12만 킬로미터 가깝다면 3년 전 어느 시점에 12만 킬로미터를 앞당겨 이동했다는 뜻이다. 그러면 그때 속도가 달랐어야 한다.


3년치 도플러를 다 훑었다.


한 번도 안 달랐다.


이동한 흔적 없이 위치만 다르다.



타국


작년에 다른 나라 지상국에도 물어봤다.


DS-4는 국제 협력 임무다. 유럽하고 일본 지상국도 이 기체를 받는다. 안테나가 모자라면 서로 빌려준다.


학회에서 만난 사람한테 조심스럽게 물었다.


DS-4 레인징 잔차 어떠냐고 물었다.


그 사람이 좋다고 했다. 안정적이라고 했다.


값이 얼마냐고 물었다.


자기 자료를 열어서 보여줬다.


0.4초였다.


부호까지 같았다. 음수였다.


우리도 그렇다고 했다.


그 사람이 잠깐 있다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그게 원래 그런 건 줄 알았어요.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인수인계 받을 때 그렇게 들었다고 했다. 이 기체는 원래 0.4가 붙는다고.


언제부터 그랬느냐고 물었다.


모르겠다고 했다. 자기가 온 게 2년 전이라고 했다.


지상국이 다르면 장비가 다르고 케이블이 다르고 교정 방식도 다르다.


같은 값이 나올 이유가 없다.



텔레메트리


여섯째.


탐사선은 자기 상태를 보내온다. 온도와 전력과 자세와 추진제 잔량 같은 것들이다.


DS-4 텔레메트리는 정상이다. 4년 동안 이상 항목이 없다.


한 가지 항목이 있다.


기체 안에도 시계가 있다. 정밀한 건 아니고 작업 순서를 맞추는 용도다. 그 시계 값이 텔레메트리에 실려 온다.


지상 시계와 비교하면 왕복 지연만큼 차이가 나야 한다.


3년 전부터 그 차이가 0.4초 작다.


거리 잔차하고 같은 방향 같은 크기다.


이건 기체가 자기도 가깝다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기체 시계가 틀렸을 수도 있다. 그런데 기체 시계가 틀리면 온보드 작업 순서가 어긋난다. 관측 장비 노출 시간이 어긋나고 자세 제어 주기가 어긋난다.


어긋난 게 없다.



보고


2년 전에 정식으로 보고서를 올렸다.


검토 결과가 회신으로 왔다.


관측 잔차는 임무 요구 정확도 대비 유의미하지 않음. 항법에 영향 없음. 추가 조치 불요.


이건 틀린 말이 아니다.


DS-4는 지금 특별히 정밀한 항법이 필요 없는 구간을 지난다. 12만 킬로미터가 문제가 되려면 어딘가에 접근해야 하는데 접근할 게 없다.


그러니까 이 잔차는 아무한테도 손해를 안 끼친다.


나는 그 회신을 두 번 읽었다.


두 번째에 다른 문장이 보였다.


관측 잔차는 정상 범위 내에서 유지되고 있으며 발생 시점 이후 변동이 없음.


발생 시점이라는 말이 있다.


3년 전 봄에 뭔가가 발생했다는 뜻이다.


발생한 것이 무엇인지는 안 적혀 있다.


회신을 쓴 사람에게 물어볼까 했다.


부서가 다르고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이런 걸 물으면 무슨 의미로 받아들일지 모른다.


안 물어봤다.



3년 전 봄


그때 기록을 다 봤다.


DS-4는 그해 3월에 궤도 수정 기동을 했다. 아주 작은 기동이다. 추진제를 몇 초 분사했다.


기동 전후로 통신이 끊긴 구간이 있다.


기동 중에는 안테나 방향이 어긋나서 신호가 끊긴다. 이건 정상이고 계획된 것이다.


계획서에는 47분으로 되어 있었다.


실제 기록은 51분이었다.


4분 길다.


기동 로그를 봤다. 분사 시간은 계획대로였다. 자세 복구도 계획대로였다.


4분이 어디서 늘었는지 안 나온다.


그 51분 뒤에 첫 신호가 들어왔다.


그 신호부터 0.4초 짧다.


4분이 뭔지 계산해봤다.


빛이 4분 동안 가는 거리는 7200만 킬로미터쯤이다.


12만 킬로미터하고는 안 맞는다. 600배 차이다.


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 4분 늘어난 건 자세 복구가 느렸던 걸로 설명될 수도 있다. 그런 일은 있다.


그런데 기동 계획서를 다시 봤다.


계획서에 47분이라고 적혀 있다.


47이라는 숫자를 보고 나는 헤더 파일 개수를 떠올렸다.


47개였다.


이건 우연일 것이다. 47은 흔한 숫자다.


나는 그렇게 적어두고 넘어갔다.



서명


레인징 데이터는 파일로 남는다.


파일마다 헤더가 있다. 관측 시각과 안테나 번호와 대역과 소프트웨어 버전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검증자 항목이 있다. 데이터를 확인한 사람 계정이 들어간다.


내 계정이 들어가야 한다. 이 기체 야간분은 내가 본다.


작년에 3년치 파일 헤더를 한꺼번에 뽑았다.


대부분 내 계정이었다.


몇 개가 아니었다.


DS-04-VAL이라고 되어 있었다.


우리 시설 계정 규칙이 아니다. 우리는 사람 이름 이니셜을 쓴다. 장비 계정은 접두어가 다르다.


정보시스템팀에 물었다.


그런 계정 없다고 했다.


없는 계정이 어떻게 헤더에 들어가느냐고 물었다.


그럴 수 없다고 했다.


몇 개냐고 물으면 세어봤다. 3년치에 47개였다.


전부 51분 이상 통신 공백이 있었던 날의 첫 파일이다.


통신 공백은 흔하다. 날씨가 나쁘면 생기고 안테나 정비를 하면 생긴다. 3년에 47번이면 많지도 적지도 않다.


공백 길이를 다 뽑아봤다.


47개가 전부 51분이었다.


날씨 때문에 끊긴 것도 51분이고 정비로 끊긴 것도 51분이다.


정비는 계획된 것이다. 계획서에 시간이 적혀 있다. 어떤 건 20분이고 어떤 건 3시간이다.


기록에는 51분으로 남았다.


정비 담당한테 물어봤다. 그 사람이 자기 작업 일지를 꺼내서 보여줬다.


일지에는 20분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사람이 시스템 기록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시스템이 좀 넉넉하게 잡나 보네요.


그러고 웃었다. 나도 웃었다.



오늘


지금 03시 40분이다.


DS-4 패스가 열려 있다. 상행 신호를 보냈고 8시간 20분 뒤에 답이 온다.


내가 방금 보낸 신호는 내가 퇴근한 뒤에 도착한다. 답은 낮 근무자가 받는다.


이 일은 그런 식이다. 내가 던진 걸 다른 사람이 받고 다른 사람이 던진 걸 내가 받는다.


오늘 받은 건 어제 낮에 나간 것이다.


잔차를 확인했다.


0.4초다.


3년 동안 한 번도 안 흔들렸으니 오늘도 안 흔들린 것이다.


한 가지가 달라졌다.


이번 주부터 0.3999초다.


측정 열두 번을 다 확인했다. 열두 번 다 0.3999다.


만분의 일 줄었다.


이 속도면 12만 킬로미터가 0이 되는 데 오래 걸린다. 계산해봤다. 이 감소율이 일정하면 대략 60년이다.


나는 그때 여기 없다.


보고서에는 안 쓸 것이다. 유의미하지 않다고 회신이 올 것이고 그 말은 맞을 것이다.


대신 검증 파일 헤더를 봤다.


오늘 것은 내 계정이다.


낮 근무자에게 인계 메모를 남긴다.


DS-4 잔차 미세 변동 있음. 확인 요망.


이 문장이 인계 노트에 언제부터 있었는지 찾아봤다.


3년 전 봄부터 있었다.


내가 쓴 게 아니다.


인계 노트는 전산이다. 작성자가 남는다.


작성자 항목을 봤다.


내 계정이었다.


3년 전 봄 그날 나는 야간이 아니었다. 근무표를 확인했다. 그 주에 나는 휴가였다.


정보시스템팀에 다시 물어볼 수는 있다.


없는 계정 얘기를 했을 때 그럴 수 없다는 답을 받았으니 이번에도 같은 답이 올 것이다.


지금 03시 52분이다.


내가 아까 보낸 신호는 지금 태양계 바깥쪽 어딘가를 지나고 있다.


8시간 20분 뒤에 도착한다.


도착하는 자리가 계산한 자리보다 12만 킬로미터 앞이다.


그러니까 신호는 조금 일찍 닿는다.


일찍 닿아도 기체는 받는다. 3년 동안 한 번도 못 받은 적이 없다.


거기에 무언가가 있어서 받고 있다.


나는 오늘 인계 메모를 안 쓸 것이다.


이미 쓰여 있다.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천사의 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