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몫

by김경훈

[숙성고 기록]


증류소 · 스코틀랜드 북동부

직무 · 숙성고 관리

근속 · 23년

숙성고 · 4동

방식 · 던니지 3단

문제의 캐스크 · 1기

현재 상태 · 근무 중



재고 실사


숙성고 일은 조용해요.


증류실은 시끄럽죠. 매시툰 돌아가고 워시백 끓고 스틸 데워지고. 사람도 많고요. 근데 숙성고는 아무것도 안 해요. 그냥 두는 게 일이에요.


그래도 재고 실사는 해야 하죠.


1년에 한 번 해요. 캐스크마다 남은 양을 재는 거예요. 세관에 신고해야 하니까 안 할 수가 없어요. 여기는 술이 재산이고 재산이니까 세금이 붙거든요.


방법은 간단해요. 캐스크를 저울에 올리거나 딥스틱을 넣어서 재요. 우리는 무게로 해요. 굴려서 저울에 올리고 빈 통 무게를 빼요.


던니지 숙성고는 3단까지만 쌓아요. 흙바닥에 나무 레일을 깔고 그 위에 눕히죠. 굴려서 내리는 게 일이라 3단이 한계예요.


굴릴 때 소리로 알아요.


가득 찬 통은 안 울려요. 묵직하게 굴러가요. 비면 통 안에서 소리가 돌아요. 20년 된 통은 굴리면 안에서 찰랑이는 게 느껴져요.


23년 하면 굴려만 봐도 대충 알아요. 저울은 확인용이에요.



2퍼센트


매년 2퍼센트가 없어져요.


오크통에는 미세한 틈이 있어요. 그리로 증발해요. 알코올하고 물이 같이 나가요. 습한 데서는 알코올이 더 나가고 건조한 데서는 물이 더 나가요.


여기는 습해요. 스코틀랜드니까요. 그래서 알코올이 먼저 나가요. 도수가 해마다 떨어지죠.


입통할 때 63.5도로 넣어요. 12년 지나면 55도쯤 돼요. 20년이면 50도 근처고요.


법이 있어요. 40도 아래로 떨어지면 위스키라고 못 팔아요. 그래서 아주 오래 묵히면 통째로 못 쓰게 되는 일도 있어요.


이 없어지는 걸 천사의 몫이라고 불러요.


낭만적인 이름이죠. 세금 안 내려고 만든 말이라는 얘기도 있어요. 없어진 걸 설명해야 하니까요.


나는 23년 동안 이 말을 만 번쯤 들었어요.


한 번도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관광객들이 오면 가이드가 이 얘기를 해요. 우리 증류소도 투어를 하거든요. 숙성고에 데리고 들어가서 그 얘기를 해줘요.


천사가 가져간 몫이라고요.


그러면 다들 웃어요. 좋은 얘기니까요.


나는 뒤에 서서 그 얘기를 스무 해 넘게 들었어요.



3동 47번


3동은 제일 오래된 숙성고예요.


1890년대에 지은 거고 벽이 두꺼워요. 손을 대면 여름에도 차가워요. 흙바닥이라 밟으면 발이 살짝 들어가요.


거기 아래 단 안쪽에 47번이 있어요.


1998년에 입통한 통이에요. 나보다 이 숙성고에 먼저 왔죠.


2016년 실사 때 처음 걸렸어요.


무게가 늘었어요.


전년보다 1.4킬로그램 늘었어요.


그때는 그냥 실수인 줄 알았어요. 저울이 안 맞았거나 전년에 잘못 적었거나요. 이런 건 가끔 있어요. 재는 사람이 사람이니까요.


다시 쟀어요. 같은 값이 나왔어요.


저울을 교정했어요. 같은 값이 나왔어요.


옆 통들을 다 쟀어요. 다 정상이었어요. 2퍼센트씩 줄어 있었어요.


47번만 늘었어요.



9년


그때부터 매년 늘어요.


2017년 1.4킬로그램.

2018년 1.4킬로그램.

2019년 1.4킬로그램.


매년 같아요.


9년째예요. 다 합하면 12.6킬로그램이에요.


이게 얼마나 되는 양이냐면 병으로 스무 병쯤이에요. 많은 건 아니에요. 캐스크 하나에 200리터 넘게 들어가니까요.


근데 방향이 문제죠.


줄어야 하는데 늘어요.


증발은 물리예요. 나무에 틈이 있고 안에 액체가 있고 밖이 더 건조하면 나가요. 밖에서 뭐가 들어오려면 안이 더 건조해야 하는데 안에는 액체가 꽉 차 있어요.


들어올 데가 없어요.


캐스크 위에 벙이 있어요. 나무 마개예요. 그거 빼고 안을 봤어요. 랜턴으로 비춰봤죠.


액체가 있었어요. 그냥 위스키였어요.


벙을 다시 박고 손으로 눌러봤어요. 단단했어요. 새는 데도 없고요.


3동 바닥이 흙이라 물이 올라오나 싶었어요. 캐스크 바닥 쪽을 손으로 만졌어요.


말라 있었어요.



1998년


2024년에 옛날 기록을 봤어요.


사무실 창고에 입통 대장이 있어요. 종이로 된 거예요. 90년대 것까지 다 있어요. 요즘 것은 전산이고요.


1998년 대장을 폈어요.


그해에 3동에 넣은 통이 60기예요. 번호가 순서대로 적혀 있어요.


46번 있고요. 48번 있어요.


47번이 없어요.


번호가 46 다음에 48로 넘어가요. 47번 줄이 없어요. 지운 것도 아니고 비워둔 것도 아니에요. 그냥 46 쓰고 다음 줄에 48을 썼어요.


앞뒤 해 대장도 다 봤어요. 1997년하고 1999년도 봤어요. 47번은 없어요.


3동 다른 해 대장도 다 봤어요. 없어요.


47번은 입통 기록이 없어요.


그런데 재고 대장에는 있어요. 재고 대장은 실사할 때 적는 거예요. 내가 23년 동안 적었고 그 전 사람이 그 전에 적었어요.


제일 오래된 재고 대장을 찾았어요. 1999년 거예요.


거기 47번이 있었어요.


1998년 입통이라고 적혀 있고요.


누가 적었는지는 이름이 없어요. 그때는 이름을 안 적었대요.



도수


2020년에 시료를 뽑았어요.


발린치라는 도구가 있어요. 긴 관이에요. 벙 구멍으로 넣어서 안에 있는 걸 조금 빼내요.


도수를 쟀어요.


54.2도였어요.


1998년 입통이니까 그때 22년 됐죠. 정상적으로 갔으면 50도 근처여야 해요.


54.2는 높아요.


높다는 건 알코올이 덜 나갔거나 물이 더 나갔다는 뜻이에요. 여기 습도에서는 물이 덜 나가야 정상인데요.


이듬해에 또 쟀어요. 54.2였어요.


그다음 해에도 54.2였어요.


무게는 늘고 도수는 안 변해요.


물만 들어오면 도수가 떨어져야 하고 위스키가 들어오면 무게랑 도수가 같이 움직여야 하는데 둘 다 아니에요.


같은 도수의 액체가 늘어나요.



매니저


2021년에 매니저한테 보고했어요.


이 분은 40년 하신 분이에요. 나한테 이 일 가르쳐준 분이고요.


기록을 다 보여드렸어요. 6년치 무게하고 3년치 도수를요.


한참 보시더니 이러셨어요.


이거 자네가 잰 거지.


네.


세관에 뭐라고 신고했나.


정상으로 했다고 말씀드렸어요. 늘어난 만큼을 빼고 예상치로 적어서 넣었다고요. 안 그러면 설명을 해야 하는데 설명할 게 없으니까요.


매니저가 그러셨어요.


잘했네.


그러고 아무 말도 안 하셨어요.


내가 물었어요. 이런 일 보신 적 있으세요.


한참 있다가 이러셨어요.


47번은 그냥 두게.


그게 끝이었어요.


작년에 은퇴하셨어요. 마지막 날에 인수인계 서류를 넘겨주시면서 아무 말씀도 안 하셨어요. 47번 얘기는 안 나왔어요.



옆 통


2022년에 옆 통들을 다시 봤어요.


47번 양옆에 46번하고 48번이 있어요. 위 단에 두 통이 더 있고요. 다 1998년 입통이에요. 같은 배치예요.


같은 배치는 증발률이 비슷해야 해요. 같은 자리 같은 습도 같은 온도니까요.


46번은 매년 2.1퍼센트 줄었어요.

48번은 2.0퍼센트 줄었어요.

위 단 두 통은 2.3퍼센트하고 2.2퍼센트요.


그런데 이걸 무게로 환산해봤어요.


46번이 1년에 4.2킬로그램 줄어요.

48번이 4.0킬로그램이고요.

위 단 두 통이 각각 4.6킬로그램하고 4.4킬로그램이에요.


넷을 다 더하면 17.2킬로그램이에요.


47번은 1.4킬로그램 늘어요.


숫자가 안 맞아요. 그러니까 옆 통 것을 훔쳐 오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한 가지가 맞아요.


이 다섯 통을 다 합한 순 손실을 계산했어요. 17.2에서 1.4를 빼면 15.8킬로그램이에요.


같은 배치 다섯 통이면 평균 2.1퍼센트로 21킬로그램쯤 줄어야 해요.


15.8이에요.


이 구획 전체가 덜 줄어요.


47번 하나가 이상한 게 아니라 이 구획이 이상한 거예요.



마킹


캐스크 앞면에 스텐실로 표시를 해요.


증류소 이름하고 입통 연도하고 번호요. 페인트로 찍어요. 오래되면 흐려지죠. 20년 넘으면 손끝으로 만져야 읽혀요.


46번하고 48번은 흐려요. 손으로 만지면 페인트가 살짝 도드라져 있어요. 가장자리가 부스러져서 만지면 떨어져요.


47번은 선명해요.


만지면 페인트가 두껍게 잡혀요. 가장자리도 안 부스러졌고요.


새로 찍은 것 같지는 않아요. 새로 찍으면 냄새가 나요. 페인트 냄새는 몇 달 가요.


냄새는 안 나요.


숫자 모양도 좀 달라요.


우리 스텐실은 40년 넘게 같은 걸 써요. 7자 위에 가로선이 없어요. 유럽식으로 가로선을 긋는 데도 있는데 우리는 안 그어요.


47번 7자에는 가로선이 있어요.


우리 스텐실로는 그게 안 나와요.



온도


2023년에 데이터로거를 달았어요.


내 돈으로 샀어요. 회사에 사달라고 하려면 이유를 적어야 하는데 적을 이유가 없으니까요.


3동 여러 자리에 달았어요. 47번 옆에도 달았고요.


1년치를 봤어요.


3동 평균이 9.4도예요. 겨울에 4도까지 내려가고 여름에 15도까지 올라가요. 스코틀랜드 숙성고는 대체로 그래요.


47번 자리는 9.4도였어요.


똑같아요.


습도도 똑같았어요. 78퍼센트요.


이상한 게 하나 있었어요.


3동 온도는 하루 안에서도 움직여요. 낮에 조금 오르고 밤에 조금 내려요. 아주 조금이지만 움직여요. 로거가 30분마다 찍으니까 보이죠.


47번 자리 로거는 안 움직였어요.


1년 내내 9.4도예요.


계절에 따라서는 움직여요. 겨울에 4도 여름에 15도 다 나와요. 그런데 하루 안에서는 소수점 아래까지 고정이에요.


로거가 고장 났나 싶어서 다른 걸로 바꿔 달았어요.


같았어요.



소리


숙성고는 소리가 나요.


나무가 움직이는 소리예요. 온도가 바뀌면 오크가 늘었다 줄었다 해요. 그때 삐걱 하고 나요. 밤에 혼자 있으면 여기저기서 나요.


23년 들으면 그게 무섭지 않아요. 오히려 편해요. 통이 살아 있다는 소리니까요.


47번은 소리가 안 나요.


그건 온도가 안 변하니까 당연하죠. 안 변하면 안 움직이고 안 움직이면 소리가 안 나요.


작년 겨울에 밤에 3동에 들어갔어요. 로거 배터리를 갈러 갔어요.


랜턴 끄고 좀 서 있었어요. 그냥 그러고 싶었어요.


여기저기서 나무 소리가 났어요. 삐걱 하고 났다가 조용해지고 또 다른 데서 났다가 조용해지고요.


47번 쪽에서도 났어요.


삐걱이 아니었어요.


액체 소리였어요. 아주 작게 찰랑였어요.


캐스크는 눕혀놨어요. 굴리지 않으면 안 움직여요. 안 움직이면 안에서 찰랑일 수가 없어요.


랜턴을 켜고 다시 봤어요. 아무것도 없었어요. 통은 그대로 눕혀져 있었고요.


랜턴을 끄고 다시 들었어요.


또 났어요.


켜면 안 나고 끄면 나요.


세 번 해봤어요. 세 번 다 그랬어요.


나는 그 자리에 좀 서 있다가 나왔어요.


나오면서 문을 잠갔어요. 3동은 밤에 잠가요. 열쇠는 나하고 매니저만 갖고 있었는데 매니저가 은퇴하셨으니까 지금은 나만 갖고 있어요.



올해


이번 달에 실사를 했어요.


47번을 굴렸어요. 저울에 올리려면 굴려야 하니까요.


굴리는데 손이 이상했어요.


잘 굴러갔어요. 너무 잘 굴러갔어요.


가득 찬 통은 무겁고 굴릴 때 저항이 있어요. 안에 액체가 있으니까 관성이 있죠. 밀면 늦게 따라오고 멈추려면 늦게 서요.


47번은 밀면 바로 가고 멈추면 바로 섰어요.


빈 통 굴릴 때 느낌이었어요.


저울에 올렸어요.


또 1.4킬로그램 늘어 있었어요.


빈 통 무게를 빼니까 안에 든 게 218리터쯤 되는 값이었어요.


들어 있는 건 맞아요.


굴릴 때만 안 들어 있어요.



신고


세관 신고서를 오늘 냈어요.


9년째 예상치로 적었어요. 2퍼센트씩 줄어드는 걸로 계산해서 적었어요.


이건 거짓말이에요. 나도 알아요.


근데 진짜 값을 적으면 실사를 나와요. 실사를 나오면 47번을 열어봐요. 열어보면 뭐가 나올지 나는 몰라요.


액체가 있어요. 그건 봤어요. 위스키였어요.


색도 정상이고 향도 정상이에요. 시료를 맛본 적도 있어요. 좋았어요. 이 숙성고에서 나온 것 중에 제일 좋았어요.


그게 제일 이상한 부분이에요.


맛본 게 2021년이에요. 발린치로 뽑아서 잔에 조금 따랐어요.


향부터 맡았어요. 셰리 캐스크 특유의 건과일 냄새가 있고 그 아래에 오크가 깔려요. 23년 냄새예요.


한 모금 물었어요.


목으로 넘어가는 게 느렸어요. 좋은 위스키는 그래요. 급하게 안 내려가요.


그러고 빈 잔 냄새를 맡았어요. 이걸 잔향이라고 해요. 좋은 건 빈 잔에서 한참 나요.


47번은 다음 날 아침까지 났어요.


잔을 안 씻고 뒀는데 아침에 사무실 들어가니까 방에 냄새가 차 있었어요.


23년 하면서 그런 적 없어요.


내년이면 이 통이 28년이에요. 언젠가는 병입해야 해요. 회사가 그걸 그냥 둘 리가 없어요.


병입하면 200병쯤 나와요.


누가 마시겠죠.


매니저는 그냥 두라고 하셨어요. 나도 그냥 두고 있어요. 9년을요.


이번 주에 신입이 하나 들어왔어요.


3동 안내를 해줬어요. 아래 단부터 위 단까지 통 번호를 다 알려줬어요.


47번 앞에서 그 애가 물었어요.


이건 왜 뒤로 밀려 있어요.


47번만 레일에서 5센티미터쯤 안쪽으로 들어가 있어요.


내가 밀어 넣은 적 없어요. 그 애 말을 듣고 나서야 알았어요.


23년 봤는데 오늘 처음 봤어요.


굴려서 앞으로 당기려고 손을 댔다가 그냥 뒀어요.


그 애한테는 원래 그렇다고 했어요.


그 애가 다음 통으로 가면서 물었어요.


여기 밤에 무섭지 않아요.


안 무섭다고 했어요.


23년 동안 안 무서웠어요. 그건 사실이에요.


3동 열쇠는 나만 갖고 있어요. 인수인계할 때 넘겨줘야 하죠.


내가 은퇴할 때가 8년쯤 남았어요.


그 애가 그때쯤 이 자리에 앉겠죠.


47번은 그때 36년이에요.


나는 그 애한테 47번 얘기를 할지 안 할지 아직 못 정했어요.


매니저는 나한테 안 하셨어요.


그런데 나는 매니저가 처음부터 알고 계셨다고 생각해요. 40년 하신 분이 그걸 모를 리가 없거든요.


그럼 그 앞사람도 알았겠죠.


그 앞사람도요.


그러니까 이건 인수인계가 아니라 그냥 안 하는 거예요. 안 하는 걸 물려받는 거죠.


나도 안 하려고요.


오늘 저녁에 3동 문을 잠글 거예요. 매일 하는 일이에요.


잠그기 전에 47번을 한 번 볼 거예요. 그것도 매일 하는 일이고요.


5센티미터가 그대로면 그냥 나올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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