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월당에 내가 삼 년째 다니는 미용실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보보가 십 년째 다니는 곳이고 나는 삼 년째다.
대구로 와서 몇 군데를 돌다가 매번 실패했을 때 보보가 말했다.
"자기야 그냥 내가 다니는 데 가."
"거기 여자 손님 많은 데 아니야."
"남자 손님도 많아. 그리고 자기 그 이유로 안 가는 거 아니잖아."
맞는 말이었다.
내가 미용실을 못 정하고 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대화가 시작된다.
어떻게 오셨어요.
예약하셨어요.
여기 앉으시면 돼요.
아 잠시만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이 도와드릴게요가 문제다.
나쁜 뜻이 아니다.
오히려 선의다.
그런데 그 순간부터 나는 손님이 아니라 상황이 된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머리를 다 자르고 나서 디자이너 선생님이 거울 쪽으로 의자를 돌리면서 말했다.
"어떠세요."
나는 잠깐 말을 못 했다.
그러다가 웃으면서 말했다.
"괜찮은 것 같습니다."
디자이너 선생님도 그제야 아 하고 소리를 냈다.
그리고 미안해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고 그것도 진심이었다.
사람은 습관대로 말하고 습관은 대부분의 손님을 기준으로 만들어진다.
그건 잘못이 아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그 선생님은 그 뒤로 나한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어떠세요라는 말이 실수였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아예 물어보는 걸 그만뒀다.
그게 더 불편했다.
물어보면 되는 일이었다.
뒤가 짧은지 앞이 긴지 옆이 뜨는지 말로 설명해주면 나는 손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한 번의 실수 이후로 안전한 침묵을 골랐다.
침묵은 실수를 만들지 않는다.
대신 아무것도 전달하지 않는다.
나는 그 뒤로 미용실 정하는 걸 미루고 있었다.
그래서 보보가 자기 단골집을 소개한 것이다.
처음 갔던 날 원장님이 커트를 시작하기 전에 나한테 물었다.
"손님은 결과를 어떻게 확인하세요."
나는 잠깐 멈췄다.
삼십 몇 년 살면서 이 질문을 받아본 게 처음이었다.
대부분은 확인하는 방법을 나 대신 정해준다.
거울을 보여주거나 사진을 찍어주거나 아니면 아예 안 물어본다.
확인 방법을 나한테 물어본 사람은 없었다.
"손으로 만져봅니다. 그리고 설명해주시면 그게 맞는지 확인할 수 있어요."
"어느 정도로 설명해드리면 될까요."
"길이랑 방향이요. 뒤가 몇 센티인지 옆이 어디까지 붙었는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삼 년째 그렇게 하고 있다.
나중에 보보한테 물어봤다.
"자기 원장님한테 나에 대해서 미리 말했어."
"응. 시각장애인이라고 말했어."
"뭐라고 하셔."
"그럼 어떻게 해드리면 좋을지 본인한테 물어보겠다고 하셨어."
나는 그 대답을 듣고 잠깐 조용히 있었다.
그날 또 하나 벌어진 일이 있다.
원장님이 나한테 인사를 하고 나서 탱고 쪽으로 몸을 낮췄다.
만져도 되냐고 물었고 나는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탱고가 원장님 얼굴을 핥았다.
나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처음엔 이해를 못 했다.
탱고는 아무한테나 뽀뽀하는 개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거의 안 한다.
보보한테 한다.
장모님한테 한다.
그리고 끝이다.
목록이 두 명이다.
나한테는 잘 안 한다.
이건 삼 년 동안 내가 농담처럼 말하고 다니는 사실인데 사실 농담이 아니다.
나는 탱고랑 매일 스물네 시간을 붙어 있고 밥을 주고 산바카라을 시키고 발을 닦아주고 병원에 데려간다.
그런데 뽀뽀는 거의 안 받는다.
탱고는 나한테 턱을 올려놓거나 발등을 누르거나 옆에 붙어 앉는다.
그게 탱고식 애정 표현이다.
그런데 원장님한테는 뽀뽀를 한다.
처음 만난 날부터 했다.
그리고 삼 년째 하고 있다.
오늘도 그랬다.
들어가자마자 원장님이 어 탱고 왔네 하고 몸을 낮추셨고 탱고가 바로 갔다.
목줄에서 손 뻗는 텐션이 느껴졌다.
그리고 짧은 소리가 났다.
뽀뽀할 때 나는 소리다.
나는 이 소리를 알아듣는다.
자주 못 들어서 더 잘 알아듣는다.
"탱고 오랜만이야."
"삼 주 만입니다."
"저한테는 오래됐어요."
나는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원장님 저 이거 삼 년째 궁금한 게 있는데요. 왜 원장님한테만 그럽니까."
원장님이 웃었다.
"저도 몰라요."
"저는 연구자입니다. 변수를 찾아야 해요."
"손님 그거 연구 주제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더 답답합니다."
보보가 대기 소파에서 웃었다.
이 대화는 삼 년째 반복되고 있고 매번 결론이 안 난다.
이 미용실은 공부를 많이 하는 집이다.
이건 내가 붙인 표현이 아니라 스텝들이 자기들끼리 하는 말이다.
원장님이 저녁에 수업을 들으러 다니신다.
미용 세미나는 당연히 다니시고 퍼스널컬러 수업을 들으셨고 요즘은 철학 수업을 듣고 계신다.
철학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웃었다.
"원장님 미용실에서 철학이 왜 필요합니까."
"손님 그거 진짜 궁금해서 물으시는 거예요."
"네."
"그럼 답이 좀 길어지는데요."
"저 시간 많습니다. 머리 깎는 중이잖아요."
이 집에서 내 자리는 정해져 있다.
처음 앉은 자리를 계속 준다.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다.
"손님이 처음 앉은 자리라서요."
"그게 왜요."
"몸이 기억하잖아요."
헤어 디자이너가 앵커링을 알고 있었다.
물론 그 단어를 썼는지는 모르겠다.
탱고는 대기 소파 옆 구석에 엎드려 있다.
이것도 정해진 자리다.
처음 왔을 때 스텝이 여기가 좋을 것 같아요 하고 알려준 자리다.
이유는 나중에 알았다.
그 구석이 잘린 머리카락이 안 날아오는 유일한 자리라고 했다.
"개 코에 머리카락 들어가면 안 되잖아요."
이 집은 손님이 아니라 손님의 개까지 계산에 넣고 있었다.
"자기야 오늘 그거 읽은 거 얘기해봐."
보보가 말했다.
"어떤 거."
"사람 세 부류로 나눈다는 거."
원장님이 가위질을 하면서 물었다.
"무슨 얘기예요."
내가 설명했다.
사람이 시각파 청각파 육감파로 나뉜다는 것.
시각파는 봐라라는 말을 자주 쓰고 명백하다 투명하다 같은 표현을 좋아한다는 것.
청각파는 들어봐라 하고 가락이 맞는다 불협화음 같은 말을 쓴다는 것.
육감파는 느낌이 어떻다고 말하고 화끈하다 썰렁하다 같은 표현을 쓴다는 것.
원장님이 짧게 웃었다.
"저희는 다 만져보는 파인데요."
보보가 웃었다.
"근데 여기서 더 있습니다. 상대방이 무슨 파인지 알아보는 방법이 있대요. 뭘 기억해보라고 시켰을 때 눈이 위로 가면 시각파 옆으로 가면 청각파 아래로 가면 육감파라고 합니다."
미용실이 잠깐 조용해졌다.
"손님."
"네."
"그거 손님한테는 못 쓰겠는데요."
"그러니까요."
"그리고 저한테도 못 써요."
"왜요."
"저는 손님 얼굴 안 봐요. 뒤통수 봐요."
나는 소리 내서 웃었다.
그런데 원장님이 진지하게 덧붙였다.
"근데 그거 저 좀 알 것 같아요."
"어떤 부분이요."
"퍼스널컬러랑 구조가 똑같아요."
나는 가위 소리 사이로 그 말을 들으면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퍼스널컬러가 봄웜 여름쿨 가을웜 겨울쿨 이렇게 네 개잖아요. 사람을 네 통에 나눠 담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수업 듣고 나서 제일 크게 배운 게 뭐냐면요."
"뭔가요."
"이게 안 맞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거요."
"네 개로 안 나뉜다는 말씀이네요."
"네 개로 시작은 할 수 있어요. 근데 거기서 끝내면 안 됩니다. 실제로 진단해보면 봄웜인데 겨울쿨 색이 훨씬 잘 받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그 사람은 뭐예요."
"봄웜인데 예외다."
"그렇게 말하면 편하죠. 근데 그건 설명이 아니라 변명이에요."
보보가 소파에서 몸을 앞으로 기울이는 기척이 났다.
"원장님 그거 포퍼예요."
보보가 말했다.
"포퍼요."
"칼 포퍼라고 과학철학 하는 사람인데요. 어떤 주장이 학문이 되려면 틀릴 수 있는 조건이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이런 결과가 나오면 내 말이 틀린 겁니다 하고 미리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요."
"아 그거 저 배웠어요."
보보가 멈췄다.
"배우셨어요."
"지난달에 했어요. 반증 가능성이요."
나는 이 순간이 꽤 재밌었다.
보보가 철학 이야기를 꺼냈는데 상대가 이미 알고 있는 상황.
우리 부부 대화에서는 거의 안 일어나는 일이다.
"그럼 아시겠네요. 예외를 다 흡수해버리는 이론은 사실 아무것도 설명 못 하는 거잖아요."
"수업 듣고 나서 제가 제일 반성한 게 그겁니다. 예전엔 퍼스널컬러 딱 나오면 그걸로 다 정해버렸거든요. 이 손님은 여름쿨이니까 이 톤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그게 진단이 아니라 그냥 분류였어요."
"지금은 어떻게 하세요."
"지금은 시작점으로만 씁니다. 네 개는 지도 그리는 데 쓰고 실제 결정은 그 사람 보고 해요. 모발 상태 다르고 피부 다르고 무엇보다 그 사람이 어떤 자리에 있는 사람인지가 다르니까요."
"어떤 자리요."
"매일 사람 만나는 일 하시는 분이랑 혼자 작업하시는 분이랑 같은 색이라도 다르게 가야 해요."
나는 이 대목에서 조금 놀랐다.
이건 정보학에서 맥락 의존성이라고 부르는 개념이다.
같은 정보라도 사용하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
원장님은 그 용어를 모르는 채로 그걸 정확히 말하고 있었다.
"근데 원장님 그 글 뒷부분이 더 이상합니다."
"뭔데요."
"중요한 말을 할 때 상대방 팔을 눌러주래요. 나는 네가 잘 해낼 거라고 믿어 이러면서요. 그러면 나중에 그 자리를 누를 때마다 그 기분이 되살아난다고 합니다."
"그건 맞아요."
"맞습니까."
"맞으니까 문제죠."
나는 그 대답이 좋았다.
원장님은 나보다 열 배쯤 빨리 핵심에 도착했다.
"저희가 어깨를 만지거든요. 샴푸할 때 목 뒤도 만지고요. 그때 손님이 긴장을 푸는지 더 굳는지 압니다. 몇 년 하면 그냥 알아요. 그러면 그걸로 뭘 할 수도 있는 거죠."
"뭘 할 수 있는데요."
"기분 좋아진 타이밍에 시술 권하기 좋아요."
보보가 웃음을 터뜨렸다.
"클리닉이든 염색이든 그 타이밍에 말하면 반은 넘어옵니다. 그리고 이건 배우려면 배울 수 있는 기술이에요. 세미나 가면 이런 것도 가르쳐요."
"근데 안 하시잖아요."
"안 합니다."
"왜요."
가위가 잠깐 멈췄다.
"손님이 머리를 맡긴 거니까요."
이 대목에서 나는 조금 진지해졌다.
머리를 맡긴다는 말.
미용실은 이상한 거래다.
손님은 앞만 보고 앉아 있고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른다.
목 뒤에 날붙이가 지나가는데 그걸 확인할 방법이 없다.
다 끝나고 나서야 결과를 안다.
그것도 거울로 보는 사람만.
나는 거울로도 못 본다.
그러니까 나는 이 거래에서 가장 무방비한 쪽이다.
확인할 수단이 하나도 없다.
오늘 대충 잘랐어도 나는 모른다.
필요 없는 시술을 권해도 판단할 근거가 적다.
정보 접근성 연구를 하다 보면 이 구조가 계속 보인다.
확인할 수 없는 사람은 믿을 수밖에 없고 믿는 사람은 다루기 쉽다.
그래서 나는 다루다라는 동사에 예민하다.
그 글의 제목이 사람을 다루는 기술이었다.
다루다는 도구한테 쓰는 말이다.
기계를 다루고 재료를 다루고 연장을 다룬다.
사람한테 그 동사를 쓰는 순간 상대는 조작할 대상이 된다.
설득과 조작의 차이는 상대가 알고 있느냐다.
원장님이 나한테 이 길이면 뒤가 뜰 것 같아요 하고 말하면 그건 설득이다.
나는 그 정보를 듣고 판단할 수 있다.
동의할 수도 있고 아니요 저는 짧은 게 좋아요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원장님이 아무 말 없이 내 어깨를 눌러서 기분을 좋게 만든 다음에 뭘 권하면 그건 다른 일이다.
나는 왜 좋아졌는지 모른 채로 동의하게 된다.
우회로로 들어온 정보는 검토를 통과하지 않는다.
그게 정확히 문제다.
내 일에서 이건 추상적인 얘기가 아니다.
앱에서 동의 버튼은 크고 선명하게 만들고 거부 버튼은 작고 흐리게 만드는 것.
약관을 스무 페이지로 쓰는 것.
중요한 안내를 이미지 안에만 넣어서 스크린리더로는 읽히지 않게 하는 것.
가입은 온라인으로 되는데 해지는 전화로만 되게 해두는 것.
이건 전부 어깨를 누르는 일이다.
상대가 판단하지 못하는 상태로 결론에 도달하게 만드는 일.
그리고 이건 나 같은 사람한테 훨씬 잘 통한다.
확인할 수단이 적으면 검토할 여지도 적어지기 때문이다.
정보 격차는 아는 것의 격차가 아니라 확인할 수 있는가의 격차다.
"하버마스가 그 구분 했어."
보보가 말했다.
"어떤 구분."
"전략적 행위랑 소통적 행위. 전략적 행위는 상대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목적이야. 소통적 행위는 서로 이해에 도달하는 게 목적이고. 겉으로는 둘 다 말을 주고받는 것처럼 보이는데 완전히 달라."
"상대가 이유를 아느냐 모르느냐로 갈리는 거네."
"응. 이유를 알면 반박할 수 있고 반박할 수 있으면 대화야. 이유를 모르면 그냥 움직여진 거고."
원장님이 목덜미를 털어내면서 말했다.
"그거 다음 수업에서 나올 것 같은데요."
"나올 거예요. 포퍼 하셨으면 하버마스도 하실 거예요."
"그럼 그때 손님한테 아는 척할게요."
"다 됐습니다."
가위 소리가 멈췄다.
"오늘은 좀 짧게 갔어요. 여름이라서요."
"네."
"뒤통수 위쪽이 뜨는 자리가 있어서 거기는 남겼고요. 앞은 손가락 두 마디쯤. 옆은 귀 위로 붙였어요. 뒷목은 자연스럽게 두고 라인 안 잡았습니다."
나는 이 설명을 들으면서 손을 올려 확인했다.
뒤통수 위쪽이 조금 길고 옆이 짧았다.
말한 그대로였다.
이게 이 집을 삼 년 다니는 이유다.
원장님은 매번 말로 설명한다.
어디를 어떻게 잘랐는지 왜 그렇게 했는지.
처음 왔을 때 방식을 정한 뒤로 한 번도 빠뜨린 적이 없다.
언젠가 물어봤다.
"매번 이렇게 설명하시는 거 안 번거로우세요."
"처음엔 번거로웠어요. 근데 하다 보니까 다른 손님한테도 하게 되더라고요."
"다른 손님한테도요."
"눈으로 보시는 분들도 사실 잘 몰라요. 거울로 보면 다 비슷해 보이거든요. 어디를 왜 이렇게 했는지 말로 해드리니까 그분들이 더 좋아하세요."
나는 잠깐 말을 못 했다.
이건 내가 논문에서 계속 쓰는 이야기다.
접근성을 위해 만든 설계가 결국 모두에게 더 나은 설계가 된다는 것.
경사로가 휠체어만을 위한 게 아니고 자막이 청각장애인만을 위한 게 아니듯이.
그런데 나는 그걸 논문으로 쓰고 원장님은 그걸 삼 년 동안 하고 있었다.
이 집에는 접근성 지침이 붙어 있지 않다.
대체 텍스트라는 말도 안 쓴다.
그런데 매달 나한테 정확한 대체 텍스트를 제공한다.
말로.
나가면서 탱고가 또 원장님한테 갔다.
이번엔 원장님이 먼저 몸을 낮추지도 않았는데 갔다.
"어 인사하고 가는 거야."
짧은 소리가 났다.
오늘 두 번째다.
"원장님 저 진짜 궁금합니다. 뭐 바르세요."
"손님 저 아무것도 안 발라요."
"그럼 뭡니까."
"저도 몰라요. 근데 좋네요."
문이 닫히고 반월당 저녁 공기가 왔다.
머리가 짧아져서 목덜미에 바람이 닿았다.
이 감각이 좋다.
미용실 다녀온 날에만 있는 감각이다.
"아까 원장님이 손님이 머리를 맡긴 거니까 하셨잖아."
"응."
"그거 칸트가 평생 쓴 얘기를 한 문장으로 한 것 같아."
"어떻게."
"맡긴 사람을 이용하면 안 된다는 거잖아. 그 사람이 나를 신뢰한 그 상태가 바로 내가 그 사람을 함부로 못 하는 이유가 되는 거야. 신뢰가 기회가 아니라 제약이 되는 거지."
나는 잠깐 그 말을 들으면서 걸었다.
"대부분은 반대로 생각하지. 신뢰를 기회로 봐. 이 사람이 나를 믿으니까 뭘 해도 되겠다."
"그게 사람을 다루는 기술이고."
"응. 그러니까 그 글이 무서운 게 아니라 슬픈 거야. 신뢰를 자원으로 취급하는 법을 가르치잖아."
"근데 원장님은 배우고도 안 쓰시잖아."
"세미나에서 배웠다고 하셨지."
"배웠는데 안 쓰는 게 제일 어려운 건데."
탱고가 앞장서서 걸었다.
오늘 머리카락 한 올도 안 묻은 채로.
그나저나 집에 와서 보보가 내 머리를 한참 만져봤다.
확인해주겠다고 했다.
뒤통수 위쪽이 길고 옆이 짧다고 했다.
원장님이 말한 그대로였다.
나는 이미 알고 있다고 했다.
보보가 그럼 왜 만지게 뒀냐고 물었다.
자기가 만지고 싶어 했잖아 라고 했다.
보보가 아니라고 우겼다.
그런데 오 분쯤 뒤에 또 만졌다.
탱고가 그 광경을 보고 자리를 옮겼다.
나는 탱고의 판단이 늘 옳다고 생각한다.
[비하인드 스토리]
탱고예오.
오늘 반월당 미용실에 갔어오.
제 자리는 대기 소파 옆 구석이에오.
스텝 누나가 정해주셨어오.
머리카락이 안 날아오는 자리래오.
저는 이 배려를 삼 년째 받고 있어오.
코에 머리카락 들어가면 정말 괴로워오.
재채기가 멈추지 않아오.
아는 사람이 드물어오.
오늘 형이 또 물어봤어오.
왜 원장님한테만 뽀뽀하냐고오.
삼 년째 물어봐오.
저는 대답을 안 해오.
대답할 생각도 없어오.
형이 서운해하는 건 알아오.
그런데 형은 매일 저랑 붙어 있어오.
매일 있는 사람한테는 뽀뽀를 안 해도 돼오.
저는 형 옆에 앉아 있고 형 발등에 턱을 올려놔오.
그게 형 거예오.
형은 이걸 몰라오.
언젠가 알게 되겠지오.
오늘 형이랑 원장님이 사람을 다루는 기술 이야기를 했어오.
사람을 세 부류로 나눈대오.
원장님이 네 개로도 안 나뉜다고 하셨어오.
저도 같은 생각이에오.
저는 사람을 냄새로 아는데 같은 냄새인 사람이 한 명도 없어오.
굳이 나누자면 사람 수만큼 나뉘어오.
팔을 누르면서 좋은 말을 하면 나중에 그 자리를 누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대오.
저는 이거 알아오.
형이 잘했다고 할 때 항상 목 옆을 긁어줘오.
그래서 저는 그 자리가 좋아오.
그런데 형은 저 모르게 하지 않아오.
형은 항상 잘했어 라고 말하면서 긁어줘오.
저는 왜 좋은지 알고 있어오.
이게 다르대오.
저도 이제 알겠어오.
P.S. 오늘 누나가 철학 얘기를 했는데 원장님이 이미 알고 계셨어오.
누나 목소리가 아주 신났어오.
오랜만에 들었어오.
이 미용실은 원래 누나 집이었어오.
형은 나중에 왔어오.
저도 나중에 왔고오.
그런데 저는 이제 이 집이 제 집 같기도 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