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포드 투스칸 레더

by김경훈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소리가 먼저 바뀌었다.


향촌동 수제화 골목. 경상감영공원 북편으로 난 좁은 길이다.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규칙적으로 박히다가 뚝 끊기고 다시 이어지는 그 소리. 어디선가 망치로 밑창을 두드리는 둔탁한 소리가 겹쳤다. 1970년대부터 이 자리를 지켜온 골목이라고 했다. 한때는 300미터 남짓한 길에 가게와 공장과 피혁점이 백 곳을 넘었고 지금도 예순 곳 남짓이 남아 있다.


보보가 팔짱을 고쳐 잡으며 여기 냄새 진짜 세다고 했다. 탱고는 이미 나보다 먼저 알고 있었다. 골목 입구에서부터 걸음이 살짝 느려졌다. 낯선 냄새를 만났을 때 이 녀석이 하는 버릇이다.


가죽 냄새였다. 그것도 무두질을 막 끝낸 생가죽의 냄새. 완성된 구두에서 나는 얌전한 냄새가 아니라 아직 재단되지 않은 채 쌓여 있는 원단의 냄새다. 짐승의 것이었던 시절의 기억이 아직 덜 지워진 냄새. 여기에 접착제와 염료의 알싸함이 섞이고 그 위로 기름 먹인 실 냄새가 얹혔다.


오늘의 면담 상대를 이 골목에서 만나기로 한 것은 그래서였다.



연구자: 이 골목이 어떻습니까.


투스칸 레더: (재봉틀 소리 사이로) 반갑기도 하고 조금 부끄럽기도 합니다.


연구자: 부끄럽다니요.


투스칸 레더: 저는 가죽을 흉내 낸 향수입니다. 여기 있는 분들은 진짜 가죽을 만지며 평생을 보냈고요. 흉내 내는 자가 원본 앞에 서면 부끄러운 법이죠.



투스칸 레더는 2007년 톰 포드 프라이빗 블렌드 컬렉션으로 세상에 나왔다. 앞서 만난 오드 우드와 타바코 바닐과 같은 해에 태어난 형제다. 셋 중 이 친구가 가장 거칠다. 오드 우드가 절의 새벽이고 타바코 바닐이 클럽의 가죽 소파라면 투스칸 레더는 그 소파를 만들던 공방이다.


첫 향은 예상을 배신한다. 라즈베리다. 가죽을 기대한 코에 붉고 물컹한 산딸기의 단내가 먼저 닿는다. 그런데 이 단맛이 이상하다. 과일 가게의 단맛이 아니다. 어딘가 비릿하고 금속성이 섞여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노트를 두고 피 냄새 같다고 말하는데 처음 맡았을 때 나도 같은 생각을 했다. 무두질 공장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은 가죽에서 날 법한 냄새. 사프란과 타임이 그 위에 얹히며 알싸하고 마른 향신료의 결을 더한다.


그리고 자작나무 타르가 온다.



연구자: 이 재료를 다시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르라보 패츌리 24에서 뵀었죠.


투스칸 레더: 같은 재료입니다. 다루는 방식이 다를 뿐이죠.


연구자: 어떻게 다릅니까.


투스칸 레더: 그 친구는 타르를 바닐라로 감쌌습니다. 연기를 담요로 덮어준 셈이죠. 저는 감싸지 않습니다. 그대로 둡니다.


연구자: 그래서 호불호가 갈리는군요.


투스칸 레더: (잠시 멈췄다가) 갈리는 게 아니라 갈라놓는 겁니다. 저는 모두에게 사랑받으려고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자작나무 껍질을 태워 얻는 이 타르는 수백 년간 가죽을 무두질하는 데 쓰였다. 러시아 가죽 특유의 냄새가 여기서 나온다. 탄내와 소독약과 고무가 한데 뭉친 것 같은 강렬한 냄새. 향수에 들어가면 그것이 곧 가죽의 환영이 된다. 실제로 가죽 자체는 향료로 추출되지 않는다. 우리가 가죽 향수라 부르는 것은 전부 재현이고 번역이다. 원본은 병에 담기지 않는다.


문헌정보학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 지점이 흥미롭다. 원본에 접근할 수 없을 때 우리는 대리물을 만든다. 그리고 그 대리물이 원본만큼 혹은 원본보다 더 널리 유통된다. 향수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중반부로 넘어가면 재스민과 올리바넘이 옅게 스며든다. 밤에 피는 꽃의 향과 유향의 연기다. 이 부분이 투스칸 레더에게 숨통을 틔워준다. 거친 가죽 위에 얇은 실크 한 장을 덮는 정도의 개입이지만 그 한 장이 없었다면 이 향수는 그냥 공장 냄새로 끝났을 것이다.


베이스에 이르러서야 가죽이 부드러워진다. 스웨이드와 앰버와 마른 나무가 자리를 잡으면서 처음의 날카로움이 서서히 닳는다. 새 가죽 재킷이 몇 년을 입은 뒤에야 몸에 맞아 들어가는 것과 같다. 뻣뻣하던 것이 접히기 시작하고 각이 무너지고 주름이 생긴다. 이 향수의 마지막은 그렇게 길들여진 가죽의 냄새다.


골목 안쪽 어느 가게 앞에서 잠깐 걸음을 멈췄다. 열린 문틈으로 미싱 소리와 함께 가죽 냄새가 훅 밀려나왔다. 그 순간 손목의 향과 골목의 냄새가 정면으로 부딪혔다. 비슷하면서도 명백히 달랐다. 이쪽은 다듬어졌고 저쪽은 다듬어지지 않았다. 이쪽은 라즈베리가 있고 저쪽은 없다.


보보가 팔을 툭 치며 물었다. 어느 쪽이 더 좋냐고. 나는 대답을 못 했다. 향수가 흉내 낸 것과 흉내의 대상이 나란히 있을 때 우열을 가리는 건 무의미하다. 다만 하나는 사라져 가고 하나는 팔린다. 그게 좀 씁쓸했다.


투스칸 레더는 편안한 향수가 아니다. 매일 뿌리기에는 무겁고 여름에는 버겁고 사람 많은 자리에서는 민폐가 되기 쉽다. 확산력과 지속력이 둘 다 강해서 뿌린 사람보다 주변이 먼저 안다. 그럼에도 이 향수가 이십 년 가까이 자리를 지키는 이유는 분명하다. 타협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잘 어울리려 애쓰는 향기가 있고 어울릴 생각이 아예 없는 향기가 있다. 후자는 드물고 그래서 오래 남는다.


골목을 빠져나올 무렵 탱고가 몸을 한 번 털었다. 냄새를 떨어내려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아직 손목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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