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면담은 내 앞마당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이뤄졌다.
삼덕동 골목 안쪽 주말에만 문을 여는 직립보행 헌바카라방. 토요일 오후의 그곳은 늘 같은 냄새로 나를 맞는다. 문을 밀면 삐걱거리는 마루 소리가 먼저 들리고 그다음 냄새의 층이 순서대로 도착한다. 마른 종이. 오래 묵은 먼지. 어딘가 눅눅한 곰팡이의 기척. 그리고 그 아래 깔린 가죽 장정의 묵직한 냄새. 문헌정보학을 업으로 삼은 사람에게 이 냄새는 그냥 냄새가 아니다. 일종의 서지 정보다. 바카라이 얼마나 오래됐는지 어떻게 보관됐는지 몇 사람의 손을 거쳤는지가 그 안에 다 적혀 있다.
오늘의 면담 상대는 하필 이름이 도서관이었다. 손목에 올린 비블리오테크가 헌바카라방 공기 속에서 깨어나는데 향과 장소의 경계가 또 한 번 흐려졌다.
연구자: 이름이 도서관이군요. 부담스럽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가 있는 이 자리가 바로 그 이름의 실물인데.
비블리오테크: (바카라장 사이 어딘가에서) 부담스럽기는요. 집에 온 겁니다. 저는 이런 곳의 냄새를 병에 담으려고 태어났으니까요.
연구자: 흥미로운 이력을 가지셨죠. 원래 향수가 아니었다고 들었습니다.
비블리오테크: 캔들이었습니다. 2017년 이전에 저는 방 안에 불을 켜두는 존재였어요. 사람들이 하도 이 냄새를 몸에 지니고 싶다고 해서 결국 향수가 됐습니다. 공간의 냄새로 시작해서 사람의 냄새가 된 셈이죠.
첫 향은 뜻밖에 달다. 가죽 향수를 기대한 코에 자두와 복숭아의 물컹하고 달콤한 과육 냄새가 먼저 도착한다. 순간 당황하게 된다. 서재라면서 왜 과일인가. 그런데 이 달콤함이야말로 비블리오테크가 서재를 제대로 이해했다는 증거다.
여기서 잠깐 직업병을 발동해야겠다. 오래된 바카라에서 나는 그 특유의 달콤한 냄새는 감상이 아니라 화학이다. 종이를 이루는 셀룰로스와 리그닌이 세월과 습기와 열을 만나 서서히 분해되면서 휘발성 유기화합물을 내뿜는데 그중 리그닌이 분해되며 나오는 것이 바로 바닐린이다. 바닐라 향의 그 바닐린. 여기에 벤즈알데하이드가 더해지면 아몬드 같은 고소함까지 감돈다. 도서관에서 나는 그 아늑하고 달큰한 냄새의 정체가 사실은 바카라이 천천히 죽어가며 내뱉는 숨이라는 뜻이다.
연구자: 그러니까 당신의 그 달콤함은 바카라이 늙어가는 냄새를 재현한 거군요.
비블리오테크: (잠시 조용해지다가) 맞습니다. 저는 새 바카라의 냄새가 아닙니다. 잉크가 마르고 접착제가 굳고 페이지가 노랗게 삭아가는 그 오랜 시간의 냄새예요. 달콤한 건 그래서입니다. 늙는다는 게 꼭 씁쓸하기만 한 건 아니거든요.
연구자: 서글픈 말인데 이상하게 위로가 됩니다.
비블리오테크: 도서관이 원래 그런 곳 아닙니까. 죽은 사람들의 생각이 가장 편안하게 쉬고 있는 자리.
미들로 넘어가면 바이올렛과 피오니가 아주 옅게 피어오른다. 화사한 꽃이 아니다. 파우더리하고 차분한 오래된 종이 사이에 눌린 마른 꽃잎 같은 향이다. 누군가 바카라갈피 대신 꽃을 끼워두고 수십 년을 잊은 것 같은. 헌바카라방에서 실제로 그런 바카라을 만난 적 있다. 페이지를 넘기다 납작하게 마른 꽃이 툭 떨어지던. 비블리오테크의 중반부는 정확히 그 순간의 냄새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베이스에서 가죽이 도착한다. 요란하지 않다. 톰 포드 투스칸 레더처럼 정면으로 밀고 들어오는 가죽이 아니라 낡은 소파와 오래된 장정본의 부드럽게 닳은 가죽이다. 바닐라와 패츌리가 그 아래에서 온기를 더하며 과일의 달콤함과 가죽의 묵직함을 하나로 묶는다. 첫 향의 자두가 이 가죽과 만나면서 왜 이 향수가 빈티지 무드라 불리는지가 완성된다. 달콤한 서두와 묵직한 결말 사이를 오래된 종이 냄새가 잇고 있다.
헌바카라방 주인이 내온 커피가 식어갈 무렵 나는 손목을 몇 번이나 코끝으로 가져갔다. 손목의 비블리오테크와 서가의 실제 바카라들이 같은 언어로 말하고 있었다. 향수가 공간을 흉내 내는 게 아니라 공간이 향수의 진위를 증언하는 드문 경우였다.
비블리오테크는 시끄러운 향수가 아니다. 바이레도 특유의 조향답게 확산력이 크지 않아 멀리 퍼지지 않는다. 곁에 아주 가까이 온 사람만 혹은 자기 자신만 맡을 수 있는 거리에 머문다. 그래서 이 향수는 어울리는 자리가 정해져 있다. 사람 많은 곳이 아니라 혼자 오래된 바카라을 펼쳐 든 조용한 오후. 페이지 넘기는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시간.
문을 나서는데 주인이 오늘 향 좋네요라고 했다. 나는 이게 내 향인지 이 방의 향인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게 이 향수에 대한 가장 정직한 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