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북구 경대 후문의 낡은 고시원은 밤 열한 시가 넘으면 기묘한 정적에 잠긴다.
관리인 태섭은 관리실 간이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형광등을 끈 지 삼십 분이 지났지만 그의 두 눈은 어둠 속에서도 말똥말똥했다. 잠이 오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잠을 잘 수가 없어서였다.
태섭의 초능력은 이 하향 평준화 슬롯가 야간 노동자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조용하고 지독한 형벌이었다. 잠든 사람의 꿈이 벽을 통과해 시각적으로 보이는 능력. 얼핏 들으면 신비롭고 낭만적인 재능처럼 들린다. 태섭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사람들의 아름다운 꿈을 훔쳐보며 밤을 보낼 수 있으리라고.
착각이었다.
고시원 사람들은 아름다운 꿈을 꾸지 않았다. 고시원 사람들은 악몽을 꿨다. 그것도 지독하게 획일적인 악몽을.
이 건물에 사는 스물세 명의 입주자 중 열아홉 명이 각종 시험 준비생이었다. 공무원 준비생 여덟 명 임용고시생 넷 로스쿨 준비생 둘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장수생 다섯. 밤이 되어 이들이 하나둘 잠들기 시작하면 태섭의 눈앞에는 벽을 뚫고 스물세 개의 꿈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리고 그 꿈들은 하나같이 불합격 통지서였다.
밤 열두 시. 삼공사호의 공시생이 먼저 잠들었다.
그의 꿈이 벽을 통과해 태섭의 시야로 흘러들어왔다. 거대한 전광판 앞에 서 있는 청년. 전광판에 수험번호가 주르륵 올라가는데 자기 번호만 없다. 청년이 화면을 향해 손을 뻗지만 번호는 계속 스크롤되어 사라진다. 청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간다.
태섭은 한숨을 쉬며 돌아누웠다. 하지만 방향을 바꿔봐야 소용없었다. 이 능력은 눈을 감아도 벽을 등져도 사방에서 밀려들었다.
밤 열두 시 반. 이공오호의 임용고시생이 잠들었다.
이번 꿈은 시험장이었다. 시험지를 받아 든 여성이 첫 페이지를 넘기는데 글자가 전부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며 도망친다. 아무리 읽으려 해도 문제가 읽히지 않는다. 감독관이 시계를 가리킨다. 시간이 오 분밖에 안 남았는데 한 문제도 못 풀었다. 여성이 펜을 쥔 손을 덜덜 떤다.
태섭은 간이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 정도면 차라리 안 자는 게 나았다.
새벽 한 시. 최악의 시간이 왔다. 대부분의 입주자가 잠드는 시간이었다. 스물세 개의 방에서 꿈이 동시다발적으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전광판에서 사라지는 수험번호. 읽히지 않는 시험지. 면접관 앞에서 갑자기 벙어리가 되는 청년. 합격자 명단을 아무리 훑어도 자기 이름이 없는 장면. 부모님이 실망한 얼굴로 등을 돌리는 꿈. 옆방 친구는 붙었는데 자기만 떨어지는 꿈.
스물세 개의 불합격이 벽을 뚫고 관리실로 쏟아져 들어왔다. 태섭의 좁은 관리실은 순식간에 대한민국 모든 시험의 낙방 종합전시장이 되었다.
[감각 사진]
곰팡내 옅게 밴 좁은 관리실에서 사방의 벽을 뚫고 밀려드는 스물세 개의 악몽과 전광판에서 사라지는 수험번호와 읽히지 않는 시험지와 실망한 부모의 등이 겹겹이 포개지며 관리인의 잠을 완벽하게 앗아가는 소리 없이 시끄러운 풍경.
태섭은 결국 잠자기를 포기하고 관리실을 나섰다.
복도의 형광등이 지직거리며 깜박였다. 그는 익숙하게 정수기 앞으로 걸어가 종이컵에 찬물을 받았다. 이 시간에 깨어 있는 건 태섭만이 아니었다. 삼공이호 문틈으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문을 두드릴까 하다가 태섭은 그냥 지나쳤다. 밤에 안 자고 공부하는 건 이 건물에서 죄가 아니었다. 오히려 미덕이었다.
그런데 삼공이호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훌쩍이는 소리였다.
태섭은 잠깐 망설이다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저기요. 괜찮아요."
잠시 후 문이 빼꼼 열렸다. 삼공이호 입주자였다. 스물아홉 살 공시생 준호. 삼 년째 이 방에 살고 있는 장수생이었다. 눈이 벌겋게 부어 있었다.
"아 죄송해요. 시끄러웠죠."
"아니에요. 그냥 불 켜져 있길래."
태섭은 종이컵을 내밀었다. 방금 받은 찬물이었다.
"물이나 한잔 마셔요."
준호가 컵을 받았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둘은 복도 끝 낡은 소파에 어색하게 나란히 앉았다. 새벽 한 시 반의 고시원 복도는 지독하게 조용했다. 준호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오늘 또 떨어졌어요. 발표 났거든요."
"아."
"세 번째예요. 이번엔 진짜 될 줄 알았는데."
태섭은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원래 남의 꿈을 벽 너머로 훔쳐보는 사람이지 위로를 건네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몇 점 모자랐어요."
"일점오 점이요."
준호가 씁쓸하게 웃었다.
"일점오 점 때문에 또 일 년을 여기서 썩어야 하는 거예요. 이 방에서. 곰팡이 냄새 맡으면서."
태섭은 잠깐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준호 씨."
"네."
"매일 밤 무슨 꿈 꾸는지 알아요."
준호가 의아한 얼굴로 태섭을 봤다.
"네."
"전광판에서 수험번호 사라지는 꿈이죠. 매일 밤 같은 꿈."
준호의 눈이 커졌다.
"어떻게 아세요. 그거 아무한테도 말 안 했는데."
태섭은 뭐라고 답할지 잠깐 고민했다. 사실은 벽 너머로 매일 밤 당신 꿈을 봤어요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관리인 하다 보면 이것저것 눈치가 생겨요."
준호가 물컵을 두 손으로 감쌌다.
"맞아요. 매일 그 꿈 꿔요. 자다가도 벌떡벌떡 깨요. 이러다 진짜 미칠 것 같아요."
태섭은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준호가 매일 밤 꾸는 그 꿈을 떠올렸다. 전광판에 자기 번호만 없는 꿈. 근데 태섭은 그 꿈을 삼 년 동안 봐왔기에 준호도 모르는 걸 하나 알고 있었다.
"준호 씨. 그 꿈에서요. 전광판에 번호 올라갈 때 준호 씨가 항상 앞줄에 서 있어요."
"네."
"뒤에서 구경하는 게 아니라 맨 앞에서 손 뻗고 있어요. 매일."
준호가 멍하니 태섭을 봤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아세요. 포기한 사람은 전광판 앞에 안 서요. 뒤돌아서 가버리지. 근데 준호 씨는 삼 년째 매일 밤 그 앞줄에 서 있어요. 손 뻗으면서."
준호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툭 떨어졌다. 이번엔 아까와 다른 눈물이었다.
"그거 아무한테도 안 지는 사람만 꾸는 꿈이에요."
준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물컵만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작게 웃었다.
"관리인님. 원래 이렇게 말 잘하세요."
"아니요. 오늘 처음."
준호가 방으로 돌아간 뒤 태섭은 다시 관리실 간이침대에 누웠다. 여전히 사방의 벽에서 악몽이 밀려들었다. 스물세 개의 불합격이 오늘 밤도 그를 재우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삼공이호 쪽 벽이 조용했다. 준호가 잠든 모양이었다. 태섭은 그쪽 벽을 향해 슬쩍 시선을 돌렸다.
준호의 꿈이 벽을 통과해 흘러나왔다. 여전히 전광판이었다. 여전히 수험번호가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준호가 맨 앞줄에 서서 손을 뻗고 있는데 그 손이 아까보다 덜 떨렸다. 그리고 전광판을 향해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한 번만 더. 딱 한 번만 더.
태섭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 능력이 아주 조금은 쓸모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태섭은 편의점에서 자양강장제 한 박스를 사 왔다. 그리고 관리실 앞 공용 냉장고에 넣어두고 쪽지를 붙였다. 자유롭게 드세요.
며칠 뒤 냉장고 앞에서 임용고시생 이공오호와 마주쳤다. 그녀가 자양강장제를 하나 꺼내며 물었다.
"관리인님이 넣어두신 거예요."
"네. 뭐 밤에들 공부하니까."
"감사해요. 요즘 잠을 잘 못 자서."
태섭은 이 여성이 매일 밤 어떤 꿈을 꾸는지 알고 있었다. 시험지 글자가 지렁이처럼 도망가는 꿈. 하지만 그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이공오호. 밤에 시험지 자꾸 눈에 밟히면요. 자기 전에 딱 한 문제만 풀고 자요. 어려운 거 말고 제일 쉬운 거. 그럼 좀 나아요."
여성이 신기한 듯 태섭을 봤다.
"어떻게 아셨어요. 저 요즘 시험 꿈 진짜 많이 꾸는데."
"관리인 하다 보면 이것저것 눈치가 생겨요."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서글픈 초능력을 가진 고시원 관리인. 그는 매일 밤 스물세 개의 악몽에 시달리며 잠을 잃었다. 대신 그 악몽 속에서 사람들이 스스로도 모르는 자기 모습을 봤다. 포기한 척하면서 매일 밤 전광판 앞줄에 서 있는 사람. 글자가 도망가는데도 끝까지 시험지를 붙들고 있는 사람.
고시원 사람들은 낮에는 다들 지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밤이 되어 잠들면 벽 너머로 진심을 흘렸다. 아직 포기 안 했어요. 한 번만 더 해볼래요.
태섭은 그 진심을 훔쳐본 대가로 매일 밤 잠을 반납했다. 나쁘지 않은 거래라고 그는 생각했다. 어차피 이 낡은 고시원에서 잠 못 이루는 사람이 자기 하나는 아니었으니까.
새벽마다 그는 관리실을 나와 정수기에서 찬물을 받았다. 그리고 불 켜진 방이 있으면 조용히 물 한 컵을 문 앞에 놓아두었다. 벽 너머의 잠을 지키는 것이 그의 밤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