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

작가의 말

by김경훈

언제부턴가 가게에서 사람 목소리가 사라졌다. 어서 오세요, 도 안녕히 가세요, 도 없다. 그 자리를 카드 단말기의 삑 소리가 대신 채운다. 사람을 맞이하던 목소리가, 결제를 확인하는 전자음으로 바뀌었다.


자정이 지나 동네를 걷다 보면, 문 닫은 가게들 사이로 유독 부산한 곳들이 있다. 무인 빨래방에서는 건조기 여섯 대가 쉬지 않고 돌고, 더운 섬유유연제 냄새가 길까지 새어 나온다.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에서는 냉동고들이 낮게 웅웅거린다. 사람은 없는데 기계는 깨어 있다. 사람이 빠진 자리를, 소리가 대신 지키고 있었다.


이 글은 그 소리들 사이를 지나간 사람들의 이야기다.


무인 점포의 진짜 상품은 거기 놓인 물건이 아니다. 아무도 없음, 그 자체다. 사람들은 아이스크림이나 깨끗한 빨래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누구의 인기척도 없이 잠깐 머물 자리가 필요해서 그곳에 간다. 봉투 드릴까요, 묻지 않는 곳. 왜 혼자예요, 묻지 않는 곳. 잘 지내냐고 묻지 않는 곳.


나는 그것을 한동안 차가움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밤, 그게 일종의 친절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세상에서 가장 무심한 친절. 아무것도 묻지 않는 다정함. 다만 나는, 길을 묻고 자리를 묻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를 물어 가며 여기까지 건너온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아도 되는 가게란, 동시에 아무것도 물을 수 없는 가게이기도 했다. 무인의 친절과 무인의 막막함은 같은 자리에서 나온다. 사람이 없다는 것.


그리고 아무도 묻지 않는 곳에서는, 아무 일이 일어나도 아무도 모른다. 누군가 거기서 밤새 흐느껴도, 누군가 거기서 조용히 사라져도, 그 정적은 좀처럼 깨지지 않는다. 무인의 다정함과 무인의 무서움은 한 몸이다.


「무인」은 그런 가게들을 하나씩 무대로 삼은 연작이다. 편마다 다른 사람이 다른 무인 점포로 들어선다. 어떤 이는 그곳을 돌보는 사람이고, 어떤 이는 그곳에서 자기를 지우는 사람이고, 어떤 이는 그저 집에 들어가기 싫은 사람이다. 그들은 서로를 모른다. 다만 같은 도시의 같은 새벽을, 같은 적막 속을 통과한다. 가끔 한 편의 단역이 다음 편의 주인공으로 걸어 들어오기도 한다. 우리가 매일 스치면서도 끝내 모르는, 이름도 목소리도 없는 사람들처럼.


나는 이 이야기들을 무섭게도, 그립게도 쓰고 싶지 않았다. 무인 점포를 탓하거나, 사람 냄새 나던 옛 가게를 미화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사람을 점점 덜 필요로 하게 된 도시의 온도를 —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그 미지근한 온도를 — 있는 그대로 더듬어 보고 싶었다. 우리는 이미 그 안에서 살고 있으니까.


이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자주 밤의 무인 점포에 앉아 있었다. 냉동고 소리와 건조기 소리를 들으며,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는 시간을 가만히 통과했다. 그게 나쁘지 않았다. 그 사실이 조금 무서웠다. 어쩌면 그 무서움이 이 글의 시작이었다.


부디, 아무도 묻지 않는 그 자리에서 편안히 읽으시길.


어느 무인의 새벽에,

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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