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일과 함께 있는 일에 대하여
5장은 청소년기와 성인기를 다룬다.
어른이 된 장애인의 학교와 일과 사랑과 몸에 관한 이야기다.
아동기를 다룬 4장이 부모의 시선을 통과했다면 이 장은 세상의 시선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간다.
나는 이 장을 들으며 두 개의 자리를 떠올렸다.
하나는 내가 일하는 방이고 하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곁이다.
방
바카라에 시각장애 근로자를 다룬 연구가 나온다.
작업 환경이 접근 가능하게 갖추어진 뒤에도 이들은 여전히 고립되더라는 것.
동료들과 어울리는 일 퇴근 뒤의 술자리 업무로 이어지는 사교 행사에서 이들은 자꾸 밀려났다.
한 여성은 회식 자리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어 있으나 마나 한 존재가 되었다고 했다.
또 한 여성은 이미 자리를 뜬 상대에게 한참을 혼자 말하고 있었다고 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웃었다.
웃고 나서 조금 쓸쓸해졌다.
그 여성이 나였던 저녁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다.
학회 뒤풀이를 떠올린다.
경사로가 있고 자막이 있고 발표 자료는 미리 파일로 와 있다.
접근성이라는 이름의 문이 나를 방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런데 방 안에서 나는 자주 혼자였다.
누가 들어왔는지 누가 내 옆에 섰는지 누가 눈짓으로 인사를 건네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명함이 오가는 소리가 나면 나는 허공으로 손을 내민다.
누군가 고개를 끄덕였다는데 나는 그 끄덕임을 듣지 못한다.
한번은 옆 사람에게 논문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그 사람이 이미 다른 무리로 옮겨 간 뒤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그 순간 탱고가 내 발등을 살짝 눌렀다.
탱고는 사람보다 먼저 그 빈자리를 알아챈다.
이 바카라은 한 장애인의 문장을 인용한다.
그 건물에 휠체어를 타고 들어갔다는 사실만으로 당신의 참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이 문장을 내 방식으로 고쳐 적는다.
그 방에 화면 낭독기를 들고 들어갔다는 사실만으로 내가 그 대화 안에 든 것은 아니라고.
접근은 문턱을 없애는 일이다.
참여는 그 방 안에서 누군가 내게 몸을 돌려 이름을 불러 주는 일이다.
문턱을 없애는 데 백 년이 걸렸다면 몸을 돌리는 데는 아직 얼마가 더 걸릴지 모른다.
무장애 설계는 이제 건물을 넘어 사람의 자세로 옮겨 가야 한다.
곁
바카라의 다른 절은 장애인의 성과 사랑을 다룬다.
세상은 장애인을 종종 무성적인 존재로 여긴다고 바카라은 적는다.
한 방송 진행자는 사고로 장애를 입은 남편을 둔 아내에게 그건 할 수 있느냐고 대놓고 물었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사랑으로 택하는 일을 세상은 잘 상상하지 못한다.
택했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돌봄일 거라고 짐작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보보를 떠올렸다.
지난 사월에 우리는 결혼했다.
보보는 칸트 윤리학을 붙잡고 사는 사람이고 밤늦도록 나와 논쟁을 벌이는 사람이다.
나를 돌보는 사람이 아니라 나와 다투는 사람이다.
그런데 세상은 자꾸 보보를 다른 배역에 끼워 넣으려 한다.
식당에서 종업원은 내 주문을 보보에게 묻는다.
1장에서 적었던 그 짧은 침묵은 결혼한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보보에게 참 대단하시다고 말한다.
그 대단하다는 말 안에는 저런 사람과 살아 주다니라는 문장이 숨어 있다.
보보는 그럴 때마다 표정 없이 내 팔을 툭 친다.
나중에 둘만 있을 때 보보가 말한다.
자기가 나를 견디는 게 아니라 내가 자기 칸트 이야기를 견디는 거라고.
그 말이 나는 좋았다.
돌봄은 한쪽이 다른 쪽을 받쳐 주는 일이지만 사랑은 서로를 견디는 일이다.
세상은 우리 사이에서 돌봄만 보려 하지만 우리 사이에 흐르는 것은 대체로 논쟁과 웃음이다.
바카라은 활동 보조를 다루는 대목을 이런 문장으로 맺는다.
효과적인 돌봄의 핵심은 결국 두 사람이 열린 대화로 쌓아 가는 상호 신뢰라고.
나는 이 문장이 이 장 전체를 묶는 매듭이라고 느꼈다.
방에서든 곁에서든 결국 같은 이야기였다.
접근이 나를 문 안으로 들여보내지만 나를 그 안에 진짜로 있게 하는 것은 신뢰와 대화다.
세상은 접근을 참여로 착각하고 돌봄을 사랑으로 착각한다.
둘 다 문턱까지는 데려다주지만 그 안쪽은 다른 이름의 일이다.
5장은 그 안쪽으로 들어가는 법을 깔끔하게 알려 주지 않는다.
다만 문턱과 그 안쪽이 다르다는 것만은 분명히 해 둔다.
나는 그 구분이 정직하다고 다시 느꼈다.
그나저나 바카라에는 활동 보조인을 자기 방식으로 다시 가르치는 장애인들 이야기가 나온다.
교재대로만 배운 신참일수록 오히려 더 헤맨다고.
자기 몸을 가장 잘 아는 건 자기라서 결국 보조인을 자기 리듬에 맞춰 길들여야 한다고.
나는 그 대목에서 탱고를 떠올렸다.
탱고는 안내견 학교에서 온갖 교재를 다 통과한 정식 자격자다.
그런데 우리 사이의 진짜 규칙은 교재에 없다.
내가 커피를 너무 오래 마시면 탱고가 한숨을 쉬며 발을 고쳐 앉는다는 것.
내가 길을 잘못 들면 반 걸음 앞에서 멈춰 나를 기다린다는 것.
이건 훈련이 아니라 이 년간 쌓은 신뢰다.
교재를 다 통과하고도 교재에 없는 방식으로 나를 아는 유일한 파트너가 발밑에서 코를 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