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의 아키텍처 4

아무도 그것을 비극이라 부르지 않던 시절에 대하여

by김경훈

4장은 가족과 아동기를 다룬다.

바카라은 한 가지를 솔직히 인정하며 시작한다.

장애아동 본인의 관점을 들여다본 연구는 드물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어른이 된 사람이 자기 어린 시절을 돌이켜 말한 기록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것.

나는 그 문장 앞에서 내가 바로 그 어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장을 읽는 나는 장애아동을 연구하는 어른이면서 한때 그 아동이었던 사람이다.

보이스오버가 남의 어린 시절을 읽어 주는 동안 내 어린 시절이 자꾸 끼어들었다.


바카라에 이런 연구가 나온다.

일곱 살부터 열다섯 살까지의 장애아동에게 자기 삶을 이야기하게 했더니 그 누구도 자신의 상황을 비극이라 부르지 않았다는 것.

어떤 아이는 별일 아니라고 했다.

수십 번의 입원과 수술을 겪고도 아이들은 담담하고 실용적이었다.

비극이라는 말은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 말은 언제나 어른들의 것이었다.

나는 이 대목에서 오래 멈췄다.

내가 매주 무장애 설계도에 쓰는 문장이 거기 먼저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장애는 비극이 아니라고.

나는 그것을 어른이 되어 겨우 한 문장으로 만들었는데 아이들은 이미 그것을 그냥 살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어른이 되면서 한 번 잊었다가 다시 배우는 중인지도 모른다.


바카라의 한 장은 규준을 향한 갈망을 이야기한다.

아이가 언제 뒤집고 언제 기고 언제 걷고 언제 말하는지.

발달의 눈금이 촘촘히 그어져 있고 부모와 의사는 그 눈금에서 아이가 얼마나 벗어났는지를 잰다.

평균이라는 것은 원래 그저 가운데를 뜻하는 말이었는데 어느새 도달해야 할 이상이 되어 버렸다고 바카라은 지적한다.

나는 내 부모를 떠올렸다.

두 분은 나를 사랑했고 그래서 나를 정상의 눈금에 최대한 가깝게 데려가고 싶어 했다.

그 마음을 나는 이제 안다.

그러나 그 사랑에는 값이 있었다.


바카라에 베스 오만스키라는 시각장애 학자가 나온다.

그녀는 전맹과 저시력의 경계선에 사는 사람이다.

그녀의 부모는 그녀가 최대한 정상으로 자라기를 바라며 그녀를 일반학교에 두었다.

고귀한 바람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 그녀는 시각장애인에게 필요한 기술을 배울 자리를 잃었다.

경계선에 사는 아이들은 늘 보이는 쪽에 남아 있으라고 떠밀린다.

점자를 배우기보다 남은 시력을 쥐어짜라고 격려받는다.

그 격려가 읽기를 더디게 만든다는 것을 어른들은 몰랐다.

나는 이 문장에서 숨을 골랐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칠판을 조금만 더 가까이서 보라던 목소리.

큰 글씨 교과서를 코앞에 대고 한 줄을 읽는 동안 반 아이들은 한 쪽을 넘겼다.

눈을 더 쓰라는 말은 곧 정상으로 보이라는 말이었다.

보이는 척하는 일과 실제로 읽는 일은 같지 않았다.

그러다 손끝이 점자를 만나던 날 읽기는 비로소 읽기가 되었다.

3장에서 만진 그 여섯 개의 점이 내 어린 손끝에도 백 년의 시차를 두고 도착했던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눈으로 흉내 내는 대신 손으로 읽었다.

느리게 보이던 아이는 사실 잘못된 길로 읽고 있었을 뿐이었다.


바카라에는 어릴 때 한쪽 다리를 잃은 에밀리 라프의 회고가 있다.

그녀는 잘려 나간 자리와 자신의 몸을 연결시키며 이렇게 적었다.

그것이 내 몸이니까 그렇게 어린 나이에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그러면서도 더 잘 움직이기를 간절히 바랐다고.

받아들이는 일과 바라는 일이 한 문장 안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나는 이 문장이 가장 정확하다고 느꼈다.

내 눈을 고치고 싶다고 빌던 밤과 내 손끝이 자랑스럽던 아침은 서로 모순이 아니었다.

둘 다 같은 몸의 일이었다.

2장에서 배운 체화라는 말이 여기서는 한 아이의 문장으로 돌아와 있었다.


4장을 다 듣고 나서도 나는 내 부모가 옳았는지 답하지 못했다.

오만스키의 부모처럼 내 부모의 바람도 고귀했다.

그러나 고귀한 바람이 늘 옳은 길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바카라은 특수교육을 두고 담담히 결론짓는다.

그것은 유익하기도 하고 해롭기도 하다고.

경계선 위에서는 어느 쪽도 완전히 옳지 않다.

나는 그 미결이 정직하다고 다시 한번 느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어린 나는 내 삶을 비극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 아이의 판단이 옳았다.

나는 그 아이가 이미 알고 있던 것을 어른이 되어 되찾는 중이다.


그나저나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했더니 보보가 칸트를 또 꺼냈다.

인간은 교육을 통해서만 인간이 된다고 칸트가 썼다며.

나는 어른들이 나를 정상으로 만드는 일이 교육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나를 나로 만들어 준 것은 점자였지 정상이 아니었다고.

보보가 그렇다면 그 교육은 방향을 잘못 잡은 거라고 웃었다.

탱고는 그사이 자기 앞발을 베고 잠들어 있었다.

안내견 학교에서 그 엄한 눈금을 다 통과한 우등생이 지금은 규준이고 뭐고 다 잊은 얼굴로 코를 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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